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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폐케 하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세워지는 곳은 예루살렘 성전인가 아니면 사람의 몸인가?

요나한 2023. 10. 2. 08:14

Will Abomination that Causes Desolation Be Set Up in Temple In Jerusalem OR In Human Body?

황폐케 하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세워지는 곳은 예루살렘 성전인가 아니면사람의 몸인가?

 

https://youtu.be/vm5ou9OqsWU?feature=shared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Endtimes Watchmen의 로라입니다. 
오늘 여러분을 위한 또 다른 흥미로운 비디오를 준비했습니다. 

여기서 다소 어려운 주제를 다룰 것입니다.

오늘은 그 내용에 대해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널리 알려진 일반적인 이야기는 아닐테지만, 그냥 제가 깨달은 바를 내놓을 것입니다. 결국... 스스로 조사하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오늘의 비디오는 다음과 같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12절에 나오는 내용으로서 요즈음 녹음하고 있는 시리즈의 일부입니다.

이 성경구절은 마지막 때에 대하여 가르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참조하는 주요 성경 말씀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재건된 제 3성전을 장악하고 모독할 것이라고 믿는 적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인물에 대해 진지합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학생이든 아니든 ①적그리스도②예루살렘에 재건된 성전 이 두 가지 개념을 매우 강하게 믿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종종 데살로니가서 2장을 마태복음 24장과 다니엘 12장과 연결하여, 그들의 입장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적그리스도라고 부르는 불법한 사람의 나타남, 심지어는 짐승의 표를 굴리는 일까지 정당화할 것입니다.  만일 멸망의 아들이 앉아서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할 성전이 예루살렘에 재건되지 아니하면, 이 사람들에게는 이런 일이 결코 일어날 수 없느니라.

 

만일 바울과 예수와 다니엘이 글과 설교에서 실제로 언급한 것이 그들의 생각하는 것과 같지 않은 것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예루살렘에 재건될 성전을 언급한 것이 아니고 실제로는 다른 것에 대해 예언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 다른 것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면 어떻하시겠습니까?

그가 말한 그 일은 먼 미래에 일어날 일이 아니라, 실제로 지금 우리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적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 재건될 성전에 앉을 것이라는 믿음을 고수한다면, 그들은 예수님이 언제 어떻게 다시 오실지에 대해 완전히 틀릴 수 있을 뿐만아니라 속아서 짐승의 표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짐승의 표가 언제 그리고 또 누구에 의해 펼쳐질지에 대한 그들의 기대와는 맞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현실은 제 3성전이 예루살렘에 건설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특정 성경 구절을 통해 암시된다고 주장하는 간접적인 추론을 통해 이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구약이나 신약 성경에는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예루살렘에서 세 번째 성전이 세워질 것이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한 성경구절이 없습니다.

저는 정말 걱정됩니다.  우리가 방금 본 해석은 실제로 성경 예언에 언급된 성전이 예루살렘의 건물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을 시사하는 많은 성경 구절을 완전히 무시합니다. 즉, 이 사람들이 내린 결론과 미래의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한 그들이 갖고 있는 기대는 기껏해야 부정확할 수 있고 최악의 경우 자신의 영원한 구원에 위협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재건된 예루살렘 성전이론을 가르치는 사람들 중(누군가는 숨기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에는 매우 명백한 사실을 고려하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 명백한 사실은 바로  마지막 때에 있게될 '파르마케이아'의 역할입니다.

요한계시록 18장 23절에서는 '파르마케아'의 역할을 말하고 있는데...

마지막 때에 바벨론이 약과 독극물의 사용과 투여로 온 세상을 미혹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파르마케이아'가 우리의 몸에 진행이 되고 나서, 요한계시록 13장은 또한 짐승의 표가 모든 자들의 몸에 심어질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황폐를 초래하는 가증한 하나님의 성전과 멸망의 아들에 관한 모든 추측은 어떤 식으로든 오늘의 주제인 Pharmakeia의 역할을 포함해야 합니다.

 

따라서 저는 이 구절을 살펴보고 싶습니다. 구약과 신약의 다른 글과 비교하고 또한 이 예언이 기록된 언어인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원본을 참조함으로써 신선한 눈을 통해 그것들을 살펴보고 싶습니다.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바울과 예수님, 다니엘의 예언이 성취되기 위해 그 성전이 예루살렘에 재건될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약간 다른 관점에서 다른 예언들을 읽어야 합니다. 이제 이상 고민하지 말고 성경을 펴봅시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을 읽고 이 성경 구절을 읽으면서 우리 마음 속에 신선함을 가지십시오. 하지만 그 전에 성령님께서 우리 연구에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를 구합시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절부터 5절까지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오늘은 사도 바울이 쓴 글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 하나님의 성전에 관해 기록한 것과 하나님의 성전에 대하여 언급한 다른 성경구절들을 비교하여... 바울이 그의 편지에서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말하였던 '하나님 성전'의 참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알아 보십시다.

멸망의 아들이 그곳에 앉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에 대한 많은 혼란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고 또한 바울의 예언과 약학 사이의 연관성을 더욱 분명하게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항상 스스로 해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울의 예언을 해석하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그가 4절에서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 우리는 그가 다른 곳에서 그 표현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의 다른 모든 글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일단 이렇게 하면 바울이 멸망의 아들에 대해 말할 때, 그 의미가 무엇이었는지가  명백하고 부인할 수 없이 분명해집니다.

멸망의 아들이 앉아 있는 하나님의 성전은 당시에 존재했던 건물이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의 예언이 성취될 수 있도록 재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예루살렘의 물리적 건물을 언급한 것이 아닙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4절에서의 성전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나오스' (G3485 ναός)이고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이 단어를 다섯 번 더 사용했습니다.

그는 매번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신자들의 육체를 지칭하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이제 바울의 글에서 나오는 적용 예의 첫번째는 고린도전서 3장입니다.

먼저 9절을 읽은 다음16절과 17절을 읽겠습니다.

 

고전 3:9절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고전 3:16절-17절.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전 6장 19절과 20절.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고후 6장 14~16절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고린도후서 6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리고 성전이라는 단어가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된 에베소서 2장 19절-22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성전이 세워지게 될 것이라고 말할 때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성전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각각의 신자가 개인적으로 무엇인지, 우리의 몸이 무엇을 뜻하는 바를 잘 알지를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과거 예루살렘에 세워졌던 성전은 하나님께서 긍극적으로 거하시는 몸 성전에 대한 은유적 그림입니다.

 

이제 이 모든 예에서 바울이 동일한 주제를 반복하고 있음을 주목하십시오.

하나님의 성전은 우리의 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령 충만한 신자들의 육신과 우리는 거룩합니다. 우리는 거룩합니다.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아테네에 갔을 때 로마의 이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도행전 17장 24절-31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성전에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성막에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성전에는 목적이 있었는데, 그 목적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를 예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지금 우리 안에 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다른 어떤 성전에도 거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멸망의 아들이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있다고 말할 때, 그가 의미하였던 성전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말한 것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있는 멸망의 아들에 관해 썼다는 암시를 뒷받침하기 위해 데살로니가후서 2장을 사용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타당하지 않습니다.

바울 자신의 글은 다음과 같은 해석과 직접적으로 모순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매 지성소 문을 막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지니 이는 성전에 거하던 하나님의 영광이 그 성전을 떠나서 이제 성소위에 부어지려 함이러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몸에 대하여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날까지 성령이 하나님의 참된 아들들의 몸에 계속 거할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살아 남아 있는 자들은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실 때 그에게로 모여들 것입니다. 대환영이라 외치면서 말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이 내려오실 때 성령께서도 떠나실 것이며, 공중에서 이 위대한 만남이 있을 것입니다.
계속 강하하여 시온 산에 있는 에스겔 성전에 거할 것이며, 누구든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사람들의 손으로 지은 성전에 성령이 거하실 것이라고 주장하게 될 것입니다.

신성 모독의 경계에 있는 장소를 거룩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하나님의 명백한 임재입니다.

따라서 만약 하나님이 이 재건된 성전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없다면 유대인들이 성전을 재건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좋아요. 그들이 성전을 재건한다고 가정합시다.  괜찮습니다. 하지만 건물만 있을 뿐입니다. 건물일 뿐입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영광이 그 안으로 들어오셔야만 거룩해질 것입니다. 그것만이 성전을 거룩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에서 그들의 희생을 하는 것은 내 거실에서 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내 거실은 하나님의 임재가 없다면 결국에는 조금 더 거룩해질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매일 제사를 드리고 있지만 그것은 거룩한 곳에 있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거룩하지 않다면그것이 무엇을 더럽힐 수 없는지 추측해 보십시오.

아직 거룩하지 않은 것을 더럽히지 말라, 성령이 계시지 아니하여 이미 황폐한 곳에 황폐케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울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정렬되지 아니하는 것이라'  안타깝지만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이해해야 할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임재가 없다면 어떤 곳도 거룩하지 않다는 이 개념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거룩한 곳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독자가 되라는 예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4장 15절과 다니엘이 다니엘 11장31절과 다니엘 12장에서 말한 성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이 비디오의 시작 부분에서 방금 들었던 것처럼 지성소와 하나님의 성소는 더 이상지어진 성전에 있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인간의 손으로 그리고 그들과 그들은 내주하는 성령을 가진 사람들이 이땅에 있는 한 물리적 건물에 위치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을 따르는 사람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 하나님의 아들들 좋습니다. 그러므로 황폐케 하는 가증한 것이 예수님의 재림 전인 대환란 동안 성소에 세워진다면 그 가증한 것이 세워질 수 있는 성전은 단 하나뿐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죄의 사람인 멸망의 아들이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하나님이 자기를 하나님이라 나타내실 것이라고 말할 때 바울은 오직 한 사람만을 언급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가득 찬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의 몸을 성전으로 삼아 바울이 죄의 사람이나 아들 또는 멸망에 대해 말할 때 단일 세계 정부의 인간 적그리스도 지도자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상당히 분명해집니다. 사람이 다른 신자의 성전에 다른신자의 몸으로 앉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훨씬 더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이 용어를 어떤 종류의 체계나 집단, 또는 어떤종류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훨씬 더 은유적인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그가 상징하는 사고방식이나 개념에 대해 앞으로의 영상에서 더 깊이 있게 다루겠습니다.
불법의 사람이 폭로한 불법의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영상을 찍겠습니다.  또한 공개된 전통의 아들에 대한 별도의 비디오를 만들 예정이며이 모든 것이 매우 흥미로울 것이므로 유의하십시오. 그러니 황폐화를 초래하는 가증한 것이 설정되어 있는지 이제 정말로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신자들의 몸이 성령으로 하여금 전제(부지, 장소)를 비우게 한다는 점은 바빌론이 전 세계를 속이는 Pharmaca와의 매우 명확한 연결입니다. 왜냐하면 Pharmaca는 목적을 위해 약물이나 독극물을 사용하고 투여하기 때문입니다. 마술을 반역하고 우상숭배를 조장하며 사람들이 거짓 신을 숭배하도록 장려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에서 읽은 것처럼 그것이 황폐함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14절 -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의 성전에만 거하시고 용납하십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는 믿는 사람과 이교도와 어떤 부분을 공유하거나 나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우상과 어떤 일치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파마케이아'는 하나님의 성전(우리의 몸) 안에 짐승의 유전자로부터 만들어진 독 약물을 주입함으로서 짐승의 더러운 것을 몸에 들여 놓는 것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결코 용납을 하실 수가 없는 일인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기에서 하나님과 우리 몸에 넣은 우상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믿는 바는 Pharmakeia(백신접종)가 Abomination(멸망할 가증스러움)을 얼마나 불러 일으키는지 여러분이 아시기를 바랍니다. (백신접종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거룩한 곳에 더러운 우상이 세워지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결코 참으실 수가 없는 가증한 일이라는 것)   

멸망의 가증한 것이 하나님의 성전에 세워질 것인데, 그 장소는 예루살렘의 제 3 성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우리의 몸인 것이며, 온갖 가증한 짐승의 것으로 만들어진 '파르마케아'가 우리의 몸에 들어옴으로서 하나님의 성전은 황폐케 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사랑하는사람들과 나눌 수 있도록 기도할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에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온갖 흥미로운 것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이 시대에 대하여 눈을 크게 뜨십시다.

여기까지가 오늘의 영상입니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바라며...

다음 영상에서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로라

 

 

위 박스를 클릭하면 " '파르마케이아'는 우상숭배이고,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메세지로 연결됩니다.

 

 

 

Covid-19 백신 접종은 사도바울이 말한 배도(하나님께 큰 배신행위)이다!

 

 

<살후 2: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살후 2:2>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살후 2:3>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살후 2:4>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살후 2:5>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