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시는 믿음이란?
가장 중요하고 교회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지적하시는군요.
"이해의 눈이 열리고 가슴이 뻥 뚫리는 말씀입니다."
https://youtu.be/lgCRb6-Xxfc?si=Mfuns46L4KFCd7HX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지만, 하나님의 test를 거쳐야 함.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롭다 하신 하나님은 모리야산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신 것처럼...
우리의 믿음도 순종으로 행함이 있어야 온전한 믿음으로 인정된다.
거룩함! 과연 이룰 수 있는가
https://youtu.be/jIBsuaYn4QE?si=_hBbLUf-bhK9tI67
거룩함을 이루기 위하여...
1. 하나님께 자신을 드려라.
2.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라.
3. 우리는 할 수가 없지만,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역사로 말미암아 거룩함은 이루어진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https://youtu.be/ExGrS9IbrdQ?si=tPn9DbOk4EV82Prc
[아더핑크]
가장 중요하고 교회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지적하시는군요.
"이해의 눈이 열리고 가슴이 뻥 뚫리는 말씀입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이란 마귀의 듣기좋은 자장가이다.
구원신앙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깜짝 놀랄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구원이 쉽다고 400년이 넘도록 그렇게 배웠는데, 오늘날 우리가 "구원 얻는 것 너무 어려워" 하면..."그게 뭔 소리냐" 하면서 깜짝 놀란다는 것이죠.
오늘날 모든 곳에서 정통주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조차 구원이 매우 쉽고 간단한 것처럼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요한복음 3장 16절을 믿고,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영접하면 그것으로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물질 또는 아내, 남편을 의지하듯 그리스도를 의지하면 그것으로 구원의 조건이 족하다는 것입니다.
올바른 믿음의 대상을 의지하는 것 외에 죄인이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논리입니다. 오늘날 이런 구원관이 만연한 탓에 거기에 동조하지 않으면 뭔가 특이하거나 잘못된 믿음을 가졌다는 오해를 받기가 십상입니다.
저(아더핑크)는 요즘에 이러한 쉬운 구원관이 하나님을 모욕하는 마귀의 거짓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대상을 신뢰하는 데에는 자연 신앙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구원을 얻으려면 우리에게는 자연 신앙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신앙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구원신앙이 쉽고 단순하다고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혼의 구원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씀하시기는커녕,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역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천국에 이르는 길은 어렵고 힘든 길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씀대로, 그 길을 걸으려면 온 힘을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젊은 관원이 슬퍼하며 돌아가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런 확신을 심어주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그분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타락한 죄인이 진정으로 죄를 뉘우치고, 그리스도를 믿는 구원 신앙으로 그분 앞에 나오는 일은 오직 창조의 능력을 지닌 하나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이렇듯 사람으로 할 수 없으되라는 말씀은 인간의 의지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오직 은혜의 기적만이 죄인을 구원할 수가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을 죽이고 세속적인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고 마귀를 물리치고 매일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살며 온유하고 겸손한 심령을 유지하고 믿음과 순종과 인내와 충실을 실천하고 올바르고도 친절하고 자비롭게 살아가는 것이 요구됩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사는 것은 타락한 인간 본성에 내재된 힘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런 한 일이 간단해 보이는 이유는 이 세대가 구원 신앙의 참된 본질에 대하여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구원신앙의 속성에 관한 성경의 증언을 옳게 이해하는 사람이 드물어 거짓 구원의 가르침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이 시대에 통속적인 복음을 이토록 열렬히 환영하는 이유는 무엇으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하는지를 모르는 데 있습니다. 구원신앙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즉 자신의 마음과 삶을 그리스도의 통치에 온전히 복종시키는 것을 포함합니다.
구원받았다는 것은 주인이 바뀌었음을 의미합니다.
[박영돈 교수]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은 우리 노력으로 이루어가는 행위구원을 이르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이미 우리 안에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구원을 그 목표를 향해 진행시키는 말씀입니다.
이루라는 말의 의미는... 마지막까지 계속 발전시키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이루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서 강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로 이루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나머지를 우리에게 다 떠 맡기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처음 구원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우리 안에서 구원을 진행시켜 완성시키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아들의 영, 자녀의 영입니다. 하나님아버지의 기쁘신 뜻을 이루어 드리려는 아들의 소원을 우리 안에 심어 주십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며, 그 성령으로 거듭난 증거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아버지의 깊으신 뜻을 이루어 드리려는 사무치는 소원에 사로 잡히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는 소원에 온통 삼킴 받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진짜 구원받은 사람은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오래 믿어도 변하지 않는 사람, 복음의 빛을 현저히 가리고 있는 것... 그것은 우리 가운데 일하시는 성령님을 거역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그 풍성한 은혜와 능력을 모두 탕진해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교인들에게 구원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증거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려는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행하는 삶이 없습니다. 이런 자들을 믿기만 하면 구원이라고... 이미 받은 것이라고 안심시키는 가르침이 한국 교회를 망하게 하고 있습니다. 교인들의 신앙을 나태와 방종에 빠지게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바울이 전한 구원의 진리에서도 완전히 벗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이단적인 가르침이며, 마귀의 속삭임입니다. 마귀도 믿고 떤다고 했습니다.
자신 안에 구원의 목표를 향해 성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증거와 열매가 전혀 나타나지 않아도, 예수를 믿었으니 자신은 이미 구원받았다고 안심하는 것은 무서운 자기기만에 빠지는 것입니다.
사탄은 진정한 구원을 받은 사람의 믿음은 자꾸만 흔들어대는 반면, 거짓 구원의 확신을 가진 이들의 자기기만(self deceiption)은 더욱 강화시킵니다. 그래서 자기가 구원받았다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게 하여 영원한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한국 교회에 만연한 값싼 은혜의 메시지는 교인들을 진리의 영이 아니라 지옥이 주는 거짓 확신에 빠지게 합니다. 자신이 구원받았는지는 그 구원의 목표가 자신 안에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분명한 증거와 열매를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를 믿은 지 얼마 안 되는 분들에게는 이러한 증거가 확실하게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생활을 오래 했어도 이런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 사람은 참으로 구원받은 사람인지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그런 사람은 만약 거듭났더라도 심각하게 타락한 교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인들은 참으로 구원받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인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자신이 구원받았는지 아닌지의 여부를 심각하게 점검하고 성찰을 해보아야 할 사람들에게 억지로 구원의 확신을 주입시키려는 인위적인 시도는 사람들을 거짓 구원으로 세뇌시키는 마귀의 교활한 수법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한국 교회는 안일하게 살려는 교인들에게 자신의 구원을 의심해 보게 해야 한다는 '요나단 에드워드'의 조언이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이런 의심이 참된 확신에 이르는 길로 이끄는 방편이 될 수가 있습니다. 혹 자신이 구원에 이르지 못한 자가 아닌지 두려워해야 합니다. 두렵고 떨림은 참된 신앙의 핵심 요소입니다.
이것이 없을 때, 더 이상 진정한 신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구원도 없습니다. 성화가 진행되지 않습니다. 참된 경건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한국교회에서 이 두렵고 떨림이 다 사라지면서 온갖 부패와 방종이 밀려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방자하며 경박하기가 짝이 없는 목사들과 교인들로 큰 군상을 이루고 있는 실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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