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천년왕국

5-2 천년왕국이 이 땅에 세워지는 이유들

요나한 2013. 10. 1. 07:40

그림을 그리려면 캔버스 위에  밑그림을 먼저 스케치한 후 그림을 그려가듯이종말론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다루어지게 되는 주제는 ‘천년왕국’이다.

 

천년왕국이라는 단어가 성경에 직접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계 20:1-7에서 ‘천 년’이라는 기간이 6번이나 언급되었다.

 

'천 년'의 기간과 그리스도 재림이 발생하는 시기에 따라 크게 3 가지의 천년왕국설이 있다.

  

무 천년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교회시대의 기간을 영적인 천년왕국의 기간으로 해석함으로서 계시록에 기록된 천년왕국을 상징으로 보는 견해이다

 

후 천년설 200년 전에 등장하였으나 지금은 지지자가 거의 없는 이미 사장 되어진 견해로서 이 세상은 복음이 전파됨에 따라 의와 평화가 실현되며 결국 지상의 모든 사람들이 개심하여 천년왕국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았다. 이 천년왕국이 끝날 무렵 그리스도께서는 재림하실 것이며 이 때 죽은 자들의 부활과 심판이 있다는 것이다.

 

전천년설 천년왕국 이전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을 것으로 보고있다. 이 전천년설은 또한 세대주의적 전천년설과 역사주의적 전천년설로 나누어지고 있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7년대환난 이후에 실제적 천년의 기간인 천년왕국이 도래할 것으로 믿고 있다. 교회의 휴거는 환난 이전에 발생할 것이며 천년왕국동안 그리스도는 그의 성도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통치하시겠지만 이때 사단은 무저갱에 결박된다. 그리고 주의 재림은 두 국면으로 보아 첫 번째는 환난 이전에 두 번째는 대환난 끝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역사주의적 전천년설 주님께서 통치하시는 천년의 기간을 정확히 1,000년이라 할 수 없으며 주의 재림은 대환난 끝에 즉 천년왕국이 시작되기 전에 일회적으로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천년왕국과 관련하여 비록 이상과 같이 여러 견해들이 있지만, 모든 견해들이 다 맞을 수는 없다. 경우의 수는 2 가지이다. 모든 견해들이 다 틀리던지, 그 중 하나만 맞던지…  그 하나마저도 오류들과 믹스가 되어 진실과 다를 수도 있다. (언젠가 안개가 거치게 되면 우리의 시야는 깨끗하여져서 모두는 깨끗한 산야를 확실히 볼 수 있으리라!) 

 

그러나 초대 교회 사도들이 믿었던 신앙은 전 천년설이었으며, 우리도 또한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모든 내용들은 장차 문자적으로 또는 사실적으로 발생할 것임을 믿음으로 전 천년설을 지지한다.

 

 

1.    년왕국은 주님의 재림으로 시작되는데, 그 때 주님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다시 그곳에 일으키시고 옛적과 같게 하신다고 하셨다.( 9:11)

 

감람산(14:4)으로 오시는 주님은 다윗의 장막을 무너졌던 곳에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데…,

먼 옛적에 출 19:6절을 통하여 모세에게 약속하셨던 거룩한 제사장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시며 주님은 다윗의 위에 앉아 의의 통치를 시작하실 것이다.(16:5)

 

이 때에 이스라엘 민족도 예전과 같이 다시 장막에 거할 것임을 호 12:9에서도 말씀하셨다. 

 

아마 주님의 재림은 올리브(감람)와 또 장막절(초막절)과 깊은 관련이 있나보다.

 

즉 다윗의 장막을 세우는 곳은 다름아닌 다윗 왕국이 과거에 무너졌던 곳 바로 그 곳이다.

 

  

2.   7곱째 나팔에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흰말을 타고 하늘군대를 이끄시고 오시는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사단을 결박하여 무저갱에 잡아넣는데, 이 때가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 내용인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라는 구절이 성취되어지는 때이다 

 

왜냐하면 “마귀가 멸하는 곳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진다”라는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계시록 12:9-10에서 사단이 하늘에서 땅으로 쫓겨날 때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가 이루어졌다”라는 찬송이 있게 된다.

 

사단이 결박 당하고 무저갱에 강금 당하는 이 때가 바로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루어지는 시기인 것이다. 

 

 

3.   ‘산에서 뜨인 돌’로 오셔서 세상나라를 멸하실 터인데, 그 산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상에 가득할 것이라는 선포가 있기 때문이다. ( 2:34-35)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느브갓네살 왕이 꿈에서 신상을 친 ‘돌’은 다시 오실 재림의 주님이신데, 세상나라를 상징하는 그 우상을 친 ‘돌’은 태산과 같이 커져서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되었다.

 

이 땅 위의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될 ‘산 돌’은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서는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다.( 2:44)

 

 

한가지 기억하여야 하는 것은 세상나라들의 부서짐이 ‘여름 타작마당’의 겨와 같다는 것이다.(35)  (일반적으로 타작의 시기는 모든 작물들의 추수가 끝나는 가을에 있게 되는데 이 곳에서는 굳이 여름타작이라고 표현이 되었음을 기억하자. 가을농사가 아직 남아 있기에…)

 

다윗이 나라를 세우기 전에 오르난의 (여름)타작마당에서 단을 쌓게 되는데 그 때에 타작하던 곡물은 ‘밀’이었음을 대상 21:18-20에서 보여주고 있다.

 

즉 천년왕국이 세워지기전 밀의 알곡추수( 14:14-16)가 있을 터인데, 그 추수시기는 파종후 4달이 지나서요( 4:35) 즉 여름 끝물에 있으며 정확하게는 계 16:15 에서와 같이 6째 대접에서 있게 된다.

 

 

4.   하나님의 농사는 천년왕국으로 마쳐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농사는 보리와 밀 2가지의 곡물 농사와 포도와 감람열매라는 2가지의 열매 농사가 있다.

이스라엘의 농사는 하나님 농사의 그림자이다.

 

또한 이스라엘의 절기는 이스라엘의 농사와 관련성을 갖고 있는데;

보리는 유월절밀은 오순절과 그리고 감람(올리브)은 초막절과 깊은 연관이 있다.

 

또한 보리농사는 율법시대를, 밀농사는 교회시대를 예표한다.

(즉 보리는 밀의 그림자로써 가난한 자의 양식이었고 밀은 일반 이스라엘인들의 주요 양식이었다.)

 

주님께서는 초실절에 보리농사의 첫 열매로 부활하셨고, 주님 자신이 한 알의 밀알이 땅에 썩어져 많은 열매를 맺는 밀알이 되시겠다고 하셨다.

이제 교회시대를 통하여 밀밭은 희어져 추수할 일꾼을 찾고 계신다.

 

포도주틀은 주님께서 재림하신후 행하시는 악인들에 대한 심판을 의미하고, 이스라엘 농사의 마지막 작물인 올리브, 감람열매는 식용하기도 하지만 짜서 기름을 내어 태워 빛을 얻는다.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실때는 한 알의 밀알이 아니라 이 땅에서 마지막 감람농사를 지으시려고 감람산으로 오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엔 여러 종류의 농사가 있는데 하나님의 농사도 마찬가지이다.

 

유대 땅에 전해졌던 하나님의 말씀은 온 세상으로 전파되는데, 하나님의 농사도 이스라엘의 농사처럼 시절에 따라 시기에 맞는 농사를 짓기를 원하신다.

 

농부가 농사를 짓는 목적은 알곡을 얻기 위함이다.

참 농부이신 하나님께서는 알곡성도를 얻기 위해서 세상 뭇 심령들의 밭에 말씀을 씨앗으로 뿌리신다.

 

율법시대엔 율법, 교회시대엔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천년왕국에는 심판의 멧세지영원한 복음이 전파될 것이다.(14:6-7) 

 

그리고 율법과 하나님나라의 복음 그리고 영원한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농사는 모두 종결하게 된다.

 

 

천년왕국이 끝나고서는 이 땅에서 모든 농사의 수확물들을 거두어 가을 타작마당에 올리시고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실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백보좌 심판인 것이다.

 

겨울철이 되면 이 땅에서의 모든 농사가 마쳐짐에 따라 타작마당에서 거둔 알곡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들이고 이제 그 영원한 집을 지어 아버지께 바치게 된다. (고전 15:24, 3:6)

(마치 솔로몬 왕이 하나님의 집을 바쳤듯이 ... )

 

 

예수님께서는 겨울철 수전절에 성전안 솔로몬의 행각을 거니셨다.

수전절은 구약에서는 취급되지 않은 용어이지만, 하늘 시선으로 모든 것을 보게될 사도요한을 통해서만 성경에 일회적으로 소개되었다. ( 10:22)

 

(하나님이 광야 장막에서 거하셨던 지성소는 장,,고가 10규빗으로 공히 같았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의 신부와 영원히 거하실 새 예루살렘도 역시 장과 광과 고가 12,000 스타디온으로 다 같다. 왜냐하면 그곳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지성소이기 때문이다. 과거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 일년에 한번 들어갈수 있었다. 모든시대를 통해 나오는 최상품의 알곡성도 이기는 자들은 어린양의 아내(신부에서 아내로 바뀜)가 돠어 영원한 지성소 새 예루살렘성에서 거하게 된다.)

 

성전을 다시 봉헌된 것을 기념한다는 수전절은 등화제로도 불리운다.

이 축제는 '8'일간 지속되는데, 각 집에서는 첫 날에는 한등을 켜고, 둘째 날은 두 개의 등에,..., 마지막으로 8일째 되는 날은 8개 등 모두를 등불을 켜고 지켰다.

 

장막절은 7일간 임시숙소인 장막에서 등불을 밝혔지만, 수전절에선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숫자 인' 8'일간 집에서 등불을 밝혔다.

 

< 21:23> 그 성은 해와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모든 것이 새롭게 창조되어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될 새하늘과 새땅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숫자’8’과 또 수전절과 연관이 있음을 기억하자.

 

 

모세의 장막을 잠깐 살펴 보자.

 

장막 문밖에 거하던 이스라엘 민족은 구름기둥() 아래 살았고 , 바깥마당엔 물두멍(성령의 씻음)이 있었으며, 성소와 지성소에는 두 가지의 빛이 있었다.

 

성소 안에는 성소 안을 밝히는 감람유를 태워 빛을 발하는 등대의 빛(진리의 빛)이 있었으며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영광(영광의 빛)이 있었다.

 

또한 진중에 있던 이스라엘 인들은 감람유를 태우며 그 빛 아래에서 7일동안 거하며 초막절을 지켰는데( 23:34-36),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숫자인 ‘8’일째 되는 날에는 화제를 여호와께 드리며 거룩한 대회가 있었다.

 

23:39 절에서 토지()의 소산거두기를 마치거든 이 초막절을 지키라고 하였는데, 마지막 땅의 소산은 올리브 즉 감람열매인 것이다.

 

율법시대엔 물(율법), 교회시대는 성령(씻음), 천년왕국시대에는 빛(진리의 참빛)과 관련이 있고, 새예루살렘성이 내려오는 새하늘과 새땅의 시대는 아마 ‘영광’과 관련이 있나보다. ( 21:23-26)

 

 

즉 빛을 발하기 위한 재료로 사용되는 감람열매 농사가 이 땅에서 다윗의 장막이 다시 세워져 다윗의 위에 앉아 만국을 통치하시는 천년왕국의 기간에 있게된다.

 

 

 

5.   우리나라의 꽃이 무궁화이듯이 이스라엘의 국화는 포도, 무화과 그리고 감람이다. ( 3:17)

 

이스라엘은 종종 구약시대에는 포도나무로 표현이 되었고( 10:1, 5:7), 신약시대에서는 포도에서 무화과나무로 바뀌게 되었다.( 13:6-7)

 

유대 땅에서 무화과는 특이하게도 열매를 두 번 맺는다고 한다. (잎이 나오기 전에 한번, 또 잎이 무성하고나서 한번 더 결실을 하게 된다고 한다. 1948년 이스라엘은 독립을 하면서 무화과나무의 잎이 무성하게 되었다. 여름이 매우 가까워졌다. 이는 여름타작마당도 곧 있을 것을 암시한다.) 

 

 

 

간략하게 이스라엘 농사와 수확시기에 대하여 소개를 할 것 같으면,

 

 

1) 보리농사 추수는 4-5월에

2) 밀농사의 첫 열매는 5-6월에 시작되어, 추수는 3개월 정도 지속된다. 

3) 포도의 수확은 8-9월에 있으며, 포도주틀을 밟는 시기는 밀의 알곡추수(타작마당)와 맞물린다( 18:27,30)

4) 올리브 열매 수확은 연종에 있어 9월 중순에서 11월 중순경이다. 올리브 열매의 타작은 포도수확 이후에 있다.( 24:13). 

 

주님께서는 다시 오실 때 열매를 두 번 맺는 ‘유대 무화과’의 습성을 아시는지라 무화과나무로부터 다시 또 열매를 찾으실 것이다.

 

이제 마지막 남은 것은 '감람'인데 주님께서 감람산으로 오신 이후, 천년왕국의 기간 동안에 이스라엘은 감람나무로 표현될 것이다.

 

 

 

 

6.   천년왕국의 기간에 세계의 거민이 배출되어 ‘이스르엘의 날’에 대한 말씀이 성취되기 때문이다.( 1:11, 2:20-23)

 

이 부분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지만 이해하기 좀 어렵고, 간단히 설명을 할 수가 없어 다음 기회로 미룹니다. 그냥 운만떼고 넘어가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장가 가시는 날( 2:20) 이스르엘은 하나님을 ‘내 남편’이라고 부르게 된다.(2:16)

 

과연 하나님을 남편이라고 부르는 ‘이스라엘’이 아닌 ‘이스르엘’은 누구인가?

 

이스르엘의 날에 대한 언급에서 이스르엘은 유다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으로 구성될 것이며 그들에게는 한 두목이 있다고 한다.( 1:10-11)

 

이 ‘이스르엘의 날’은 처음 지어진 하늘과 땅이 불살라지고(벧후 3:7), ‘유다’ 막대기와 ‘요셉’ 막대기가 하나로 연합하여 우리의 진정한 약속의 땅인 ‘새하늘과 새땅’으로 들어가는 날이다.

  

에스겔 37장에서는 이 때 죽었던 모든 자들의 뼈에 생기가 들어가 그들은 무덤을 열고 부활하여 이스라엘 온 족속을 형성한 후,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것임을 설명하였다. 37:11의 ‘이스라엘 온 족속’은 육적 이스라엘인과 영적 이스라엘인들로 구성된 연합체이다.

 

하나님의 모든 농사가 끝나자 부활로 나오는 자들은 두 그룹으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유다의 막대기 또 다른 하나는 요셉(에브라임)의 막대기이다.( 37:16-19)

 

두 막대기가 하나로 연결되어 하나님의 손에 한 막대기로 놓여지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광야를 지나 진정한 약속의 땅인 새하늘과 새땅으로 들어간다. 

 

하나님과 백성과는 영원한 언약이 세워지며, 주님의 영원한 왕국이 새로 시작되는 것이다.

 

//  죄송합니다. 중략합니다.  //

 

 

첫째부활에 참여하는 자는 천년동안 왕노릇하지만( 20:6),

새하늘 새땅이 창조되고난 이후에는(21:1) 영원히 세세토록 왕노릇을 하게 될 것( 22:5)

이라고 계시하셨는데, 새하늘과 새땅의 영원세계에서 영원히 왕노릇을 할 자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아무래도 벧후 3:7절의 ‘주의 날’ & ‘새하늘과 새땅’과 관련하여 한가지 더 언급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로부터 선지자들에게 보여주시는 계시의 양상에 관한 것입니다.

 

계시는 시대를 달리 하면서 점진적으로 더 또렷하게 더 많이 보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부활에 관한 계시를 예를 들자면, 어느 한 사람의 설명으로 우리가 부활에 관하여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계시를 통하여 다니엘이 알고 있고 있는 부활에 대한 이해범위가 사도바울 또는 사도요한이 알고 있는 내용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모든 이해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성령께서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부어주실 때 온전한 그림을 이해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면 부활에 관한 이곳 저곳 성경 말씀 한구절, 한구절들은 부분적인 이해에 도움은 주지만 전체적인 윤곽을 잡기 위해선 멀리서 전체를 다 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둘째, 계시는 계시의 산에 대한 형태로 주어지는데 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일반 세상사람들의 눈에는 오직 눈앞의 현실만 보여지지만, 선지자의 눈에는 미래에 발생할 사실들이 계시의 산으로 보여진다고 합니다.

 

그들은 산넘어 또 다른 산들을 바라볼 수는 있지만, 산들 사이에 놓여있는 골짜기를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이 평지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시야는 넓어지고 더 멀리 볼 수가 있게 됩니다.

 

사도 요한처럼 하늘로 올려져서 하늘의 시야을 가질 경우는 사각지대 없이 모든 것을 정확하게 또렷이 볼 수가 있게 됩니다. (사도 요한는 본 것을 기록하지 말라고 제한까지 당했었습니다.)

 

 

----------------------------------------------------------

평지에 선지자가 서 있다고 가정을 해 봅시다.

 

또 그 앞에는 4개의 산이 서 있습니다.

 

10Km 떨어져서 2Km 높이의 의 (1)산이 서있고, 10 Km떨어져서 1 Km 높이의 (2)산이 서있고, 10 Km떨어져서 2Km 높이의 (3)산이 서있고, 마지막으로 10 Km떨어져서 (4)5Km 높이의 산이 있다고 가정을 해 봅니다.

 

평지에 서 있는 선지자의 눈에는 (1)산과 (5)산이 보여질텐데.., 아마 겹쳐보일 것입니다.

 

 

군에서 한눈을 뜨고 사격을 할 때 가늠쇠 구멍을 통하여 가늠자를 목표물에 일치시키는데, 도무지 가늠자와 목표물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은 이치입니다.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은 그들이 본 계시의 산들을 묘사할 때 골짜기를

 

못 봄으로 인해 산들을 겹쳐서 기술한 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초림에 관한 것을 설명하다가 갑자기 다음 구절은 새하늘 새땅에 관한 일

들을 기록하곤 하였습니다.

한 구절내에 또는 인접한 구절에 기록되었던 사건들이라해서 반드시 동시대 혹은 연이어서 발생해야만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그러나 우리는 그 시간적 Gap을 잘 알아차릴 수가 없습니다. 한가지 예화로 다시 설명을 드리자면,

과거시절 수학여행을 가서 찍는 사진중에 뒷산의 큰바위를 (모델료 안드는 모델의 손바닥 위에 수박 하나를) 올려놓는듯한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마치 손바닥위에 큰 바위를 올려진듯하나, 손바닥하고 큰바위하고는 공간적 차이가 엄청난 것 같이 말이죠.

  

사도 베드로가 기술한 벧후 3:7-10 ‘주의 날’과 ‘새하늘과 새땅’의 창조시에 있을 처음하늘과 땅이

불사라지는 지는 것을 동시에 기술하게 된 것은 그와 같은 이치입니다.

 

물론 사도 요한은 하늘의 시선을 갖고 있었기에 4개의 산이 다 보였겠지요.

 

계시의 사도인 바울은 평지보다는 높은 곳의 시선을 갖고 있었지만, 하늘의 시선을 갖고 있지 않았기에 아마 계시의 산을 볼 때 (2)번 산 정도는 보질 못했을 것입니다.

 

  

 

2013. 09. 05.

전주에서,

 

sy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