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활과 심판

[스크랩] 부활의 문제점 - 밤중소리 민병석

나다나엘(구 요나한) 2016. 8. 14. 12:46

부활의 문제점

아이디 : 3212355     이름 : 민병석 번호 : 77     조회 : 1238
게시일 : 2008-07-11 19:33:35     수정일 : 2009-02-01 07:59:08


부활은 무엇이며 어떻게 이루어지며 그 순서는 어떠한가?


1. 서 론
부활문제는 그 해석에 많은 다양성과 복잡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부활을 다루는 일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같은 개혁주의 신학에 있어서도 전 천년설이냐, 무 천년설이냐에 따라 그 부활관이 판이하다. 전 천년설을 주장하면 주의 재림 때에 믿는 자의 전체적 부활이 있게 되는데 그것을 첫째부활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천년왕국 후에 믿지 않는 자들의 전체적 부활이 있게 되며 그 부활을 둘째부활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주님 재림 때에 지상에 살아 있는 성도들은 모두 변화체가 되어 공중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된다. 이런 변화는 첫째부활에 속하게 된다. 그런데 무 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든 부활이 주님이 재림하실 그 때에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믿는 자들의 부활이나 믿지 않는 자들의 부활이나 또 믿는 성도들의 변화 역시 그렇다. 첫째부활이나 둘째부활이 없고 모두 함께 동시에 부활하고 공중휴거도 없고 그것으로 끝난다. 천년왕국을 인정치 않는 그들의 신학사상으로 볼 때, 당연한 논리가 된다.


2. 부활문제와 천년왕국
과연 우리는 이 같은 부활관, 말하자면 지금 신학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이런 불확실하고 정견이 없는 부활관에 지배되어 상태에서 부활에 관한 성경적인 소망을 어떻게 가질 수 있는 것인가, 이런 부활관이 진정 성경이 밝히고 있는 부활인가, 이 문제는 우리가 심각하게 다루어야 할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1) 주의 재림 시에 모든 성도가 부활하고 모든 성도가 변화 받아 천년왕국에 들어가 살아간다면 천년왕국은 지상의 왕국이 아니라 이미 천국생활이기 때문에 전 천년설이 성립될 수 없다. 부활체는 신령한 몸으로 오직 천국에서만 생활하기에 합당한 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전 천년을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주장을 따르고 있으니 모순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또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신학으로서는 부활을 그런 방법외 다른 방법으론 해석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2) 천년왕국 생활은 범죄하기 이전, 에덴의 생활로 회복되는 것이다. 부활한 몸은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며 천사와 같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는데 부활한 성도들이 천년왕국에서 어떻게 자녀를 낳으며 토지를 개간하며 땅에 충만하게 번성하는 육신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말인지 정말 이해할수 없다.

(3) 주 재림 때, 구원 받을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부활에서도 제외되고 변화에서도 제외되며 공중휴거에서도 빠져버린다면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천년왕국에 들어가며 성도들과 격리되어 어떻게 생활을 해 나갈 수 있다는 말인지 납득할만한 설명이 불가능하다.

(4) 부활하고 변화 받은 수10억의 성도들은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고 불과 수백만의 유대인들은 육신을 가진 체 이방인 밑에서 백성노릇하게 되니 유대인들이 대망하는 축복의 메시야 왕국이 과연 이런 것인지 성경적인 상식으로도 이해가 안 된다.

(5) 천년왕국은 분명히 구약에서 유대인들에게 약속된 메시야 왕국인데 이방인들은 주님과 같이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고 변화 받은 몸으로 살아가고 유대인들은 썩어질 육신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메시야 왕국이 유대인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하는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이 어떻게 정당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6) 육신으로 천년왕국 생활을 하게 되는 유대인들은 이미 변화 받은 이방인들과는 달리 별도로 변화 받아야 하는데 그 변화의 시기는 언제이며 이 유대인들만의 변화에 대해 성경은 무엇이라 계시해 주고 있는가? 이들이 천년왕국이 끝난 후에 변화되거나 구약에서 구원 받은 유대인들이 그때 부활한다면 이 부활은 첫째부활인가, 둘째부활인가?

(7) 무 천년주의 자들의 주장처럼 주 재림 때, 모든 사람들이 부활한다면 첫째부활이란 말씀은 왜 나왔는가? 첫째부활에 대해 계20:4절에서 순교자들의 부활로 정의하고 이들이 천년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데 무 천년주의자들은 첫째부활이 그리스도인들의 중생이라고 말하니 명백하게 밝혀진 첫째부활의 진리를 이처럼 신학이란 이름으로 제멋대로 해석해도 괜찮은 것인지?

(8) 무 천년설이건 전 천년설이건 자신들의 신학적 학설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그 후에는 나중이니”라고 말하고 있는 세 번째의 부활자들이 분명 성도들의 마지막 부활임에도 이들을 불신자들의 심판의 부활이라고 주장함으로 성경해석에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이 사실을 그들은 눈 감을 것인가?(고전15:22-25).

(9) 계20:4절에서 첫째부활자를 순교자들로 정의하고 있음에도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성도라고 주장한다. 본문에 분명히 언급된 계시를 부인하면서까지 신학적 주장을 앞세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10) 계20:5절에 나오는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는 말씀에서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순교자들의 대상에서 제외된 일반 성도들의 부활을 말하며 일반 성도들은 천년왕국이 끝난 후, 백보좌 심판 시에 부활한다는 사실에 대한 계시인데 이를 곡해하여 이들을 심판 받을 불신자들의 부활이라고 주장하는 게 합당한 일이라고 보겠는가?


3. 부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부터
부활에 관한 계시나 언급은 성경 여러 곳에 나와 있다. 그리고 그곳에 언급되어 있는 부활은 모두 동일한 내용으로 계시되어 있는 게 아니라 서로 모순되고 충돌되는 듯한 말씀이 여러 곳에 잠복해 있다. 그러므로 부활을 논할 때는 어느 한곳에 단편적으로 계시되어 있는 내용만을 가지고 결론을 내리려는 유혹을 받아서는 안 된다.

성경에는 성도들이 부활에 관해 성경적인 부활관을 가지고 부활에 대한 올바른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계시해 주신 사실을 알아야 하며 이런 사실에 우리는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4. 성경에 계시된 부활의 순서
성경에는 부활에 관한 단편적인 계시가 많이 나와 있지만 그 단편적 계시에 나타난 부활문제를 그 문제에 국한하여 나름대로의 부활에 대한 결론을 내린다면 부활은 너무 복잡하고 다양하여 종합적인 부활관을 세울 수가 없다. 성경 전체에 산재해 있는 부활문제를 다룰 때는 먼저 그 부활이 부활의 순서에 있어 어느 부활에 속하느냐는 문제를 해결해야 그 부활에 관계된 주변의 깔린 말씀의 뜻을 올바로 깨다를 수 있게 된다.

성경에는 부활의 순서가 있다. 그 순서가 성경에 꼭 한곳에만 계시되어 있다. 한곳에 있기에 다행이지 만약 여러 곳에 서로 상방된 계시가 기록되어 있다면 부활관의 혼란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부활의 순서에 대한 계시가 고린도전서15:20-26절에 너무나도 뚜렷하게 계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기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위의 본문은 부활의 순서를 성경에서 계시해 주신 유일한 말씀이기 때문에 부활의 순서는 반드시 이 말씀이 표준이 되어야 한다. 이 말씀에서 부활할 사람들은 모두 생명의 부활자들로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소망을 가진 모든 성도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부활의 순서에는 절대로 불신자의 부활이 들어가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며 이런 사실은 본문의 논지로 확실하게 드러나 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는 말씀은 그 다음에 언급된 부활의 순서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삶을 얻을 사람들임을 전제하고 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다는 말은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생은 모두 죄로 말미암은 심판의 대상이기 때문에 결코 신령한 몸으로 변화 받아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를 가지고 천국에서 살아가는 생명의 부활의 대상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런 축복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은 모든 성도들만이 해당된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부활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동일한 시기에 동일하게 이루어짐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 마다 각기 자신에게 주어진 부활의 시기가 있는데 이 순서에 의해 생명의 부활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고 있다.

본문에서 보여주는 부활의 순서에서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라고 했다.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이시다. 그가 첫 열매이신 이유는 그 분은 부활의 시작이시며 부활 그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부활이 그 분으로 말미암아 왔고 그 후에 오는 그리스도 안의 부활은 그 분과의 연합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그 분은 부활의 첫 열매이시다. 그러므로 첫 번째 부활자는 그리스도이시며 부활의 순서에서 그리스도는 단연 첫 번째가 되신다.

다음에 “각각 자기 차례대로”되는 부활의 순서에서 두 번째로 부활할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이에 대해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그에게 붙은 자”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여기서 다음이란 순서는 마지막을 가리킨 표현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다음에 또 “그 후에는”이라고 하는 세 번째의 부활자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부활자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주장하는 전 천년주의 자들이나 세대주의 자들은  그들의 주장을 성경적으로 정당화시키려고 이 대목에 와서 너무나도 무책임한 해석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 후”에 해당하는 부활의 대상자에 대해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멸망 받을 불신자들 모두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과연 이런 해석에 박수를 보내야 하는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들의 신학적인 주장에 합리화 시키려고 시도하는 그들의 불순한 의도를 배격해야 한다. 신학은 성경에서 나와야 하고 성경은 신학을 앞서고 초월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성경본문에서는 분명히 그리스도 안에서의 부활을 계시해 주시면서 각각 차기차례대로 부활하는 부활의 순서에 있어서 첫 번째는 부활의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 두 번째로 부활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그에게 붙은 자들이며 그리고 그 후에 부활할 그리스도인들이 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으로 밝혀주고 있는데 왜 이들을 그리스도인들이 아닌 불신자들의 부활이라고 주장하는 것인가?

그리고 이들의 부활시기에 대해서도 언급해 주고 있다. 그리스도는 그가 죽으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그 분은 이미 부활을 성취하셨다. 두 번째 부활자들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그 분과 함께 지상에 내려올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의 부활은 이 두 번째의 부활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후”에 또 한 번의 부활이 따르게 되어 각각 자기 차례대로 부활하는 순서에 따라 이 때 부활하는 그리스도들이 또 있다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들도 그들이 부활할 시기에 대해 분명한 말씀으로 계시해 주고 있다.

그러면 세 번째로 맨 마지막에 부활할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시기에 대해 알아보자.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그리스도인의 마지막 부활은 그리스도 재림이 있은 후에 있게 된다. “그 후에는 나중”이라고 하셨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맨 나중에 부활할 그리스도인들은 언제 부활하는 것인가?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 했다. 여기서 저라고 지칭하고 있는 대상은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 후, 다시 이 땅에 세워지는 정사와 권세와 능력이란 천년왕국의 통치를 의미한다. 고전15:25절에서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하시리니”란 말씀이 이런 사실을 증거 해 준다. 여기서 왕 노릇하신다는 말씀은 계20:6절에서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고 하신 말씀과 연결된다. 그리스도께서 재림 후에 왕 노릇하실 곳은 천년왕국뿐이시다.

그 시기에 대하여 두 가지를 말씀해 주고 있다. 하나는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 하셨다. 여기서 나라란 그리스도에게 속한 모든 백성, 곧 천년왕국을 거쳐 최종적으로 구원을 완성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 천년왕국이 끝나면 곧 백보좌 심판을 거쳐 영원한 새 예루살렘에 올라가 신령한 몸을 입고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를 가지고 영원히 살아갈 것인데 바로 그 때가 "그 후"에 이루어질 마지막 부활의 때임을 의미한다. 그 시기에 이르렀을 때에 “그 후”에 있을 그리스도인의 마지막 부활이 있게 된다. 그리고 이 시기에 대해 26절에서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는 말씀에서 그 부활의 시기가 사망을 영원히 멸할 시기인 백보좌 심판의 때임을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계20:14절에서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사망 곧 불 못이라”는 말씀이 이런 사실을 증명해 준다.


5.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그에게 붙은 자의 부활
여기서 부활문제에 가장 어려운 난제로 대두되는 첫째부활문제를 살펴보기로 한다.“첫 열매인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할 아무런 문제도 없다. 그 다음에 문제가 되는 것은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라고 말하고 있는 이 그리스도인의 대상은 누구냐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고전15장의 부활의 순서를 무시하면 이들은 이미 죽어 하늘에서 영적 안식을 취하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래서 기존의 세대주의 신학이나 전 천년설 신학의 영향을 받은 모든 교회들은 이들 대상자들이 전체 그리스도인으로 착각한 나머지 죽어 천국에 올라가 있는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전부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공중으로 내려온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이 주장에 따르면 그리스도 재림 시에 성도들의 전체적인 부활이 있게 되고 이 부활이 첫째부활이라고 단정짓는다. 그리고 이 부활에서 제외된 사람들은 모두 심판의 대상인 불신자들로 천년왕국이 끝난 후, 백보좌 심판 시에 심판의 부활자로 부활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 부활을 둘째 부활이라고 말하며 계20:5절에 나오는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이 바로 이들 불신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에는 그렇게 해석하도록 오해 받을 수 있을만한 성경구절이 여러 곳에 계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데살로니가전서에서 여러 번 찾을 수 있다.

살전4:14 “우리가 예수가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물론 이들은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그에게 붙은 자들로 그리스도의 부활 다음에 부활할 그리스도인들이다. 여기서는 그냥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예수 안에서 죽은 모든 성도들을 의미한다는 주장에 동의하기 쉽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고전15장에서 계시해 주고 있는 부활의 순서와 정면 충돌된다. 이런 경우에는 부활의 순서가 그 대상자를 결정지어야 순리적인 해석이 된다. 그러므로 살전4장에서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이 모든 성도들을 의미하는 표현이 아니라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그에게 붙은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해석해야 옳다. 그리고 이 부활 이후에도 “그 후”에 또 한 번의 그 나머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차례에 따라 부활할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 이 순서를 무시하면 그 후에 부활할 그리스도인들의 마지막 부활이 불신자들의 부활로 뒤바뀌게 된다. 근시안적인 신학자들에 의해 부활관을 모순덩어리로 만들어 놓은 함정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살전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이 말씀은 14절 말씀을 다른 형태의 문장으로 기록한 것인데 그 내용은 동일한 사건이다. 그리스도가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난다고 했다. 이들의 일어남이 그리스도인의 부활인데 이 부활자들이 강림하시는 주님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하신 그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있을 때에 지상에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들도 저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리우심을 받는 공중휴거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는 그 죽은 자들은 분명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그에게 붙은 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 붙은 자들이 주 안에서 죽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아님은 죽은 자들의 부활의 순서에서 그 후에 다시 한 번 부활이 있다고 명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부활에 관해 성경에 널려 있는 여러 계시를 바르게 해석하려면 부활의 순서에 맞추어 그 부활의 성격과 종류를 밝혀내는 방법이 순리적이다.


6.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들”
우리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함께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리스도인들이 주 안에서 죽은 모든 성도들이란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고정관념은 비성경적인 부활관이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이 문제에 대해 몇 가지로 언급한 곳이 있다. 먼저 구약에서 살펴보자.

슥14:5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 하리라” 주님이 강림하실 때, 그와 함께 할 성도들에 대해 “모든 거룩한 자”라고 말씀해 주었다. 여기서 모든 거룩한 자란 대상이 주 안에서 죽은 모든 성도들을 가리키지 않음을 그 이전에서 밝혀준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3-4절을 보면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열국을 치시되 기왕 전쟁 날에 싸운 것같이 하시리라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이 말씀에서 가리켜 주시는 주의 강림은 아마겟돈 전쟁 참여와 감람산에 강림하심이다. 이 두 곳은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강림할 만한 장소가 되지 못한다. 그리고 주의 강림하심은 공중이 아니라 지상이며 그에게 붙은 자들 역시 주님과 함께 지상에 내려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그에게 붙은 자가 할 일은 그리스도의 강림하심으로 짐승의 군대들을 진멸하는 아마겟돈 전쟁에 주님과 함께 참여함에 있다. 이 일에 대해 계19:14절에서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고 했다. 그를 따르더라고 한 말씀은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를 의미한다. 이 일에 대해 아마겟돈 전쟁에서 주님과 함께 짐승의 군대와 더불어 싸워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계17:14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다. “저희가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오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고 했다.

이들은 분명 주님과 함께 하늘 군대로 내려와 짐승의 무리들과 아마겟돈에서 싸울 성도들로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들이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그 중에 특별한 부류에 속한 성도들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7. 첫째부활자들은 누구를 말하는가?
우리는 첫째부활자에 대해 너무나도 큰 오해에 사로잡혀 있다. 모든 죽은 성도들이 참여하는 부활이 곧 첫째부활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그렇지 않다. 첫째부활자가 누군가에 대해 성경에서 언급되어 있는 곳이 한 곳에 나와 있다. 성경은 이곳에서 첫째부활자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주고 있을 뿐 아니라 다른 곳엔 첫째부활에 대한 말씀이 없기 때문에 첫째부활자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곳은 바로 이곳뿐이다. 그곳이 계20:4절이다.

계20:4“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부활이라”

위 말씀은 첫째부활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명쾌한 성경적인 해답이다. 첫째부활자는 두 종류의 그리스도인으로 나온다. 특징은 두 종류의 경우, 그들 대상자들이 모두 순교성도들이란 사실이다. 첫 대상자는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이라 하였다. 이들은 분명히 그리스도인들이지만 순교한 성도들이다.

다른 또 하나의 첫째부활의 대상자에 대해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이들 역시 순교자들이란 사실은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한다는 말씀에서 알 수 있다. 영혼들은 부활체가 아니다. 그 영혼이 살아난다는 말은 죽은 사람이 부활하여 신령한 몸으로 덧입는 것을 의미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은 그들의 순교 시기가 짐승의 통치시대임을 가리킨다. 이들은 짐승과 투쟁하여 순교한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 두 종류의 첫째부활의 대상자들에 대해 동일하게“살아서”란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은 그들이 죽었던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들은 모두 순교성도들이다. 살아서란 말은‘살아나서’란 의미의 표현으로 죽은 자가 살아난 상태로 곧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난 부활자들을 의미한다.

왜 여기서 순교자들을 하나로 묶지 않고 두 종류의 부활로 구분시키고 있는 것인가? 그 이유는 계시록 6장에서 찾을 수 있다.

계시록 6장은 종말계시의 총론으로 일곱 인을 떼는 사건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다섯 번째 인을 떼실 때에 성도들의 피 값을 호소하는 순교자들의 간구가 하나님의 제단 아래서 벌어진다.

계6:9-11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의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이 말씀을 보면 순교성도의 영혼들이 제단아래서 피 값의 신원을 호소하는 기도를 드리는데 이들은 이미 7년 환난 이전에 순교한 그리스도인들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른 또 하나의 순교자들을 보여주시는데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는 말씀이다. 이들은 아직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가 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장차 짐승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순교자들을 의미하며 이 순교자들의 등장이 계시록 20장에서 보여주는 두 종류의 부활자들과 함께 첫째부활자를 이루는 동일한 맥을 잇는다. 이 순교자들의 수효가 채워질 때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이 이루어지며 이 심판이 여섯째 인의 개봉으로 성취된다.


8.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그에게 붙은 자란 이들 첫째부활자들이다.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그에게 붙은 자가 누구인지를 알려면 주 재림 때 있을 사건을 추리해야 한다. 예수님은 언제 강림하시는가? 어데 강림하시는가? 누구와 강림하시는가에 대한 성경적인 증거가 필요하다. 예수님의 강림 장소는 두 곳으로 나와 있다. 한 곳은 예루살렘 동편 감람산이요 다른 한 곳은 므깃도로 알려진 아마겟돈이다.

계16:15-16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이 아마겟돈에서 짐승의 군대와 싸우는 주님의 모습이 계19장에 나와 있다.

계19:11-13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이 때 강림하시는 주님을 따라 붙은 자에 대하여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다.

계19: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유1:14 “...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슥14:5 “...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 하리라”

백마를 타고 주님을 따르는 하늘 군대는 천사들이 아니다. 철장권세를 가지고 짐승의 무리들을 무찌를 성도들로 이 성도들이 첫째부활자들인 순교자들이다(계17:14). 

주님이 재림하실 장소에 대해 스가랴서에는 이처럼 말씀해 준다.

슥14:4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주님의 강림하실 장소가 이처럼 "아마겟돈"과 "감람산" 두 곳으로 나와 있는 것은 예수님은 거룩한 무리와 함께 먼저 감람산에 임하셔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구원을 위한 조치를 취하시고(슥12:10,사4:3-6) 짐승의 군대를 섬멸하시려고 아마겟돈으로 출전하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순교자 중, 환난 중 순교자들의 순교와 부활의 모습이 계11:7-12절에 계시되어 있다. 이들은 계7장에서 이스라엘 중 각 지파 중에서 뽑힌 144.000명의 우리 하나님의 종들이다. 순교자의 수효를 채우는 두 증인들의 부활을 고대하고 있었던 환난전 순교자들도 이들의 부활 시, 그들과 함께 부활하게 되는데 이 두 종류의 순교자들의 부활이 영광스러운 첫째부활이다.

이들은 부활한 후, 하늘에서 주의 강림을 기다렸다가 하늘 군대로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로 지상에 내려오게 된다.


9. 마지막 부활
이 같은 첫째부활 외 또 하나의 부활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다. 많은 성도들이 소망하는 부활이 바로 이 마지막 부활이다. 이 부활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이며 만약 성도들에게 이 마지막 부활의 소망이 없다면 사도 바울이 말하는바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은 허망하며 우리는 세상에 가장 불쌍한 운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이며 영원히 멸망 받을 죄인에 불과하다.

마지막 부활의 총론적인 결론은 다음에 나오는 주님의 말씀에서 정답을 얻게 된다.

요6:39 “...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살리리라”

요11:23-2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줄을 내가 아나이다”

그러면 성경에서 마지막 날은 언제를 의미하는가? 인류의 역사는 주님의 재림 이후에도 천년 동안, 새롭게 계속된다고 말씀해 주고 있다. 이 왕국 후, 다시 하늘의 불로 이 세상과 붉은 용과 그의 사자들과 바다의 모래 수와 같은 이 땅의 대적자들을 심판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최종적으로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 새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시는 날이 오게 된다. 이 날이 바로 마지막 부활이 있을 마지막 날이다.

계20:7-10 “천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이 날이 이 땅이 최종적으로 멸망 받는 마지막 날이다. 이 심판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은 완전히 살아지고 만다. 11절에서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고 말씀해 준다.

계20:5절에서 말씀하신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고 말씀하고 있는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결코 불 못에 들어갈 불신자들이 아니라 첫째부활에서 빠진(순교자의 부활에서) 나머지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며 이들이 이때 부활하게 된다. 이들이 고전15장의 부활의 순서에서 세 번째 부활자로 말씀해 주고 있는 "그 후에는 나중이니”라고 말한 그 시기에 부활할 그리스도인들이다. 이들을 도매 값으로 불신자로 매도하는 일은 성경해석의 오류의 도를 넘어 진리를 대적하는 일이 된다.


10. 살아 있는 성도들의 변화의 시기
우리는 세대주의 신학이건 개혁주의 신학이건 전 천년설이건 무 천년설이건, 성도들의 변화의 시기를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 시기로 주장하기 때문에 모든 성도들이 이 일에 대하여 많은 오해를 가지고 있다. 성경에는 두 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의 휴거와 변화의 시기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다.

살전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주께서 강림하실 때, 그때까지 살아 있는 모든 성도들은 일곱째 대접 심판 직전에 하늘로 끌어 올리우는 공중휴거가 있을 것이다. 이 공중휴거는 그 직후에 일곱째 대접 심판으로 말미암는 불로 지구를 소멸하는 하나님의 심판에서 건지시고 재림하시는 주님을 공중에서 영접케 하시는 하나님의 기묘하신 섭리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 후에 이 땅에 창조된 새로운 그리스도의 왕국에 내려와 천년 동안의 축복된 생애를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많은 신학자들은 이처럼 성도들의 휴거 시에 성도들이 홀연히 변화한다고 주장한다. 기존 신학이나 성경해석에서는 주님이 재림하실 때, 죽은 성도들은 부활하고 살아 있는 성도들은 변화한다는 드라마가 종말론의 필수적인 공식이었다. 그러나 성경 본문에는 성도들을 공중으로 끌어 올린다는 휴거는 있어도 휴거될 때 성도들이 변화 받는다는 말은 없다.

그들은 이 변화란 말을 다른 성경구절에서 빌려다가 짜깁기를 시도하고 있는데 그 짜깁기가 제대로 된 짜깁기가 아닌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빌려다 아무렇게나 짜깁기한 성경구절을 찾아 보기로 한다.

고전15:50-54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살전4장과 고전15장, 이 두 곳의 말씀을 비교해 볼 때, 자연스레 해답이 나오게 된다. 전자의 경우는 주 재림의 때에 일어날 일이요 후자의 경우는 마지막 부활 때에 일어날 일에 대한 계시로 이 두 사건의 계시의 시차는 천년왕국이 그 중간에 개재해 있는 천 년간이나 된다.

주 재림의 경우,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을 불지만, 마지막 부활의 경우는 그 나머지 모든 성도들을 살리는“마지막 나팔”을 분다. 이 나팔소리에 죽은 성도들은 살아나게 되고 살아 있는 성도들은 홀연히 변화 받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 나팔을 부는 시기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그 시기를 말하며 이 시기는 천년왕국 이후에 백보좌 심판 때에 있게 된다.

이때 왜 죽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부활해야 하며 살아있는 모든 성도들은 변화 받아야 하나?“썩은 것은 썩지 아니할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때 일제히 다시 살아나는 부활이 있어야 한다. 그뿐 아니라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때까지 천년왕국에서 혈과 육으로 살아온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혈과 육을 벗고 변화 받은 새로운 몸을 입어야 한다. 이때 그리스도인들은 홀연한 변화를 통해 이 옷을 입고 신령한 몸을 가지고 영원한 집에 들어가는 것이다.

맺는 말 : 우리는 과감히 무의미하고 무모한 아직까지의 부활의 논쟁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부활의 방향과 순서조차 제대로 정립해 놓지 못한 신학계를 탓하기에 앞서 성경에서 올바른 부활의 진리를 찾아야 한다. 주님은 곧 오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가 주 재림의 소망을 가지려면 올바른 부활관을 가지고 이 부활과 변화에 우리의 소망을 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