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출애굽...
출애굽 사건은 과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진행이 되고 있다.
과거의 출애굽은 집단적으로 이루어졌지만 모든 크리스챤들이 겪는 영적 출애굽은 개별적이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 이 세상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신자와 불신자로 구분되며, 또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약속을 얻을 자(골 1:12)와 단지 구원만을 받을 자(고전 3:15)로 구분되어진다. 불신자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얻을 후사가 되기까지의 영적성장 과정은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을 하여 광야와 약속의 땅을 지나 다윗왕국이 세워지기까지의 진행 과정과 흡사하다. 각 단계들을 살펴보자.
■ 이집트에서: 이 세상에는 마귀의 어두움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세상사람들은 손에 손전등을 들고 이 어두움 가운데서 진리를 찾고자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손에 거짓진리를 움켜쥐고 흡족해 하고 있다. 지금은 어두움 속에서는 미소를 짓고 있으나 새벽이 이르면 손에 쥐고 있는 것이 가짜였음을 알게 되어 대성통곡을 하게 될 것이다. 어두움 가운데서 참 진리이신 주 예수의 빛을 보고 마음의 문설주에 예수의 피를 바르고는 출애굽을 하게 된다. 어두움에서 광명한 하나님의 나라로 나가는 유일한 길(골1:13)은 주 예수인 것이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광야로 나올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은 홍해이었음과 유사하다. 또한 주 예수는 우리의 길을 인도하는 세상의 빛이시다.
■ 광야에서: 이스라엘 인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간다는 약속을 갖고 이집트에서 나왔으나 그들은 정작 그 땅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에는 아직 이집트의 세속적이며 육신적인 삶이 담겨져 있었으며 또 하나님 대신 금 송아지 만들어 섬겼기 때문이다. 그러한 출애굽시의 이스라엘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도 발견된다. 모든 영적 이스라엘인들에게도 약속은 주어졌으나 약속을 쥐는 자는 적은 것이다. 이스라엘인들이 매일매일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만나를 먹고 삶을 유지하였듯이 지금도 우리는 '참 만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매일매일 먹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여전히 세상적이요 육신적이라면 광야에서 유리하다가 마침내 광야에서 엎드려지게 될 것이다.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은 항상 존재한다. 방심하면 어느 한 시에 무너져 내릴 가능성도 있다. 마귀는 심지어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시험하기까지 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공격 대상의 제한은 없는 것이다. 그의 주공격 목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며 그 중에서 특히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까운 자들을 무너뜨리는 것이 마귀의 최대 관심사임을 잊지 말자.
광야에서 불기둥이 이스라엘인들을 인도하였듯이 예수로 나온 자들 위에는 주님의 빛이 비추어진다. 주님의 밝은 빛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또 무슨 다른 빛은 없을까하여 무엇인가를 더 찾아보고자 하는 자들도 있다. 이들은 훤한 대 낮에 손에 손전등을 켜고 무엇을 찾으려 하는 정신나간 자들이다.
■ 약속의 땅: 물에서 거듭난 자들은 하나님나라를 보게 된다. 이것이 거듭남이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벧전 1:23> 이와같이 거듭남은 말씀으로 양육받음의 결과인 것이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는 그 땅의 새 소산물을 먹기 시작하였다. 단단한 음식으로부터 힘을 얻고 그들은 여리고 성으로 진격을 하였다. 이후로 그 땅에 사는 모든 적들을 하나씩 하나씩 물리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은 성령의 새롭게 하심의 기간이다. 우리 주변에 산재하여 있는 적들과 싸워 이겨야 한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외부의 적과 또 내부의 적과 싸워야 한다. 다윗이 싸워 이긴 외부의 적은 골리앗이었고 내부의 적은 사울이었다. 거대한 골리앗은 돌맹이 하나로 물리칠 수가 있었지만 내부의 적은 쉽게 사라지지를 않는다. 많은 눈물과 인내가 동반되어야 한다. 이 세상을 살면서 거듭남으로 하나님나라를 진실하게 본 신자는 세상에 안주할 수가 없고 그 나라를 들어가는 준비를 시작한다.
■ 다윗왕국: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은 거룩한 나라를 입장할 수 있는 티겟을 손에 쥐고 있다. 그 티켓은 의와 거룩함이다. 그들은 예수를 믿고 성령으로 거룩함을 입은 자들(행 20:32,26:18, 고전 1:2)로서 성도라 불리우며 거룩한 나라의 백성이 된다(벧전 2:9, 단 7:18). 또한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한 자라고도 불리워진다. 이들은 이 세상에서 거룩함의 티켓을 쥐고 살다가 심판대에 앉으신 주님을 만날 때 비로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될 것이다.
이 땅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공존하며 같이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실 때에는 우리들 각 자가 서 있는 장소는 모두 다른 것이다. 이 세상에서 순례자의 삶을 마감하고 먼 훗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우리들은 이 땅에서 서 있었던 장소에 따라 하늘나라에서의 거주할 장소가 결정이 될 것이다.
미래의 출애굽...
야곱이 70명의 식구와 모든 소유를 이끌고 애굽으로 발행하던 도중 브엘세바에 이르러 밤에 하나님께서 이상중에 나타나셔서 "나는 하나님이라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말라 내가 거기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고 하셨다(창 46:1-3). 그 후 애굽에서 모진 고난과 역경 가운데 430년간 종살이를 하였었지만 하나님의 약속대로 큰 민족이 형성되었다. 민족이 형성이 되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 홍해를 건너 광야를 거쳐 가나안 약속의 땅으로 들이신다. 이상은 과거 이스라엘민족에게 있었던 출애굽의 사건이지만 성경은 미래에도 다른 하나의 출애굽이 있을 것을 증거하고 있다.
애굽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예표하며 가나안 땅은 새하늘과 새땅을 예표한다. 홍해바다를 지남은 죽음과 연관이 있으며 뭍에 올랐다 함은 부활과 연관이 있다.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시작된 이 세상은 애굽에서의 지냄이다. 먼 훗날 하나님께서는 열방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시고(사 11:12) 땅의 사방에서 백성들을 모으실 것이다. 그 때 유다와 에브라임은 투기하지 아니하고 하나가 될 것이다(13절). 그 때 여호와 께서는 애굽의 바다를 말리우시고 유브라데스의 하수위에 뜨거운 바람(15절)을 일으키실것이다. 이 뜨거운 바람의 히브리음은 루왁(Ruwarch)으로서 홍해바다 위에 불었던 동풍(출 14:21)과 동일하다. 이 날은 과거 이스라엘인들이 애굽땅에서 나오던 날과 흡사할 것이다(16절).
이 날을 '호세아'서에서는 이스르엘의 큰 날이라고 호칭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측량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두목을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 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호 1:10-11
에스겔서 37장에서는 이 때 죽었던 모든 자들의 뼈에 생기가 들어가 그들은 무덤을 열고 부활하여 이스라엘 온 족속으로 형성되어진 후 약속의 땅(이스라엘의 땅)으로 들어가게 됨을 설명하였다. 사도바울은 롬 11:25-28에서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가 차기까지 이스라엘인들은 완악해져 우리는 복음으로 볼때 이스라엘 본 자손과 원수가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훗날 그들에게도 구원의 기회가 있어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게 되는 선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하였다. 겔 37:11의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함은 본 이스라엘인과 영적 이스라엘들로 구성된 연합체이다. 하나님의 모든 농사가 다 끝나자 부활로 나온 자들은 두 그룹으로 나누어지는데 (1)유다의 막대기와 다른 하나는 (2)요셉(에브라임)의 막대기이다(겔 37:16,19). 두 막대기가 하나로 연결이 되어 하나님의 손에 한 막대기로 놓여지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광야를 지나 참 약속의 땅인 새하늘과 새땅으로 들어간다. 하나님과 백성과는 영원한 언약(화평의 언약)이 세워지며(26-27절) 주님의 영원한 왕국이 새로 시작되는 것이다.
위에서 두 가지 새로운 용어가 등장하였다. 하나는 '이스르엘'이며 다른 하나는'요셉의 막대기'이다. 미래 출애굽의 날을 이스르엘의 큰 날이라고 하였는데 그 이스르엘이 무엇이며, 유다의 막대기와 연합하는 요셉의 막대기는 무엇인가? 이 두가지 용어에 접근하기 전에 먼저 집어 볼 것이 있다.
■ 앞에서 요셉의 둘째 아들인 '에브라임'에 대하여 다루어 본 적이 있다. 에브라임은 요셉의 둘째 아들이지만 장자권은 그에게 주어졌다. 즉 장자권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대상 5:2)→ 에브라임(창 48:19)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에브라임'이라는 이름의 뜻은 "열매를 맺는 두 밭"이라는 뜻이다. 솔로몬의 왕국은 그가 죽자 유대와 이스라엘로 나누어졌다. '에브라임'은 과거 이스라엘 왕국의 10지파 가운데서 나라를 대표하는 지파이었다. 비록 형제들 가운데 결실을 하나 여호와의 바람에 의하여 그 근원이 마르고 그릇의 보배들은 다 마르게 되었다(호 13:15). 에브라임 지파는 유태인 가운데서 예수님을 환영하였던 유일한 지파였었다(요 11:53-54). 그러나 유태인들이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았을 때(슥 11:12) 그 피 값은 그들에게 돌아가게 되어(마 27:25) 그들과 세웠던 언약은 폐하여지고(슥 11:10) 이스라엘인들은 세상에서 유리하는 민족이 되었다(14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은 로암미(호 1:9)라고 부르시자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다. 즉 에브라임의 '첫째 밭'은 결실을 맺은 듯 하였으나 황폐하여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에브라임이라는 이름의 뜻은 "결실을 맺는 두 밭"임으로 결실을 맺는 또 다른 한 밭을 찾아보아야 한다.
■ 렘 31:8-9에서 이스라엘 땅이 아닌 땅 끝에서부터 큰 결실을 이루어 어느 한 날(6절) 큰 무리를(8절) 이루어 강들을 넘어 하나님께 나아오는 에브라임의 자손들을 볼 수가 있다. 즉 에브라임은 과거 이스라엘 땅에서는 큰 결실은 없었지만 이방 땅에서는 큰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비록 그들은 영적으로 볼 때 소경과 절뚝발이도 섞여 있을 것이다. 이들이 바로 에브라임의 막대기(겔 37:16)의 구성원들이다. 즉 이들은 부활로부터 나오는 자들인데 이 부활은 영적인 성장이 미흡한 자들도 포함이 되는 것을 보니 백보좌심판 직전에 있을 부활이다. 이와 같이 에브라임이 두번째 밭은 이방에서 큰 결실을 얻음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두가지 약속 즉 ① 네 씨가 하늘의 별처럼 또 바다의 모래알 처럼 많게 되리라는 약속과 ②너로 인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받으리라는 약속이 에브라임의 두번째 밭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이 약속들은 야곱에 의하여 에브라임에게 주어졌었다. "그 아우(에브라임)가 그(므낫세)보다 큰자가 되고 그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창 48:19
☞ 요셉의 막대기에 대하여
야곱이 70인의 식구를 데리고 애굽의 라암셋에 정착하여 살게 되었다. 세월이 많이 지나 야곱은 병이 들게 되었다. 요셉은 두 아들을 데리고 야곱을 찾아간다. 야곱은 요셉에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의 영원한 기업을 상기시키며 ①약속의 땅과 ②자손에 대하여 설명을 하였다. 야곱은 자손에 대하여 "두 구분이 있다" 하였다.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게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이들 후의 네 소생이 네 것이 될 것이며 그 산업은 그 형(제)의 명의 하에서 함께 하리라" <창 48:5-6>
즉 ①야곱의 자손과 ②요셉의 자손을 구분한 것이다.
야곱의 12 아들과 또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야곱의 자손 즉 야곱의 소유에 속하며,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후대 자손들은 요셉의 것이라는 것이다.
요셉이라는 이름은 '추가 함' 이라는 뜻이다. 에서와 야곱의 관계는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관계와 흡사하다. '에서'가 팥죽을 먹고는 이야기 속에서 사라진 것처럼 므낫세도 팔을 어긋대어 한 기도를 받고선 관심 밖의 인물이 되었다.
야곱은 에브라임도 나의 것이라 하였음으로 에브라임(1) 즉 첫째 밭의 산물은 야곱의 것이 되이고, 에브라임(2) 즉 이방에서 크게 결실을 맺는 영적 이스라엘인(이방 크리스챤)들은 요셉의 것이 되는 것이다.
■ 창 49:22에서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고 하였다. 요셉은 가지(Branch)임으로 그의 자손은 역시 가지에서 나와야 한다. 사 11:1,10에서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을 한다고 하였다. 그 뿌리에서 나오는 새 가지는 열방으로 뻗어 많은 결실을 맺는다. 사 49:6에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지파를 일으키시는 것보다 이 가지가 열국으로 퍼져 이방의 빛을 삼아 하나님의 구원을 땅 끝까지 베푼신다고 하였다.
할렐루야! 이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야곱의 12 아들로 이스라엘이 형성된 것처럼 예수그리스도의 12 제자들로부터 영적이스라엘인 교회가 형성되는 것이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전파되는 이방 땅이 에브라임의 땅인 것이다. 여호수와가 이스라엘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였던 것처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제 2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것이다. 이 가지는 십자가에서 나왔다. 이 약속의 땅이 새로 결실을 맺는 에브라임(2) 인 것이다. 성경에서는 종종 두번째 것을 더 중요시 하였다. 이것이 야곱이 요셉에게 말하였던 네 것인(요셉) 것이다. 또한 야곱이 에브라임에게 네가 큰 민족이 되리라고 하였을 때 그는 두번째의 밭에서 결실을 맺는 최종 모습을 분명히 보았던 것 같다.
■ 이와 같이 요셉의 자손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 이방 크리스챤들이다. 또한 이들은 주님의 심은 가지(사 60:21)로 불리운다. 이들은 참 아브라함의 자손(갈 3:29)들이며 이스라엘의 온 족속(겔 37:16)이라고도 불리워진다. 그리고 요셉의 막대기는 에브라임의 손에 쥐어져 있기 때문에 요셉의 자손은 에브라임(2)를 통해 이루어진다. 즉 우리 이방 크리스챤들은 에브라임 지파인 것이다. 거대한 지파이지만 땅의 분배에 대하여 걱정할 것은 없다. 땅의 분배는 가족의 수에 따라 기업을 얻는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민 33:54).
☞ '이스르엘' 대하여
'호세아'서는 이스라엘의 장래에 대하여 다룬 책이다. 호세아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책이다. 호세아서는 맨 마지막 구절에서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이 책에 적혀 있는 것)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책의 내용을 알겠냐?"고 하였다. 신약에서 난해한 책으로서 요한계시록을 꼽고 구약에서는 에스겔서와 호세아서를 꼽는다. 서로 해석과 견해가 다른 자들끼리 깊은 대립이 있다. 이는 이 책을 이해하기가 쉽지가 않다는 객관적인 증거이겠지만 우리에게 열쇠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호세아서를 여는 열쇠는 에브라임에 대한 이해이다. 이 책 전체가 이스라엘에 관련한 내용인데 '두 열매'를 맺는 에브라임에 대하여 충분한 이해가 있다면 이 책을 이해하기가 아주 쉽다.
호세아와 고멜 사이에서 3 남매가 태어났다. 첫째는 장남으로서 '이스르엘' 이었고 둘째는 딸로서 '로루하마' 이였고 마지막은 차남으로서 '로암미'이었다. 호 1장에서 그들 이름의 뜻을 자세히 설명을 하였다. 호세아와 고멜 사이에서 태어난 3 남매는 이스라엘의 장래운명을 나타내고 있다. 호세아는 '구원'이라는 뜻이고 고멜은 '타는 장작'이라는 뜻이다. 여호수와의 원래 이름은 호세아였다(민 13:16). 여호수와라는 이름은 예수의 히브리음이다. 즉 예수님은 히브리인이셨음으로 그 당시 여호수와라고 불리우셨던 것이다. 여호수와의 뜻도 호세아와 마찬가지로 '구원'이다. 즉 호세아는 우리와 혼인을 하실 예수님이신 것이다. 고멜은 이스라엘을 의미하고 고멜의 3 자녀는 이스라엘이 장래에 변화하는 모습이다.
■ 호세아는 음부인 고멜을 아내로 취한다.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였다. 호 1:4에서 이 아들을 낳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이다" 라고 선언하시었다. '이스르엘'이라는 이름의 히브리 원 뜻은 "하나님께서 씨를 심으실 것이다" 라는 뜻이다. 그리고 스트롱 사전을 인용하여 더 자세한 뜻을 살펴보자면 {S. 3157}로서 ①두 약속의 땅과 ②두 이스라엘인 이라는 뜻이 있다. (이와 같이 이 땅에서는 두 약속의 땅과 두 이스라엘이 있는 것이다.) 이스르엘이라는 이름은 비록 이스라엘이 저질렀던 불법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나라를 멸하시겠지만 장차 두번째 약속의 땅에 씨를 다시 심고 두번째의 이스라엘인들을 열매를 내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앞 페이지에서 요셉의 무성한 가지를 다룰 때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참 생명나무이신 예수의 십자가에서 새 순이 나와 그 가지는 온 이방세계에 뻗히게 되었고 이젠 추수의 때가 다 되어 풍성한 열매(영적이스라엘인)를 맺게 된 것이다.
■ 이스라엘의 나라가 망하고서는 딸이 출산되었다(호 1:6). 이 딸의 이름은 '로루하마'이다. 이 는 "하나님께서 더 이상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시겠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나라가 BC 721년 앗시리아에 의하여 망한후에도 많은 자들은 세겜을 중심으로하여 공동체를 형성하고 살았다. 그들은 사마리아인으로 불리웠다. 그들은 그리스의 문화와 종교를 많이 흡수하였다. 사마리아는 성경 곳곳에서 간음하는 여성으로 표현되었다(호 13:16, 겔 23:2-4). 하나님께서는 사마리아인들을 긍휼히 보시지를 않으셨다. 예수님께서 구세주로 오셨을 때 이스라엘은 3 지역으로 구분이 되었는데, 유다와 사마리아와 갈릴리이었다. 사마리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함을 못 얻은 것 뿐만이 아니라 이방종교와의 혼합으로 인하여 같은 동족인 이스라엘인들에게까지 멸시를 당하였다.
■ '로루하마' 다음으로 '로암미'라는 아들이 출산되었다. 이 이름의 뜻은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이다. 이스라엘인들이 예수를 은 30냥에 팔고 십자가에 못 박았을때 그 피가 그들에게 돌아가 옛언약은 깨어지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로암미라고 부르셨던 것이다. 즉 너희는 더 이상 나와 상관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장차 다시 '암미'라고 부르시며 '루하마'라고 부르신다고 하셨다(호 1:11). 즉 다시 자비를 베푸시고 내 백성이라고 하시겠다는 것이다. 호 2:23에서 3 자녀의 이름이 회복된다. ①이 땅에 다시 심고(이스르엘), ②긍휼히 여기며(루하마), ③내 백성이라(암미) 하신다는 것이다. 회복된 이스라엘과 언약이 세워지며(호 2:18)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장가들어 영원히 사시겠다는 것이다(19절).
■ 호 2:21-22의 말씀을 살펴보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 날에 내가 응하리라 나는 ①하늘에 응하고, 하늘은 ②땅에 응하고, 땅은 ③곡식과 ④포도주와 기름에 응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하리라" 이 이스르엘에게 주어진 축복은 사냥한 고기대신 야곱의 어미인 리브가가 만든 별미와 포도주를 먹고선 이삭이 야곱에게 한 축복과 동일하다. "하나님은 ①하늘의 이슬과 ②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③곡식과 ④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창 27:28). 이와 같이 이스라엘(야곱)의 축복은 최종적으로는 이스르엘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야곱의 장자권은 요셉에게 주어졌고 그 다음에는 에브라임에게 승계되었다. 이에따라 "모든 민족이 너를 통하여서 복을 얻으리라"는 큰 약속은 에브라임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렘 31:8-9). 이 에브라임은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음을 마 2:15와 호 11:1-3을 통하여서 알 수가 있다.
창 48:5-6에서 야곱은 야곱의 자손과 요셉의 자손을 구분하였다. 이 때 요셉의 자손은 에브라임의 후손으로서 그의 기업(땅)에서 그 형제(S.251→ 형제 혹은 다른 형제) 의 이름으로 불리 울 것이라고 하였다. 이 다른 형제의 이름이 바로 주 예수그리스도이신 것이다(히 2:11, 렘 31:9, 롬 8:29). 이스르엘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씨를 심으시다" 인데 예수님은 한 알의 밀알로서 이방의 땅(2번째 약속의 땅)에서 심어져 이방의 땅에서 많은 열매들이 맺혀진 것이다. 유법시대와 교회시대를 거쳐서 두 이스라엘인이 탄생되었다. 하나는 ①혈통적 이스라엘, 다른 하나는 ② 영적 이스라엘인 것이다. 유다와 요셉의 막대기가 연합되어 하나님의 손에 놓여지는데(겔 37:19) 하나로 연합된 몸은 이스르엘이라고 불리우게 되는 것이다(호 2:19-23).
미래에 있을 출애굽은 이스르엘의 날로 명명된다! (히 4:1,9)
미래에 있을 출애굽은 하나님께서 어느 한 날 열방을 향하여 깃발을 들어 기호를 세우시고 나팔로서 소리를 발하실 때에 있을것이다. 이 때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음성을 듣고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게 된다(요 5:28-30).
"내가 그들을 향하여 휘파람 불어 모을 것은 내가 그들을 구속하였음이라 그들이 전에 번성하던 것같이 번성하리라 내가 그들을 열방에 뿌리려니와 그들이 원방에서 나를 기억하고 그들의 자녀와 함께 다 생존하여 돌아올지라" <슥 10:8-9>
"다 생존하여 돌아올지라"에서의 '생존'이라는 단어는 "부활함"(S.2421)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이 '생존'이라는 단어의 히브리어는 겔 37:10("그들이 살아 일어서는데")에서의 부활을 의미하는 '살아'라는 단어의 히브리어와 같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을 것이라는 약속이 있다. 야곱은 레아와 라헬과 그리고 두 첩과 12 아들을 대동하고 외삼촌 라반의 집을 떠나 고향 길에 오른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곧 형 에서로부터 빼앗었던 장자권에 대한 보복이 큰 두려움으로 남았었다. 가나안 고향 땅을 향하여 가는 도중 마하나임에 이르러 하나님으로 부터 약속의 말씀을 듣게 된다. "내가 정녕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창 32:12>
"네 자손의 수가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겠다". 이 약속은 장차 이스르엘을 통하여 이루어 지게 된다(호 1:10-11). 그들은 두 이스라엘의 연합(육적, 영적)으로서 이들은 모두 부활한 후 큰 무리를 이루어서 새하늘 새땅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영원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되는 날을 '이스르엘의 날'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 광야는 타작 마당이다.
출애굽을 한 후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까지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생활을 하였다. 이 광야에서 고라일당과 같은 반역자들이 제거되었고 불순종하는 자들은 약속의 땅을 들어가지를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되었다. 광야를 거치면서 그들은 선별되었으며 약속의 땅은 보상의 차원으로 주어졌다. 이는 장차 거룩한 나라는 빛의 열매를 맺은 성도들이 얻을 기업임을 보여준다(벧전 2:9, 골 1:12, 엡 5:5-9, 단 7:18)
■ 미래에 있을 출애굽의 과정
⒧ 미래에 있을 제 2의 출애굽은 과거의 출애굽과 흡사하다. (사 11:16, 겔 20:36) 과거에 있었던 출애굽은 애굽으로부터의 나옴이었지만 미래에 있을 제 2의 출애굽은 열국으로부터의 나옴이다. (사 11:12, 렘 31:8, 겔 20:34)
⑵ 그 때에도 홍해를 건넜던 것과 같이 바다와 하수를 건넌다. 고전 10:1에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홍해바다를 지날 때 침례를 받았다 하며 골 2:12에서는 이 침례로서 장사한 바가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바다는 죽음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사 11:15, 렘 31:9, 겔 37:1)
⑶ 이 바다 위에 바람(S.7307→ 루왁:성령)이 불음으로 죽었던 자들이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 다 부활로 나온다. (출 14:21, 사 11:15, 겔 37:9)
⑷ 부활로 나온 자들은 유다와 에브라임의 두 구룹으로 나누어지는데 에브라임의 규모가 더 크다. (사 11:13, 렘 31:9, 겔 37:16) 그리고 두 그룹은 하나로 연합된다. (사 11:13, 겔 37:19)
⑸ 그리고 광야를 거치면서 주님의 막대기를 지난다. (겔 20:36-38)
⑹ 광야에서 나와서 요단강을 지날 때 요단강에 서 있었던 언약궤를 지나야 하였다. 언약궤 위에는 주님께서 좌정하시는 속죄소가 있다. 이 속죄소는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이였다(출 25:21-22).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누구나 다 속죄소를 거쳐 지나야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살았던 모든 사람들을 공의로 심판하실 한 날(행 17:31, 히 9:27)을 정하셨다. 악한 자들은 영원한 사망으로 심판받고 선한 자들은 영생과 상급으로 보상받는다(요 5:28-30, 계 11:18).
⑺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나라의 백성(제사장 혹은 성도)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으신다. (렘 31:31-32, 겔 37:26-27, 호 2:18, 사 61:6-10, 계21:3)
⑻ 과거 약속의 땅에서 다윗왕국은 이방나라(열방) 가운데 있었던 것과 같이, 새하늘 새땅에서도 거룩한 땅과 열방으로 구분된다. (겔 20:38,42, 겔 37:28, 겔 40:5,48:20 & 계 11:1-2)
■ 광야를 지나면서...
무덤 속에 있던 모든 자(요 5:28)들은 여호와의 살아 일어나라는 명령(겔 37:9)에 다 부활로 나올 것이다(슥 11:8-9). 첫째 부활(계20:4-5)에 참예하지 못한 자들은 다 이 때 부활로 나와 큰 무리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이들 가운데는 선한 자와 악한 자가 섞여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다 심판대를 거쳐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시고 알곡 중에서도 우열을 가르신다. 에스겔 20장은 하나님의 모든 농사가 마무리 된 후 최종 타작마당이 제 2의 광야에서 있게 될 것을 설명하였다.
⒧ 겔 20:34 → 열방 중에서 민족을 모으신다. 땅 끝으로부터 나오는 큰 무리에는 여행하기에 적합하지가 않은 소경과 절뚝발이와 잉태한 여인과 해산하는 여인들이 섞여 있다(렘 31:8-9). 즉 영적으로 장성이 안 된 자들이 그들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⑵ 겔 20:35 → 그들로 하여금 광야를 지나게 하시어 그 기간동안 그들을 국문(신문, 심판)하실 것이다.
⑶ 겔 20:36 → 그 때의 상황은 과거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 땅 광야에서 국문하신 것과 흡사할 것이다.
⑷ 겔 20:37 → ①그들을 막대기 아래로 지나게 하며, ②언약의 줄로 매신다.
① 막대기 아래로 지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레 27:32에서 여호와께서는 희생제물로 사용할 소와 양을 고르실 때 그것들을 하나님의 막대기 아래로 지나가게 하셨다. 그들이 막대기 아래를 지날 때 여호와께 속한 것을 선택하시는 것이다.
우리 사람들도 하나님의 소유를 고르실 때 그분의 막대기 아래를 지나게 하신다. 하나님은 몇 가지 기준을 정하여 놓으시고 그 기준으로 우리를 재어 보신다. 하나님의 소유는 다 거룩하다. 그 분의 소유로 척량된 땅도 거룩하고 희생제물로 구별된 우양도 거룩하다. 소나 양도 거룩한 것을 고르시는데 하물며 사람이랴. 믿는 자들 가운데서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과연 성도라고 일컬어 질 수 있는 자(고전 1:2)인지를 확인해 보시기 위하여 그 분의 저울로 달아 보시는 것이다.
행 20:32에서 거룩함을 입은 모든 자들은 기업이 있다고 하였다. 행 26:18에도 동일한 말씀이 있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막대기를 통과하는 자들은 어두움에서 빛으로 나왔기에 빛 안에 거하는 자들이다. 즉 빛 안에 거하는 성도들인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골 1:12>
이들은 빛 안에 있는 자들로서 제사장의 나라의 백성이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② 언약의 줄로 매신 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기준을 통과한 자를 따로 구분하셔서 그들과 백성의 언약(사 42:6, 49:8)을 맺으신다. 이 언약은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다. 겔 37:26-27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처소가 우리 가운데 있을 때(계 21:3)에 막대기를 통과하면서 선별되어진 무리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신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먼 옛날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창 17:7-8)이 오랜 세월이 흘러 이 때에 비로서 매듭을 짓는 것이다.
이 때에 사망은 영원히 멸할 것이요 주 여호와께서 우리의 얼굴에서 눈물을 씻겨 주실 것이다(사 25:8).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 21"3-4>
⑸ 겔 20:38 → 그들 가운데 패역한 자와 하나님께 범죄한 자는 모두 제하여진다. 그들은 이스라엘 땅에 못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 이스라엘 땅이란 겔 37:28에서 알 수 있듯이 거룩한 땅이다. (땅의 기업에 대하여서는 후에 다룰 것이다.)
"그들이 우거하였던 땅에서는 나오게 하여도 이스라엘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과거 출애굽 때에 구 세대가 약속의 땅에 못 들어 갔듯이 미래의 출애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 제사장에 대하여
● 사 66:21-22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열방과 열족 가운데서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선택하여 새하늘과 새땅이 여호와 앞에 항상 있음과 같이 그들의 이름도 여호와 앞에 항상 있음을 말하고 있다.
● 하나님께서 사독의 자손들을 영원한 제사장으로 삼으시겠다는 내용은 평화의 언약을 다룰 때 이미 살펴보았다. 한 사람의 증거는 불 충분하기에(고후 13:1) 하나님께서 영원한 제사장들을 삼으시겠다는 말씀 한 구절을 더 제시하고자 한다.
역대상 28:7-8에서 하나님께서 다윗왕에게 이렇게 약속하셨다. "네 아들 솔로몬으로 내 전을 건축하고 여러 뜰을 만들리니 이는 내가 저를 택하여 내 아들을 삼고 나는 그의 아비가 될 것이라" 하셨다. 그러나 그 약속이행을 위하여 한 가지 조건을 달으셨다. "저가 나의 계명과 규례를 힘써 준행하기를 오늘날과 같이 하면 내가 그 나라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는 약속을 주셨다.
원래 솔로몬의 왕국은 영원할 나라로서 세워졌다. 그러나 솔로몬 왕은 약속을 준수하지를 않았음으로 그 나라는 무너졌고 언약은 일시 파기되었지만,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새 언약으로 다시 세워졌으며 또 그 영원한 나라는 새하늘과 새땅이후 실현될 것이다.
대상 28:21을 주의하여 살펴보자. 하나님께서 그 영원한 나라에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반열이 있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실패하기 이전에 그 영원한 나라를 보시면서 이 말씀을 주신 것이다. 이와 같이 새하늘과 새땅의 영원시대에서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다시 있게 되는 것이다.
● 이스라엘이 2,000년의 기간동안 나라없이 살면서 지파구분이 없어졌다. 우리 영적 이스라엘인에게도 지파는 없다. 그러나 장차 새 예루살렘성의 12 문에는 12 지파의 이름(계 21:12, 겔 48:31-35)이 적혀 있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사 66:21 에서 어떤 이는 '레위'지파로서 또 어떤 이들은 제사장으로서 뽑힐 것임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에스겔서 48장에서는 과거 약속의 땅에서 그랬듯이 하늘의 참 약속의 땅에서도 지파에 따라 분깃이 주어진다.
우리는 모두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불리울 것이다(사 62: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이름을 주실 때 우리가 속할 지파의 이름도 주시는가 보다. 우리의 눈에는 지파가 아니 보여도 하나님의 눈에는 누가 제사장인지 레위인인지 또 어느 지파의 사람인지가 보이시나 보다.
육적 이스라엘인들은 혈통에 따라 지파가 나뉘었지만, 장차 연합될 새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정하시는 새로운 기준에 따라 지파가 이루어지나 보다. 왜냐하면 사 66:21에서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이방인 가운데서 나온다고 하였는데, 우리 이방인들은 혈통적 레위인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구약 성경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구약에서 의의 겉옷을 입은 제사장은 신약에서 의의 옷(흰세마포)을 입고 있는 성도와 동등한 반열임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눈에 안약을 바를 때(계3:28) 우리 이해의 눈이 열려(엡 1:18) 성도의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다고 하였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자면 눈이 열려야 성도의 참 의미와 성도에게 주어지는 기업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눈에 시력을 회복시켜주는 안약은 단단한 식물인 '의의 말씀이다.
하나님나라는 공개된 비밀이다. 그 나라의 백성이 되는 자들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며 의와 거룩함으로 지음받은 새 사람이다(엡4:22-24). 그들은 백성의 언약을 소유하는 자들이다 (사 42:6, 49:8). 또한 이 언약은 영원한 언약 혹은 화평의 언약과 같은 것임을 살펴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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