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7장에서 바울은 율법 아래 살고 있었던 때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율법적인 동기, 즉 형벌에 대한 두려움과, 보상에 대한 소망을 경험했다. 그는 율법을 알았고 그것이 선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실로 원했던 선을 행하는 데에 실패한 것뿐만 아니라, 그가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정말로 피하려고 시도하였지만 더욱 악한 일들을 행하는 것으로 끝났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순종을 실천하려고 진정으로 시도하지만 그들은 다만 절망과 실패, 그것도 전적인 실패를 발견한다. 매우 어둡고 우울한 시간들의 경험이다. 하나님은 수백만 마일 멀리 계신 것 같고 구출해 달라는 기도는 속박만을 초래할 뿐이다.
어떤 이들은 진실된 순종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며 포기한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은혜가 혹시 다음번 모임에서, 또는 새로운 사역 가운데 그들에게 임하기를 언제까지고 고대한다.
만일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그들은 어떤 결과가 없을지라도 기도를 한다. 그들은 해결의 열쇠가 기독교인으로써 의무의 부족이라고 생각한다. 분투하고 고투하지만 더욱 깊은 실망과 낙담을 경험할 뿐이다.
"거듭나지 않으면 단지 외형적인 행동만 바뀔뿐 여전히 그들이 선택한 이기심의 상태에 전적으로 머물러 있을 뿐이다"
나는 15년 이상을 로마서 7장의 경험 속에 살았었다. 그 진정한 이유는 불신이었다. 복음에 대한 사실은 알았지만 그 사실들이 다만 나를 정죄했고, 나를 더욱 나쁜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하나님은 내가 정말로 거룩하기를 요구하셨지만,
"그렇게 되기 위한 나의 인간적인 노력들로는, 단 한순간조차도 그것을 경험하지 못했음을 나는 알았다."
무엇이 문제였던가?
하나님께서 분명 두 가지 교훈을 가르쳐 주셨는데, 하나는 죄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거룩함에 관해서였다. 율법의 가르침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나의 죄 많음(my sinfulness)과 나 자신을 구출할 힘이 절망적이게도 내게 없음을 진정으로 깨닫게 해 주었다. 죄짓는 상태와 내가 선택한 이기심의 상태로부터의 구출을 위한 강렬한 열망과 소원이 없었다면, 나는 율법과 육신의 권능에 다시 빠져들어 갔을 것이다.
거룩함의 가르침은, 내 안에서 모든 것을 행하시기 위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완전히 헌신하시며 약속하시고 보장하신다는 것이다. 그분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을 때) 새 마음을 주시고, 그 마음을 보존하시며 또한 그의 영을 우리의 새 마음 안에 주셔서 진실로 그의 뜻을 행하고 순종하기 위한 의지와 힘을 내게 주신다.
율법은 생명을 주거나 어떤 사람도 결코 거룩하게 할 수 없다. 율법의 목적은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 나로 하여금 죄의 책임을 그리고 무력함을 통감하게 한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혜로 나를 받아 주시고 나로 하여금 그의 거룩과 신성의 참여자가 되게 하심을 내게 계시하셨다. 죄인은 반드시 죄의 힘, 그리고 죄를 추방하거나 자신 안에서 선한 어떤 것을 할 힘이 절대적으로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만 한다.
사람이 이러한 사실을 그 자신의 경험(보혜사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의해 배울 때에만, 하나님께서 진실로 제공하시는 축복(은혜)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거듭나지 못하고) 죄 속에 있는 사람은 그에게 절실히 필요한 참 생명을 스스로 줄 것이 자신속에 전혀 없다. 모든 죄인은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계속적이고도 영구적인 실패와 실망을 체험할 뿐이다.
그 해결책은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서 직접 수행하신다는 놀라운 확신 속에 있다. 매일 죄짓는 삶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열망 그리고 나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그것을 확보하려는 어떤 희망도 포기한 그것이 하나님의 참되고도 유일한 구원의 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나를 준비시켰다.
"이제는 하나님 보시기에 기쁜 모든 것을 내 안에서 실제로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이시다."
내가 거듭해서 하나님을 실망시킬 때까지는, 내 마음이 얼마나 철저하게 사악한지를 실제로 알지 못 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내게 없음을 나는 알았지만, 그러나 어쩐 일인지 나는 내가 더 큰 열망과 노력으로써 진력하기만 한다면 나는 실제로 그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착각) 했다. 내 안에 있는 어딘가에 하나님께 복종할 능력이 있다고 믿었던 동안은, 나는 불신앙 가운데 있었다.
나는 복음의 사실들을 실제로 믿었었다.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음을 실제로 나는 믿었다. 내가 전적으로 거룩하며 내 마음과 영혼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원하신다는 것을.. 심지어 나는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선택한 이기적인 상태에서 살고 있었다."
나의 이기적인 삶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사실인즉 그러한 삶을 포기하는 것을 이제껏 원치 않았다. 이 극도의 이기심이 범죄라는 것을 말해주는 하나님의 지식과 내 자신의 지성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선택한 반역과 사악함 속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사실상 범죄자요 하나님의 절대적인 원수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비록 내가 나의 이기심의 노예라 할지라도, 이 상태는 전적으로 자발적인 것이었다!
진실로 나는 이러한 방법으로 사는 것을 지속하지 말았어야 했다. 내 자신의 자아 속에, 이 내 반역을 억지로 강요할 무엇이 있지 않았다. 나의 반역과 죄를 범함은 내 자신의 자유의지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나의 자유(자율) 의지의 행위에 의해, 내 자신의 선택한 죄 많은 상태를 실제로 내가 창조하였다.
정말 문제는, 내가 이러한 이기적인 상태를 완강히 물리치고 끊으려고 계속해서 소원하는 것이었다. 이기적인 삶을 살고 있는 동안은, 나는 하나님을 최상으로 사랑하는 일을 결코 선택하지 않았고, 모든 미래의 행위들은 다만 나의 반역을 조장하였다. 그러한 사실에 관한 지식은 도움이 되지 못하였고, 사실상 절대적인 죄책과 정죄를 더할 뿐이었다.
내 안에는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없었고 하나님을 최상으로 사랑하고 또 다른 사람을 내 자신처럼 사랑하고자 하는 진실된 선택도 직접적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무엇이 문제인가?
돌아보면, 그 문제가 무엇인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께서 바로 이 문제에 대한 참된 해답을 갖고 계신다는 것을 안다. 나는 또한 나의 참 자유로 이끌었던 것이 믿음임을 알았다. 이것이 내가 놓쳤던 부분이다.
필요한 믿음을 산출하는 일이 내게 달렸다고 나는 생각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결과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 말씀과 나의 믿음을 혼합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의 불신은 당신께서 그 일을 이루시리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진실로 믿지 않는데 있었다. 나는 요구되어지는 믿음을 산출하려고, 은혜의 수단을 사용코자 나는 노력했다.
하나님을 믿는 대신 나의 노력으로써, 그의 약속을 받고자 노력했다.
"나는 실로 여전히 내 인생의 주인이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 안에 두신 그의 소원을 이루시도록, 나 자신을 그분에게 온전히 내어 드린 적이 없었다.
"이것이 바로 죄다!"
나 자신만의 모든 자기 노력이 죄였다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성취할 하나님의 약속을 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모든 것을 이루실 하나님을 나는 진실로 쉽사리 믿을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나의 인간적인 노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필요한 믿음을 내게 주실 하나님을 나는 믿었다.
내게 구원의 진정한 필요성에 대한 분명한 통찰력이 있기 전에 율법 아래에서 자신이 죄에 완전히 속박되어 있음을 나는 경험해야 했다. 은혜의 수단을 사용하려고 노력했고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게 살고자 더욱 진지하게 노력해 보았으나.. 나는 계속 거듭해서 실패했다.
"그 실패의 이유는 제거해야 할, 악의 은밀한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행하시고 그가 그 일을 행하시도록 거리낌 없이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겸손한 신앙(that humble faith)을 방해만 하는 인간적 노력의 영(the spirit of self effort)이 그 뿌리이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롬 10:3)
그것이 오직 죄와 죽음의 법으로부터 나를 자유케 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법에 의한 것임을 나는 안다.
하나님은 내가 소유할 수 있었던 모든 가능한 필요를 하나님 스스로 공급하신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나는 불신의 사람이었다. 이 사실이 내가 하나님의 공급을 받지 못하는 원인이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며, 믿음으로 행하지 않는 어떤 것도 죄이다.
불신은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몹시도 원하시는 자유를 받지 못하게 방해한다. 나는 언제든지 믿을 수 있었고 믿어야 했었는데 나 스스로를 의지하려고 하는 숨겨진 비밀이 내게 있었다. 믿음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간직할 믿음이 내게 없었다. 내가 믿음을 산출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나는 항상 실패했다.
나의 믿음을 하나님 안에 두는 일이, 실로 나의 능력과 힘에 달렸다고 나는 생각했다. 실로 하나님의 공급을 받기 위한 위치에 나 자신을 두는 일이 내게 달렸다고 나는 생각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나를 계속해서 실패하도록 내버려 두실 수 있을까?"
내가 전적으로 무력하고 힘이 없다는 것을 나 스스로 경험해야 했고 내 자신에게 입증해야 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잠깐 동안이라도 해낼 수 있는 힘이나 능력이 내게 전혀 없다는 것을 내가 실제로 알 때까지 나는 실패를 거듭해야만 했다. 하나님의 공급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나 자신을 놓을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고, 모든 미래의 행동은 나를 스스로 선택한 이기심 속으로 점점 밀어 넣고 있음을 진정 알게 되었다. 내가 항상 이기적인 선택을 하고 이기심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오, 신실하신 하나님!
나는 불신과 죄 속에서도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바둥거렸으나, 그분은 내게 그분의 은혜를 퍼부어 주셨다.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전적으로 죄된 나의 마음을 경험하게 하시고 입증케 하시는 일, 그것보다 더 크고 위대한 사랑(긍휼)의 표현을 나는 알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밖에 무엇을 하실 수 있는가?
나는 스스로의 노력에 대하여는 죽어야 했고(I had to die to self effort), 내가 상상해 낼 수 있는 스스로의 노력을 소진시키고 내 자신의 노력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내 자신에게 입증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비참하고 절망스러운 이기적인 상태에 있을 때에 내가 그때 처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하나님은 가지고 계심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선물이, 율법과 복음의 모든 요구를 실제로 성취하셨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할 모든 일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take God at His Word) 그처럼 단순한 것이었다.
내 스스로의 노력에 대해 나는 죽었고, 나의 비밀한 악의 뿌리는 이제 정말로 가버렸다. 내가 하나님의 공급해주심을 알았을 때, 나의 불신으로 인한 과거의 모든 낙심과 실패의 경험으로부터 나는 나의 마음을 돌이켰다.
이러한 "15년 동안의 실패"가 나 스스로의 힘으로는 단 한순간도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거나 복종하는 것이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는 것을, 나는 충분히 그리고 진심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그리스도와 동행, 교제, 임재, 성령 충만을 뜻하는 듯)을 알게 되자, 행하시겠다고 말씀하신 바를 틀림없이 행하실 신실하시고 사랑 많으신 하나님께 고요히 그리고 신뢰하는 가운데 나의 마음을 향할 수 있었다. 당신께서 자애로운 흔쾌함에서 우러나와서 내 안에 뜻을 두시고 행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성령의 역사하심이라는 사실 안에서 이제 나는 안식할 수 있다.
"율법은 요구되는 불가피한 성결을 제공하지 못한다."
만일 율법이 진정한 순종을 확보한다면,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하셔야 할 필요가 있는가?
진정한 복음(내 의지적 노력이 아님)이 성결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해답을 제공한다.
기독교인의 실제적인 순종을 없애려고 시도하는 설교는 완전히 죄 많은 상태 가운데 있는 사람을 다만 속이는 거짓 복음이다. 옛 언약이 지닌 문제는 사람이 그것을 어긴 것이다. 사람은 그의 불성실과 그의 실패를 보여 주었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언약 아래 있는 그것을 결코 깨뜨리지 못하도록 맹세하셨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자신이 맡은 부분을 정하셨다. 새 언약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순종을 떠맡으시기 때문에 사람이 깨뜨릴 수 없다. 나 자신의 불성실과 실패를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로마서 7장의 궁지 상태를 필요로 한다.
나같이 온통 불성실하고 연약한 나지만, 그 일 모두를 행하시도록 하나님께서 허락받으시고 신뢰받으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행하실 수 있다는 바를 이제 하나님은 당신의 공급하심 하에서 입증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몸소 당신의 부분을 담당하실 뿐만 아니라, 나의 몫까지도 수행하신다.
나를 결코 떠나지 않으시리라고 약속하심으로써 영원한 언약을 하시고 내가 결코 그분을 떠나지 않도록 돌보신다. 내가 죄의 힘 아래서 전적인 무력과 절망의 노예 상태를 발견했던 그때에,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은혜가 왔다.
하나님은 나에게 죄와 자아로부터의 자유를 계시하셨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 전적인 신뢰 안에서만 발견돼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나를 순종케 하시는 하나님을 정말 의지할 수 있었고 그가 말씀하신 것들을 이루신다는것을 나는 안다
(신명기 30: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에스겔 11:19-20)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에스겔 36:25-27)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에스겔 37:23) “내가 그들을 그 범죄한 모든 처소에서 구원하여 정결하게 한즉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위의 성경 구절과 다른 많은 구절들의 요지는 우리에게 요구되어지는 순종들을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해내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분명 사람의 성실함 혹은 심지어 사람의 믿음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공급하심이 그 요구되는 진실된 복종을 확보 못한다면, 그것이 무슨 기쁜 소식인가?
복음의 실제적인 좋은 소식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결코 실패하지 않는 새 마음을 주신다는 것이다.
위의 성경 구절을 다시 살펴보고 하나님의 공급하심이 복음이 요구하는 모든 것들을 충족시키는 그 마음을 당신에게 주셨는지 스스로 알아보기 바란다.
유일한 질문이 있는데, 당신은 하나님께서 그가 행하시겠다고 맹세한 모든 일들을 행하신다고 믿는가?
글쓴이: 앤드류 머레이 (Andrew Murray, 1828-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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