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워치만니

[스크랩] 하나님의 사람과 늙은 선지자

요나한 2016. 11. 5. 08:48

하나님의 사람과 늙은 선지자

성경 ː 왕상 13 ː 2-13

열왕기 상 13장에 기록된 이 일은 매우 엄숙한 일이요 매우 슬픈 일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사람을 볼 수 있으니 그 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늙은 선지자이다. 이 두 사람은 다 하나님의 쓰임을 받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들의 결국은 다 비참했다. 이 두 사람에게서 얻는 교훈은 참으로 엄숙한 것이다.

1

이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쓰임을 받던 자였으나 현재 하나님은 그를 쓰시지 않는다. 여로보암이 벧엘에서 범죄를 하여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에게 경고하고자 하실 때 하나님은 벧엘에 있는 늙은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시지 않고 유다에서 보낸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말씀하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미 늙은 선지자를 쓰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늙은 선지자의「늙음」은 영적으로 장성한 「늙음」이 아니고 영적으로 풍부한 경력이 있는 「늙음」도 아니다. 그는 단지 새롭지 않아 하나님의 손에서 쓸모가 없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에게 말씀하실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쓰시고 늙은 선지자를 쓰시지 않았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바로 그와 하나님의 사이에 교통이 있는 사람을 뜻한다. 교통은 밝은 빛의 근거이다. 언제든지 교통이 그칠 때 밝은 빛도 그 친다. 이 늙은 선지자는 과거에는 영적 경험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미 하나님과의 교통을 잃었다. 그는 이미 늙은 선지자였으므로 하나님은 그를 쓰시지 않는다. 이것은 너무도 엄숙한 일이다!

많은 형제 자매들의 영적 상태가 10년, 혹은 8년 전에 영적 상태와 똑같은 것은 하나님 앞에서 영적 진보가 없음을 말한다. 어떤 사람은 머리가 좋아지는 것을 진보로 보지만 그러한 것은 영적 진보가 아니다. 그들은 자기도 모르는 말을 하며 그 근본은 모호한 것이다. 그들에게는 단지 머리의 지식이 있을 뿐 참 빛은 없다. 많은 영적 단어들을 배웠지만 하나님 앞에서의 참된 영적 진보는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를 10년 전에 만났을 때는 하나님 앞에 빛이 있는 좋은 상태임을 느끼지만 10년이 지난 오늘 다시 만나 볼 때 그에게 새로운 빛을 전혀 없고 그에게 영적 성장이 조금도 없음을 느끼게 된다. 그는 선지자이다. 그러나 그는 늙은 선지자요 이제는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실 수 없는 선지자이다. 하나님은 계속 일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 :17)고 하셨다. 그러므로 20년전 ,10년전 ,5년 전에 우리가 얻었던 빛이 지금도 우리를 인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과거의 경험 안에서만 머무를 때 우리 앞에는 길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해야 할 한 가지 문제는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우리를 한쪽에 치워 놓지 않으실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지 않는 데서 벗어날까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 앞에 새로움이요 , 하나님 앞에 풍부함이다. 많은 경우 우리는 너무도 늙어 있고 너무도 가난하다.

2

늙은 선지자는 벧엘에서 살고 있다. 벧엘은 그때 어떠한 상태였는가? 여로보암은 벧엘에서 그가 만든 금송아지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는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을 제사장으로 세워 자기 자신이 스스로 절기를 정하고 단에 분향한 것이다 (왕상 12: 28 ~33). 그의 이러한 행동은 다 하나님께 득죄한 것이다. 여로보암은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제사하므로 예루살렘 외의 경배할 곳을 세운 것이다. 그가 비록 다른 신에게 경배하지 않고 여전히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신 하나님께 경배했으나 그는 예루살렘 밖에서 자기 뜻대로 하나님을 경배했으니 이것을 하나님께서 정죄하신 것이다. 여로보암은 자기 자신만 범죄할뿐 아니라 자기 이후의 많은 왕들도 똑같은 죄에 빠지게 했다( 왕상 16: 19, 31, 22: 52, 왕하 13: 2 등등). 여로보암이 벧엘에서 지은 죄는 참으로 큰 것이었다. 이 늙은 선지자는 바로 그 벧엘에서 살고 있었다. 여로보암이 바로 그의 눈 앞에서 이러한 일을 했으나 그에게는 여로보암의 그 일이 죄로 보이지 않았다. 이 상태는 참으로 심각한 것이다! 그러므로 선지자가 하나님 대신 말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뜻을 앎으로써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있는 이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자였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사람이요, 하나님을 위하여 말할 수 없는 사람이므로 하나님은 자기의 뜻을 모르는 사람을 보내어 자기의 말을 하게 하실 수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신 것이다.

늙은 선지자는 벧엘에서 경배하는 것이 죄인 것을 보지 못했으니 이것이 바로 그가 이미 병들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형제 자매여, 당신은 절대로 사람에게 좋게 대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여기지 말라.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당신이 만일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 예루살렘에서 경배해도 좋고 벧엘에서 경배해도 좋다고 한다면 이것은 당신이 병든 것을 당신 자신이 알지 못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늙은 선지자와 같이 그 눈이 혼미하고 병 들어서 무엇이 하나님께 득죄하는 것인지 보지 못하고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은 어디서든 다 좋다 벧엘에서 경배하는 것이 무엇이 나쁘냐고 생각한다. 형제 자매여, 당신은 이것을 사랑이라고 말하겠는가? 의사가 환자를 염려하고 사랑한다고 해서 환자에게 병이 있는데도 병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만일 병이 있는 환자에게 병이 없다고 말하는 의사가 있다면 그는 좋지 못한 , 잘 보지 못하는 의사인 것이다. 늙은 선지자는 벧엘에서 살고 있었으나 그는 벧엘의 죄를 보지 못하고 그의 앞에 있는 죄를 느끼지 못했다. 아 이것은 얼마나 비참하고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3

그러나 비참한 것은 늙은 선지자뿐이 아니었다. 더 비참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늙은 선지자의 해를 받은 것이다.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씀하시기를 「벧엘에서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도로 가지도 말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 부분을 기억하고 왕의 요청을 거절했고 늙은 선지자의 첫 요청도 거절했다. 그러나 늙은 선지자가 그에게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우라 하였느니라」고 한 이 몇마디의 말에 그는 곧 어두워졌다. 그는 「이 늙은 선지자도 선지자다. 그는 나보다 경험이 많다. 나는 그의 말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하여 그 늙은 선지자와 함께 가서 늙은 선지자의 집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다. 하나님의 사람이 늙은 선지자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결과는 사자에 찢겨 죽은 것이었다. 하나님의 사람은 원래 하나님의 명령에 대하여 분명히 알고 있으나 「나도 선지자라」는 말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 말에 영향을 받아 미혹된 것이다. 여기에서 알려 주는 한 가지 엄숙한 교훈은 주님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이 있은 후에는 그 어떤 선지자의 말이든지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과 합당치 않을 때에는 절대로 그 말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한 말도 이와 똑같은 원칙이다. 그는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8)라고 말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갈 1: 11~12)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켜 갈라디아의 성도들에게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권면 하기를 그들의 미혹을 받지 말고 하나님의 종의 이름으로 온, 미혹하는 사람들의 거짓을 깨뜨리고 , 영적 말들로 괴롭히는 사람의 거짓을 깨뜨리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는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엄숙한 말로 경고한 것이다. 그는 「우리라도」라고 했다. 이 뜻은 곧 나 바울 자신이라도 오늘 너희에게 와서 전하는 복음이 전에 전한 복음과 다르면 믿지 말라는 것이다. 너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복음을 믿고 바울의 이름으로 온 것을 믿지 말라. 만일 나 바울이 이후에 전한 복음이 전에 전한 하나님의 계시를 위반하는 것일 때에는 믿지 말라고 한 것이다. 바울은 많은 사람들이 사람의 이름에 영향을 받고 있고 사람의 이름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믿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여기에서 한 태도를 표명했으니 그는 온전히 하나님의 진리에 서서 말할 뿐 사람의 지위를 세우지 않고 자기의 지위도 전혀 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그들에게 사람의 유명한 이름을 믿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진리만을 믿도록 요구했다. 바울이 진리를 위하여 논쟁한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요 온전히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명예를 보호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리를 보호했다. 그가 미혹케 하는 사람들을 반대한 것은 그들이 주님의 말씀을 혼란케 하고 성도들을 잘못 이끌기 때문이었다. 그가 보여 주는 것은,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진리에 서서 받아들여야 할 말과 거절해야 할 말을 분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의 설교가 하나님의 진리에 위반될 때는 그가 누구든지 그 말을 듣지 말아야 한다. 바울은 여기에서 또 말하기를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라고 했다. 그는 그들에게 천사의 말일지라도 삼가해야 한다고 깨우쳤다. 바울이 고린도후서 11장 13절부터 15 절까지에서 거짓 사도에 대해 말할 때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라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고 했다. 「광명의 천사」는 선한 면모로 위장하여 사람들을 실족케 한다. 주님의 복음을 들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어떻게 다시 그들의 미혹을 받았을까? 이것은 바로 그들이 전한 「복음」이, 열심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해야 한다는 그럴싸한 말들이었기 때문에 진리를 들었던 갈라디아 사람들이 그들의 미혹을 당한 것이다. 아, 그렇게 미혹하는 사람들은 항상 교회 안에 들어와 사람의 마음을 망치고 주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도록 유인한다. 우리는 참으로 깨어서 지켜야 한다. 그들이 영적으로 가장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가장하고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뜻」등의 말들을 운운하여 참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게 하여 사람을 미혹하는 것이다. 형제 자매여, 우리는 참으로 깨어있는 마음과 분별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절대로 충성하여 우리가 한번 받은 그 진리를 지켜야 한다. 주님의 「복음」을 혼잡케 하는 말은 그 어떤 사람의 말이라도 다 거절해야 한다.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의 진리에 굳게 서도록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기를 구해야 한다.

이 늙은 선지자는 여로보암이 큰 죄를 범한 데 대해 아무런 느낌도 없었고, 「선지자」의 이름으로 사람을 속였다. 그는 이미 하나님과의 교통을 잃었다. 그는 또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셨다」고 거짓말까지 했다. 하나님이 사람이 실패한 것은 곧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지키지 않고 늙은 선지자의 허황한 이름에, 늙은 선지자의 거짓말에 어두워져 이렇게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늙은 선지자의 타락은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는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저희가 상 앞에서 앉았을 때 여호와의 말씀이 늙은 선지자에게 임한 것은 늙은 선지자가 영적이어서인가? 아니다. 하나님은 다만 자기의 명령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을 처리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이 늙은 선지자에 대해 요구가 없었고 이미 그를 저버리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 사자에게 찢겨 죽은 후 늙은 선지자는 그를 장사하여 자기 묘실에 넣었다. 늙은 선지자는 그의 아들들에게 자기가 죽거든 하나님의 사람을 장사한 묘실에 함께 장사하라고 했다.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명령을 받아 벧엘의 단과 사마리아의 각 성에 있는 산당에 대해 말한 모든 말이 반드시 응하리라는 것을 안 것이다. 그러나 늙은 선지자는 거기에서 죽기만 기다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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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자매 여, 우리가 이 엄숙한 일에서 , 이 비통한 일에서 기억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첫째로, 사람이 하나님과 교통을 잃을 때는 늙고 새롭지 않고, 볼 수 없게 된다. 둘째로, 그 사람이 비록 하나님의 쓰임을 받았다 해도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으면 그 「늙은 경험」으로는 다른 사람을 속일 수밖에 없다. 셋째로, 사람이 주의 말씀을 어길 때는 머무르지 않아야 할 곳에 머무르게 되고 사망 - 영적 죽음 - 을 만나게 된다. 네째로, 영적 일에 대한 말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천사가 와서 말한 것 일지라도 거절 해야 한다.



「 열두 광주리 가득히 5 」

출처 : 워치만 니
글쓴이 : arca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