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간증은 어느 기독카페에서 자신을 소개해달라고 하셔서...
댓글로 두서없이 즉흥적으로 써 내려가게 되었던 댓글들을 모은 것입니다.
제 이름은 이성용입니다.
과거 선교사로서 10여 년간을 살았을 때, 있었던 일을 간증하고자 합니다..
저는 인도 델리에 둥지를 틀고 1994년 선교를 시작하였습니다.
전 인도에 가서 몸에 이상이 생겨 바깥출입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그로인해 하나님께 원망도 많이 했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방안에 갖혀 있는 제게 하늘 문이 열리면서 깨달음이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 왔습니다.
일주일 만에 잠도 안자고 요한계시록에 대한 소책자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영어로 번역하여 인도 각 교회들에게 우편으로 발송하고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이 주신 것 나누었으니 이젠 병을 고치러 한국에 돌아갑니다.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요 하고는 인도를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안 고쳐주시니 한국에 가서 일단 병부터 고치고 보자는 생각이 들어 그리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 또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인도에 간지 얼마 안되어 길에서 우연히 한목사님을 만나게 된 이후에 발생하였습니다.
델리 남쪽 메롤리라는 곳에 사시는 펜티코스탈(순복음) 계통의 목사님(이름: 바르기스)이셨는데, 그분 집에 초대되어 점심을 먹고 나서 기도모임을 가졌었는데 ...
그 목사님 사모님이 그러시는 것이에요.
"당신에게 하늘의 지혜가 주어져 하나님의 비밀한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요. 제 옆에 앉은 원선교사에겐 "신유의 은사가 주어질 것"이니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웃으면서 그 자리에서 바로 대답을 하였습니다. “옆에 앉은 친구에게처럼 신유의 은사면 몰라도 내가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일은 일어나질 않을 것 입니다”라고 웃으면서 받아넘겼습니다. 그러나 한국을 떠나기 전에도 몇차례 유사한 예언의 말씀이 있었으니... 하나 더 추가로 마음에 담아 두었습니다.
혹시 모르는 일이니 사모님의 대언을 기록으로 남겨달라고 부탁하게 되었고 목사님께서는 사모님께서 받았던 내용을 자세히 적어 제게 건네 주셨습니다. 사모님께서는 영어를 못하시고 말레아람 언어(인도 케렐라주 언어)를 사용하셔서 전 하나도 못 알아 들었거든요. 남편 목사님께 들은 바를 다 시 영어로 기록을 해달라고 부탁을 하였었습니다.
종이에 적힌 내용을 보니,
1. 하나님께서 종말에 관한 특별한 깨달음을 주실 것이며,
2. 그러나 내겐 시험(Temptation)의 기간이 찾아오리라는 것과… 그 시험의 기간에 예수의 이름을 굳게 잡으라는 충고와
3. 내게 깨달음을 주시는 이유는 나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루시고자 하는 것이 있다 하시며, 딤후 2:1-2 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깨달은 바를 다시 전파하는 것이 내 의무이라고 하셨습니다.)
딤후 2:1-2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수 있으리라
이 의무감 때문에 인도를 떠나기전 요한계시록의 말씀가운데... 깨달은 바를 소책자로 만들어 인도의 각 교회들에게 우편으로 전달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은 증세가 점점 더 심해져… 하혈로 인해 바깥출입을 못하는 지경까지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수시로 찾아오는 하혈시 느껴지는 고통은 이루말 할 수가 없었습니다.
1-2분을 참게 되면 대장내 염증부위의 실핏줄이 터져 더 많은 양의 피의 유출로 인해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집에서도 다른 사람이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으면 부엌으로 들어가 해결을 해야 했으며, 버스를 타고가다 배변감이 찾아오면 정거장이 아닐찌라도 차를 세워 뛰쳐나가 큰길에서도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배출을 해야만 했으며, 한번은 남의 집 대문 앞에서 볼일을 보려다가 근처에서 나타난 주인에게 걸려서 제지를 당헀지만 말도 안통하는데다 너무 급해 실례를 무릅쓰고 해결을 한적도 했습니다. 길에 누가 있을지라도 볼 일을 보아야만 했을 정도로 심각한 병이었습니다.
6개월 이후 인도비자를 갱신하러 네팔을 다녀와야 했습니다. 돈을 아껴야 했기 때문에 인도 델리에서 카투만두까지 비행기로 못 가고 버스를 이용하여 가게되었습니다. 인도에서 네팔까지 버스를 타고 1박 2일을 가야하는데, 그 때 육로로 버스여행을 하며 겪은 고통은 차마 글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에베레스트산을 등정할때 겪는 어려움보다 더 심한 고통을 치뤘던것 같았습니다. 달리는 버스를 수시로 세우고 버스 뒤편으로 가서는 하혈을 하고 차를 세워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또 올라타고, 또 조금 지나면 다시 찾아오고 그리고 …또 …, 마침내 네팔에 도착해서는 몸져 누웠습니다.
몸은 더 야위어 가고… 일년후 인도에서 들어왔을 때 어떤 권사님은 절 보시더니, 일년 만에 너무도 야윈 모습에 아무런 말씀없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네팔에서 돌아와 인도로 돌아와 보니 섭씨 47-48까지 치솟던 기온이 내려가 실내에 있는 숟가락을 만져보아도 예전처럼 뜨겁지 않았습니다. 이젠 살 것 같았습니다.
바깥 출입을 전혀 못하고, 이젠 방안에만 쳐 박혀야 있어야만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 문이 열리더니 폭포수 같이 깨달음들이 쏟아지는거에요.
그당시 깨달은 바를 눈물을 흘리면서 막 써내려가면서 종종 뒤를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뒤에 누가 서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누가 내 옆에 서서 머리에 무엇을 집어넣는 것 같았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대한 이해를 일주일 만에 얻게 되었고, 깨달아진 바를 정리한 후 번역할 사람을 찾아서 서둘러 소책자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때 깨달아진 바를 정리한 노트를 지금도 갖고 있습니다.
어제 그 노트를 다시보니 요한계시록의 뒷 부분에 마치 부록처럼 부활에 관한 내용도 있더군요.
고통스러운 밤을 지새우며 눈물로 쓴 메모들 지금 다시 봐도 마음이 찡하더군요.
그 사진을 올려봅니다.
그때 요한계시록에 대하여 깨달은 내용을 4 년후(1999년)부터 다시 선교사로 파송되어 가는 곳곳마다 전하였는데…, 지금 전하고저 하는 내용은 그 때 그것 그대로입니다. 며칠 후에 소개해 드리려고 하는 부활은 과거 인도에서는 clear하게 그림이 안 그려졌지만 차기 선교지였던 피지에서 확실한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부활의 내용중 현재 토론의 핫 이슈로 떠오른 고린도전서 15장…., 바울이 설명한 부활에 대하여서만 우선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인도에서 깨달은 요한 계시록의 내용을 다시 다룰 것이며, 그 이후엔 피지에서 깨달은 부활에 대한 추가부분을, 그 이후엔 마지막으로 솔로몬에서 깨달은 것 언약에 대하여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사역지를 옮겨 가면서 깨달음이 점진적으로 1층, 2층, 3층의 집처럼 이해의 집을 짓게 되었습니다. 2층에 대한 토론의 요청이 들어와도 전 그것에 응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1층을 먼저 세워야만 2층을 올릴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제게 열어주신 순서대로 3나라에 머무는 기간에 깨닫게 된 것을 전하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제게 깨달음이 찾아왔던 순서대로 다시 순서대로 내보내겠습니다.
방금전 인도에서 정리하였던 노트를 다시 들쳐보니까, 인도에서 사도바울과 구약성도들이 믿고 있었던 부활까지 다룬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미완성의 상태로 내 나름대로의 연구에 의한 결과물이었지 검증된 확실한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1년 만에 인도사역지를 떠나게 되었는데, 내 마음에는 의무를 완수하지 못한채 떠났던 것이 큰 부담이 되었고, 마음 한구석엔 죄책감으로 남겨졌습니다.
그리고는 한국에 돌아와 병을 고쳐 보려고 큰 대학병원들을 찾아다니며 전전긍긍했지만 병세는 호전되지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병명은 궤양성대장염으로 치료가 잘 안되는 고질적인 병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어엿 2년이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
하나님은 제게 깨달음은 주셨건만…, 선교사로 보내 놓고는 치유의 역사가 내 손끝에서 나타나기는 커녕.., 내 몸의 병도 안고쳐 주셨던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이해할 수가 없는 하나님께 대하여 반감을 가지고 살게 되었습니다.
담배도 다시피우기 시작하고 하나님과 애써 멀어지기 위하여 일부러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겨울날 아침에 버스를 타고 한강다리를 지나고 있었는데 창넘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물결이 너무도 아름답게 보여졌습니다. 잔잔하신 하나님의 은혜처럼 느껴졌습니다.
아! 나는 하나님을 아무리 원망하며 살아도 신실하신 하나님은 나의 불평을 다 받아주시고 지금도 나에게 저 잔잔한 강물처럼 침묵하고 계시며, 저 강물 위를 비추는 따사로운 햇빛처럼 지금도 내게 여전히 은혜의 빛을 비추어주고 계신 하나님을 느껴졌습니다..
아 그래 그 분은 여전히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나는 불평하며 하나님을 외면해도 그분을 여전히 나를 바라보시며 은혜의 빛을 공급해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인도 사역지로부터 요나처럼 도망쳤다가 데마처럼 살았지만...,
하나님께 다시 붙잡히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얼마 못가 육체의 병으로 죽게된다면, 가족을 위하여 큰 돈을 벌어 남겨주어야겠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용산 미 8군에서 만난 인도계 미국 사장과 인도에서의 사업체를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추진하려던 사업은 하는 것마다 계획대로 안되어 진퇴양난의 입장에 놓였는데, 기도하시는 분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사업을 가로막고 계시며 다시 선교사로 사용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담배를 피는 입술로는 하나님께 기도를 못 올릴 것 같아 우선 담배를 우선 끊었습니다.
하나님과 21일 작정 새벽기도를 드리며 담판 기도에 들어갔습니다.
날 사용하시기를 진짜 원하신다면 증거를 보여주십시요. 저의 병을 고쳐주시신다면 명령에 순종하여 다시 선교사의 길을 가겠습니다.
그리고는 21일 작정기도 마지막 날, 복용하던 약을 버리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혈이 멈추는 것이에요. 그래도 혹시나 하여 3일을 더 기다려 보자. 혹시라도 피가 다시 나올 수도 있으니까...
3일을 기다린 후 하나님께서 병을 고쳐주심을 확인하고나서 저의 병을 안타깝게 여기시던 어머니에게 기쁨의 소식을 가장 먼저 드렸습니다.
병으로 인해 사역지에서 도망나왔지만, 또 다시 병고침으로 인해 하나님께 다시 가게 되었습니다.
수년간 고생해 왔던 불치의 병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되었으며, 큰 기쁨으로 필리핀으로 가서 동료 선교사와 합류하여 3달간 워밍업을 하고는 아름다운 섬 피지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선교사로서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곳에서 3년을 머물다가 솔로몬에서 1년, 아프리카 가나에서, 그리고 남미 페루에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아공에서 1년 사역을 마치고 8년전 돌아 왔습니다.
사도바울이 그의 편지에서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의 말씀이 또 다시 나의 마음을 크게 찔러왔습니다. 그 죄책감에 이 죄인 며칠 전 침대위에서 뒹굴며 회개하며 울었습니다. 기회가 주어지면 항상 하나님의 부르심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제 자신이 양심의 가책을 받았습니다. 제겐 그런 성령께서 시키시는 통제할 수 없는 회개기도가 전에도 한번 있었는는데 이번에도 성령께서 강제로 시키시는 것임을 느꼈습니다.
이젠 19년 전 인도에 있었을때 내게 주셨던 어느 사모님의 말씀 "Temptation의 기간이 찾아올 것이고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하셨는데, 8년만에 지금이 다시 일어서야 할 때인가 보다고 생각되어졌습니다.
40년 전쯤부터 종말론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어 책들을 보기 시작했는데...
일반 서점에서 손쉽게 구할수 있는 책들은 오직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으로서 환난전 휴거를 지지하는 책들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다른 견해들을 접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좀 석연치는 않았지만 그것을 믿어야만 하는 것이 믿음인 줄로 알았습니다.
인도에서 선교사의 삶을 시작하면서, 이미 내안에 정립되어 있는 종말 복음에 관한 선지식들을 재 검토해보아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미래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일인지라 신중해질 필요를 느껴 손에 쥐고 있던 견해를 과감히 버리고 여러가지 견해들을 중립적인 입장에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바깥출입도 못하여서 할수 있는 일은 오직 성경공부하는 것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당시 인도는 기독교 국가가 아니라 서점에는 기독교 관련책도 없었기에 그냥 스스로 성경공부를 하게된거죠.
그당시 사용하던 성경책은 무천년설을 근거로한 톰슨 주석성경이었습니다. 그냥 참고하는 정도로만 여겼었는데, 그들의 견해에서도 진주같은 진리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피지는 원래 기독교 국가인지라 기독교 관련 책들이 한국보다도 더 많았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어느정도 이해가 되었지만 부활에 대한 이해는 인도에서가 아니라 피지에 머물고 있을때 찾아왔습니다. 인도에서도 부활의 실체가 흐릿하게 보여졌지만 자신있게 전할 수는 없는 미완성의 깨달음이었습니다. 여러 견해들의 책들도 읽고 혼자 공부하는 도중 부활과 심판에 대하여 갑자기 깨달음이 왔습니다.
사도바울이 갈 1:12에서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라는 구절이 저에게도 적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깨달은 그것을 바로 전할 수는 없었습니다.
깨닫게 된 부활과 심판을 전하지는 않고... 방문하는 교회에서도 질문이 들어오면 내가 깨달은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알려진 지식, 즉 객관적인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거의 다들 세대주의적 입장에서 질문들을 하시거든요. 그럼 그 견해의 문제점을 약간 들추는 정도에서 끝내고...
그 이후에도 깨닫게 된 부활의 비밀은 전하지는 못하고 검증할 만한 자료를 찾는데 2년이 걸렸습니다.
그래 단 한사람만이라도... 내가 얻은 깨달음과 동일한 것을 언급하는 사람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만약 발견이 된다면 확신을 갖을 수가 있을것 같았습니다. 말씀전파와 기도 그리고 공부가 지속되었는데, 2년 만에 드디어 내 견해와 이해가 똑같은 설명을 발견하였습니다.
"제가 얻은 깨달음과 일치하는 설명을 보여주십시요" 라는 간절한 기도와 또 소망과 함께...,
시간이 날때마다 책방에서 책을 뒤지기 시작한지 1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후 마침내 '워치만 니'의 '마태복음연구'라는 책에서...,
제 눈이 열려 알게된 부활의 이해와 동일한 설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은... 제 생애에서 가장 기쁜 날이었습니다.
뛸듯이 기뻤고 눈에는 감사의 눈물을 주루룩 흘렸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 분을 중국 땅에 나게 하고, 그에게 계시를 주사 그런 귀한 가르침을 기록으로 남겨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 또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어느덧 피지를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멀리 떨어진 외딴 섬의 한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은 신학교 내내 장학생이었고 또 수석으로 졸업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처음으로 깨닫게 된 부활과 심판을 그 목사님과 전도사 와이프에게 3일간 밤낮으로 처음 전했습니다.
3일후 그목사님은 약간의 사례비와 편지를 내게 주었습니다.
사례비는 사양하고 편지만 받았습니다.
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편지를 펴보니, "3년간 신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당신에게 3일간 배운 것이 더 많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다지 하나님의 일을 하기를 좋아하지 않던 저를 불러서 하나님의 종으로 사용하심에 왜 그러실까하며 의문이 생겼지만, 나를 통하여 전해지는 말씀의 이해가 좋아 나를 찾아오는 목사님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루는 목사님 내외분을 집으로 초청했는데 갑자기 예고도 없이 15명 정도의 목사님들이 방한칸짜리 집에 들이 닥쳐서 마당에 자리를 잡고 손님을 대접한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을 해보면 후회되는 일도 있습니다. 내가 경제적으로 도와주었어야 하는데 나도 넉넉치가 못하여 도움을 못 드렸던 점... 깊이 회개하며 지금도 죄인이 된것 같아 앙금으로 남아 있습니다.
15년이 되어 이름은 잊혀졌건만 그들의 선한 모습들이 지금도 눈을 감으면 떠오릅니다.
그리고는 그 다음 선교지는 솔로몬 제도이었습니다.
인도에서나 피지 또 솔로몬에서도 마찬가지로 아무 connection 없이 그냥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공항에서 반겨주는 사람들도 없고 정말 대책이 없는 그런 떠남이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100% 믿고 기도도 더욱 간절해 지거든요.
그러나 솔로몬에 들어가보니 선교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내란으로 인해 밤이면 총소리가 빵빵하면서 났습니다.
아니 하나님 왜 나를 이런 곳에 보내셨습니까? 하면서 원망을 다시 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할 메세지를 입에 달아주시더니, 이젠 아예 제 날개를 꺽으시는군요 하면서 말입니다.
내란 때문에 활동의 제한은 있었으나 수도인 호니아라 시내에는 활동하는 데에는 큰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한 교회를 방문하여 집회를 가졌는데, 그 목사님은 솔로몬제도 내무부장관을 지내셨으며 Pentecostal 교회연합 회장님이셨습니다. 예배후 이 목사님께서 갑자기 이러시는거예요. 당신을 2년전부터 기다려왔다. 그러시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를 드리시는거예요. 무슨 영문인지 몰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근거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목사님께서 대답하시기를 2년 전부터 하나님께서 사모님을 통하여 말씀을 주셨는데, “한국 선교사를 통해 크고 비밀한 것을 알려주실 것이다”라고 하셔서 그동안 기다려왔고 오늘사모님을 통하여 다시 말씀을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2년동안 기다려왔던 한국선교사가 바로 당신이니 전할 내용이 무엇이며 가르쳐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럼 일주일에 2번 화,목요일 아침 10시에 교회에서 만나 성경공부를 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러더니 이게 왠 일입니까. 구약성경에서 열리더니 '언약'에 관하여... 이 세상 어느 책에서도 또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엄청난 비밀들이 쏟아져 들어 왔습니다.
이곳에 왜 날 보내셨나고 따지며 원망하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우리의 성경공부는 날이 갈수록 깊이에 깊이를 더하며 하나님 경륜의 깊은 것을 깨닫고 감격하여 서로 놀란 눈으로 쳐다보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여름날 뭐 그곳은 항상 여름이지만 7월경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에요. 일주일간 휴가인데, 고향 섬에 휴가차 식구들과 가야하니까 부득불 이번 금요일에는은 성경공부를 못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가보다 했더니 하룻만에 그 목사님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내일 열시에 교회로 와 달라고...
만나서는 아니 휴가를 간다더니 왜 안갔냐고 물었습니다. 대답하시는 말씀이 휴가를 다녀오셨다는 것입니다.
알고보니 와이프하고 아이들은 떼어놓고 혼자서 돌아오신 것입니다.
휴가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급하게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급하고 중요한 일이 무엇이냐고 했더니, 당신하고 성경공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 제도에서 하나님의 크신 경륜을 깨달았으며 그것도 딱 한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전하고 6개월만에 다시 아프리카로 떠났습니다. 이제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다음날 새벽 2시이면 솔로몬을 떠나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선물을 준비하시는것 같아 제가 그 분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선물을 받기보다는 제가 마지막 기념으로 선물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이 땅에서 언제 다시볼 수 있을런지 알 수는 없으나, 마지막으로 귀한 선물을 드릴 것이 있으니 우리집에 9시까지 오십시요" 하고 초청을 하였습니다. 오실 때는 당신의 성경 책을 가지고 오십시요. 그리고는 9시에 모여서 밤12시까지 3명의 목사님과 마지막 성경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눈물을 흘리며 성경공부를 마쳤습니다. 마친 직후 찍은사진입니다.
한번 생각을 해보십시요. 외국선교사가 한국에서 6개월을 사역하다 떠나면서, 떠나는 마지막날 밤, 새벽까지 성경공부를 하자고 초청하는 선교사가 어디에 있겠으며, 그러한 야밤의 성경공부 초청에 응할 목사님들이 이 땅에 어디 있겠습니까? 이기는 자들은 십자가를 지기 때문에 십자가상의 예수님 처럼 목이 타, 물 한방울 한방울이 생명처럼 귀하게 느껴지기에 이러한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비정상적인 행동들 즉 휴가를 반납하고 비행기로 날라오며, 야밤의 성경공부와도 같은 돌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진상 맨 왼쪽에 앉으신 분이 내무부 장관을 거쳐 솔로몬교회 총연합회 회장님이시고, 맨 오른쪽에 앉으신 분은 솔로몬에서 최고의 존경을 받는 부총회장이십니다.
전 10년 선교사 시절 Michael Lee 라는 이름을 사용했었습니다. 솔로몬 제도에 선교사로 가실 분이 계시다면 저 두 분께 가셔서 제 이름을 대면 크게 도움을 주실 것입니다.
목사님께서는 미리 써놓은 편지를 제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큰 비밀스런 경륜을 구약의 말씀 속에 기록하여 주시고, (2년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비밀을 알려주시겠다 말씀하시고는) 신실하신 하나님은 처음에는 희미하게 그 이후로 점진적으로 약속을 구체적인 내용으로 발전시키셨으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약의 이루심을 시작하시어 교회시대를 통하여 요셉의 가지가 자라고 천년왕국을 통하여 유다의 막대기와 요셉(에브라임의) 막대기로 발전하여, 결국 둘이 연합하여, '이스르엘의 날'에는 제2의 출애굽이 있어 진정한 약속의 땅인 새하늘과 새땅으로 이기는자와 성도와 믿는자들을 들이시어 3부류의 크리스챤을 통하여 그분의 약속이 최종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골자로 한 영원한 언약을 이해하시게 됨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는 종말론에 대하여 왈가불가 하지만 신학자들의 가장 큰 논쟁거리와 관심을 갖는 주제는 언약인 것을 한국에 돌아와서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눈을 열여주신 것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도에서는 계시록의 말씀을, 피지에서는 부활과 심판을 그리고 솔로몬에서는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 경륜을 보았습니다.
몇 년간, 몇 나라를 거치는 동안 마치 1층, 2층 ,3층 집처럼 3층 구조를 갖는 이해의 집이 완성이 되었습니다.
제 보따리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 하실것 같아 보따리에 들어있는 내용과 이를 얻게된 경위를 간략히 설명드렸습니다.
제가 지지하고 있는 견해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위에 역사주의적 전천년설과 무천년설의 견해도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딱히 어느 견해를 지지한다고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활과 심판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무천년설의 주장도 맞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환난 전에 다 휴거가 된다고 하는 세대주의적 믿음 즉 환난전 휴거라는 믿음 보다는 성도들이(마치 밀의 알곡처럼) 익는 순서에 따라 휴거된다는 다중휴거 혹은 부분휴거설을 지지 수용하고 있습니다.
선교지에서 있었던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증거할 것은 많으나 단지 제 보따리에 담긴 내용중 종말론에 대한 저의 견해와 그것이 어떻게 제게로 왔는지의 경위에 대해서만 설명을 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 9.18. (수)
추석날, 춘천에서
요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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