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석 목사의 천년왕국과 첫째부활의 신학적 견해
요한계시록 해석에는 "천년설"이 전제 됩니다. 그래서 계시록에는 필수적으로 천년설이 따라다니는데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 대개 이 세 종류의 천년설이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해석은 다양하게 나오지만 그 신학적 방향이 어떤 천년설이냐에 따라 해석하는 견해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천년왕국을 논할 때 우리는 천년설에는 성경적으로 타당성 있는 견해가 있는가하면 전혀 그렇지 않고 비성경적인 견해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전천년주의는 천년왕국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매우 성경적이고 또 성도들에게 소망을 주고는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천년설을 타당성 있게 설명할 신학적 변증에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이 찜찜합니다.
1. 천년왕국의 존재여부
우리는 먼저 천년왕국의 존재여부부터 성경에서 검증해야 합니다.
인류의 종말에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왕국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성경 많은 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고전15:25절에서 그리스도께서 그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 하실 기간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 왕국은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계11:15절에서 그리스도의 왕국이 등장합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물론 이 나라 역시 교회시대가 아니며 천국을 가리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계20:6절에서 순교자로 등장하는 첫째부활자들이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그리스도께서 왕노릇 하실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이며 그 나라를 천년왕국이라고 하며 그 왕국의 기간도 천년이란 사실의 근거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2. 천년왕국은 왜 존재해야 하나?
인간은 최초로 에덴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선언 받았습니다. 창1:2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는 축복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단의 미혹으로 범죄한 인간은 그 동산에서 쫓겨났으며 죄와 사망의 지배를 받아 왔으며 인간에게 복을 주라는 땅이 저주를 선사했습니다. 그러나 둘째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그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우리에게 새로운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천국에 가기 전에 회복된 에덴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천년 동안 산다는 일은 매우 성경적이며 하나님이 한번 언약하신 그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천년이란 기간도 최초의 인간인 아담의 수명이 930세였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대단히 성경적인 기간이라 여겨지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이사야는 사65:17-25절에서 새로운 에덴동산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20절에서 백세에 죽은 자가 아이겠고 라고 한 말씀은 그 기간 동안에는 죽음이 없다는 것을 전제하며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란 말씀 역시 그 수한의 장구(천년)함을 의미해 주며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다고 하신 말씀 역시 그런 의미로 주신 것입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사회는 죄도 없고 사단도 존재하지 않은 사회를 그리고 있으며 이런 사회는 계20:3절에서 주님께서 붉은 용을 잡아 천년간 무저갱에 던져 잠금으로 마귀가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세계가 이루어질 것임을 가리킨 것이며 이사야의 예언과 일치는 말씀입니다.
3. 천년왕국은 언제 어디에 만들어지나?
천년왕국은 이 지구를 불로 심판하시는 일곱째 대접심판이 끝난 후에 에덴동산이 있었든 이 지구위에 세워집니다. 불로 살라진 이 세상이 새로운 세계로 변하는 것이 천년왕국입니다. 우리는 벧후3:12절에서 이런 말씀을 찾게 됩니다.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고 했습니다.
(제 의견: 벧후 3:12 에서 묘사된 하늘이 불에 타서 체질이 녹아지는 일은 천년왕국 후에 발생할 것으로 사료됨)
물론 천년왕국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땅위에 세워집니다. 옛날에 에덴이 있던 곳이 바로 이 땅입니다. 천년왕국도 이 땅에 세워져야 회복된 에덴이 되는 것입니다. 계11:15절에서도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서에서는 유대인들이 대망하는 메시야 왕국에 대해 7년환난 중, 후3년 반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지난 후, 짐승이 심판 받은 후 그리스도의 나라가 세워질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단7:13-14, 22, 25-27). 이 메시야 왕국이 요한계시록에서 천년왕국이라 명명한 것입니다.
4. 천년왕국에는 누가 들어가나?
천년왕국 백성들은 물론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그 성도들이 어떤 몸을 가지고 들어가 살아가느냐는 문제의 해답은 쉽게 풀리지 않습니다. 무천년설과 후천년설을 빼놓고는 결국 이 문제가 걸림돌이 되어 천년왕국에 대한 완벽한 해석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 경우는 전천년설의 경우, 역사적 전천년설이나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경우나 매일반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대략 그 논지가 같습니다. 죽은 모든 성도들은 부활한 몸으로, 살아 있는 모든 성도들은 변화 받은 몸으로 천년왕국에 들어가 그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 주장에는 크나큰 모순과 문제점이 따릅니다.
(1) 천국에서 안식하고 있는 성도들이 부활하는 시기는 마지막 부활로 사망의 권세를 멸할 때인 백보좌 심판 시입니다(고전15:24-26, 50-54 계20:14).
(2) 성도들이 변화 받는 시기 역시 천년왕국이 지난 후, 성도들의 마지막 부활 때에 함께 홀연히 변화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변화는 천년왕국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일에 필요한 것입니다. 혈과 육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새 예루살렘)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죽은 성도들은 부활로, 살아있는 성도들은 변화로 신령한 몸을 덧입는 것입니다(고전15:50-54). 천년왕국에 들어가기 위해 죽은 성도가 부활하고 살아 있는 성도가 변화 받는 것이 아닙니다.
(3)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역사적 전천년주의나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나 다를 바 없습니다. 그 시기가 다를 뿐입니다. 역사적 전천년주의에서는 후3년 반 끝에 가서 주의 재림시에 공중휴거 되는 그 시기에 이런 부활과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고 세대주의 전천년주의에서는 7년환난 직전에 이런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5. 공중휴거 때에 죽은 (모든) 성도들의 부활과 살아 있는 성도들의 변화가 있는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성경적인 해답은 <아니다>입니다.
(제 의견: 공중휴거될 때 부활체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첫째부활로 나오는 그들은 부활체로 주님과 함께 천년을 다스릴 것입니다.)
공중휴거의 목적은 두 가지 사실에 있습니다. 하나는 지상의 일곱째 대접심판에서 성도들이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신 후 곧 쏟아지는 일곱째 대접심판은 이 지구가 불로 살아지는 마지막 심판입니다. 그 상태에 대해 계16장에서 이처럼 말씀해 줍니다.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 또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박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이 심판은 지상의 모든 생명체가 모두 불태워 소멸되는 심판입니다. 이 심판에서 건짐을 받기 위해서는 지구에서 도피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도피가 곧 공중휴거입니다(마24:31). 그리고 다른 이유 하나는 이 지구가 불로 심판을 받은 후 이 땅에 새로운 땅을 형성하십니다. 그 과정을 이사야 선지자는 “새하늘과 새 땅”의 창조라고 하였고 계시록에서는 “그 그리스도의 나라” 그리스도께서 “천년 동안 왕노릇하는 나라”라고 했습니다. 공중 어느 곳인가, 하나님이 지정하신 장소에서 그 나라가 창조될 때까지 기다리다가 완성된 그 나라에 주님과 함께 내려가 천년왕국의 생활을 이루는 것입니다.
6. 공중휴거시, 부활하거나 변화 받아서는 안 되는 이유
(저는 이 제목을 수용하기가 어렵지만, 아래 내용은 논리적이고 타당하다고 여겨집니다.)
(1) 부활체나 변화체는 신령한 몸이며 신령한 몸이 살아갈 곳은 우리의 영원한 기업의 땅인 새 예루살렘이지 천년왕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 천년왕국은 회복된 에덴입니다. 이 세상과 달라진 상태는 마귀가 없는 세상, 죄와 저주가 없는 세상이란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는 자손의 번성을 누려야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가 부활체이거나 변화체를 가졌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담이나 하와는 육체를 가진 몸으로 창조를 받았고 그 몸을 가지고 축복의 선언을 받았으며 범죄하기 이전에도 그 몸으로 에덴에서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회복된 에덴인 천년왕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활체이거나 변화체라고 한다면 이건 영 앞뒤가 맞지 않는 일입니다. 부활체나 변화체는 신령한 몸입니다. 이 몸은 육신과는 달리 결혼을 할 수 있는 몸이 아니며 자손도 낳을 수 없는 몸입니다. 주님은 부활한 몸의 형태에 대해 마치 천사와 같다고 하셨으며 장가가는 일도 없고 시집가는 일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부활체로 천년왕국에 들어가 자손을 번식한다고 주장한다면 우리 주님을 아주 우습게 만드는 일이 됩니다. 안 된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우리는 된다고 우기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과연 누구의 말이 옳으며 타당성이 있을 것입니까? 만약에 천사들도 지금 그 자손을 번식시키고 있다고 가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천국에 올라가서도 자식을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게 가당치나 한 말입니까? 그런데 천년왕국에서 부활한 성도들이 자손을 번식하여 땅에 충만하게 한다고 한다면 그게 될 법이나 한 일입니까? 저것과 이것이 무엇이 다른 것입니까?
(3) 천년왕국은 천국이 아닌 물질과 육체에 속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죄 없는 세상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성도들이 부활하고 모두 변화 받았다면 무엇 때문에 천년왕국에서 살아야 합니까? 그 나라가 그들에게 왜 축복의 땅이 될 수 있습니까? 부활체나 변화체는 신령한 몸입니다. 신령한 몸이 살아갈 곳은 천년 동안의 시한부 나라가 아니라 영원히 영광스러운 천국입니다. 왜 그 나라에 들어가 더 큰 복을 받는 생활을 하지 못하고 천년 동안 천년왕국에 머무는 불합리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천년왕국에서는 우리의 자손들이 하늘의 별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중가할 터인데 그들이 천년왕국이 끝난 후에는 어떤 운명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까? 그 몸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혈과 육을 가진 육체를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 하는 것도 아닙니다. 부활은 일단 죽어야 하는데 살아있는 그 사람들은 부활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부활은 이미 첫째부활로 끝났다고 하니 심판의 부활인 둘째부활을 하는 것입니까? 그러면 이들은 천년왕국 후에 변화해야 합니까? 전천년주의 자들은 부활이나 변화나 동일하게 첫째부활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천년왕국에서 태어난 그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변화를 해도 둘째부활 곧 심판의 부활에 속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성경에 성도의 변화가 두 번 있다고 어디에 말씀해 주고 있습니까?
(4) 그러므로 우리가 전천년설을 믿고 주장하려면 이런 문제의 탈출구를 찾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합리적인 문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7. 계20:4절의 첫째부활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답을 찾아내야… 천년왕국 문제의 가장 효과적인 해결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부활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내리는 일입니다.
먼저 우리는 첫째부활의 대상자를 찾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첫째부활을... 주님 오실 때, 죽은 성도들의 부활과 살아 있는 성도들의 변화를 첫째부활로 해석하고 있다는데 근본적인 하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부활문제가 바로 여기서부터 꼬이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을 다루는 성경신학자 조직신학자 종말론 신학자의 눈이 여기서 감겨져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풀지 못하고 그토록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첫째부활의 대상자에 대해 무엇이라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까? 첫째부활이란 단어는 성경에서 계20:4절 말씀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첫째부활에 대한 정의는 마땅히 거기서 찾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4절에서 증거해 주고 있는 첫째부활자는 누구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까?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부활이라 이 첫째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하리라”(계20:4-6).
첫째부활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은 이 말씀 안에 명백하고 분명하게 계시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에 더 보태도 안 되고 더 감해도 안 됩니다. 이 구절의 말씀 안에서 그 해답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첫째부활문제는 영원한 미제로 남게 될 것이며 엉뚱한 해석을 내림으로 부활에 대한 정확한 성경적 계시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을 것입니다. 지금의 이상한 풀이가 신학계에서 발목을 잡고 부활과 천년왕국에 관한 오답을 정답으로 주장하는 일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첫째부활자들이 누군가에 대한 그 대상은 성경은 분명히 두 종류의 순교자들이라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란 말씀이 첫 번째 첫째부활자의 대상입니다. 이들을 누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모든 성도들이라고 해석하는 것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과 목 베임을 받아 죽임을 받은 순교자들과 어떻게 동일할 수 있습니까? 이들이 순교자들이란 사실에 이의를 부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해 첫째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어느 신학자가 아니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까?
다음 첫째부활의 두 번째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들은 누구입니까? 문장에서 한 구절 한 구절 그 뜻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했다고 한 그 짐승은 계13장에서 인류의 종말에 이 세상에 등장하는 짐승인 적그리스도를 지칭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자 또한 없을 것입니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지 아니했다는 것은 짐승을 메시야로 영접하지 아니했다는 것이며 또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란 짐승에게 경배하거나 그 우상에게 경배함으로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을 가리킨 말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살아서”라고 했습니다. 여기 살아서란 말은 ‘에제산’으로 살아나서란 의미로 부활을 의미합니다. 여기 “살아서”란 대상은 짐승 치하에서 살아남은 모든 성도들을 가리킨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5절에서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이란 말에서 그들이 죽은 성도들임을 뜻하며 또 “이는 첫째부활이라”는 말에서 그들이 이미 죽은 성도들로 첫째부활에 참여했다는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분명 인류의 종말에 짐승에 의해 순교를 당한 성도들을 그 대상으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이 순교자들의 부활이란 사실을 더욱 뚜렷하게 증거해 주는 또 하나의 증거로 5절 말씀을 들 수 있습니다. 5절에서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고 했습니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들 대상은 앞서 말한 두 종류의 순교자들이 아닌 나머지 죽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누구를 가리킵니까? 아담부터 인류의 종말까지 모든 시대에 걸쳐 순교자들 외 죽은 모든 사람들을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5절에서 말씀해 주는 죽은 자들의 대상은 첫째로 성도들을 가리키지만 심판의 부활자들인 악인들도 이에 포함됩니다. 성도들이나 악인들의 부활은 천년왕국 후에 동시적으로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첫째부활의 대상인 순교자들을 둘로 구분 짓고 있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계6장에 나와 있습니다. 제단아래서 순교자들의 피값의 신원을 호소하는 영혼들의 간구와 또 이에 화답하시는 말씀 가운데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는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계6:9-11). 제단 아래서 호소한 순교자들은 첫 번째 순교의 대상자들이며 그 수효를 채워야 하는 그 동무 종들은 바로 1260일간 예언사역을 하다가 짐승과 싸우다가 순교함으로 부활 승천한 두 증인의 경우를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계11:7-12).
이들 첫째부활자들은 천년왕국에서 특별한 상급을 받습니다. 그 상급에 대해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모든 성도들이 왕노릇하는 게 아닙니다. 첫째부활의 영광에 참여한 순교자들이 그 나라에서 왕노릇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들 왕권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영화로운 몸을 가지고 최대의 영광을 누릴 것입니다.
그들은 장가를 가거나 시집가는 일 없이 신령한 몸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그들은 부활체가 살아갈 수 있도록 특별히 창조된 도성에서 왕노릇을 할 것입니다. 그 도성이 계20:9절에서 “사랑하시는 성”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일반 백성들은 누구입니까?
계19장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6절에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고 했습니다. 여기 나오시는 전능하신 이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통치하시는 나라는 천년왕국을 의미합니다. 7절에 나오는 “어린양의 혼인기약”은 천년왕국에 들어갈 시기가 이르렀음을 가리키며 9절의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천년왕국을 가리킵니다. 이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은 사람들의 자격에 대해 7,8절에서 예비된 아내에 대해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첫째부활자들과 구별된 성도들입니다. 이들에 대해 죽은 성도들이 부활했다거나 살아 있는 성도들이 영화로운 신령체로 변화 받았다는 그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천년왕국이 회복된 에덴이라고 볼 때, 그 에덴에서 살았던 아담과 하와의 모습에서 천년왕국에서 살아갈 백성들의 모습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분명히 죄가 없고 죄의 유혹을 받지 않고 저주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간 육체의 인간이었지 부활체도 아니며 변화체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65장에서 천년왕국의 모습을 에덴동산에 비취어 보여주시는 그 나라의 생활상에서 그 백성들과 그들의 생활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65장에 등장하는 그 나라에서의 백성들은 에덴의 아담을 상징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8. 왜 이런 모순이 나오게 되었나?
이 같은 오류는 그 원인이 휴거시, 휴거성도들이 입을 몸의 형태에 대한 오해와 착오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주님의 재림시에 성도가 휴거되는데 그 휴거시의 성도들의 몸의 형태가 죽은 자들은 모두 부활한 몸으로 주님과 함께 내려오고 살아 있는 성도들은 홀연히 변화 받은 신령체가 되며 그 몸으로 휴거되었다가 그 몸으로 천년왕국으로 내려와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이 신학계의 일반적인 휴거관이며 부활관인 것입니다. 이런 성도들의 부활이 첫째부활이며 천년 이후에 있을 부활은 둘째부활로써 이 부활은 지옥에 들어갈 악인의 부활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천년왕국과 부활에 관한 부조리는 바로 이런 공중휴거의 논리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이런 신학적 논리와 주장은 한결같이 살전4:14-18절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14]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우리는 먼저 16절에 나오는 주의 재림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라고 한 말씀에서 주 재림시에 죽은 성도들이 부활해야 한다는 근거를 찾으며, 이 말씀에 사로잡힌 나머지 천년왕국과 부활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왜 모든 죽은 성도들이 이때에 살아나야 하는 것이냐는 것을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천년왕국의 축복을 누리게 하시려고 부활한다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부활한 몸이나 변화 받은 몸은 육체의 몸이 아니고 신령한 몸이기 때문에 육지에 살기에 적응되기 어려운 몸입니다. 그리고 자녀문제, 음식문제, 천년왕국에서의 직업문제, 생활문제 등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런 몸으로 살아가라고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들을 부활시켜 주님이 함께 데려오시는 것입니까?
이 문제는 고전15장에 계시된 그리스도 안에서의 부활의 순서에서 문제를 찾아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고전15:22-26절을 보기로 합니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24]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위 말씀 중 22절에서 밝혀주고 있는 대로 여기 나오는 부활의 순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부활의 순서란 사실을 전제하고 해석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23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부활의 순서에 대해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이십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있을 부활의 대상자, 두 번째의 대상자로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그에게 붙은 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 이 말씀이 주의 재림 시에 모든 성도들의 부활을 가리킨 것이라면 더 이상 부활의 순서에 대해 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로써 그리스도 안에서의 모든 성도들의 부활은 모두 완료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부활이 이런 순으로 완료된다면 바울이 이곳에서 구태여 그리스도 안에서 있을 부활의 순서라고까지 말하면서 부활을 언급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 아래에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이 계속되기 때문에 부활의 순서로 맨 먼저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고 그 다음에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들의 부활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4절 말씀을 보면 “그 후에는 나중이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 후에란 말은 두 번째 부활인 주 재림 때에 그에게 붙은 자의 부활이 지난 후의 부활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세 번째 부활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활이 저들의 주장처럼 악인의 부활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여기 계시된 부활의 순서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의 부활이라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두 번째 부활이 전체 부활이고 그 후에 나오는 부활이 악인의 부활이라고 주장하는 일은 잘못된 해석이며 가장 어리석은 해석입니다.
(제 의견: 첫째부활로 나온 자를 제외한... 전 인류가 둘째 부활로 나와 주님의 심판을 받게 됨)
그러면 그 후에 있다고 하는 그 후의 시기는 언제를 말하는 것입니까? “나중”이라고 했습니다.
이 나중이란 말의 뜻은 마지막이란 뜻입니다. 24절과 25절을 보면 예수님이 왕노릇을 마치시는 시기,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모든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 했습니다. 이 시기는 천년왕국이 지나고 마지막 심판으로 대적자들을 하늘의 불로 소멸하시고 사단을 최종적으로 둘째사망에 던져 넣는 그 시기인데 바로 백보좌 심판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전4:16절에서 말씀해 주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는” 부활은 주 재림 때에 주님께 붙어 함께 내려오는 성도들을 가리킨 것입니다. 이들에 대해 계17:14절에서 이렇게 말씀해 줍니다.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은 직접 주님과 함께 아마겟돈으로 내려와 짐승의 군대와 싸우는 성도들로 이들에 대해 계19:14절에서 백마를 타고 주님을 따르는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그와 함께 내려오는 성도들은 계20:4절의 순교성도들로 천년왕국에서 왕노릇할 첫째부활자들이지 역사상 죽은 모든 성도들이 부활해서 주님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의미가 아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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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은 엉뚱한 곳에 있는 변화를 살전 4장의 공중휴거와 연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성도들의 변화는 반듯이 있습니다. 반듯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이유와 그 시기에 대해 고전15:50-54절에서
분명히 밝혀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위 말씀을 보면 52절에서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이 말씀을 엉뚱한 곳에 연결시켜놓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의 종말, 천년왕국이 끝날 때에 있을 일을 무려 천년간이나 앞선 천년왕국이전의 주님의 재림과 연결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결코 주 재림시 공중휴거시에 있을 일이 아닌 것입니다.
50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새
예루살렘)를 유업으로 받을 때에 있을 사건인 것입니다. 이때는
그 부활의 순서로 볼 때 “그 후에”있을 마지막 부활의 시기로 천년왕국 후 백보좌 심판대 앞으로 나갈 때인 것입니다.
그러면 왜 부활해야 하고 왜 변화 받아야 하느냐? 이 문제에 대해 50절에서 그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할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 하신 말씀에 그 근거가 있습니다.
혈과 육이란 우리의 육체를 가리킵니다. 이 육체로는 천국에 갈 수가 없기 때문에 신령한 몸으로 변화 받아야 한다는 게 성경적인 해답입니다. 혈과 육으로는 유업으로 받지 못할 나라란 천년왕국이 아닙니다. 천년왕국은 그리스도인의 유업의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그 나라는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나라임으로 변화 받은 몸으로가 아니라 이 몸을 그대로 가지고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부활도 마찬가집니다. 죽은 시체는 썩은 몸이기 때문에 그 몸 그대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때에는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생명의 부활에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곳에 있는 말씀은 이런 사실을 밝혀주고 있는 것이지 천년왕국에 들어갈 일을 말씀해 주고 있지 않습니다. 천년왕국에는 부활한 몸이 아니라 회복한 육체를 가지고 들어가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성경에서 증거해 주는 부활문제와 천년왕국 문제가 진리의 말씀 그대로 순조롭게 풀리게 될 것입니다.
맺는 말: 우리는 너무
긴 세월 동안 공중휴거와 부활문제에 대해 잘못된 신학자들의 연구나 오랜 고정관념에 얽매인 편파적인 관점에서 해석해 놓은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빨리 이 오해의 올무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끝>
저는 민병석목사님께서 공중휴거시 우리 몸이 변화되지 않는다는 해석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설명된 내용은 중요하기 때문에 여과없이 그대로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또한 첫째부활의 두 부류에 대한 해석에 약간의 이견이 있지만...,
고전 15:22-24절 그리스도안에서 부활의 3 순서와 또
종말론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가 있는 마지막 부활과 최후의 심판에 대한 해석에는 동의를 하는바 입니다.
그리고 다른 주제 내용(예: 짐승의 표)에 대하여서도 납득하기 어려운 견해를 갖고 계신듯하나...,
온 교회와 신학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종말론에 있어서 실상은 가장 중요한 부분인
마지막 부활과 최후의 심판에 대하여서 바른 소리를 내어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 블로그의 글 http://blog.daum.net/sylee560225/212 을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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