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구원,영적성장(New)

영적성장의 과정

요나한 2024. 5. 4. 06:35

우리는 하나님의 뜻(고전 1:1)을 따라 하늘의 부르심(히 3:1)을 입은 자들이다.

먼저는 ①그리스도의 구원(딤후 1:9)의 은혜로 부르셨으며, ②거룩함의 열매를 이룰 성도로 부르셨으며(고전 1:2, 살전 4:7), ③빛안의 성도(골 1:12)가 얻을 영광의 풍성함(엡 1:18)으로 부르셨다.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딤후 2:10>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엡 1:18>
 

 

하나님의 장막  최종에 있는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듯이...

성도가 얻을 최고의 소망은 이기는 자들이 얻는 영원한 영광이다.

 

우리의 영성이 그 자리에 가기까지에는 몇가지 구간을 거쳐야 한다.

①물의 기간, ②성령의 기간, ③빛의 기간이다.

 

율법이 중요시 여겨지던 ①율법시대, 성령의 활동이 중요한 ②교회시대, 진리의 빛이 찬란하게 비추어질 ③천년왕국 시대를 지나서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될 새하늘과 새땅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물의 구간을 졸업(Born out of Water)할 때, '구원의 약속'을 얻을 레위의 반열(거듭난 자)로 들어서는 것이며,

성령의 구간을 졸업(Born out of Spirit)할 때, '백성의 언약'을 얻는 제사장의 반열(성도)이 되는 것이며,

빛의 구간을 통과할 때, '아들의 언약'을 얻는 왕의 반열(이기는 자)이 되는 것이다.

 

각각의 구간들을 살펴보자

 

 

1. 물의 기간

 

아담과 이브에게는 생명나무와 지식의 나무가 주어졌었다. 이 에덴동산에서 있었던 일이 현재 우리에게도 일어난다.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를 먹으면 영생을 얻을 수 있었던 것처럼 지금도 참 생명나무이신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영생을 준다. 아담처럼 우리에게도 예수 아니면 마귀를 택하여야 하는 선택이 주어졌다. 베드로는 이 물 침례에 대하여 벧전 3:21에서 "물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오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설명함으로서 침례와 할례를 차별화하였다. 따라서 침례의 참 의미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합하여 장사되는 것이며 또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켜져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는 것이다(2:12, 4:3-5). 이는 마치 어머니의 태 안에서 새 생명이 시작되는 것과 유사하다. 이전에 살던 세상에 대하여서는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되는 것이다. (6:5,11,18 & 고후 5:17,21).   

 

  우리의 옛 사람은 유혹의 욕심에 따라 세상 구습을 쫓던 자이었었다( 4:22). 그러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죽음으로 세상에 대하여 죽었으며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부활하심에 따라 새 생명으로 피조되었다. 이는 마치 우리의 주 가지가 십자가로 잘려지고 생명나무의 한 가지가 우리에게 접 붙여져 우리 안에서 예수의 생명이 자라게 됨과 같다. 이후 비록 우리에게 믿음은 있으나 잎만 무성한 시기를 거치게 된다. 이는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서 죽은 믿음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만을 얻을 것이 아니라 행함이 있음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어야 하는 것이다( 2:22-26).

 

■ 예수님은 길가에 서 있는 무화과 나무를 보셨다. 혹시 열매가 열렸나하고 나무를 살펴보셨지만, 잎사귀만 무성한 나무였다. 그 때 주님은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 나무에게 저주를 내리시자 무화과 나무는 말라 사위였다. 우리의 영적생명이 물의 기간에서 잎만 맺는 수준에 머문다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패망한 출애굽 1세대와 같이 될 것이다. 

 

 

2. 성령의 기간

 

■ 드디어 나뭇잎만 무성하던 나무에서 꽃을 보게 된다. 또한 꽃을 통하여서 장차 수확할 열매를 마음에 미리 가져 볼 수도 있다. 나무 곁으로 오는 자들은 꽃의 향기를 맡을 수가 있다. 거듭난 자도 주변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된다. 꽃 향기를 내 품는 것이 꽃이 핀 목적의 전부는 아니다. 꽃이 피는 참 이유는 열매를 맺기 위함이다.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서는 아픈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여전히 땅에 속한 열매를 생산하였던 옛 가지들은 쳐 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뿌리로부터의 공급되어지는 양분들을 나쁜 가지들이 다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옛 가지를 잘라내야 하는 작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이 과정이 그리스도의 할례이다. 이 할례를 거쳐야만 참 나무이며 참 크리스챤이다. 이제 뿌리로부터 올라오는 모든 양분과 호흡으로 얻는 산소와 하늘의 빛은 복합되어 좋은 열매로 결과되어진다. 이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구원함은 받은 옛 사람이 어느덧 성도로써 의와 거룩함의 열매로 맺어진 새 사람으로 빚어지는 과정이다.

 

■ 농부가 밭에 나무를 심는 목적은 과실을 얻기 위함이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모두 모아서 불에 살라 버리시겠다고 하셨다. 가치 없는 나무는 화목으로 사용될 수 밖에 없다. 농사의 시기가 지나고 이제 결실의 시기가 이르렀음으로 잘 익은 열매들은 수확되어 집안으로 들여지게 되고 주인의 상에 올려지게 된다. 한 때 농부는 농사를 지으시다가 피를 흘리며 손과 발을 상하셨지만 이제는 그 시름을 다 내려 놓으시고 주인의 상에 올려진 먹음직스러운 과실들을 농부는 흐믓한 시선으로 바라보신다.

 

 

3. 빛의 기간

■ 그리고 나서는 농부이신 하나님은 다른 소수의 한 무리에게 시선을 던지신다. 그들은 성령의 열매를 맺었음은 물론이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 자들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생명나무로 열매 맺은 자들이다. 11:30에서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고 하였다. 이들의 몸은 생명나무의 가지와 역할이 같아서 다른 나무들에게 생명을 주는 접붙임의 가지로서 사용된 것이다. 주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실 때 떡을 떼시면서 이는 나의 몸이라 하셨다. 떡이 떼어지기 위하여 떡은 여러 조각으로 쪼개어졌다. 그 분의 몸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찢어지고 갈라져야 하셨으니 이러한 일은 십자가상에서 이루어졌다.

 

  우리는 주님께서 주님의 보좌 좌·우편에 앉기를 요청하던 원하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 것이 생생하다.  "과연 네가 내가 마실 잔과 침례를 받을 수가 있겠느냐" 하고 질문을 하셨던 것을 기억하자. 우리도 주변의 영혼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하여서는 생명을 내려 놓아야 한다. 주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자기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아니한 자들이다. "저들은 죽기까지 자기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12:11). 잘 익은 과실들은 주인의 상에 올려지고 또한 생명나무의 사명을 담당한 자들은 주님의 보좌에 앉혀 주시며( 3:21) 달마다 12 가지의 과실을 맺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얻게 될 것이다( 2:7).   

 

 

4. 영원한 영광을 얻는 자들...

물의 기간을 지나고 나서는 거듭나는 시기였다.  거듭나고 나서는 성령안에 거하는 성령의 기간이 시작된다. 할례와 성령의 새롭게 하심( 3:5)의 역사로 이어졌다.

또한 성령의 기간을 졸업할 때쯤 손에는 의와 거룩함의 열매가 쥐어지며 성도라고 불리워진다(고전 1:2). 이전에는 자신의 열매 맺음에만 급급하였지만 이제부터는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이웃이 열매 맺는 것을 도와준다.

 

이제 빛안에 성도(골 1:12)인 것이다.

관심을 자신에서 이웃으로 돌리는 것이다. 우리가 과거 자연인으로서 가장 소중히 여기던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 생명을 얻기 위하여서 우리의 혼적인 생명이 십자가에 의해 철저히 처리되어야 한다. 이 과정을 통과한 이기는 자만이 순례의 길을 마칠 때 면류관을 얻는 것이다. 순례자의 삶이 영광의 면류관으로 귀결되어지기 위하여서 거쳐야 하는 단계를 알아보자.

 

(1)  첫째로, 옛 행실을 죽이는 단계이다 (8:13)

말뚝에 매여 있는 소는 근방에 기름진 꼴을 발견하였어도 그 꼴은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매어진 줄로 인하여 그 꼴로 접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크리스챤은 예수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얻기 위하여서는 마귀에게 묶여진 사슬을 끊어야만 한다. 우리 육체는 흙으로 빚어졌음으로 마귀가 제공하는 땅에 속한 것을 즐기는 속성을 갖고 있다. 땅은 마귀의 영역이다. 또한 마귀는 배로 땅 위를 기어 다니며 흙을 먹고 살라고 저주를 받았음으로 흙에서 나온 인간은 마귀의 먹이인 것이다. 오늘도 마귀는 자신의 먹이를 확보해 놓기 위하여 인간들로 하여금 육체의 사람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땅의 것으로 잔뜩 덧을 놓고 있다(3:2-6).

 

만약 예수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원하는 자라면 먼저 마귀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 땅의 것을 즐기고자 하는 지체를 죽이기 위하여 몸부림칠 때 예수님의 도우심으로 어느덧 사슬은 끊어진다. 이 단계가 손으로 하지 아니하는 할례, 육적인 몸을 벗는 그리스도의 할례인 것이다(골2:11)

 

(2) 두 번째는, 예수그리스도를 먹는 단계이다(6:51)

예수는 참 생명나무이다. 그 분은 우리의 의와 거룩함과 구속이 되신다. 우리 안에 예수로 채워질 때 자연히 그 분의 생명으로 채워지며 또한 그 분의 의와 거룩하심이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이다.

 

먹는 문제가 중요하다. 이미 마귀의 사슬을 끊고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먹고 있을지라도 마귀는 이전에 즐겼던 땅의 음식을 들고 찾아와 우리를 유혹한다. 출애굽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직접 공급해 주시는 만나를 외면하고 이전에 즐겼던 애굽의 생선과 부추와 파와 마늘을 얼마나 그리워하였는지 우리는 잘 안다(11:5-6). 지금도 참 만나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먹으면서도 또한 세상적이며 육신이 원하는 땅에 속한 음식을 음란히 즐기고자 하는 우리 크리스챤들의 모습은 광야의 이스라엘인들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다.

 

마귀에게 묶여 있던 사슬이 끊어진 이후 주님께 다시 매어질 때까지는 양쪽의 음식을 다 섭취할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히 주님께 매어져야만 옛 음식을 먹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마귀가 유혹과 시험으로 주는 땅에 속한 음식을 우리가 먹으려 할 때 주님께서는 세차게 줄을 당기심으로 그 고통이 온몸으로 전달이 되어 먹을 수가 없다. 음식이 중요하며 누구에게 매어져 있느냐가 또한 중요하다. 이 두 번째 단계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의와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는 과정이다(엡4:22-24).       

 

(3) 세 번째 단계는 예수그리스도를 담고 있는 질그릇이 깨어지는 단계이다.

주님 앞에서 여인이 소중히 간직하였던 옥합을 깨뜨릴 때 온 집안에 그윽한 향기가 가득하였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온 세상에 가득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담고 있던 옥합들이 깨어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야 한다. 그릇을 깨고보니 속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큰 낭패이다. 깨어지기 전에 그릇은 예수의 생명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야 하였다.    

 

우리가 우리 안에 예수를 채우는 목적은 예수그리스도를 세상에 나누어주기 위함이다. 그릇의 목적은 음식을 담는 것이지만 그릇 안에 담겨 있는 음식은 배고픈 자를 위한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셨으니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 마땅하다(요일 3:16) 하셨다.

 

예수그리스도를 나누어주기 위해서는 옥합이 깨어지듯이 우리도 부셔져야 한다. 우리가 깨어지는 정도에 비례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는 발산된다. 즉 완전히 깨어질수록 짙은 향기가 나오며 큰 그릇일수록 향기의 공급이 지속적이며 보다 넓은 공간으로 확산될 것이다.

 

이 단계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을 받은 자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은 말씀으로 사람들을 섬기는 자들이다. 자아파쇄를 거친 자들만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말씀의 사역자들인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하여서 또 간직하고 있던 예수를 나누어주기 위하여서는 자아라는 그릇의 파쇄는 필수적이다. 자신을 주님께 헌신하고 형제를 섬기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겉 사람은 반드시 깨어져야 한다.

 

(4) 네 번째는 자신을 나누어 주는 단계이다.

주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에 떡을 떼시면서 이것은 내 몸이니 먹으라고 하셨다. 떡은 쪼개어진 후에야 나누어 줄 수가 있다. 자리다툼을 하던 철없는 제자들의 발을 다 씻기신 후 자리에 앉히시고는 귀한 교훈을 주셨다. 우리들도 우리의 형제를 그렇게 섬겨야 하며 제자들에게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려 놓는 선한 목자가 되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몸이 채찍에 맞아 찢기시고 창에 찔림으로서 그 분의 생명이 우리에게 나누어졌듯이, 우리의 몸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기꺼이 동참하여 드려질 때에 죽은 영혼을 살리는 생명나무가 될 것이다. 이러한 삶을 사는 자는 사도바울처럼 예수의 흔적(6:17)을 갖게 된다.            

 

이 단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특별한 소유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상처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손에 의하여 만져진 바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에게 속한 모든 것은 다 거룩하다. 그 분의 손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거룩하며 그분의 소유이다. 하나님의 손에 이렇게 만져진 바 되는 것은 가장 복된 일이다.

 

 

이들은 자아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인 것이다( 8: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