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에서는 1999년~2002년까지 약 3년간 머물렀습니다.
2001년 5월초에는 피지에서 두번째로 큰 섬인 버뉴아레뷰 람바사에 소재한 AOG 교회들을 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번째 방문한 교회 이름은 이벤젤 템플(Evangel temple)이었습니다.
첫날은 ‘요한계시록의 3 Keys’에 대하여, 그리고 둘째날은 ‘바울이 전한 부활’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벤젤 템플’에서 둘째 날, 저녁집회이었습니다.
“오늘 먼저 다루어 볼 내용은 사도바울이 전한 마지막 부활입니다”하고 멘트를 한후… 아무 설명도 없이 제가 입고 있던 상의 남방셔츠의 단추들을 다 풀어 헤쳐 놓았습니다. 온 교인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하며 어안이 벙벙해져서 저의 퍼포먼스를 숨죽이고 바라 보았습니다.
그리고나서 맨 아래의 단추를... 맨 위의 단추 구멍에 끼워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이런 모습으로 옷을 입고 다닌다면 이 옷을 디자인한 사람의 마음이 어떨 것 같습니까”?
우리는 현재 사도바울이 설명한 부활의 옷을 이렇게 입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나팔의 부활은 맨 마지막 날에 발생하는 부활인데…, 세상 모든 사람들은 마지막 나팔시의 부활이 환난전 휴거를 설명하고 있는 줄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마지막 단추를 맨 위에 끼워 넣고 다니고 있습니다.” “모두가 다 그렇게 입고 다니니까 조금도 어색해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 부활의 옷을 디자인하신 하늘에 계신 분은 우리의 옷 입는 스타일을 좋아하실리가 없으며, 안타깝게 여기실 것입니다.”
오늘은 사도바울이 설명한 부활의 옷을 입는 방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다소 어색할지라도 하늘의 패턴에 따라 옷을 입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 나팔에 대하여 설명을 드렸고, 이어서 고전 15장 22-24에서 나오는 부활의 3 순서에 대하여 설명을 드렸습니다. (2번째 순서는 살전 4장 16절 하나님의 나팔과 매치가 되고, 3번째 순서는 고전 15:51에서의 마지막 나팔과 매치가 됩니다.)
강의가 시작할 때, 여기저기서 질문을 하셨습니다.
강사님이 믿고 있는 휴거는 환난전이냐 아니면 환난후이냐? 무슨 천년왕국설을 믿고 있느냐하면서 질문을 하시길래… “2시간 후에 질문시간을 드릴 테니 그때 하시기 바랍니다”하고 양해를 구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생각지도 않던) 그러한 즉흥적인 퍼포먼스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부활의 옷을 입음에 있어서 첫번째와 두번째 단추에 대한 질문을 하였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지막 단추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단추를 첫번째 단추구멍에 집어 넣었기에, 환난후 휴거론자들은 첫번째 단추를 생략해 버렸고, 환난전 휴거론자들은 마지막 단추를 잘못 넣은 첫번째 구멍 옆에 (공중강림이라는)구멍을 하나 더 만들고 두번째 단추를 끼워 넣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1-2번 간증 글(http://blog.daum.net/sylee560225/3)을 통하여 부활에 대한 이해를 갖게된 경위를 설명드린 바가 있습니다. (오랜 씨름 끝에 이스라엘의 농사를 통하여서 부활에 대한 이해를 얻게 되었습니다.)
강의를 끝내고… “자 이제 질문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면서 질문을 하는 시간을 드렸는데..., 이제 부활 휴거가 clear하게 이해가 되어 특별한 질문이 없다고들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하였습니다.
"오늘 제가 마지막 단추를 첫번째 구멍에 끼워 놓고 있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절대 잊지 마십시요."
"신학자들의 교리를 하나님의 말씀 위에 올려 놓으면 아니 됩니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마지막 나팔이 휴거시에 불려지는 나팔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단추를 맨 처음의 구멍에 끼워 넣는 스타일이 하늘의 패턴이라며... 모든 사람들이 따라 입기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의 저명한 신학자들과 영향력 있는 목사들이 그렇게 옷을 입는 방법을 가르칠지라도..., 그들이 지어낸 가르침을 쫓지 마십시요."
"모두가 다 따르는 유행이며 정상적으로 보여질지라도, 성경적이지 않은 것은 따르지 마십시요."
"사람이 지어낸 가르침을 따르다보면, 평생을 투자하여 가르치고 배운다 할지라도 진리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딤후 3:7>
사도바울은 마지막 나팔의 시기를 고전 15:54에서 가장 분명하게 또 정확하게 말하였다.
(고전 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고전 15: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고전 15:53)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고전 15: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마지막 나팔이 울리는... 부활의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가 되리라"는 기록된 말씀이 응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기록한 AD 55년경에는 신약 성경이 없었음으로, 그럼 이 말씀은 구약 어디엔가 있어야 하는데...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가 되리라"는 말씀은 사 25:8에 기록되어 있다.
(사 25: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우리는 이사야서 25:8를 통하여 바울이 언급한 그 시기를 찾아볼 수가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사 25:8절 말씀이 응하는 어느 특정한 시기를 가르키고 있는데...
사망이 영원히 멸하는 그 때에는... 주 여호와께서 우리의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는 때라고 하였다.
그럼 사망이 영원히 멸하여지고 우리의 눈에서 눈물이 씻겨지는 때는 과연 언제일까?
사도요한은 계: 21:4에서 사망이 다시는 존재하지 않는 둘째사망을 말하였고, 또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씻기시는 때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 하였는가? 그 때는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가고, 새하늘과 새땅이 열리는 시기이다.
(계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하나님은 이토록 '마지막 나팔'이 불리우는 시기에 대하여 더 말할 나위없이 가장 정확하게 알려 주시고 계시는데...,
왜 신학자들은 그들의 입을 열어 온 교회가 진리를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리워 놓고 있는가?
아마 99% 이상의 교회는 '마지막 나팔'의 부활을 환난전 휴거나 환난후 휴거를 설명할때, 인용하고 있다.
왜 온 교회는 거짓 가르침에 놀아나고 있는가?
신학자들의 거짓 가르침도 문제이지만..., 목자의 음성을 듣지 아니하고 거짓 소리를 따라나선 양들에게도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살후 2:11)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살후 2: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도바울이 설명한 마지막 나팔의 부활을 옳게 마지막 단추구멍에 넣어야만…, 옷을 옳게 입을 수가 있다.
마지막 단추를 마지막 위치에 넣었다고 해서, 옷을 제대로 입은 것은
아니다. 나머지 단추들도 정위치에 제대로 끼워 넣어야만 한다.
첫번째 단추에 대하여서는 사도 바울이 아니라, 사도 요한에 의하여 처음익은 열매로 설명이 되었다. 첫번째 단추
구멍에 2번째, 3번째의 단추를 넣어서도 아니되며, 또 첫번째 단추는 잘 보이지 아니한다고 하여 풀어 헤친채로 다니면서... 환난후 휴거가 맞다고 우겨서도 아니된다.
부활의 집을 다 짓고 나서야, 3층집 전체를 볼 수가 있다.
또 각 층의 구조를 하늘의 청사진을 통해 정확히 이해 하여야만… 3층 집을 제대로 올릴 수가 있다.
우리는 2층까지의 건축을 마쳤으며, 이제 가장 어려운 3층 공사만을 남겨 놓고 있다.
그리고나서 약 2주 후에 이벤젤 템플에서 나현숙목사님을 모시고 부흥집회를 2틀간 갖게 되었습니다.
2001년 5월 22일- 23일 이틀간 집회중 첫날 집회에서 놀라운 사진이 찍혔습니다.
흰 세마포가 제 카메라에 찍혔습니다.
어떤 분은 이 사진을 조작이라고 하더군요.
그분 자신이 직접 얻은 것이 아니니까, 그렇게 못 믿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제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은 크기를 조정하는 것 뿐입니다.)
제 카메라로 제가 직접 찍었기 때문에 제가 잘 알죠.
만약 조작이라면 지옥엘 가도 무방합니다.
그에 대한 제 간증 1-9번 글, http://blog.daum.net/sylee560225/131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참 의심이 많은 사람인데, 제 카메라에 직접 찍혔으니... 정말 놀라울 뿐입니다.
아마 주님은 제 의심을 불식시켜주시기 위하여, (도마에게 손으로 주님의 옆구리에 넣어보고 확인하라고 하신것 처럼) 제 손으로도 그러한 사진을 얻도록 해 주신것 같습니다.
오늘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그토록 배려를 해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4. 부활과 심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휴거되지 못한 자에게 고함- 첫번째 메세지에서 부분 발췌 (0) | 2016.06.22 |
---|---|
4-22 과연 살아서 휴거되는 자의 수는 얼마나 될까? (0) | 2016.06.22 |
[스크랩] 하나님의 나팔과 마지막 나팔-민병석 (2) | 2016.06.04 |
[스크랩] 여섯째인의 시대 그리고 휴거 (0) | 2016.06.03 |
4-20-5 부활의 집(2층)- 바울이 전한 부활·휴거 (0) | 2016.06.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