11. 워치만니

「워치만니」가 유독 한국에서만 오해를 받는 이유

요나한 2022. 10. 13. 10:29

100년 전, 척박한 중국의 땅에... 

기독교사에 길이 남을 한 '성경교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워치만니는 신학을 전공하지도 아니한 평신도이었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영성은 그 누구보다도 뛰어 납니다.

워치만니는 그를 폄훼하는 수많은 자들(유독 한국에서만)로 겹겹이 둘러 쌓여 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날카로운 칼과 창은 어떠한 방해와 훼방도 뚫고 나갑니다.

 


워치만니가 일부 교단과 신학자들로 부터 이단이라고 공격받는 원인은 아래와 같습니다.

워치만니가 26세 때에 저술한 '영에 속한 사람(3권)'을 시작으로하여...

마치 누에고치에서 고운 명주실이 뽑아져 나오듯이 하나님의 진리가 계속적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어두움을 밝히는 빛이 나타나자, 빛을 싫어하는 무리들로부터 반발이 시작되었습니다.

비록 박사학위를 받은 신학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영성은 깊지가 않아, 책에서 전하는 영적 깊은 내용들을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에 거부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다루심과 체험을 통하여서만 깊은 영성이 형성이된 자만이 영적인 일을 깨달 수가 있으며, 머리의 지식으로는 영의 깊은 부분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워치만치가 시작한 작은 형제회(Little flock)는 워치만니가 투옥된 1952년 이후로는 위트리스리에 의해 운영이 되어졌는데...
그는 "지방교회가 성경적인 교회이며, 기존에 있는 여러 교파의 기성교회들은 성경적 가르침을 따르는 교회가 아니다"라는 발언을 하기 시작하였다 합니다.

그러한 위트리스리의 교회론기성교단들의 집중 공격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로써 기성교단과 지방교회는 서로 깊은 골이 생기게 되었는데... 
이러한 반목은 워치만니의 사역 결과가 아니라, 워치만니의 투옥으로 그대신 위트리스리가 작은 형제회를 이끌어가면서 도가 지나친 공격적인 교회론을 펼침으로 야기된 일인것 같습니다.

워치만니가 내놓은 가르침이 신학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 워치만니에 의하여 시작된 교회론이 위트리스리에 의하여 극단화되면서 기성 교회들은 지방교회에 거부반응을 일으키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가 하여야할 일은 어두움에 적응된 눈을 억지로라도 가늘게 뜨고, 밝은 빛을 조금씩이라도 수용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은 (신학자들의 가짜 교리나 교단에서 선호하는 가짜 가르침이 아니라) 진리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