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워치만니/11-3 워치만니의 창조의 신비

창조의 신비(4) - 워치만니

요나한 2023. 2. 16. 14:39

VI. 창조와 시대

우리가 성경을 잘 이해하려면 그 시대적인 진리에 따라 성경을 연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특수한 시대의 사람들을 특수하게 다루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에 참으로 시대적인 구별이 있음을 우리에게 계시하셨다. 시대적인 전망을 갖지 않고 성경을 읽는다면 설명하기 어려운 여러 모순들에 부딪치게 된다.  구약 시대의 초기에 분명한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 신약 시대의 널리 퍼진 더 밝은 빛 아래에서 불완전한 것으로 드러나 보인다. 이것은 사람들의 다른 하나님 개념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보여주신 계시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시대에 따라 다루시므로, 그 특수한 시대에 그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에 맞추어 그들에게 점진적으로 당신 자신을 계시하신다.

 

우리는 성경에서 발견되는 시대들을 잘 이해해야 한다. 성경이 구약과 신약으로 구분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안다. 분명히 그러한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주의깊은 독자들은 성경이 일곱시대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한 7분법(七分) 은 자의적 (的)인 것이 아니라, 성경을 주의깊게 연구하고 나면 누구에게나 매우 자연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이제 일곱 시대의 각각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일곱 시대 중의 첫째는 ①무죄(innocency) 시대이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 있던 때이다. 둘째는 ②양심(conscience) 시대이다. 이것은 아담의 양심이 깨어나 에덴으로부터 쫓겨난 때로부터 홍수의 종결때 까지에 걸쳐 있다. 셋째는 홍수 후로부터 바벨의 분산 때까지 뻗어나간 ③인간통치(human government)의 시대 이다. 네째는 ④약속 시대이다. 이 시대는 아브라함이 소명에서 시작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의 출애굽에서 끝난다. 다섯째는 ⑤율법시대인데, 시내 산에서 율법을 주심과 함께 시작하여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끝을 맺는다. 여섯째는 주 예수님의 죽음과 성령의 강림과 함께 시작하고 성도들의 환희로 종국에 이를 ⑥은혜시대이다. 일곱째며 최종적인 것은 ⑦왕국시대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그 분의 천년왕국이 지상에 세워짐으로써 열려 그 분의 천년통치의 종결로 막을 내릴 것이다. 이 천년의 기간 후에 첫하늘과 첫땅이 불에 삼켜지게 되고 새하늘과 새땅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때 영원세계가 나타난다.

 

이상의 설명으로부터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두 시대는 율법과 은혜의 시대들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시대는 가장 긴 시간을 차지하였으며 성경에 가장 많이 기록되어있다. 여러 시대들 동안에 인간의 원래의 상태, 그들과의 하나님의 언약, 그리고 그들의 타락과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우리가 발견하게 된다. 이 여러 시대에 사는 사람들을 각각 다르게 하나님께서 취급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이 구별을 모르면, 한 시대의 사람들이 다른 시대의 법을 마땅히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할뿐 아니라 많은 혼란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성경에서 이 일곱 시대들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다루시는 특징적인 방법들을 우선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곱 시대들의 보편적인 (overall) 목적은 사람들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행위에 의존하지 말고 은혜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주신 목적은 「사람들이 은혜로 구원받게 하기 위함」이라고 갈라디아서 3장이 말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지 않았으며 자기들의 연약함을 인정하지도 않았다. 자기들의 행위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믿기를 배척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죄악과 선행에의 무능을 그들에게 보이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결국 자기들 자신을 알게 할 율법을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주신 후에 더하였다. 하나님의 율법 안에 있는 모든 계명과 율레들은 사람들의 내부에 있는 연약과 더러움을 드러내기 위하여 반포되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은혜를 받아들이도록 유도되었던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 따른다면 아무도 은혜를 좋아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자신들을 선하고 유능하게 보기 때문이다. 자기들은 죄가 없으며 또 선행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기들이 얼마나 형편없이 비참한가를 고백하기 전에 그들로 하여금 참으로 자신들을 알게 하셔야 했다. 일단 그들은 자기들이 죄인인 것을 고백하며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일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 선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세상에 입증하는 데에 율법 시대라는 명칭 아래 1500년 이상이나 소요되었다. 15세기 이상의 기간에 걸친 시험에 뒤이어, 하나님께서는 은혜 시대에 결국 당신의 진정한 목적을 계시하셔서, 당신의 은혜를 믿음으로써 그들이 구원받을 수 있음을 사람들에게 보이셨다. 이 은혜는 우리 죄인들을 위한 주 예수님의 대리적 죽음을 통하여 세상에 주어졌다. 그러나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자기들의 죄악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선행으로 구원받으려고 애쓰고 있으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러한 사람들은 율법 시대로 되돌아가서 자신들을 알 수 있도록 그 방법으로 시험을 받아야 한다.

 

일곱 시대의 가르침과 관련하여 여기에서 우리는 이 사실을 강조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 창세기 1장의 창조기사가 성경에서 발견되는 이 일곱 시대들의 가르침을 내다보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더 나아가기 전에 특별한 성구 하나를 설명하겠다. 일곱번째의 시대는 그 기간이 천 년임을 우리가 안다. 그것이 천년왕국으로 불리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20:4은 이 왕국시대가 실제로 천년동안 지속될 것을 명백하게 말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천년왕국이 창조기사에서 안식일로 상징되어 있다고 믿음으로써 잘못을 범하고 있다. 그 생각대로는 이 안식일이 천년동안 계속될 것이므로 베드로후서 3:8에 의하여 앞에 지나간 6일의 기간은 6천 년이어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창조의 7일을 세계역사의 7천 년의 모형으로 만든다. 그들의 가정은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3:8)라고 말하는 베드로후서의 구절에 근거하고 있다. 이것은 과오이다.

 

우리는 베드로후서 3:8의 가르침이 주님께서 하루를 실제로 천 년으로 보신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오히려 하나님 보시기에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성도들에게 가르친다. 그 분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시간이 절대적으로 그 분께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없다. 주님께 하루가 천 년 같기 때문에 창조의 7일이 천 년을 의미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베드로후서 3:8의 뒷 부분의 말 “천 년이 하루 같은"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것은 그리스도 왕국의 천년 통치가 길이에 있어 하루에 불과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우스운 이야기이다. 이러므로 베드로후서 3:8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는 기간에 천 년도 하루에 불과한 것으로 보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당신의 기나긴 인내를 오히려 짧은 기간으로 보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체의 관점에서는, 하루를 천년처럼 길게 보신다.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단 하루의 지체도 천 년으로 여기시는 것이 의미된다. 이 모든 것은 그 분의 언약의 신실성과 그 분의 은혜의 광대함을 말해 준다. 그리고 그것은 베드로후서 3장에서 그 뒤의 구절이 전해주는 것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9절).

 

1. 무죄 시대

이제 우리의 주제로 돌아가자. 창세기 1:1에 기록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은 무죄 시대를 말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은 완전하고 아름답고 흠이 없었다. 무죄 시대에, 이것은 인류에게도 해당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하늘과 땅이 이 아름다운 상태로 오랫동안 남아 있지 않았다. 둘째 절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게 되었으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땅이 변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황폐속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전의 아름다운 완전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한 것은 인간이 범죄하여 타락하였기 때문에 에덴 동산으로부터 추방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상통한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고, 사단의 말을 따랐다. 이제 그들이 받은 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였다. 그들이 복된 에덴 동산에서 살 특권을 상실하였다. 벌거벗고, 저주받고, 추방되었다. 그들이 가죽옷을 받았지만 원래의 영광을 잃어버렸다. 이후로 그들은 생계를 위하여 땀흘려 일해야 했으며 출산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상이 첫 시대인 무죄 시대의 전말이다.

 

2. 양심 시대

첫째 날의 작업이 둘째 시대, 즉 양심의 시대의 모형으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날의 작업이 홍수 전에 존재하고 있던 사태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빛이 비웠을지라도, 그것이 피조물들의 현재의 조건을 조금도 개선시키지 않았다. 빛은 단순히 황폐를 드러낼 뿐이었다. 영적으로 말하면 사람들이 선과 악을 아는 각성된 양심을 갖고 있을지라도 내부의 죄와 밖으로 범하는 죄들을 이길 하나님의 도움을 그들이 갖고 있지 않다. 인간이 유죄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 말고는 양심이 선을 행하게 할 아무런 힘이 없다. 그러므로 양심의 하는 일이란 하나님의 빛이 죄인의 마음 속에 비춰 많은 패배의 사실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그러나 첫째 날의 빛이 한 세계에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었던 것과 같이 양심은 범죄한 사람에게 아무런 위안을 주지 못한다.

 

3. 인간통치 시대

둘째 날의 작업은 하늘 (궁창)을 만드는 것이었다. 다니엘서 4:26, "하늘이 다스리는..."에서 "하늘"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성경에서의 그 용법으로 보건데, 하늘이라는 말은 주로 권위와 높은 지위를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 창세기 기사에서는 하늘 위에 물이 있다. 물은 원래의 성질상 가장 불안정한 것이다. 물의 의미를 하늘의 의미와 결합시키면 권위에도 불구하고 큰 불안정과 연약함이 있음을 우리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 날의 작업은 이리하여 인간통치 시대의 모형이 된다.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통치의 권위를 주셨다. 홍수 전, 자기 동생의 죽음을 두고 가인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창 4:9 하반절). 그러나 홍수 후에 하나님의 계명이 이러하였다.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창 9:6). 이것은 분명히 인간통치를 말하는데, 이제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살인에 대한 형벌을 시행할 권위를 주셨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제 통치적 권위가 생겼을지라도, 그러한 권위를 받은 사람이 물처럼 불안정하고 연약하였다. 노아가 이러한 명령을 받은 사람이었다. 허나 그리 오래가지 않아 그는 술에 취하여 발가벗고도 의식치 못하고 누워있는 수치를 저질렀다. 이것은 그의 연약성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직접 이 날의 작업이 좋았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을지라도, 인간 통치는 하나님 자신이 세우신 것이었기 때문에, 그 분의 의도가 선하였음을 의심할 수 없다. 그 분께서 그 제도 자체를 축복하실 수 없으셨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축복을 얻도록 그것을 사용하신다.

 

4. 언약 시대

셋째 날의 작업이 언약 시대의 모형이다. 그 날, 마른 땅이 물로부터 분리되어 나왔다. 다니엘서 7:2,3,17과 요한계시록 17:15에 의하여, 물이 이방인들을 가리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에 땅은 유대 민족을 가리킨다. 이 구별은 예언서들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예언서가 땅이라는 말을 말할 때에는 그때마다 그러한 말이 유대 땅을 가리킨다. 그래서, 물에서 나오는 땅이 이방인들 가운데서 분리되어 나오는 유대인들을 상징한다. 언약 시대는 아브람의 부르심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가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는 것은 땅이 물에서 나오는 것과 같았다.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에서 시작되었다. 이방인들로부터 분리해 나오라는 그의 소명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세상으로부터 분리해 내시는 일의 출발을 의미했다. 땅을 물로부터 분리해내는 목적은 땅으로 하여금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우리는 셋째 날 작업의 후반부로 안내된다.

 

5. 율법 시대

셋째 날의 작업이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음을 몇 번 이야기하였다. 전반부는 마른 땅을 물로부터 분리해내는 것이었으며, 후반부는 땅이 열매맺도록 하는 것이었다. 셋째 날의 전반부는 언약 시대를 상징한다는 것을 우리가 살폈다. 그런데, 셋째 날의 후반부는 율법 시대의 모형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열매를 맺으라고 율법을 주셨다. 율법은 열매를 산출할 수 있도록 인간 마음의 흙 속으로 깊이 갈아 젖힐 수 있는 쟁기와 같이 기능했다. 이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원래의 의도는 그들이 열매를 산출하는 것이었다. 이방인들의 물 속에서는 열매가 산출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그들 열방들에게 열매를 내어 당신을 영화롭게 하라고 요구할 수 없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주의를 두고 싶으셨던 곳은 땅이었다(물이 아니었다). 율법에 의하여 말하자면 씨를 이스라엘 민족 속에 심으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은 열매를 수거해 오도록 소작인들에게 때때로 종들을 보내었던 과수원의 소유주와 같으셨다(마 21:33~41을 보라). 우리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얼마나 열매를 산출하지 못했는지 잘 안다. 그렇지만, 열매를 산출하기 위하여 그들을 사용하셨다.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기 때문이다(요 4:22 하반절). 주 예수께서 “율법 아래 나셨다” (갈 4:4). 더구나, 온 율법을 지키셔서 최선의 열매를 맺으셨다. 그 분께서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셨다. 그리고 통일체로서의 이스라엘 자손들에 관하여는, 그들이 앞으로 천년왕국에서 열매를 맺을 것이다.

 

6. 은혜 시대

넷째 날의 작업 (창 1:14~18)이 은혜 시대인 여섯째 시대를 상징한다. 빛을 발하는 천체들(해, 달, 별들)이 그리스도와 그 분의 교회를 분명하게 가리킨다. 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나타나셔서 그들이 그 분의 은혜를 알게 하신다. 이 시대에, 교회는 해의 영향하에 있는 달과 같이,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하는 일을 담당한다. 이 시대는 하나의 긴 밤으로 묘사될 수 있다. 그리스도(해)께서 하늘에 오르셨고, 따라서 교회 (달)와 성도들(별들)이 이 세상의 유일한 발광 체들이다. 모든 빛은 위에 있는 하늘로부터 온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 빛의 반사체로써의 우리들은 세상 앞에 비추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들이 다른 세계에 속해 있음을 이 세상에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속하지 않으심 같이 우리들도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우리들은 우리의 삶이 본질적으로 하늘에 속해 있음을 세상으로 하여금 보게 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기쁨과 만족으로부터 우리가 그 분을 위하여 빛을 발한다. 그리고 이것이 이 은혜 시대에 교회가 증거해야 할 방식이 다. 그러나 아, 오늘의 교회 빛이 왜 이리 어두운고! 신랑이 더디 오신다고 해서 그녀의 등잔 불빛이 슬프게도 희미해져 간다. 승리하는 처녀들의 횃불로부터가 아니라면 세상이 빛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겠는가? 복음의 빛이 이 은혜 시대의 특징이다.

 

[막간 시대]

다섯째 날의 작업 (창 1:20~23)은 교회를 뒤따르는 대환난 시대의 모형이다. 여섯째 은혜 시대와 일곱째 왕국 시대 사이에 대환난이라 부르는 한 짧은 기간이 끼어든다. 이것은 지상에 사는 사람들에게 시험의 때가 될 것이다.

다섯째 날에, 하나님께서 다시 물에 대해 일하셨다. 창조의 이 기간에, 바다들이 물결로 굽이치고 있었다. 이것이 시편 93:3, 4에 묘사되어 있다. “여호와여 큰 물이 그 소리를 높였고 큰 물이 그 물결을 높이나이다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많은 물 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보다 위대하시니이다."

이때는 세상이 시험에 들어가는 기간이다. 그것은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 (계 3:10)이기 때문이다. 물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이방인들을 가리킨다. 이 기간에 이방인들이 자신들을 정욕에 맡겨 주님을 대적할 것이 다. 그래서 그들이 주님으로부터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땅에 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눅 21:25,26).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사 26:9). 그래서 물이 생물들의 떼로 충만했다. 이 기간에, 하나님께서 천년왕국의 축복을 누릴 날을 위해 땅에 사는 사람들을 준비시키실 것이다.

지상의 사람들이 시험을 겪는 한편, 공중에서도 하나님께서 일하신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물의 생물들에 대해서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공중의 새들에 대해서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의 영적인 의미는 찾기에 어렵지 않다. 성경이 말하기를 땅의 거민들, 즉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심판아래 시험을 겪고 있는 동안, 성도들은 주님에 의해 공중으로 이끌려 올리운다고 한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 6:26).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두려워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마 10: 29, 31).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 않은가? 참새는 공중의 생물이다. 가끔 지상에 내려올지라도 그들의 집은 공중에 있다. 거기서 살고 거기서 날기 때문이다. 참새들이 땅 위 공중에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6, 17) 한 그 때가 오고 있다.

 

7. 왕국 시대

여섯째 날 작업의 일부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세상을 다스리도록 그들을 임명하시는 것이었다(창 1:26~28). 이것이 일곱째 시대, 즉 왕국 시대의 모형이다. 아담은 오실 그리스도의 표상이라고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하고 있다(5:14). 또한 에베소서에서 (5:31에 언급되는 바와 같이) 하와는 거룩하고 흠없이 그리스도께 바쳐질 교회의 모형이라고 말하고 있다(엡 5:25 ~27,32). 그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인자"의 자격으로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보좌에 앉으실 것이다(계 1:21;3:21).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하여 다스리시는 것이며, 그 사람이 사람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딤전 25장).

여섯째 날의 작업에서, 우리는 또한 땅이 많은 생물을 내는 것을 보았다(창 1:24, 25). 그리고 물의 생물들과 공중의 새들에 대해 이미 언급했다. 이제 하나님의 주의가 물에서 올라온 땅으로 상징되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로 간다. 

천년왕국 동안에, 환난을 겪은 이방인들이 열국들이 될 뿐 아니라, 그리고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뿐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시 한번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모든 약속에 따라 영광을 입을 것이다.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이다. "후 일에는 야곱의 뿌리가 박히며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꽃이 필 것이라 그들이 그 결실로 지면에 채우리로다” (사 27:6). 그때에 하나님께서 땅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다시 심으실(이스르엘, 호1:11) 것이다.

 

8. 영원한 세계

일곱째 날의 안식은 천년왕국이 막을 내림과 함께 도래하는 새하늘과 새땅의 영원 세계의 모형이다. 일곱 시대가 지나갔다. 이제 남은 것은 안식일뿐이다. 그러므로 천년왕국이 안식의 때는 아닐 것이기 때문에, 안식일은 천년왕국의 상징이 될 수 없다. 창세기의 창조기사에서, 하나님께서 안식일 또는 일곱째 날에 당신의 모든 작업으로부터 쉬셨음을 보게된다(창 2:2). 영적으로 말하면, 새하늘과 새땅이 도래해야 하나님께서 영원히 안식하실 수 있다.

창조에 대한 창세기의 기술에서, 일곱째 날 후에는 더 이상 날이 없었다. 모든 작업이 마쳐졌고, 하나님의 심중 계획이 모두 실현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날을 하나님께서 안식일로써 축복하셨다. 하나님의 복구 계획 (God's plan of restoration)에, 상징적으로 말하여 7일 밖에 없다. 그 후에는 더 이상 날이 없는 것이다. 대속의 일이 마쳐졌으며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이 모두 성취되었다. 이 완전한 하나님의 작업에 더 이상 시간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 이제 당신께서 이루신 일을 음미하시며 축복하실 뿐이다. 새하늘과 새땅이 도래하기 전에는 그 분의 대속사역이 조금의 유보도 없는 완전한 효과는 갖지 못하기 때문에 안식하실 수 없다는 것은 정말 옳다. 그 분께서 대속하신 사람들이 한 완전한 사람, 곧 모든 권위와 축복을 가지신 그리스도께로 완전히 연합되는 것을 보실 때에야 비로소 그 분께서 안식하실 것이다. 이것이 영원 세계이다. 영원 세계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만족과 승인 가운데 영원히 안식하는 것이다.

 

창조의 신비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