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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파쇄와 영의 해방-워치만니

요나한 2022. 10. 12. 13:37

자아 파쇄와 영의 해방

 

 

  1 , 파쇄의 필요성

 

파쇄의 필요성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들은 언젠가 그의 사역을 저지하는 요인이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임을 발견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자기 겉사람과 속사람의 불일치, 곧 속사람은 한 방향을 향하고 겉사람은 다른 방향을 향하는 것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 모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다 자신의 겉사람이 영의 통제에 불순종한다는 것과 하나님의 최고의 명령대로 행할 수 없다는 것을 언젠가는 느끼게 될 것이다. 모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다 언젠가 그의 사역에서 가장 큰 문제 거리가 영을 사용하는 것을 저지하는 그의 겉사람임을 발견해야 한다. 본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영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하고, 다 영을 사용하여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 있으며, 영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사람의 상태를 만지며, 또한 영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며, 하나님의 계시를 영으로써 만지고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겉사람의 방해 때문에 영을 사용하지 못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인 일도 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의 겉사람이 아직 기본적인 다룸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기본적인 다룸이 결여될 때 결국 기본적인 일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흥분이든 어떤 열성이든 어떤 고초이든 모두 헛수고가 된다. 오직 이 기본적인 다룸만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유용한 사람으로 만든다.

속사람과 겉사람

로마서에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라는 말씀이 있다(7:22). 우리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 또한 에베소서는 우리에게,『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하는 것을 보여준다(3:16). 또 다른 곳에서 바울은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은 날로 새롭도다』라고 말한다(고후 4:16). 성경은 사람을 속사람과 겉사람으로 나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그 사람의 영은 속사람이고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그 사람 밖은 겉사람이다. 바꾸어 말해서 우리 사람의 영이 바로 속사람이고 보통 사람들이 감지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겉사람이다. 우리 속사람은 옷 한 벌을 입은 것같이 겉사람을 입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과 그분의 영과 그분의 생명을 두신 곳은 바로 우리의 속사람인 것이다. 이 속사람 밖에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있으며 가장 밖에는 우리 전체의 육체인 우리의 몸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속사람이 흘러나오는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 속사람이 겉사람을 뚫고 나올 수 없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문제이다. 속사람은 겉사람이 뚫릴 때 비로소 나올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은 우리의 일의 첫째 되는 문제가 상대편에게 있지 않고 우리 편에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 속사람은 옥에 갇힌 것처럼 감금된 사람이 되었다. 우리의 영은 덮개로 덮여진 것 같아서 밖으로 나오기가 쉽지 않다. 우리의 영이 겉사람을 뚫고 밖으로 흘러나오는 훈련을 하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사역하지 못한다. 겉사람보다 우리를 더 제재하는 것은 없다. 우리의 사역이 효과적인가는 우리 겉사람이 주님에 의해 파쇄되어서 속사람이 파쇄된 겉사람을 통해 나올 수 있는가에 있다. 이것이 기본적인 문제이다. 주님은 속사람이 출구를 얻도록 우리 겉사람을 파쇄하신다. 속사람이 나올 때 많은 죄인들은 축복을 얻게 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은혜를 입게 될 것이다.

죽음과 열매 맺음

요한복음 12 24절에서 주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말씀하신다. 생명은 밀알 안에 있고 밀알 밖에는 상당히 두꺼운 한 겹의 껍질이 있다. 이 껍질이 갈라지지 않는 한, 밀알은 자라나지 못한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에서 이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땅 속의 온도와 수분 등이 작용하여 껍질을 갈라지게 한다는 것이다. 껍질이 갈라져야만 밀알이 자란다. 그러므로 문제는 당신 속에 생명이 있는가만이 아니라 밖의 껍질이 갈라졌는가이다. 이 구절에 이어서, 자기 혼을 사랑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혼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는 말씀이 있다. 여기서 주님은 밖의 껍질이 바로 우리 자신의 생명이고, 안의 생명은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영생하는 생명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속에 있는 생명이 나오게 하려면 밖의 생명은 반드시 해를 입어야 한다. 밖의 것이 파쇄되지 않는 한, 속의 것은 나올 수 없다.



이 세상 사람들 중에 주님의 생명을 소유한 한 무리가 있다. 주님의 생명이 있는 많은 사람들 중에 두 가지의 다른 상태가 있다. 하나는 생명이 제한받고 감금되고 포위되어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유형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께서 그의 몸에서 길을 뚫어서 그에게서 생명이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유형이다. 오늘 문제는 어떻게 생명을 얻는가에 있지 않고 생명이 어떻게 우리 몸에서 나가는가에 있다. 우리가 주님께 파쇄되어야 한다는 말은 한낱 지나가는 말이나 교리가 아니다. 이것은 사람인 우리가 정말 파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주님의 생명이 온 땅을 충만케 할 수 없는 데 있지 않고 그분의 생명이 우리에게 봉쇄되어 있는 데 있다! 주님께서 교회를 축복하시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봉쇄되고 우리 안에 감금되어서 나갈 출구를 얻지 못하시는 것이다. 겉사람이 파쇄되지 않을 때 우리는 결코 교회의 축복이 될 수 없다. 또한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를 바랄 수도 없다!

옥합을 깨뜨려야 함

성경은 우리에게 순전한 나드 향유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나님의 말씀에 특별히 「순전한」이라는 단어가 추가되었다. 그러므로 이 향유는 순전한 나드 기름이고 진실로 신령한 것이다. 그러나 옥합이 깨지지 않으면 결코 순전한 나드 기름이 흘러나올 수 없다. 기묘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향유보다 옥합을 더 감상하고 향유보다 옥합을 더 값어치 있는 것으로 느끼며 속사람보다 겉사람을 더 보배롭게 생각한다. 이것이 교회 안의 어려움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총명을 귀히 여기어 자신을 놀라운 사람으로 생각하며,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감정을 귀히 여기어 자신을 놀라운 사람으로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귀히 여기어 자신을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남보다 구변도 있고 남보다 일도 빨리 처리하며 남보다 더 결단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골동품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옥합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향기를 맡는 사람들이다. 겉의 것이 파쇄되지 않고 속의 것이 나오지 않으면 우리 자신에게 길이 없을 뿐더러 교회에도 또한 길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귀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



성령의 역사는 멈추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역사가 멈춘 적이 없었다는 것을 간증할 수 있다. 한 가지 환경 뒤에 따라오는 다른 환경, 한 가지 일 뒤에 발생하는 다른 일들은 성령의 통제로서, 그 목적은 오직 우리 겉사람을 파쇄하여 우리 속사람이 뚫고 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약간의 괴로움을 당할 때 불평하고 약간의 좌절이 있을 때 원망하는 데 있다. 주님은 우리를 사용하시기 위해 길을 예비하시는데 우리들은 주님의 손이 우리를 한번 만지기만 해도 그것을 싫어하고 심지어는 하나님과 의견을 달리하며 소극적이 되어 버린다. 구원받은 때부터 오늘날까지 주님은 수차 여러 모로 우리 몸에서 역사하셨다. 그 목적은 우리 자신들을 파쇄하시려는 데 있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주님의 목적은 우리 겉사람을 파쇄하는 것이다.


보배는 질그릇 안에 있다. 누가 당신의 질그릇을 원하겠는가? 교회안에 필요한 것은 질그릇이 아니라 보배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도 질그릇이 아니라 보배이다. 그러나 질그룻이 파쇄되지 않는다면 누가 그 속의 보배를 볼 수 있겠는가?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하시는 역사는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그 목적은 바로 질그릇을 깨뜨리고 옥합을 깨뜨리며 밖의 껍질을 깨뜨리는 것이다. 주님은 그분께 속한 사람에게서 그분의 축복이 세상으로 통하는 하나의 길을 얻고자 하신다. 그러므로 겉사람의 파쇄가 얼마나 중요한지! 파쇄되지 않고서는 결코 사역이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자신을 주님께 헌신하고 주님을 섬기기 원한다면 반드시 파쇄될 준비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의 겉사람이 완전히 파쇄되고 주님의 사역이 길을 얻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을 풀어놓지 말고 우리 자신을 보류하지도 말아야 한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 자신에 대해 의도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찾아내야 한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서 그들에게 어떤 역사를 하시며 그들에 대해 어떤 의도를 갖고 계시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주님께서 갖고 계신 의도를 찾아낼 수 있기를! 주님께서 우리 눈을 열어 주실 때 비로소 우리가 일생 동안 거친 모든 일들이 다 의미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은 어떤 일도 헛되이 하시지 않으신다. 주님의 목적이 우리 겉사람을 파쇄하는 것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모든 환경이 다 의미가 있고, 그것들이 다 주님의 동일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며, 우리 자신을 파쇄하기 위한 것임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손을 대기도 전에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체험들과 곤란과 환경들이 다 우리의 최고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들이 가장 좋은 것들이므로 우리는 주님께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도록 요구할 수 없다. 만일 어떤 사람이 주님 앞에 나와서, 『주여! 가장 좋은 것 한 가지를 택하도록 허락해 주소서! 』라고 간구한다면, 주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내가 네게 준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매일 네가 만난 환경이 네게 가장 큰 유익이 된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안배하신 모든 것들은 우리 겉사람을 헐어 버리기 위한 것이다. 우리 겉사람이 파쇄되고 영이 나올 때 비로소 우리는 영을 사용할 수 있다.

파쇄와 시간

주님은 우리의 겉사람을 파쇄하기 위하여 두 가지 서로 다른 방법을 사용하신다. 하나는 점차적인 것이고 하나는 돌연적인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주님이 먼저 그를 돌연히 파쇄하시고 그런 다음 다시 점차적으로 파쇄하신다. 이것은 돌연적인 것이 먼저이고 점차적인 것이 나중인 경우이다. 어떤 사람에게 주님은 날마다 환경과 시련을 주시다가 어느 날 돌연히 대대적인 파쇄를 행하신다. 이것은 점차적인 것이 먼저이고 돌연적인 것이 나중인 경우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받은 파쇄는 돌연적인 것이 먼저이고 점차적인 것이 나중이거나, 점차적인 것이 먼저이고 돌연적인 것이 나중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주님은 올바르게 이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파쇄 작업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보통 수년의 기간을 사용하신다.



우리는 이 기간을 연장시킬 수 있을 뿐 단축시킬 수 없다. 어떤 사람에게 주님은 몇 년의 시간으로 이 일을 성사시킬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십 년, 이십 년을 사용하셔도 이 일을 완성시키지 못한다. 이것은 매우 엄숙한 문제이다! 하나님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더 가련한 일은 없다. 많은 때 교회가 축복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때문이다! 우리는 생각 안에서 전도에 능하고 우리의 감정은 사람들을 전도하라고 격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영을 사용할 줄 모른다면,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통하여 그분의 영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을 만지실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시간을 길게 끌게 되고 아주 큰 손실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과거에 한 번의 철저한 헌신을 하지 않았다면, 오늘 우리는 반드시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리면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주여! 교회의 앞날을 위하여, 복음의 장래를 위하여, 그리고 당신의 길을 위하여, 나 개인의 생명을 위하여 아무 조건 없이, 아무 보류 없이 내 자신을 당신 손에 맡깁니다. 주여! 내 자신을 기꺼이 당신 손에 맡깁니다! 당신께서 내 몸에서 나아갈 길을 얻으시기 원합니다.

십자가의 의미

우리는 십자가에 대하여 계속 들어왔을 것이다. 십자가가 우리 귀에 아주 익숙할 정도로 들었는데, 대체 십자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십자가는 겉사람의 파쇄를 의미한다. 십자가는 겉사람을 죽이고 사람의 껍질을 갈라지게 하는 것이다. 십자가는 당신의 겉사람 일체를 다 헐어버린다. 당신의 의견과 당신의 방법 그리고 당신의 총명과 자애(自愛)를 헐어버리고 당신의 모든 것을 헐어버린다. 당신의 겉사람이 파쇄되어야 속사람이 나오고 당신의 영이 나올 수 있다. 이 길은 너무나 분명하다.



우리의 겉사람이 파쇄될 때 우리의 영은 쉽게 나온다. 어떤 형제가 있는데 그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그가 예리한 생각과 강인한 의지와 냉철하고 깊은 감정의 소유자라는 것을 시인한다. 그러나 그를 만나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강인한 의지와 총명한 생각과 냉철하고 깊은 감정을 만지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영을 만진다. 사람들은 그와 교제를 나눌 때마다 그에게서 깨끗한 영을 만진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이는 그 사람이 파쇄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 한 자매가 있는데 그녀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그녀가 생각과 말이 빠르고 죄의 자백도 빠르며 편지도 빨리 쓰고 빨리 찢어버린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녀를 만나본 사람은 누구나 그녀의 빠른 점을 만지는 게 아니라 그녀의 영을 만진다. 이는 그녀가 파쇄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겉사람이 파쇄되는 것이 기본적인 문제이다. 우리는 주님께 오 년, 십 년 동안 다루심을 받으면서도 계속 우리의 결점을 보유하고 전과 같은 냄새를 풍겨서는 안 된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 몸에서 출구를 얻으시도록 그분께 양보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에 대한 주님의 기본적인 요구이다.

파쇄되지 않은 두 가지 원인

왜 어떤 사람은 수년간의 다룸을 받고서도 그 다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모르는가? 주님께서 어떤 사람의 강한 의지를, 어떤 사람의 강한 감정을, 어떤 사람의 강한 생각을 헐어버리실 수 있는데, 왜 어떤사람은 수년간 다룸을 받고서도 아직 파쇄되지 않았는가? 우리는 이것에 두 가지 큰 원인이 있다고 믿는다.



첫째는, 그들이 흑암에 거하고 하나님의 손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헐고 계시는데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임을 모른다. 이것은 그들에게 빛이 결여되어 있고 그들이 빛 안에 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보는 것은 사람뿐이고, 항상 누구누구가 자기와 대적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환경만 보고 환경이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항상 환경을 탓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를 주사 이것이 하나님의 손임을 보고 그분께 무릎 꿇고, 『주여, 이것은 당신이시요, 당신이심으로 나는 다만 영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기 바란다. 최소한 우리들은 우리를 다루는 손이 누구의 손인지를 인식해야 한다. 최소한 우리를 다루는 손이 세상 사람이나 가족이나 교회 형제 자매들의 손이 아닌 하나님의 손임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를 다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귀용 여사처럼 무릎을 꿇고 그러한 손에 입 맞추고 그 손을 귀히 여겨야 한다. 우리에게는 이런 빛이 필요하다. 우리는 주님이 하신 일이라면 그것이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만 그것을 받고 믿어야 함을 보기 바란다.


둘째의 원인은 그들이 자기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사람이 파쇄되는 데 하나의 큰 장애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제하여 주시도록 그분께 간구해야 한다.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님에 의해 제해질 때 우리는 그분을 경배하며, 『주여, 이것이 당신의 손이라면 내 마음 속에서 이것을 받게 하게 하소서.』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의 모든 오해와 모든 불평과 불만의 유일한 이유는 은밀하게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임을 기억하라. 우리가 은밀하게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를 구출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한다. 이것은 극히 큰 문제이다. 많은 경우 일이 터지는 것은 우리가 또 다시 자기를 구출하려고 하기 때문인 것이다.


십자가에 올라가서 쓸개 탄 신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 사람만이 주님을 아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은 억지로 십자가에 올라가서 그의 감정의 고통을 감소시키기 위하여 쓸개 탄 신 포도주를 마시려고 한다. 무릇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잔을 내가 어찌 마시지 않으리요』라고 말하는 사람만이 쓸개 탄 신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다. 그는 한 가지 포도주를 마실 뿐 두 가지를 마시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자기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기본적인 문제이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말씀하시어 우리가 다음과 같이 기도할 수 있기 바란다. 『나의 하나님! 이 모든 것이 당신으로부터 온 것임을 보았습니다. 지난 오 년, 십 년 또는 이십 년 동안 제가 걸어온 모든 길은 당신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당신이 이렇게 행하심은 당신의 생명이 내 몸에서 살아나타나는 당신의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어리석어서 이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자신을 사랑했기 때문에 자신을 구출하기 위하여 많은 방법을 사용하여 당신의 시간을 지연시켰습니다. 오늘 당신의 손을 보고서 내 자신을 당신께 드리기 원합니다. 다시 한 번 당신의 손에 내 자신을 맡겨 드립니다.

상처 보기를 바람

파쇄된 사람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은 없다. 강퍅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 파쇄될 때 그의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구약의 야곱을 보면 그는 모태에서부터 형과 다투었다. 그는 말썽장이에다 간사하고 궤술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일생은 고통으로 가득했는데, 젊었을 때에는 밖에서 도망다녔고 이십 년 동안 라반의 꾀임에 넘어갔으며 마음에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노중에 죽었고 사랑하는 아들 요셉도 팔려갔다. 몇 년이 지난 후에 베냐민은 애굽에 구류되었다. 그는 연이어 하나님의 다루심을 받았고 순조롭지 않은 많은 일들을 당했다. 그는 한 번 두 번 하나님께 매를 맞았다.



야곱의 역사는 하나님께 매맞는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께 여러번의 다룸을 받은 후 야곱은 변화되었다. 그의 말년은 정말 빛이 청청하였다. 야곱이 바로의 말에 답할 때 그는 얼마나 장엄했는지! 임종시 지팡이를 잡고 하나님께 경배했던 그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들들과 자손들을 위한 그의 축복은 얼마나 분명한지! 그의 마지막 역사를 읽어볼 때 우리는 고개 숙여 하나님께 경배할 것이다. 여기에 성숙하고 하나님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 야곱은 수십 년의 다룸을 통하여 그의 겉사람이 파쇄되었다. 우리는 그의 노년을 통해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을 볼 수 있다. 우리 개개인은 누구나 어느 정도 야곱의 성품을 갖고 있다. 어쩌면 조금이 아니라 아주 많이 갖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주님께서 우리 몸에서 길을 열으심으로써 우리 속사람이 흘러나와 보일 정도로 우리 겉사람이 파쇄되는 것이다. 이것은 귀한 일이자 주님을 섬기는 사람의 길이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그분을 섬길 수 있고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다. 이럴 때 우리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도록 그들을 인도할 수 있다. 이것이 아닌 교리와 신학들은 다 쓸모 없다. 성경 지식만 가지고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흘러나올 수 있는 사람이 유용한 사람이다.


우리 겉사람이 매맞고 처리를 받으며 여러 환경들을 거침으로 말미암아 우리 몸에 상처가 생길 때, 우리 속에 있는 영은 비로소 우리 몸에서 흘러나갈 수 있다. 우리는 처리받지 않고 변화되지 않고 그의 온 존재가 완벽한 그대로 남아 있는 형제나 자매를 만나기를 두려워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우리 앞에 이 길을 분명히 두심으로 우리에게 다른 길이 없고 오직 이것이 유일한 길임을 알게 하시기를! 또한 지난 십 년, 이십 년 동안의 우리 몸에서의 주님의 모든 다루심이 이 목적을 위한 것임을 보여 주시기 원한다. 그러므로 우리 몸에서 이루신 주님의 역사를 경멸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겉사람의 파쇄가 무엇인지 주님께서 우리에게 참으로 보여주시기를! 겉사람이 파쇄되지 않은 사람의 모든 것은 머리 속에 있고 지식 안에 있는 것이므로 이것들은 다 무익하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철저한 다룸을 주시기를!

 

 

 

2 , 파쇄되기 전과 파쇄된 후

 

파쇄되기 전과 파쇄된 후


겉사람의 파쇄는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체험이다우리 겉사람이 파쇄될 때 비로소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여 그분을 위하여 효과적인 사역을 해내게 하신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에게는 사역할 때 두 가지 가능성이 발생할 수 있다하나의 가능성은 그의 겉사람이 파쇄되지 않음으로 그의 영이 움직이지 않고 그의 영이 나오지 못하며 능력을 나타낼 수 없고 그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이 역사하는 경우이다이런 사람은 총명한 사람으로서 그의 생각이 역사하고 있을 뿐이다그는 정열적인 사람으로서 그의 감정이 역사하는 것이다이런 역사는 사람들로 하나님을 만나게 할 수 없다두번째 가능성은 그의 겉사람이 갈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영이 흘러나올 때 생각을 입고 나오거나 감정을 입고 나오는 경우이다이것은 깨끗하지 못하고 섞임이 있는 것이다이러한 사역은 사람들로 하여금 체험 가운데서 섞임과 깨끗하지 못함을 만지게 한다이상의 두 가지 상태는 우리로 하나님을 잘 섬기게 할 수 없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만일 우리가 효과적인 사역을 하고자 한다면 <살리는 것은 영이니>라는 사실을 기본적으로 시인하지 않으면 안된다금년에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내년에 또 부딪히게 되고주님을 믿은 그 날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십 년 후에라도 해결해야 한다우리는 빠르든 늦든 언젠가 이 사실을 시인하게 된다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사역이 공허한 업적을 가질 정도로 막바지에 이끌릴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무익하다는 것을 깨닫는다설령 그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으로 많은 사람을 얻었다 할지라도 그 결과는 여전히 무익한 것이다빠르든 늦든 우리는 <살리는 것은 영이니>를 시인해야 한다오직 영만이 사람을 살린다당신의 가장 좋은 생각도 사람을 살리지 못하고 당신의 가장 좋은 감정도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오직 영으로만 사람을 살릴 수 있다아주 큰 고통을 당하거나 많은 실패를 거친 후에야 이 사실을 본 주님의 일꾼들이 많다사람을 살리는 것은 영이기 때문에 오직 영이 나올 때만이 죄인이 거듭나고 오직 영이 나올 때만이 믿는이들이 세워진다거듭남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영이 생명을 전달하는 것이고세우심은 믿는이들을 세우기 위하여 영이 생명을 전달하는 것이다영이 없다면 거듭남도 없고 영이 없다면 세워짐도 없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결코 그분의 영을 우리의 영과 분리할 생각을 갖지 않으셨다는 것이다성경의 <>이라는 단어 중 사람의 영을 가리키는지 하나님의 영을 가리키는지를 구분할 수 없는 곳이 많다헬라어를 정독하는 많은 사람들도 이것을 구분하지 못한다역대로 모든 성경 번역자들독일의 루터로부터 영국의 킹제임스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신약에 많이 언급된 <>이라는 단어들 중에서 어떤것이 사람의 영을 가리키고 어떤 것이 하나님의 영을 가리켜 말하는 지를 확정짓지 못했다.


로마서 8장은 아마도 성경에서 영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언급한 장일 것이다로마서 8장에 언급된 영이른 단어 중에 어떤 것이 사람의 영을 가리키고 어떤 것이 하나님의 영을 가리키는지를 알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성경 번역자들은 로마서 8장을 번역할 때 사람의 영을 가리키는지 하나님의 영을 가리키는지를 각 사람의 이해에 맡겼다영어 성경에서 프뉴마(Pneuma, )라는 단어가 대문자로 된 곳도 있고 소문자로 된 곳도 있다성경 번역본마다 각각 다르다이에 대한 어떤 사람의 의견도 최종 결론으로 삼을 수 없다왜냐하면 사실에 있어서 성령을 사람의 영과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새 영을 얻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을 얻은 것이다우리 사람의 영이 죽음에서 살아난 때는 바로 우리가 성령을 얻은 때이다우리가 우리 영안에 성령이 거하신다고 말하지만성령과 사람의 영을 구분하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다성령은 우리의 영과 구분될 수 있으나 나누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그러므로 영의 흘러나옴은 단지 사람의 영만이 아닌 사람의 영을 통한 성령의 흘러나옴이기도 하다성령은 사람의 영과 하나이다비록 명칭상 우리가 성령과 사람의 영을 구분할 수 있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나눌 수 없다영의 해방은 곧 사람의 영의 해방인 것이다사람들이 당신의 영을 만졌다면 그것은 성령을 만진 것이다만일 당신이 다른 사람으로 당신의 영을 만지게 했다면 당신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을 만지게 한 것이요당신의 영으로써 하나님의 영을 사람 가운데 가져간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역사할 때에는 사람의 영을 입고 오신다이것은 마치 전등의 전기가 하늘의 번개 같지 않고 전선을 타고 가는 것과 같다오늘날 전력이 있을 뿐 아니라 또한 전선이 있다전선을 입고 가는 것은 바로 전기이다물리학에서는 이것을 전하(電荷)라고 하는데()라는 단어는 짊어진다는 뜻이다전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기가 전선을 입고 전선을 타야 한다하나님의 영도 이와 같이 사람의 영으로써 성령을 짊어지게 하고 사람의 영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사람 가운데로 가져오신다구원받은 모든 사람의 영 안에는 성령이 내주하신다사람이 주께 쓰임을 받을 수 있는가 없는가의 여부는 그의 영에 있지 않고 그의 겉사람에 있다어떤 사람의 문제는 그의 겉사람이 파쇄되지 않는데 있다그의 몸에 피의 흔적이 없고 상처와 흉터가 없다결국 하나님의 영은 사람의 영 안에 갇혀서 나오지 못하게 된다때때로 우리 겉사람은 움직이지만 속사람은 움직이지 않는다이것은 겉사람만 나오고 속사람은 나오지 않은 상태이다.


몇 가지 실제적인 문제들


몇 가지 실제적인 문제들을 보기로 하자설교의 경우, 때때로 우리는 열성적으로 말씀을 전하고 또 참으로 잘 전한다말씀마다 일리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만 감동을 주려고 할 뿐 자기는 감동됨이 없이 속이 냉냉할 지도 모른다겉사람만 설교하고 속사람은 그것에 참여하지 않는다겉사람과 속사람이 불일치되고 겉사람과 속사람이 통일되지 못하며 겉사람은 뜨거운 반면 속사람은 아주 냉냉하다우리가 사람들에게 주님의 크신 사랑을 말하지만 우리 속에는 그것에 대해 조금도 감각이 없을 수 있다우리가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비참한 고난을 말할 수 있지만 방안으로 돌아가서는 혼자 비웃을 수도 있다이런 상태에 대해 정말 아무런 방법이 없다이렇게 된 것은 속사람과 겉사람이 통일이 되지 않고 겉사람이 역사할 때 속사람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데 있다이것이 앞에서 말한 첫번째 종류의 상태이다이것은 영이 움직이지 않고 생각이 활동하는 것이요영이 아닌 감정이 활동하는 것이다이것은 속사람 없이 겉사람만 활동하는 것이다겉사람은 마치 연기자 같고 속사람은 관람객 같다겉사람은 겉사람으로 있고 속사람은 속사람으로 있어 서로 일치되지 않는다.


다른 상태는속사람은 극히 열렬하여 속에서 외치고 싶어하나 말해내지 못하고 말할지라도 제자리걸음으로 하는 상태이다속이 급할수록 밖은 더욱 냉냉하고 계속 말하고 싶어도 말을 하지 못한다죄인을 볼 때 한바탕 울고 싶지만 울지를 못한다강단에 설 때 속으로는 큰 소리로 외치고 싶은 마음으로 애타지만밖으로는 다른 것을 말하고 있다이것도 겉사람이 파쇄되지 않고 속사람이 나오지 못하는데 기인한다밖의 껍질이 그대로 남아 있고 겉이 속의 지휘를 따르지 않는다속사람은 울고 싶은 반면에 겉사람은 울고 싶지 않고 속은 괴로워하는데 겉은 괴로워하지 않으며 속에는 어떤 뜻이 가득한데 밖은 그런 뜻을 전하려 하지 않는다속에는 느낌이 가득하나 뚫고 나오지 못하고 영이 밖의 껍질을 뚫고 나올 길이 없다.


이런 것들이 겉사람이 파쇄되지 않을 때의 상태이다즉 영은 움직이지 않고 겉사람만 움직이거나 혹은 영만 움직이고 겉사람이 영을 저지하는 상태이다그러므로 겉사람의 파쇄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배워야할 첫번째 공과이다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이 기본적으로 배워야 할 것은 바로 그의 속사람이 겉사람을 통과하여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다참으로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사람은 밖의 생각이 단독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밖의 감정도 단독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며속사람이 흘러나와야 할 때 겉사람이 속사람에게 양보하여 겉사람을 뚫고 나옴으로 그 사람의 영으로 사람들에게 도달하게 하는 사람이다만일 우리가 이 점을 배우지 않는다면 일의 효과 면에서 많은 제한을 받게 된다우리 겉사람이 파쇄되기까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끌어주시기를 바란다어떻게 해야 주님 앞에서 파쇄된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길을 열어 주시기를 바란다.


사람이 주님에 의해 파쇄될 때 그의 연기는 자연히 사라진다밖은 열렬한데 속은 움직이지도 않는 것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그러므로 이제부터 속사람에게 어떤 느낌이나 말씀이 있을 때 겉사람은 협력하기 시작한다또한 속은 울고 싶은데 밖은 계속 말해내지 못하여 갈팡질팡하는 것도 없어진다생각이 빈곤한 일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또 두 마디로 할 수 있는 말을 더이상 스무 마디로 하지 않게 된다생각은 더이상 영을 가로막지 않고 영을 도울 줄 알게 된다.


감정도 아주 강한 껍질이다많은 사람들은 기뻐해야 할 때 기뻐하지 못하고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한다겉사람이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만일 주님께서 성령의 통제나 빛 비춤으로 우리 겉사람을 심하게 강타하신다면 우리의 감정은 기뻐할 때 기뻐할 수 있게 되고 슬퍼할 때 슬퍼할 수 있게 된다이 때 우리 속의 영은 아무 방해 없이 자유로이 흘러나올 수 있게 된다.


겉사람의 파쇄는 자유로이 영이 흘러나오게 한다영의 자연스런 나옴은 다만 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또한 우리의 생활의 용도를 위한 것이다만일 영이 우리속에서부터 나올 수 있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다만일 영이 우리 속에서 나올 수만 있다면 우리는 자연히 성경 안의 계시의 영을 만지게 된다만일 우리 속에서 영이 나온다면 또한 우리는 자연히 우리의 영으로써 계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만일 영이 우리 속에서 나올 수 있다면간증할 때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할 때혹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른 사람을 섬길 때나 말씀의 사역자가 될 때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이 영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밖으로 내보낼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이뿐 아니라, 만일 우리 속의 영이 밖으로 나올 수 있다면 우리는 자연히 우리 영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의 영을 만질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영은 누가 우리 앞에 와서 무슨 말을 할 때그 사람이 어떤 종류의 사람이고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그가 어떤 종류의 그리스도인이며 그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측정할 수 있다우리는 영으로 상대방의 영을 만질 수 있다만일 우리의 영이 자유롭고 해방되었다면 다른 사람들은 자연히 쉽게 우리의 영을 만지게 되고 우리의 영도 사람들에게 접촉된다어떤 사람에게서는 우리는 그의 사상이나 감정이나 의지를 만질 수 있을 뿐 그의 영을 만질 수 없다. 어떤 사람은 그와 세 시간 동안 대화를 해도 비록 우리가 다 그리스도인이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없다그의 껍질이 너무 두껍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의 내적 상태를 만질 길이 없다겉사람의 파쇄는 영을 흘러나오게 하고 그 사람을 열게 한다우리의 영이 열릴 때 그것은 사람들에게 쉽게 접촉된다.


밖으로 나감과 돌아옴


겉사람이 파쇄된 사람의 영은 자연히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있다어느 형제는 주님을 믿은 지 이 년이 되었을 때에 로렌스가 쓴 <하나님과 함께>라는 책을 읽었다책을 다 읽은 후에 그는로렌스는 끊임없이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 있었으나 자기는 그렇게 할 수 없음으로 인하여 매우 고통스러워 했다그래서 그는 다른 한 형제와 매시간 한 차례씩 기도하기로 정하였다왜 이렇게 했는가성경에서 항상 기도하라는 말을 그들은 시시(時時, 한 시간이라는 뜻)로 기도하라는 말로 고친 것이다.


그들은 한 시간마다 한 번씩 간구하였다시계소리가 울릴 때마다 그들은 한 번씩 기도하였다그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지속적으로 항상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려고 최선을 다했다이럴 때 그들은 일을 하다가 나가버렸으며 빨리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야 했고 공부하다가 나가 버렸을 때에도 속히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 같았다돌아오지 않으면 온종일 나가버리게 된다그들은 자주 기도하고 주일은 온 종일 기도하며 토요일은 반 나절 기도하면서 이렇게 이삼 년 동안 지속하였다그러나 문제는 하나님 면전으로 돌아올 때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만지지만 일단 나가버리면 잃어버린 자가 되는 데 있었다이것은 단지 그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많은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고통이기도 하다이것은 사람의 기억력을 의지하여 계속 하나님의 임재를 유지하는 것이다이런 하나님의 임재는 기억날 때에만 임재가 있고 기억하지 못할 때에 임재가 사라진다이런 기억력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유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왜냐하면 하나님의 임재가 기억 속에 있고 영안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임재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겉사람이 파쇄되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우리의 감정은 하나님과 다르고 서로 연합될 수 없다우리의 생각도 하나님과 다르고 서로 연합될 수 없다요한복음 4장은 하나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하나님은 영이시다오직 우리의 영만이 하나님의 본질과 같고 오직 우리의 영만이 하나님과 영원한 조화를 이룰 수가 있다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생각안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얻으려고 한다면생각이 풀어질 때 임재는 즉시 사라진다만일 우리가 감정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얻으려고 한다면 감정이 풀어질 때 임재는 즉시 사라진다혹 우리는 비통함을 느끼고 눈물을 흘릴 때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그러나 우리는 평생토록 눈물만 흘릴 수는 없다눈물이 그칠 때가 있으므로 눈물을 흘리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왜냐하면 생각과 감정의 활동은 언젠가 끝이 있기 때문이다우리의 행위로 하나님의 임재를 유지하려고 할 때 행위가 그치면 임재도 사라지게 된다오직 같은 성질의 공기와 공기물과 물 많이 쉽게 나뉘어지지 않는다성질이 같기 때문에 함께 융화를 이룰 수 있다속사람의 성질은 하나님의 성질과 같기 때문에 속사람은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히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낼 수 있다겉사람은 도움이 안 될 뿐더러 살아 있기 때문에 속사람을 방해한다겉사람은 도움이 안 될 뿐더러 더욱 장애가 된다겉사람이 파쇄될 때 속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방해를 받지 않게 된다.


사람의 영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반응을 갖는 곳이다겉사람은 외부적인 일들에 반응하기 위한 것이다사람이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의 겉사람이 항상 외면적인 일에 대하여 반응하기 때문이다우리가 외면적인 일들을 제거할 길이 없지만 겉사람은 파쇄할 수는 있다.우리는 밖의 일들을 정지시킬 수 없다이 세상 천만 가지의 일들은 계속될 것이다만일 겉사람이 파쇄되지 않았다면 밖의 일이 생길 때마다 우리 속은 그것에 반응하게 된다우리가 지속적으로 조용히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겉사람의 반응 때문이다그러므로 하나님의 임재 안에 머무는 것은 겉사람의 파쇄에 근거한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심으로 우리의 겉사람이 파쇄된다면 우리는 다음의 상태를 갖게 될 것이다즉 본래 아주 호기심으로 가득 찾던 우리가 이제는 호기심을 가질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본래 우리의 감정은 아주 강하여 일이 생기기만 하면 그것에 의해 격동되고가장 섬세한 느낌인 우리의 사랑이 격동되거나 가장 거친 느낌인 우리의 성질이 격동되며밖에 일만 생기면 반응을 갖고 그 안에서 살며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렸을 것이다그러나 하나님의 긍휼로 우리의 겉사람이 깨어진다면 많은 일들이 닥친다 하더라도 우리 속은 요동치 않고 고요하며 하나님의 임재도 변함 없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는 것이 겉사람의 파쇄에 근거함을 보아야 한다사람이 하나님의 임재를 끊임없이 누리는 것은 겉사람의 파쇄로 말미암은 것이다로렌스의 경우 그가 주방에서 일을 할 때사람들이 그에게 이것저것을 달라고 하고 그 주위의 소리가 혼잡하고 시끄러웠지만 그의 속은 그것들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그는 기도할 때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뿐 아니라 일로 분주할 때에도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다그는 분주한 가운데서도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었는가이것은 밖의 소리가 그의 속에까지 영향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어떤 사람은 왜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는가이는 밖의 소리가 있을 때 그의 속이 그것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보존하기 위하여 어떻게 하는지 아는가그들은 접시소리가 나지 않는 환경을 찾는다그들은 사람들을 멀리 떠나고 일들에서 멀리 떠나면 떠날수록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그들은 문제가 접시에 있고 사람의 방해에 있다고 잘못 생각한다밖이 시끄럽다 할지라도 그의 속이 조금도 반응하지 않으면 된다밖에서 북 치는 소리가 나도라도 그의 속은 영향을 받지 않으면 된다주님에 의해 우리 겉사람이 깨질 때 우리 속이 그것에 반응하지 않고 듣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하나님께 감사 드리자우리가 남의 말을 잘 듣는 귀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만일 우리 위에 은혜가 있고 주님이 우리에게 역사하심으로 우리 겉사람이 파쇄되면 겉사람에게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우리 속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접시 소리가 날 때에도 당신은 홀로 기도할 때와 같이 전일하게 하나님 면전에 머물 수 있다.


겉사람이 파쇄된 사람은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 필요가 없는데 이것은 그가 본래부터 하나님 면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아직 파쇄되지 않은 사람은 일을 한 가지 처리할 때마다 하나님 면전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그가 밖으로 나갔었기 때문에 속히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그러나 이미 파쇄된 사람은 나간 적이 없기 때문에 다시 돌아올 필요가 없다.많은 사람들은 그의 겉사람이 아직 파쇄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을 하든지 밖으로 나가버리고 심지어는 주님의 일을 할 때에도 나가버린다그런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일단 움직이면 그는 나가 버린다그러나 하나님을 진실로 아는 사람은 나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돌아올 필요가 없는 것이다그들은 하루 종일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여도온종일 바닥을 닦아도 다 하나님의 임재를 누릴 수 있다겉사람이 파쇄될 때 우리는 하나님 면전에서 살 수 있다또한 우리는 어디서 돌아올 필요가 없고 돌아온다는 느낌도 갖지 않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 면전에 나올 때만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데 익숙하게 되었다우리가 아무리 조심한다 할지라도 모든 일에서 우리 자신이 영에서 나왔다는 느낌을 가질 것이다우리 개인의 체험은 다 다음과 같다곧 우리가 자신을 꼭 붙잡고 있다 하도라도 일을 조금 많이 할 때 나가게 된다는 것이다많은 형제 자매들은 수중의 일을 내려놓아야만이 가서 기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그들에게는 하나님 면전에 나올 때와 일할 때의 그 광경이 좀 다른것 같다가령 우리는 어느 사람을 돕거나 그에게 복음을 들려주거나 그를 온전케 할 때 잠시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기도할 때는 하나님 면전에 돌아온 것 같지만 사람과 대화할 때에는 하나님을 조금 떠나 있는 것 같다그러나 기도하면 또 하나님과 좀더 가까운 것 같다좀 전에는 나간 것 같다가 이제는 하나님의 면전으로 돌아온 기분이다좀 전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잃었으나 이젠 되찾아야만 한다그들은 바닥을 닦거나 수공업같은 일을 한 후기도하려고 할 때, 다시 돌아와야 하고 돌아와야 할 길이 멀고 길다고 느낀다모든 돌아와야 한다는 느낌은 좀 전에 우리가 나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겉사람이 파쇄될 대 우리는 돌아올 필요가 없다우리는 어떤 사람과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와 같이 그와 대화할 때에도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바닥을 닦고 수공업을 할 때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과 함께 있어야 한다이런 일들은 결코 우리를 하나님 면전에서 떠나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나갈 필요조차도 없다.


한 가지 극단적인 비유를 들겠다가령 사람의 느낌 중에서 기장 거친 것은 사람의 분노이다성경은 분을 내는 것을 금하지 않았다어떤 분냄은 죄와 무관하다성경은 분을 내어도 죄를 범하지 말라고 했다그러므로 분을 내어도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그러나 분을 내는 것은 아주 거친 것이고 죄에 가깝다하나님의 말씀에서 사랑하여도 죄를 범치 말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랑이 죄와 아주 멀기 때문이다하나님의 말씀에서 온유하여도 죄를 범치 말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은 온유함도 죄와 아주 멀기 때문이다하나님의 말씀에서 분을 내어도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한 것을 보면 화를 내는 것은 죄에 가깝다큰 잘못을 범한 형제에게 엄히 책망할 필요가 있을 때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사랑의 느낌을 표현하기는 쉬워도 화를 내는 느낌을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이는 조심하지 않으면 다른 영역 안으로 떨어지게 때문이다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분을 내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만일 겉사람의 파쇄가 무엇인지 알고 하나님 앞에서의 임재를 누릴 수 있으며그의 영이 겉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으며 끊임없이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 있는 형제나 자매라면 하나님의 면전에서 기도할 때와 같이 한 형제를 엄히 책망할 때에도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을 수 있다다른 말로 한다면그가 한 형제를 엄히 책망하고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면전에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느낌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하나님의 면전에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느낌은 그가 나갔었다는 것을 증명한다우리는 이 일이 아주 어려운 일임을 시인한다그러나 우리 겉사람이 파쇄되었다면 우리는 한 형제를 책망하고도 하나님 면전에 다시 돌아올 필요 없이 하나님의 임재를 전과 같이 누릴 수 있다.


겉사람과 속사람의 분리


겉사람의 파쇄는 당신의 모든 외부적인 일들로 밖에 그치게 하고 속사람으로 하나님의 면전에서 계속 끊임없이 살게 한다많은 사람의 문제는 바로 겉사람과 속사람이 연합되는 데 있다그러므로 겉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것들이 그의 속사람에게까지 영향을 준다.사실상 밖의 일들은 겉사람에게만 영향을 주어야 하는데 속사람에게까지 영향을 주는 셈이 되었다파쇄되지 않은 자의 속사람은 겉사람의 영향을 받는다그러나 파쇄된 사람의 속사람은겉사람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만일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우리 겉사람이 파쇄되고 겉사람과 속사람이 분리되었다면 밖의 일들은 겉사람에게 영향을 줄 뿐 속사람에게까지 영향을 주지 못한다이는 겉사람과 속사람이 분리되었기 때문에 모든 장애물이 여기에서 멈추고 더이상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다당신의 겉사람이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지라도 속사람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다.


당신의 겉사람이 접시닦는 소리를 들을지라도 속사람은 여전히 하나님의 면전에서 살 수 있다당신의 겉사람이 많은 일을 하고 수고하며 세상적인 여러 가지 물건들을 접할지라도이것들은 당신의 겉사람에게 영향을 줄 뿐 속사람에게는 영향을 주지 못한다당신은 변함없이 하나님 면전에 살므로 나간적이 없기 때문에 또한 돌아올 필요도 없다도로 포장의 일을 하는 한 형제의 비유를 들겠다만일 그의 겉사람과 속사람이 분리되었다면 밖의 일들은 그의 속사람은 흔들 수 없다그는 겉사람으로는 일을 하지만 그의 속사람은 여전히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향할 수 있다혹 어떤 부모는 겉사람으로는 아이들과 함께 웃고 그들과 함께 놀며 그들에게 이야기를 해줄지라도 영적인 일들을 해야 할 때에는 즉시로 속사람이 나올 수 있다그의 속사람은 하나님을 떠난 적이 없다우리의 겉사람과 속사람이 분리되는 것은 우리의 일과 생명과도 큰 관계가 있다오직 이렇게 할 때만이 끊임없이 주의 일을 할 수 있고 다시 하나님의 면전으로 돌아올 필요가 없다어떤 사람은 그의 존재가 하나이지만 어떤 사람은 존재가 둘이다어떤 사람은 그의 속사람과 겉사람이 하나이고 어떤 사람은 그의 속사람과 겉사람이 분리되었다.


속에 한 인격밖에 없는 사람은 어떻게 행동하는가이런 사람은 일할 때 온 존재가 그 사무에 빠져 하나님의 면전에서 나가 버린다기도할 때에는 모든 일을 던져 버리고 하나님 면전에서 온 존재로 기도한다그는 온존재를 사용하여 일을 하고 온 존재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면전에서 기도한다그러므로 이 사람은 자주 나가 버리고 또 자주 들어와야 한다.이 사람은 겉사람이 아직 파쇄되지 않는 사람이다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의 겉사람이 주님에 의해 파쇄되어 겉사람이 그의 속사람에게까지 영향을 주지 못한다이런 사람은 겉사람으로 밖의 일을 하면서 속사람으로는 항상 하나님 면전에 있고 하나님과 함께 있다또 언제든지 속사람을 사람 앞에 나타내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돌이키기만 하면 속사람이 나온다그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끊어지지 않았다그러므로 문제는 그 사람이 한 사람이냐 아니면 두 사람이냐에 있다바꾸어 말해서 이 사람의 겉사람과 속사람이 분리되었는가에 있다이 분리는 매우 중요하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고 분리의 체험을 가졌다면 비록 밖으로 당신이 활동할지라도 당신 속의 다른 사람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한 사람은 밖에서 일하고 다른 한 사람은 하나님 면전에 있다이럴 때 밖의 일은 겉사람만을 상관하고 겉사람에서 멈추며 속사람에게까지 영향을 주지 못한다하나님의 임재란, 겉사람은 밖의 일을 하고 속사람은 하나님 면전에 있으며 이 둘이 섞여지지 않은 것임을 인식하라이것은 마치 로렌스가 밖으로는 일에 분주했지만 다른 한 사람은 하나님 면전에 있었고 하나님의 임재에서 한시도 끊어어지지 않았던 것과 같다이럴 때 사역에서 많은 시간이 절약된다많은 사람들의 속사람과 겉사람이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동안 그의 온 존재가 나가야 하고 얼마 후에는 온 존재가 다시 돌아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일을 처리할 때 어려움에 부딪히는 이유는 속사람이 겉사람을 따라 함께 갔기 때문이다만일 속사람과 겉사람이 분리되었다면 속사람은 움직일 필요가 없이 겉사람만 가서 일을 처리하게 된다그럴 때 밖의 일들은 잘못 처리되지 않는다이런 상태는 밖의 일들로 혈기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 주며 또한 우리 속사람으로 그것에 만진 바 되지 않게 한다총괄적으로 말해서 사람의 영이 쓰임을 받을 수 있는가는 하나님의 두 가지 역사에 달려 있다하나는 우리 겉사람을 파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영과 혼을 분리시키는 것이다다른 말로 하면 우리 속사람과 겉사람을 분리시키는 것이다하나님이 우리 몸에서 이 두 가지 역사를 이룰실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영을 사용할 수 있다겉사람의 파쇄는 성령의 통제로 말미암은 것이고 겉사람과 속사람의 분리는 성령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다.

 

 

3 , 수중(手中)에 든 일

 

수중(手中)에 든 일


먼저 이 장의 제목을 약간 설명을 하겠다가령 어떤 아버지가 자기 아들에게 어떤 일을 시켰는데도 불구하고(이것은 아버지의 부분이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내 수중에 일이 남았으므로 수중에 든 일을 다 마치면 아버님의 분부하신 일을 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하자이것이 내가 말하는 ‘수중에 든 일’ 이다‘수중의 일’ 이란 아버지가 아들에게 분부하기 전에 아들이 이미 수중에 쥐고 있는 일을 가리킨다우리에게는 누구나 다 수중에 든 일이 있다하나님의 일을 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라고 하시는 일은 제한을 받게 된다수중에 일이 없는 사람은 정말 찾기 어려우며하나님이 말씀하시기 전에 우리 손에는 항상 수중의 일이 있다.겉사람이 아직 파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항상 수중에 든 일이 있기 때문이다우리 겉사람은 겉사람의 일과 물건과 수고를 갖고 있고 또 각기 다른 작용이 있다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 우리 영 안에서 역사하시려고 할 때 우리 겉사람은 하나님의 요구에 응하지 못한다바로 이 수중에 든 일이 우리로 하여금 참되게 영적으로 유용한 사람이 되지 못하게 한다.


겉사람의 힘은 한계가 있다


우리 사람의 힘은 한계가 있다가령 몸집이 크지 않고 오십 근밖에 질 수 없는 한 형제에게 열 근을 또 지게 한다면 그는 지지 못할 것이다그는 한계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한계 밖의 일을 할 수 없다그가 이미 오십 근을 지었다면 열 근을 더 질 수 없는 것이다그가 이미 진 오십 근이 그의 수중에 든 일이다이것은 육신의 힘을 비유한 것이다우리 육신의 힘에는 한계가 있고 우리 겉사람의 힘도 한계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육신의 힘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들의 겉사람의 힘도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겉사람의 힘을 낭비해 버린다가령 어떤 사람은 그 부모를 사랑하는 데 그의 힘을 다 쏟는다그래서 그는 한 형제를 사랑할 힘이나 다른 사람을 사랑할 힘이 더이상 없게 된다그의 힘은 그 정도뿐이고 또 다 써버렸기 때문에 다른 데 쓸 힘이 없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생각도 한계가 있다어느 누구도 무한량한 생각을 가질 수 없다만일 사람이 어떤 주의를 많이 갖고 그 일에 생각을 많이 두었다면 그에게는 다른 일을 생각할 여력이 없게 된다로마서 8장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다고 말한다그러나 왜 어떤 사람에게는 이 생명의 성령의 법이 효능을 발휘하지 못하는가성경은 영을 좇아 행하는 너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 준다고 말한다바꾸어 말해서 생명의 성령의 법은 오직 영에 속한 사람에게만 효능을 발휘한다그러면 누가 영에 속한 사람인가신령한 것을 생각하는 사람만이 영에 속한 사람이다신령한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육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육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만이 영의 일을 생각할 수 있다. <생각한다> <유념하다> 또는 <주의하다>로 번역될 수 있다가령 어느 어머니가 외출할 때 아기를 친구에게 위탁하면서 <나를 위하여그를 주의해주려므나>라고 말했다 하자그를 주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그를 계속 주시한다는 것이다사람은 오직 한 가지를 유념할 수 있을 뿐 두 가지를 유념할 수 없다누가 당신에게 아기를 맡길 때당신은 아기를 주의하면서 산에 있는 소와 양을 동시에 관심할 수 없다. 육신의 일을 유념하지 않는 사람만이
영의 일을 유념할 수 있고 영의 일을 유념하는 사람만이 성령의 법의 효능을 얻을 수 있다우리의 생각의 힘은 한계가 있다우리가 육신을 위해 생각의 힘을 다 써버렸다면 영적으로 우리는 우리 생각의 힘을 쓰지 못하게 되고 따라가지도 못하게 된다만일 우리가 육체의 일에만 유념한다면 우리는 더이상 영의 일에 유념할 힘이 없게 된다.


우리는 우리 겉사람의 힘이 유한(有限)한 두 어깨와 같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아야 한다그러므로 당신의 수중에 든 일이 있을 때 당신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수중의 일이 있는 만큼 하나님을 섬기는 힘도 그만큼 감소된다수중의 일은 진실로 하나의 장애요 아주 큰 저해 요소이다.


가령 어떤 사람의 감정에 수중의 일이 있다 하자그가 여러 가지 분란한 사모함과 바램이 있어서 이것도 원하고 저것도 원하며이것과 저것에 대하여 다 느낌이 있을 정도로 수중의 일이 많은 상태에서 하나님의 요구가 임한다면그는 더이상 사용할 수 있는 감정을 가질 수 없다왜냐하면 그가 그 감정을 다 써버렸기 때문이다적어도 그는 하루 이틀간 필요한 감정을 다 써버렸다이틀이 지나야만 무언가를 느낄 수 있고 말할 수 있게 된다당신의 감정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코 무한하게 그것을 사용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그 의지가 강하고 그 됨됨이도 매우 강인하다면 그 사람의 의지가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그러나 많은 강인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일을 결정할 때에는 의지가 우유부단하여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고 한다겉보기에 그는 강인한 사람 같지만 하나님의 일에서 의지를 사용해야 할 때 보면 참으로 의지를 사용할 줄 모른다어떤 사람은 자기 주장을 잘 내세운다그는 어떤 일에서든지 자기의 주장을 갖고 이랬다가 또 저런다그러나 정말 영적인 일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판단할 때 그는 우유부단하고 속수무책이며 어떻게 결정해야 할 지를 모른다원인은 어디에 있는가원인은 그의 겉사람이 수중에 든 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이 사람의 손과 눈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있어서 이것에 의해 온 존재가 소모되고 그의 겉사람의 온 힘이 다 사용되고 소모되었다.


우리 겉사람의 힘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수중의 일이 있을 때 우리 겉사람은 제한을 받게 된다.


영은 파쇄된 겉사람을 사용한다


겉사람이 제한받을 때 우리의 영도 제한을 받는다왜냐하면 영은 겉사람을 넘어서서 우리 몸에 역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하나님은 사람의 영을 넘어서 그분의 영으로 사람의 몸에 역사하지 않으신다또한 하나님은 우리 겉사람을 넘어서서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 사람에게 역사하지도 않으신다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원칙이므로 우리는 이에 대해 분명해야 한다성령은 사람을 넘어서서 사람의 몸에 역사하지 않으신다우리의 영도 우리 겉사람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의 몸에 역사할 수 없다.우리의 영은 우리 겉사람을 거쳐야 다른 사람에게 역사할 수 있다그러나 언제든지 우리 겉사람에게 수중에 든 일이 있어 그것에 의해 온 힘이 다 소모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시키신 일을 할 수 없게 된다사람의 영이 길을 얻지 못할 때 성령도 길을 얻지 못한다속사람을 대항하고 속사람을 저지하며 속사람을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겉사람이다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겉사람이 파쇄될 필요성을 거듭 강하게 말한 것이다.


겉사람에게 수중의 일이 있을 때 속사람은 출구를 얻을 길이 없고 하나님의 역사도 제한을 받게 된다수중의 일은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기 전에 이미 추진되어온 일이다바꾸어 말해서 수중의 일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일이 아닌 것이다수중의 일은 하나님의 명령과 하나님의 능력을 필요로 하지않고 하나님의 정하심이 없어도 진행될 수 있는 일이다수중의 일은 하나님의 손 아래 복종하지 않은 일이고 단독적으로 행동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겉사람을 깨뜨린 후에야 당신의 겉사람을 사용하실 수 있다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깨뜨린 후에야 당신의 사랑으로 형제들을 사랑하실 수 있으시다당신의 겉사람이 깨지지 않을 때 당신은 자기 일만 하고 자기의 길을 가며 자기 사람만 사랑하게 된다하나님께서는 먼저 당신의 겉사람을 깨뜨린 후에야 파쇄된 당신의 사랑으로써 다른 형제를 사랑하게 하신다이럴 때 당신의 사랑은 확충된다.겉사람이 파쇄되어야만 속사람이 흘러나온다남을 사랑하는 것은 속사람이지만 그는 겉사람을 사용하여 남을 사랑한다.겉사람에게 수중의 일이 있다면 속사람은 흘러나오는 통로를 읽게 된다우리의 의지도 강하다강할 뿐만 아니라 더욱 강팍하다속사람이 의지를 필요로 할 때 협력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겉사람의 의지가 단독적으로 행동하고 이미 수중에 일이 있기 때문이다하나님은 강하게 우리의 의지를 강타하여 깨뜨리신다우리가 잿더미 속에 없드려, <주여, 저 홀로 생각하지 않고 무엇을 구하지도 않으며 어디서나 범사에 당신을 필요로 합니다>라고 말하기까지 우리를 깨뜨리신다우리가 이런 단계에 이르기까지 매를 맞을 때 비로소 우리의 의지는 단독적으로 행동하지 않게 되고 우리 속사람도 이 의지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겉사람이 그분께 쓰임받지 못할 때 속사람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몸이 없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씀을 전할 수 있는가입이 없다면 어떻게 설교할 수 있겠는가설교할 때 영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설교에는 또한 구변이 필요하다입 없이 영만 가지고 설교를 할 수 있는가오순절날 성령의 역사가 있었지만 또한 구변이 주어졌다구변이 없다면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강론할 수 없다사람이 할 말이 없을 때 하나님의 말씀도 없는 것이다곧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통하여 전파된다사람에게 말씀이 없을 때 하나님의 말씀도 없다사람의 말이 있어야만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가령 한 형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데 그의 영 안에 말씀이 있고 부담도 있으며 또 그 부담이 상당히 강하다 하자만일 그에게 합당한 생각이 없다면 그는 결코 그 부담을 해방하지 못하고 그 부담마저도 잃을 것이다우리는 부담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영 안에 부담으로 가득찻을 때 그것을 전달할 생각이 없다면 부담이 무익하고 부담이 제한을 받는다는 말이다우리는 결코 영 안의 부담만으로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우리 영 안의 부담은 반드시 생각으로 말미암아 밖으로 나타나야 한다우리 속에 부담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또한 입과 목소리가 있어야 하고 신체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오늘 문제는 우리 속사람은 하나님의 쓰임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부담을 얻을 수 있는 상태이나 우리 겉사람의 생각이 온 종일 분주하고 분란하며 계속 방법만을 생각해내려고 하는 데 있다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영은 결코 출구를 얻을 수 없다.


오늘 하나님의 영은 사람을 통하여야 나올 수 있다즉 사람의 사랑이 있어야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사람의 생각이 있어야 하나님의 생각이 있다는 말이다사람의 결정이 있어야 하나님의 뜻이 있다그러나 사람의 문제는 겉사람이 자기 일을 하고 자기 관점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 생각을 갖고 있는데 있다겉사람이 겉사람의 일로 분주할 때 속사람은 나아갈 길이 없게 된다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겉사람을 깨뜨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이는 의지를 없애버린다는 말이 아니라 의지 안에 있는 수중의 일을 없에 버림으로써 의지가 단독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게 한다는 말이다생각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요 생각을 쓰지 않고 방법을 쓰지 말라는 말도 아니라 방랑하는 자기 생각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다감정도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속박받고 속사람의 통제를 받는다는 것이다이렇게 할 때 속사람은 쓸만한 의지와 생각과 감정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영에는 그 자체를 표현하기 위한 감정이 필요하고그 자체를 표현하기 위한 생각과 의지도 필요하다영은 죽어 있는 겉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고 살아 있는 겉사람을 필요로 한다영은 원래 그대로의 겉사람이 아닌 매맞고 상처나고 파쇄된 겉사람을 필요로 한다오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 몸에서 출구를 얻지 못하는 데 있다하나님의 영은 우리의 영 안에 거하신다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영으로부터 나올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우리 겉사람이 이미 다른 것으로 채워졌고 수중의 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하나님이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사 우리 겉사람을 파쇄하시고 속사람이 나오는 출구를 얻을 수 있으시기를!


하나님은 우리 겉사람을 소멸하지 않으신다그 반면에 하나님은 우리 겉사람이 원래 그대로 완벽하고 파쇄되지 않은 상태로 있는 것도 허락하지 않으신다하나님은 우리 겉사람을 통과하시기를 원하신다하나님은 우리의 영이 우리 겉사람을 통하여 남을 사랑하기를 바라시고 겉사람을 통하여 생각하며 결정하기를 원하신다하나님의 역사는 파쇄된 우리 겉사람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려면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이 기본적인 다룸을 받아야 한다우리 겉사람이 파쇄되지 않았다면 주님은 우리에게서 출구를 얻지 못하신다주님은 우리 겉사람을 통해서만 다른 사람에게 미치신다겉사람이 파쇄되지 않을 때 속사람과 겉사람은 대립 관계에 있게 된다속사람과 겉사람은 각각 완전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겉사람은 완전하고 독립된 겉사람의 상태로 있다그 결과 겉사람은 자유롭고 그 안에 수중의 일이 가득하지만 속사람은 감금되어 버린다그러나 겉사람이 실지로 파쇄된 후 겉사람은 더이상 단독적으로 행동할 수 없게 된다겉사람이 소멸되지는 않았지만겉사람은 더이상 속사람과 대립된 관계에 있지 않고 속사람의 통제를 받는다이렇게 될 때 우리 몸에는 오직 한 인격이 남게 된다겉사람은 속사람이 사용하기 위한 통로같은 것이 된다.


겉사람이 파쇄된 사람은 안팎이 일치되며 겉사람이 속사람의 통제를 받는다구원받지 않은 사람도 일치됨이 있지만 그 순서를 뒤바꿔서 속사람이 겉사람의 통제를 받는다구원받지 않은 사람에게도 영이 존재하지만그의 겉사람은 속사람을 넘어 뜨릴 정도로 힘이 강하다그의 속사람에는 약간의 양심의 항의만이 남아 있다구원받지 않은 사람의 속사람은 겉사람에 의해 완전히 넘어뜨림을 당하고 겉사람에게 복종한다사람이 구원받은 후에는 방향을 바꾸어서 겉사람이 완전히 파쇄되어 속사람의 말을 들어야 한다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겉사람이 속사람을 다스리는 것과 같이 이제 우리들은 방향을 바꿔서 속사람으로 겉사람을 완전히 다스리게 해야 한다자전거를 타는 것에 비유한다면두 가지 상황이 있을 수 있다하나는 바퀴가 길 위를 굴러 가는 것이고 다른 경우는 길이 바퀴를 굴러 가게 하는 것이다평지를 다닐 때에는 페달을 밟으면 바퀴가 돌기 때문에 이것은 바퀴가 길위를 굴러가는 것이다그러나 내리막길에서는 페달을 밟지 않아도 바퀴가 돌아가기 때문에 이것은 길이 바퀴를 굴러가게 하는 것이다속사람이 강건하고 겉사람이 파쇄되었을 때에는 우리가 비퀴로 길 위를 굴러가는 것이므로 굴러 갈 것인가 굴러가지 말 것인가의 권한은 우리에게 있다우리가 빨리 가려면 빨리 갈 수 있고 느리게 가려면 느리게 갈 수 있다그러나 만일 겉사람이 강하고 파쇄되지 않았다면 이것은 내리막길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같이 길이 우리를 굴러가게 하는 것이다일단 그 길이 우리를 굴러가게 하면 우리는 자전거를 멈출 길이 없다이것이 겉사람이 속사람을 통제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유용한가의 여부는 그의 영이 겉사람 안에서 나올 수 있는가를 보면 된다우리의 속사람이 나오지 못할 때가 바로 겉사람이 역사할 때이다그 때가 바로 겉사람이 단독적으로 행동하고 밖의 길이 바퀴를 굴리고 있을 때이다만일 주님의 은혜로 우리 밖의 내리막길이 완전하게 평탄하게 된다면곧 겉사람이 파쇄되고 겉사람의 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어떤 것의 결정도 내리지 않는다면 속사람은 능히 밖으로 나올 수 있다이 때 속사람은 겉사람의 저지를 받지 않고 자유로이 나올 수 있게 된다만일 주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사 우리 겉사람이 파쇄된다면 우리는 영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우리 영은 나와야 할 때 즉시 나올 수 있게 된다.


교리가 아닌 사람의 문제이다


우리가 교리를 배웠다고 해서 사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기본적인 문제는 사람의 어떠함에 있다사역은 우리 사람의 어떠함이 하는 것이다문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다룸을 받았는가에 있다옳은 교리를 사람들에게 준들 교회에 생명을 공급할 수 있겠는가그러므로 기본적으로 배울 공과는 여러분이 쓸만한 그릇이 되는 것이다우리가 쓸만한 그릇이 되기 위하여는 우리 겉사람이 파쇄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끊임 없이 우리 몸에 역사하신다바로 우리가 그 역사에 대해 분명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은 매일 우리를 깨뜨리고 계신다수년간의 고통과 어려움과 수차 하나님의 저지하는 역사가 우리 몸에 있었을 것이다당신이 이렇게 하려고 할 때 하나님이 가로막으셨고 저렇게 하려고 할 때에도 가로막으셨을 것이다이 모든 환경에서 만일 당신이 아직 하나님이 당신에게 무슨 일을 하시려고 하는지를 모른다면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라. <하나님이여! 내 눈을 열으사 당신의 손을 보게 하소서많은 경우에 나귀의 눈이 자칭 선지지라하는 사람의 눈보다 훨씬 밝다나귀의 눈은 이미 여호와의 사자를 보았건만 자칭 선지자라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나귀는 하나님의 저지함을 알았건만 자칭 선지자라는 사람은 저지함을 몰랐다우리는 파쇄가 우리에게 있는 하나님의 길임을 알아야 한다.


수 년 동안 하나님은 한 단계 한 단계 우리 겉사람을 깨뜨리고자 하셨다하나님은 우리가 완전한 자로 남아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파쇄하신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떤 사람은 그에게 부족한 것이 교리라고 생각하고, 교리를 좀더 들을 수 있고 설교 자료가 더 많고 성경 해석을 좀더 많이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길이다하나님의 손이 당신의 몸에서 하시는 한 가지 일은 바로 당신을 깨뜨리는 것이다하나님은, 당신이 자기 뜻을 좇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좇으며 자기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을 좇으며 자기 결정을 좇지 않고 하나님의 결정을 좇을 정도로 당신을 완전히 깨뜨리고자 하신다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이 한 차례 한 차례 우리를 가로막으시는데도 이것 저것을 원망하는 데 있다또 그 선지자같이 자기는 하나님의 손을 보지 못하면서도 나귀에게 달리지 않는다고 나무란다.


우리의 모든 환경은 다 의미가 있다모든 환경에는 다 하나님의 안배하심이 있다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이 안배하시지 않고 우발적으로 발생한 일이라고는 없다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안배하심에 순복해야 한다우리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안배하신 분이 하나님이고 그분이 우리에게 목적을 갖고 계시고 범사에 우리를 치신다는 것을 볼 수 있도록 우리 눈을 열어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심으로 우리가 환경 안에서의 하나님의 안배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될 때우리의 영이 나올 수 있게 되고 우리의 영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기도가 아닌 법의 문제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다루시고 겉사람을 파쇄하시며 영을 나오게 함으로써 우리의 영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이것은 우리의 기도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에 의한 것이다이 말은 무슨 뜻인가이는 우리 속사람이 파쇄된 겉사람을 통과하여 밖으로 나온 이것은 하나님의 법이라는 말이다우리의 기도로 이 법더러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


법은 기도로 바꿔질 수 없다당신이 기도하면서 손을 불속에 넣는다 할지라도 당신의 손은 여전히 타고 아프다. (이것은 기적이 아닌 자연적인 것이다). 당신의 기도는 결코 그 법을 개변(改變) 할 수 없다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법에 순복하는 사람이 되기를 배워야 한다기도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말라손을 태우지 않으려면 손을 불에 넣지 말아야 한다한 면으로 기도하면서 또 한 면으로 손을 불에 넣지 말아야 한다하나님은 법대로 우리를 다루신다속사람이 겉사람을 거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은 하나의 법이다당신의 겉사람이 깨져서 가루가 되지 않는 한속사람은 나올 수 없다어쨌든 이것은 주님의 길이기 때문에 당신의 겉사람이 깨져야 주님은 출구를 얻으실 수 있다우리는 결코 이 법을 거스리면서 이런 저런 축복을 달라고 기도하지 말아야 한다이런 기도는 아무 소용이 없다당신의 기도는 하나님의 법을 고칠 수 없다.


영적 사역의 길은 하나님으로 우리에게서 나오시게 하는 것이다오직 이 길만이 하나님의 합당한 길이다복음은 파쇄되지 않은 사람에게서 출구를 얻지 못하고 하나님도 그런 사람에게서 출구를 얻지 못한다그 사람 자신도 갈 길이 없다우리 자신은 정말 주님 앞에서 엎드려져야 한다하나님의 법에 순복하는 것이 많은 기도보다 훨씬 낫다무지하게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고 이런 저런 일을 이루어달라고 간구하는 것은 한순간 하나님의 길을 아는 것보다 훨씬 못하다이런 기도는 무익하다더 좋은 것은 이런 기도를 멈추고 하나님께, <하나님, 당신 앞에 자신을 부복시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 우리는 축복을 사모하지만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보지 못한다우리는 그분의 빛 비춤을 구하고 그분의 수하에 순복하기를 배워야 하며 이 법에 순복해야 한다이 순복이 곧 축복이다.





4 , 어떻게 사람을 아는가

 

사람을 아는 것의 중요성


사역하는 우리들에게 한 가지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사람을 아는 것이다어떤 사람이 우리 앞에 왔을 때 우리는 그의 영적인 상태를 알아야 하고본래 그가 어떤 사람이었고 지금 그가 어디에 와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우리는 그가 입으로 한 말과 마음 속에서 진정하고 싶은 말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그가 입으로 한 말과 그의 마음 속에 품은 것이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야 하고 그가 우리 앞에서 무엇을 숨겼는지를 알아야 한다그의 겸손한 허위성을 알 수 있어야 한다우리의 사역의 효율성은 사람의 영적인 상태를 아는 정도와 큰 관계가 있다만일 우리의 영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앞에 온 사람의 상태를 보여주신다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 적절한 말로 답할 수 있게 된다.


복음서에서 우리는 주님 앞으로 나온 각 사람들에게 그분이 적절한 말씀을 해주신 것을 볼 수 있다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거듭남의 말씀을 하지 않으셨고니고데모에게는 생수의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니고데모에게는 중생의 말씀을사마리아 여인에게는 생수의 말씀을 하신 것은 얼마나 적절한지주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그분은 그들을 부르셨고 그분을 좇고자 하는 자들에 대하여는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셨다자원하는 자에게는 대가를 계산해 보라고 말씀하셨고 느릿 느릿 따라오는 자에게는 죽은 자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주님은 모든 사람을 아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주신 말씀은 다 적절한 것이었다주님 앞으로 나온 사람이 그분을 찾으러 온 사람인지아니면 그분을 시험하러 온 사람인지를  그분이 다 아셨기 때문에 그들에게 하신 주님의 모든 말씀은 다 효과적이고 적절한 것이었다사람의 필요를 채우는 일에 있어서 주님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시며 우리는 멀리서 그분을 따르고 있다비록 우리가 멀리서 그분을 따라간다 할지라도 우리는 방향을 바꾸지 말고 한결같이 그분을 따라가야 한다.
우리가 그분처럼 사람을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의 긍휼이 있으시기를!


사람을 모르는 형제 앞에 한 영혼이 놓여질 때 그 형제는 어떻게 그를 다룰지를 모를 것이다그 형제는 말을 주관적으로 하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든지 그날 자기가 느꼈던 것만을 말해낼 것이다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그는 자기가 특별히 좋아하는 제목에 대해 말한다이런 일에 효능이 있겟는가모든 환자에게 똑같은 처방을 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 중 어떤 사람은 오직 한 가지 처방만을 갖고 있다그는 사람의 병을 잘 알지 못하면서도 사람의 병을 치료하고 있다그는 사람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분별하지 못하고 사람의 복잡한 상태를 알지 못하며사람의 영적인 상태를 아는 것을 배우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마냥 사람의 필요를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이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우리는 결코 한 가지의 영적인 처방을 가지고서 모든 영적인 병을 치료하기를 바랄 수 없다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우둔한 감각을 가진 사람은 사람을 분별할 줄 모르고 예리한 생각을 가진 사람만이 사람을 분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생각의 예리함과 감각의 우둔함은 사람을 분별하는 일에 있어서 똑같이 아무런 쓸 데가 없다사람는 결코 생각과 감각으로 사람들을 분별할 수 없다사람의 생각이 아무리 예리하다 할지라도 사람의 깊은 속을 드러내지 못하고 사람의 깊은 상태를 만질 수 없다사역하는 사람이 누구를 만날 때 해야 할 첫번째 기본적인 일은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람의 참된 필요가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것이다때로는 그가 대답한 말도 믿을 만한 것이 아니다그가 머리가 아프다고해서 정말 머리가 아픈 것인가머리가 아픈 것은 증세일 뿐 병은 머리에 있지 않을 수도 있다그가 당신에게 몸에 열이 있다고 말할지라도 그에게 열이 없을 수도 있다그가 당신에게 많은 말을 했을지라도 그가 한 말이 다 믿을 만하다고 할 수 없다자신이 앓고 있는 병을 아는 환자는 극히 드물다그는 자신이 어떤 병에 걸렸는지 모르기 때문에 당신에게서 무슨 병을 앓는지를 진단받고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결정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당신이 그에게 그의 필요가 무엇인지 말해보라고 해도 그는 정확하게 자신의 필요를 말해내지 못한다병리(病理)를 아는 사람영적인 문제를 처리하는 법을 배운 사람만이 그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말해줄 수 있다.


그의 필요에 대해 말할 때 당신은 억지로 그가 무슨 병에 걸렸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당신은 정확하게 그의 필요를 알아야 한다주관적인 사람은 환자에게 그가 상상했었던 병에 걸리도록 강요한다주관적인 사람은 어거지로 누가 무슨 병에 걸렸다고 말한다당신은 병들고 문제 있는 사람그리고 그 병에 대해 말해낼 수 없는 사람의 병을 말해줄 필요는 있으나 결코 당신의 주관적인 것으로써 그가 무슨 병에 걸렸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가 형제 자매들을 도울 수 있는가는 그들의 문제점을 알아내어 그들의 병세에 따라 처방을 내릴 줄 아느냐에 달려 있다만일 우리의 진단이 정확하다면 우리는 그들을 도울 수 있다혹 당신이 찾아낸 문제점을 당신이 도울 수 없다면 일은 쉬워진다당신은 당신이 어떤 사람의 영적 상태를 도울 수 있고또 당신이 도울 수 있는 한계 밖의 사람은 어떤 부류이며당신의 능력을 넘어선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당신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분별이 없어서는 안 된다당신이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당신의 최선을 다해서 도우라당신이 돕지 못하는 사람에 대하여는 주님께 이렇게 말하라. <주여, 이것은 제 능력의 밖입니다저는 이 병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저는 이것을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주여, 저에게 긍휼을 베푸소서혹 당신이 지체의 기능을 보고서 어떤 일을 어느 형제가 할 수 있고 어떤 일을 어느 자매가 할 수 있다고 느낀다면 그들이 하도록 양보하라당신은 당신에게 한계가 있기에 어느 정도까지밖에 도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우리는 우리가 모든 영적인 일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모든 영적인 일을 혼자 독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우리는 우리 자신의 한계를 보아야 하는 동시에 다른 지체가 주는 공급을 보아야 한다이럴 때 우리는 다른 형제를 찾아가서, <형제님, 이것은 저의 능력 밖의 일이요 당신의 일입니다>라고 말하게 된다여기서 우리는 동역자의 문제와 몸의 문제를 본다우리는 결단코 단독적으로 행동할 수 없다.


주님의 일을 하고 섬기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아는 것을 주님 앞에서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사람의 영적인 상태를 알지 못하고서는 결코 사역할 수 없다많은 사람의 영성이 공과를 배우지 못한 형제의 손에 의해 짓밟힌다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그들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그들은 주관적인 의지를 사람들에게 줄 수 있을 뿐 객관적인 필요를 만족시키지 못한다이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우리가 누구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그가 그런 병에 걸린 것은 아니다사람의 영적인 상태는 그의 어떠함에 따라 어떻게 되는 것이다우리의 책임이 사람들의 영적인 상태를 찾아내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에 문제가 있다면 우리는 결코 다른 하나님의 자녀들을 도울 수 없다.


사람을 아는 도구


환자를 보는 데 있어서 의사에게는 그를 돕는 많은 의료기구가 있는 법이다그러나 사람의 영적 상태를 측량하는 데에는
온도계나 엑스선 같은 어떤 의료기구도 없다그러면 우리는 무엇으로 한 형제에게 병이 있는지 아는가무엇으로 그가 걸린 병의 종류를 판단하는가하나님의 역사는 바로 여기에 있다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측정의 기준으로 삼으신다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질병이 있는지의 여부와 어떤 병에 걸렸는지를 측정할 수 있도록 우리 몸에 역사하신다주님은 이렇게 우리를 사용하신다이 일은 의사의 일보다 훨씬 더 어렵다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책임이 심히 막중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가령 이 세상에 아직 체온계가 발명되지 않았다 하자그때의 의사는 환자에게 손을 대기만 해도 그에게 열이 있는가를 알 수 있어야 했다그러므로 의사의 손이 곧 체온계였다그러기 위하여 의사의 손은 아주 예민해야 하고 또한 아주 정확해야 했다영적인 일에서의 원칙은 이런 것이다우리들은 일종의 체온계요 일종의 의료기구인 것이다그러므로 우리는 엄격한 훈련과 엄한 다룸을 거쳐야만 한다왜냐하면 우리 몸에 남은 그것이 장래에 다른 사람에게 남게 되고우리가 배우지 못한 공과를 결코 남에게 가르쳐 줄 수 없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우선적인 문제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배우 것이 있는가에 있는가에 달렸다우리가 완전하고 철저하게 배울수록 하나님의 일에서 더 크게 쓰임을 받게 된다우리의 배운 것이 적을 수록 즉 우리의 댓가가 적을수록 우리는 자신을 더 보류한다우리가 교만하고 마음이 비좁으며 의견이 많을 수록자신의 기쁨을 구하면 구할수록 우리는 주님 앞에서 유용한 사람이 될 수 없다우리 몸에 이런 것들이 아직 원래 그대로 남아 있다면우리는 결코 다른 사람의 이런 점들을 처리해줄 수 없다교만한 사람은 교만한 사람을 다룰 수 없고 마음이 비좁은 사람은 마음이 비좁은 사람을 다룰 수 없으며 외식하는 사람을 다룰 수 없다또 풀어진 사람은 풀어진 사람을 다룰 수 없는 것이다.당신이 어떤 종류의 사람이라면 그런 종류의 병을 정죄하지 않을 것이다또한 다른 사람이 어떤 종류의 사람이고 그가 어떤 병에 걸렸는지를 찾아낼 길이 없다육신의 의사가 다른 사람을 치료하고 자기는 치료하지 못할 수 있어도 영적인 일에서는 그렇지 않다사역하는 사람 자신이 곧 환자로서 자신의 병이 치료되어야만이 다른 사람을 치료할 수 있다.당신이 보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없고 당신이 통과하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으로 통과하게 할 수 없다당신이 배우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이 배우도록 인도해줄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이 곧 사람을 알기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기구임을 보아야 한다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믿을 만해야 한다우리의 느낌이 믿을 만해야 하고 우리의 진단도 믿을 만해야 한다당신의 감정이 믿을 만하게 되도록 주님께, <주여, 나를 풀어 놓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당신의 느낌이 믿을 만하게 되도록 하나님이 당신의 몸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역사를 하시게 해야 한다또한 당신이 그분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까지 그분으로 하여금 역사하시게 해야 한다만일 체온계 도수의 높낮음이 정확하지 않다면 의사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체온계는 반드시 정확하고 믿을만해야 한다사람의 영적 문제를 만지는 것은 사람의 몸의 질병을 만지는 것보다 훨씬 더 엄중한 것이다몇 배나 더 엄중한 것인지 모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각자의 생각과 감정을 갖고 있고 우리 개개인의 의견과 방법을 갖고 있어서 한 때는 이렇다 하다가도 저렇게 변하기 때문에 우리 자신들은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쓰실 수 없는 사람인 것이다우리가 하나님의 다룸을 거칠 때에야 비로소 쓰임을 받을 수 있다.


우리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는가하나님은 직접 사람에게 역사하시기를 원치 않으신다그분은 항상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신다사람에게 어떤 필요가 있을 때물론 한면으로 성령의 통제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안배하지만 다른 면으로 하나님의 역사는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곧 말씀의 사역자로 말마암아 이루어지는 것이다만일 말씀의 사역자의 공급이 없다면 결코 형제 자매의 영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없다이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이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다이는 곧 나의 유용성이 교회가 공급받을 수 있는가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예컨데 어떤 병은 일정한 도수에 이르러 병으로 인정한다가령 그것이 화씨 103도라 하자당신의 손으로 한번 만져 보고 아마 103도일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체온이 정확히 103도인가를 재어 보아야만 무슨 병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이 무슨 병에 걸렸는지를 측정하신다우리가 잘못된 느낌과 생각을 가지고 있고 잘못된 의견과 잘못된 영의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또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배운 공과도 부족한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질병을 진단한다는 것은 지나친 모험인 것이다만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정확하고 믿을 만하며 하나님이 신뢰하실 수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 몸에서 하나님의 영은 출구를 얻으실 수 있게 된다.


영적인 일의 기점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계속적인 교정을 받는데 있다온도계는 일정한 표준에 의해 제작되고 정밀 검사를 통하여 규정에 맞아야만이 사용할 때 정확하고 믿을 수 있다우리는 체온계와 같이 우리가 정확하지 않을 때 많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우리가 정확한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아주 철저한 다룸을 받아야만 한다우리는 의사이자 의사가 사용하는 기구이기 때문에 공과를 잘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사람을 아는 길 - 환자 방면


우리는 환자의 상태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이 문제는 두 방면 곧 환자의 측면과 우리 자신의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


환자의 방면에서 본다면 사람의 병을 발견하는 길은 무엇인가사람의 병을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돌출된 부분을 찾아내면 된다돌출된 부분은 가장 노출된 부분이다그 부분은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 없다교만한 사람은 교만을 노출시킨다그가 겸손을 나타내고 있을 때에도 그의 겸손은 교만한 것이다이것을 가장할 방법은 없다슬픈 사람은 그의 웃음까지도 슬픈 것이다당신이 어떤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런 종류의 상태를 노출시키기 마련이다사람이 어떠하면 당연히 그런 인상을 상대방에게 주기 마련이다.


성경은 수차 사람의 영적인 상태에 대해 말했다사람은 난폭한 영과 강팍한 영과 슬픔의 영을 가지고 있다사실상 우리는 한 사람의 영적 상태를 여러 가지 용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우리는 어떤 사람이 경솔한 영을어떤 사람이 침체된 영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이런 영의 상태는 어디서 나온 것인가영의 강팍함을 예로 들겠다이 강팍함을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영이 교만하다고 할 때 이 교만은 어디서 온 것인가영의 방탕을 말할 때 어디서 온 것인가정상적인 영은 본래 색깔이 없다본래 영 자체는 하나님의 영을 나타내는 것 외에 아무런 색깔이 없다그런데 왜 강팍한 영이 있고 나타나는 것 외에 아무런 색깔이 없다그런데 왜 강팍한 영이 있고 교만한 영, 방탄한 영용서하지 않는 영, 미워하는 영 등이 있는가이것은 겉사람과 속사람이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이요 겉사람의 상태가 속사람의 상태로 변했기 때문이다누구에게서 강팍한 영을 보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의 속에 영이 겉사람의 강팍함으로 옷입었기 때문이다교만한 영은 속사람 위에 겉사람의 교만이 입혀진 것이다미워하는 영은 속사람의 위에 겉사람의 미움이 덮여진 것이다이것이 바로 겉사람과 속 사람의 불일치인 것이다영 자체는 색깔이 없지만 겉사람의 색깔이 영의 색깔의 영의 색깔이 될 수 있다겉사람이 파쇄되지 않은 사람은 겉의 색깔의 색깔의 그의 영이 색깔이 된다.


본래 사람의 영은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색깔이 없었다그러나 우리 겉사람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영이 영향을 받는 것이다영이 교만하고 강팍한 이유는 전적으로 겉사람이 아직 파쇄되지 않았기 때문이요 겉사람의 상태가 영에 섞여졌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사람이 나올 때 겉사람의 상태가 그 영 위에 덮여져 영과 함께 나온다교만한 사람은 교만이 영에 씌여져 영과 함께 나오고 강팍한 사람은 그의 영에 씌워져 영과 함께 나온다질투하는 사람은 질투가 영 위에 씌워져 영과 함께 나온다그러므로 체험에 있어서 우리에게 교만한 영과 강팍한 영과 질투하는 영 등이 있는 것이다이것들은 영 자체의 색깔이 아닌 겉사람의 색깔이다그러므로 사람의 영을 깨끗게 하려면 그 사람의 영을 처리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그의 겉사람을 처리해 주어야 한다문제는 영에 있지 않고 겉사람에 있다사람의 영이 무슨 색깔을 가지고 나오는가에서 우리는 그가 어떤 일에서 파쇄하지 않는가를 알 수 있다.사람의 영이 어떤 영인지를 만졌을 때 당신은 그의 겉사람의 상태가 어떤가를 알 수 있고 그 일에서 그가 파쇄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는 겉사람의 이런 것들을 자신의 영에 섞으며 자신의 영 위에 씌우며 영에 이것들을 걸어 놓은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그의 영은 자유하지 못하고 겉사람의 이런 상태들을 옷입게 된다.


사람을 아는 길 - 우리 방면


우리 방면에서는 사람의 영의 상태를 어떻게 알수 있는가이 점을 우리는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우리 몸에 성령께서 주신 통제는 바로 하나님이 우리로 배우게 하신 공과이다성령의 통제가 한 번 있을 때 우리는 한 번 더 파쇄하고 성령의 통제를 받는 정도로 파쇄된다성령의 통제를 받은 그 일에서 우리 자신이 파쇄되는 것이다그러나 한 번의 통제와 한 번의 파쇄로는 충분하지 않다우리 몸의 많은 문제들이 여러 번의 통제와 파쇄를 거쳐야만 우리가 쓰임받을 수 있는 단계에 이를 수 있다우리가 영으로써 형제를 만질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영으로써 모든 형제를 만질 수 있다거나 영으로서 한 형제의 모든 영적 상태를 다 만질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이것은, 우리 자신이 성령의 통제를 받고 주님에 의한 파쇄된 일에서만 다른 형제의 동일한 일은 만질 수 있다는 뜻이다우리 자신이 주님에 의해 파쇄하지 않는 일이나 우리 영에 느낌이 없는 일이나 우리들이 영을 사용하지 못하는 일에서 우리는 결코 형제 자매들의 필요를 공급할 수없다바꾸어 말하면우리가 받은 성령의 통제만큼우리가 영 안에서 느끼는 만큼우리가 받은 파쇄만큼 우리의 영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우리 자신이 파쇄된 일에서만이 우리의 영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이것은 억지로 인정할 수 없는 영적인 원칙이다당신에게 이것이 있으면 있는 것이고없으면 없는 것이다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통제와 성령의 파쇄를 받아들여야 한다오직 연단을 많이 거친 사람만이 많은 봉사를 할 수 있다오직 많이 파쇄된 사람만이 많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오직 손실을 많이 본 사람만이 사람들에게 줄 것이 많다만일 우리가 어떤 일에서 자신을 구원하고자 한다면 그 일에서 우리는 자신의 영적인 용도를 잃을 것이다우리가 자신을 보류하고 자신을 용서한 일에서 우리는 영적 감각을 가질 수 없고 또한 영적 공급도 줄 수 없는 것이다이것은 기본 원칙이다.


오직 배운 사람만이 섬길 수 있다사람은 십 년에 걸쳐 배울 공과를 일 년 내에 다룰 수 있는가 하면 일 년에 배울 공과를
이삼십 년의 시간으로 배울 수도 있다만일 사람이 자신의 배움을 지연한다면 곧 자신의 봉사를 지연하는 것이다만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분을 섬길 뜻을 주셨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길이 파쇄의 길이요 성령의 통제를 받는 길임을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성령의 통제를 받지 않고 파쇄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지 못한다성령의 통제를 받은 정도에 따라당신의 파쇄된 정도에 따라 당신의 봉사가 정해진다이것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당신에게 이것이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것이다여기서는 사람의 감정이 쓸데 없고 사람의 총명도 쓸데 없다당신 몸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신 정도를 결코 속일 수 없다처리를 받은 사람일수록 사람을 알 수 있고 성령의 통제를 받은 사람일수록 더욱 영으로써 다른 사람을 만질 수 있다.


한 가지 우리가 아주 고통스러워하는 일이 있다그것은 많은 형제 자매들이 영적인 일에서 분별력이 없다는 것이다그들은 주님에게서 나온 것에 대해 감각이 없고 천연적인 것들에 대하여도 감각이 없다그들은 누가 머리로 사역하는지 감정으로 사역하는지를 감지하지 못한다그들이 이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너무 적게 배웠기 때문이다하나님의 영은 그분이 단번에 주셨지만 우리 영의 훈련은 일생의 문제이다우리가 한 번 더 배울수록 한 번 더 볼 수 있다어떤 일에서 당신이 주님의 엄한 다룸을 받았다면 다음에 그런 일이 다른 형제에게서 움틀 때 당신은 즉시 그것을 알게 된다그것이 많이 자라지 않고 조금 싹이 날지라도 그것을 안다주님이 우리 몸에서 역사한 만큼 사람의 상태를 아는 것이다영적인 감각은 하나씩 얻는 것이고 한 번씩 얻는 것이다사람이 몇 번의 느낌을 가질 수 있는가는 그가 몇 번의 다룸을 받았느냐에 달렸다가령 어떤 사람이 머리 속으로는 교만의 죄를 정죄하고 그 교리를 강론할 수 있으나 그의 영안에서는 교만을 그릇된 것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다른 사람의 교만이 나올 때 그의 영은 그것을 미워하지 않고 동정심으로 가득 찰 수도 있다그러다 어느 날 하나님의 영이 그의 위에 역사하여 그가 그의 교만을 보고 하나님의 다룸을 받았다면 그의 교만은 불태워질 것이다.' 결과적으로야 그가 변함없이 교만을 정죄되어야 한다는 교리를 하지만 한 가지 기본적인 차이가 있게 된다즉 어떤 형제에게서 교만의 영이 흘러나올 때 그가 잘못된 것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그는 그 형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낄 뿐 아니라 또한 그것을 거부하고 미워한다그가 하나님에게서 배우고 본 것이 그의 느낌을 주고 그로 그것을 거부하고 미워하게 한 것이다거부하고 미워한다는 말은 그런 느낌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말인 것 같다이 때부터 그는 그 병을 알기 때문에 그 형제를 도울 수 있게 된다왜냐하면 그가 그 병을 앓았었고 치료되었기 때문이다비록 그가 완치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더라도 최소한 약간은 치료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이것이 영적 지식의 근원이다.


하나님이 성령의 주신 것은 단번에 이루어지지만 우리가 영적 느낌을 얻는 것은 여러 번에 걸쳐 이루어진다배운 회수만큼 다양한 느낌을 갖게 된다한 번의 공과를 덜 배울 때 한 가지를 느낌을 잃게 된다그러므로 자신을 구원해서 무슨 소용이 있고 자신을 보존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자기 생명을 구원코자 라는 자는 생명을 잃어버린다우리는 자신을 보존하고 고통을 적게 받는 일에서 주님이 주고자 하시는 것을 얻지 못한다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 몸에서 그분의 손을 멈추시 않으시도록 그분께 간구해야 한다그분이 우리 몸에서 역사하시고 더욱 깊이 역사하시기를 바란다안타까운 것은 주님이 우리 몸에서 한 번을 역사해도 결과가 없고 두 번을 역사를 하여도 아무런 결과가 없는 것이다한 번 두 번 거듭된 일에서 우리는 주님의 손이 무엇을 하고자 하시고 주님의 하시는 역사가 무엇인줄을 모르고 심지어 그런 역사에 대항한다사람에게 영적인 비결과 영적인 분별력이 없는 이유는 바로 영적인 배움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다룸이 많으면 많을수록우리가 아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우리가 아는 일이 많으면 많을수록우리가 공급하는 사람도 많아진다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알기 바란다우리가 봉사의 범위를 확충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처리받는 범위를 확충해야 한다만일 우리가 봉사의 범위만을 확충하고 우리의 처리받는 범위를 확충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실행하는 방법


이런 다룸과 기본적인 배움을 가진 이후에야 우리의 영이 비로소 흘러나오게 되고 다른 형제를 만질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상태를 식별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사람의 영을 만지려면 입으로 그가 하는 말을 들어보아야 한다우리는 상대방이 입을 열기도 전에 그의 영을 만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그러나 이런 단계에 이른 사람은 극히 드물다일반적으로는 항상 사람이 입을 열기를 기다려야 한다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마음에 충만한 것을 입으로 말해낸다고 하였다사람의 의도가 어떠하든그의 수완이 어떠하든그가 입으로 한 말은 다 그의 마음 속에 충만한 것임에 틀림없다입으로 말하고 있을 때 자연히 그 사람의 영이 흘러나온다만일 그가 오만함 사람이라면 오만한 영이 나올 것이고 만일 그가 가식하는 사람이라면 가식의 영이 나오게 된다만일 그가 시기하는 사람이라면 시기의 영이 나오기 마련이다당신은 그의 말에서 그의 영을 만질 수 있다사람이 말을 하고 있을 때 당신은 그의 한 말뿐 아니라 그의 영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도 주의해야 한다우리는 사람의 말로가 아니라 사람의 영으로 그 사람을 알아야 한다.


한번은 주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 사마리아인들이 그분을 영접하지 않은 것을 보고 두 제자가 주님께 이렇게 말했다.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그들이 이렇게 말함으로 그들의 영을 드러냈다주님은 <너희는 무슨 영으로 말하는지를 모르는구나> (원문에 의해 <정신> <>으로 번역될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다여기서 주님은 사람의 말을 들을 때 그 사람의 영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신다말을 할 때 영은 함께 따라 나온다사람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당신의 마음 상태가 어떠하다면 당신의 말 속에 그것이 표현된다.


또 한 가지는, 사람의 말을 들을 때 그가 말한 일 자체보다는 그 사람의 영을 더 주의해야 한다가령 오늘 두 형제에게 문제가 생겼는데 갑은 을이 틀렸다고 말하고 을은 갑이 틀렸다고 말했다 하자이 일이 우리 앞에 놓여졌을 때 우리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일이 발생할 때 그들 둘만 있었고 아무도 그 때의 상태를 모른다그러나 두 사람이 입을 열 때 우리는 그들의 영이 어떤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그리스도인들 가운데의 옳고 그름은 일 자체의 옳고 그름에 있지 않고 영이 옳으냐 그르냐에 있다한 형제가 입을 열 때 비록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었지는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영이 잘못된 것은 알 수 있는 법이다당신은 상대편이 당신을 욕했다고 말하지만 당신의 영이 틀릴 수 있다모든 문제는 영에 있다영이 틀린 사람은 그 일 자체가 틀렸을 뿐 아니라 더우기 그 사람 자체도 틀린 것이다하나님 앞에서의 옳으냐 그르냐는 영으로 판단하는 것이지 다만 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그러므로 사람의 말을 들을 때 그의 영을 만질 줄 알아야 한다.


교회 안에서 많은 일들은 그 일 자체가 틀린 것이 아니라 영이 틀린 것이다만일 일 자체에 의해서만 판단한다면 교회를 다른 영역 안으로 이끌게 된다우리는 영의 영역 안에 머물러야 하며 일 자체의 영역 안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우리는 결코 일 자체 안으로 끌려갈 수 없다.


우리의 영이 나올 때 비로소 사람의 각종 영의 상태를 만질 수 있다때로 우리는 상대방의 영이 닫혀 있고 나오지 않은 것까지도 알 수 있다이 때 우리는 우리 영으로써 일을 판단하고 사람을 알아야 한다우리는 바울과 같이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고후5:16) 말할 수 있기를우리는 육체로 사람을 알 것이 아니라 영으로써 사람을 알아야 한다우리가 이 공과를 배울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일에서 갈 길이 있게 된다.

 

 

 

5 , 교회와 하나님의 역사

 

교회와 하나님의 역사


만일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안다면 우리는 겉사람이 매우 큰 장애임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우리는 오늘날 하나님께서 사람의 제한을 받고 계신다고 말할 수 있다하나님의 자녀들은 반드시 교회의 목적이 무엇이고 또 교회와 하나님의 능력과 그분의 역사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표현과 그분의 제한받으심


한때 하나님은 한 사람의 육신 속에 그분 자신을 두셨다이 사람은 바로 나사렛 사람 예수시다이 육신은 하나님의 제한이 될 수도 있었고 하나님의 풍성이 될 수도 있었다말씀이 육신이 되기 전에는 하나님의 풍성을 만질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그러나 말씀이 육신 된 이후 하나님의 역사와 그분의 능력은 육신 안에 있게 되었다즉 하나님은 이 육신을 떠나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이 육신의 제한을 받으신다는 것이다그러나 성경에서 우리는 주님의 육신이 하나님께 제한을 주지 않았다는 것을 본다그분도 하나님께 제한을 줄 가능성이 있었지만 실지로는 하나님께 제한을 주지 않으셨다반면에 이 육신은 하나님의 풍성을 충만이 표현하였다하나님의 풍성이 이 육신의 풍성이 되었다.


과거에 하나님은 이 육신 안에 그분 자신을 두셨지만오늘 그분은 교회 안에 그분 자신을 두신다오늘날 하나님의 능력은 교회 안에 있다오늘날 하나님의 역사 또한 교회 안에 있다복음서에서 하나님은 이 육신 밖에서 아무런 역사를 하지 않으셨고 그분의 모든 역사는 아들에게 주어졌었다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그분의 모든 역사를 교회에게 맡기셨다교회 밖에서 그분은 아무 것도 역사를 않으신다하나님은 단독으로 역사하지 않으시고 다른 것을 통하여 역사하지도 않으시며 오직 교회로 말미암아서만 역사하신다오순절부터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교회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다당시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완전하고도 아무 제한과 보류함이 없이 한 분 그리스도 안에 두셨던 것과 같이 오늘날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완전하고 무한하며 아무 보류하심이 없이 교회 안에 두셨다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교회의 책임은 상당히 막중하다교회는 하나님에게 제한을 줄 수 있고 하나님의 표현에 제한을 줄 수도 있다.


나사렛 사람 예수는 곧 하나님이시다그분 안에서 하나님은 표현되셨고 그분은 하나님에게 아무런 제한을 주지 않으셨다왜냐하면 그분은 안팎으로 완전히 하나님을 위했기 때문이다그분의 감정은 하나님의 감정이었고 그분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이었다그분이 이 땅에 살아 계셨을 때그분은 나는 내 뜻대로 행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아들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시지 않고 아들의 행한 모든 것은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다아들은 스스로 말하지 않았고그분이 말한 것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들은 것이다여기서 우리는하나님이 그분 자신을 두시고 그 안에서 말씀하실 수 있는 한 분을 볼 수 있다그분은 말씀이 육신 되신 분이시며 하나님이 사람 되신 분이시며 완전하신 분이시다어느 날 하나님이 그분 안의 생명을 사람에게 나누어주셔야 할 때 그분은 한 알의 밀로 땅에 떨어져 죽으심으로많은 밀알을 맺었다고 할 수 있다그분은 이 생명을 제재하거나 제한하지 않고 오히려 이 생명을 해방하셨다이와같이 오늘날 하나님은 교회를 그분의 그릇으로 택하사 교회 안에 그분 자신을 두셨고 그분의 능력과 역사를 또한 교회 안에 두셨다하나님은 교회로 말미암아 그분의 길을 얻고자 하신다교회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릇이고 하나님의 능력을 표현하는 그릇이며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그릇이다오늘 만일 교회가 하나님께 출구를 드린다면 그분은 그분의 능력과 역사를 행사하실 수 있다그러나 만일 교회가 이렇게 할 수 없다면 하나님께 제한을 드리게 된다.


복음서의 기본적인 가르침은 하나님이 한 사람 안에 계심이고서신서의 기본적인 가르침은 하나님이 교회 안에 계심이다복음서는 하나님이 다른 어떤 사람 안에 계시지 않고 오직 한 사람 안에 계셨으며다른 어느 사람 안에 계시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그리고 서신서들은 하나님이 어떤 단체 안에도 계시지 않고 오직 교회 안에 계시며어떤 다른 모임에 계시지 않고 오직 그분의 교회 안에 계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우리의 눈이 열려서 이 영광스런 사실을 보기 바란다.


이 영광스런 사실을 볼 때 우리는 자연히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우러러 보며, <하나님이여우리가 당신에게 너무 많은 제한을 드렸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실 때 전능하신 하나님은 조금도 제한을 받지 않으셨고 조금도 감소되지 않으셨었다오늘 하나님의 갈망과 목적은 교회 안에서 여전히 전능한 하나님으로서 아무 제한도 받지 않기를 원하신다오늘 하나님은 그분이 그리스도 안에 계셨을 때와 같이 교회 안에서 아무 방해 없이 그분 자신을 표현하기를 원하신다그러므로 만일 교회에게 제한이 있다면 하나님도 제한을 받으시게 된다교회의 무능함은 하나님의 무능함으로 변한다이것은 매우 엄숙한 문제이다우리는 이것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말해야 한다간단히 말해서 우리 모든 사람에게 있는 장애가 하나님의 장애로 변하고 우리 각 사람에게 있는 제한이 하나님의 제한으로 변한다는 것이다만일 하나님이 교회로부터 나타나실 수 없다면 하나님께는 출구가 없게 된다오늘 하나님의 길은 교회 안에 있다.


왜 성령의 통제가 이렇게 중요하고 영과 혼의 구분이 이렇게 중요한가왜 겉사람은 반드시 파쇄되어야 하고또 왜 성령의 통제로 말미암아 파쇄되어야 하는가이것은 다름이 아닌 하나님으로 우리 몸에서 출구를 얻으시게 하기 위한 것이다우리가 말한 것을 개인의 영적 체험에 불과한 문제로 오해하지 말라우리가 말한 것은 개인의 영적 체험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길과 관련되고 하나님의 역사와 관련된다우리가 하나님께 제한을 드리지는 않는가또 하나님이 우리 몸에서 자유하시는가는 아주 큰 문제이다오직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처리를 받고 파쇄되어야만 우리 몸에서 아무 제한을 받지 않으실 수 있다.


교회가 하나님으로 길을 얻으시게 하려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다루심을 받고 하나님으로 우리 겉사람을 파쇄하시게 해야 한다이 겉사람이 우리의 가장 큰 문제이다겉사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결코 교회가 하나님의 통로가 되는 문제도 해결될 수 없다만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사 우리 겉사람을 깨뜨리신다면그분은 사역에서 우리를 그분의 통로로 사용하실 것이다.


파쇄됨과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길


이제 우리는 겉사람이 파쇄된 후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고 말씀의 사역자가 될 수 있으며 복음을 전할 수 있는지를 보기로 하자.


성경 읽기


성경 읽기에 관하여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종류의 사람이 어떤 종류의 성경을 읽어낸다는 것이다많은 때 사람들은 자신의 불순종하는 생각분란한 생각, 그리고 스스로 똑똑하다는 생각으로 그들의 성경을 읽는다이렇게 할 때 그들이 읽어낸 성경은 그들의 생각일 뿐 성경의 영을 만지지 못한다만일 우리가 성경에서 주님 자신을 만나고자 한다면 우리의 불순종하는 생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생각들이하나님에 의해 파쇄되어야 한다만일 우리의 생각이 여전히 불순종하고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우리가 아무리 총명하다 하더라도 이 총명은 아무 쓸데 없다우리는 자신의 총명을 놀라운 것으로 보겠지만 하나님은 이것을 하나의 큰 장애로 보신다우리가 아무리 총명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자신의 총명함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생각 안에 들어갈 수 없다.


성경을 읽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가 갖추어야 한다첫째는 우리의 생각이 성경의 사상 안에 들어가는 것이고두번째는 우리의 영이 성경의 영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당신은 바울이든 요한이든 성경을 쓴 사람들이 성경의 어느 단락을 쓸 때에 생각한 그것을 생각해야 한다당신의 생각은 그들의 생각 안으로 들어가야 하고 그들의 생각이 시작된 데에 당신의 생각을 두어야 한다그들의 생각이 발전한대로 당신의 생각도 그렇게 발전되어야 한다당신은 저자가 생각해낸 이유를 당신도 생각해내야 한다저자가 생각한 가르침을 당신도 생각해내야 한다바꾸어 말하면 당신의 생각과 저자의 생각이 톱니바퀴 같아야 하고 저자의 톱니바퀴가 당신의 톱니바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당신의 생각이 바울의 생각 안에 들어가고당신의 생각이 요한의 생각 안에 들어가며성경의 사상 안으로하나님에 의해 계시된 사상 안으로 들어갈 때비로소 당신은 성경 말씀이 무엇을 말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성경을 읽을 때 자기의 생각을 주제로 하고 성경의 사상은 다만 자료로써 취하려고 한다그의 머리 속에서는 자신의 교리가 돌아가고 있고 그의 교리 속에 담을 자료를 성경에서 얻기를 바란다설교에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들의 설교를 오 분이나 십 분만 들어도 그들이 자기의 생각으로 성경을 인용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생각을 성경의 사상 안으로 넣는 것인지를 즉시 알게 된다이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른 두 한계 안에서의 설교이다어떤 사람이 성경대로 사람이 듣기 좋게 설교한다 할지라도 그의 생각이 성경의 사상과 완전히 위배되고 일치되지 않는, 상반된 상태에 있을 수도 있다그러나 정반대로 어떤 사람은 성경을 설명할 때 그의 사상이 성경의 사상에 들어가 있고 그의 생각이 성경의 사상과 일치되며 성경의 사상과 융화되어 있다이런 상태가 정상적이다그러나 이것은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자기의 생각이 성경의 사상 안에 들어가게 하려면 겉사람이 파쇄되어야 한다겉사람이 파쇄되지 않은 사람은 성경을 읽어도 문제가 있다우리에게 성경을 가르쳐 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성경을 잘 읽어내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말라이것은 우리의 어떠함이 좋지 못하고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의 제재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일단 당신이 하나님에 의해 파쇄되면 당신 개인의 활동은 없어지고 주관적인 생각도 사라지게 된다또한 당신은 점차적으로 다소 부드러워지게 되고조금씩이라도 주님이 무엇을 생각하시는지를 만지게 되며성경을 쓴 사람의 사상을 만질 수 있으며그것을 좇아 생각하기에 이르게 된다겉사람이 파쇄되어야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의 사상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이럴 때 겉사람은 더이상 당신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


성경을 읽을 때 당신의 생각이 성경 저자의 생각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성경의 사상 안에 들어가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그러나 이것은 초보적인 것이다이것이 없을 때 당신은 결코 성경을 읽을 수 없다그러나 이것만 있다고 해서 다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다만 어떤 사상이 아니기 때문이다성경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있다는 것이다베드로든 요한이든 마태이든 마가이든 성경을 쓴 사람이면 누구나 성령의 계시로 받아서 성경을 쓸 때그들은 한 면으로 자기의 생각을 따라 썼지만 다른 한 면으로 그들의 영이 성령을 따라 흘러나왔다는 것이다세상 사람들은 성경 안에 영이 있다는 사실과 선지자의 예언과 함께 영이 해방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만일 오늘 당신이 선지자의 말씀 전파를 들었다면당신은 그에게 말씀이 있고 어떤 사상이 있을 뿐 아니라 또한 당신 속에 만져지는 분명한 무엇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우리는 이것을 영이라고 부른다성경 안에는 사상이 들어 있을 뿐 아니라 또한 해방된 영도 있다그러므로 성경을 읽는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한 가지 조건은 당신의 영이 해방되어 성경의 영을 만지는 것이다당신의 영이 성경의 영을 만질 때 비로소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가령 개구장이 아이가 남의 집 유리창을 고의로 깨뜨려서 그 집주인이 그 아이를 심하게 책망하였다 하자아이의 모친이 이것을 알고서 역시 자기 자녀에게 한바탕 야단을 친다여기서 우리는 그 집주인이 아이를 책망한 것과 모친이 아이를 책망한 것 사이의 차이점을 한번 생각해 보자겉보기에는 두 가지가 별로 다른 것이 없지만 사실 그 안의 책망하는 <>은 다른 것이다그 집 주인의 책망은 화를 낸 것으로서 분노의 영이고그 모친의 책망에는 사랑과 훈계와 소망으로 가득하다모친의 책망은 소망과 훈계가 가득하고 사랑이 가득한 책망이다두 영은 완전히 다른 영이다이것은 아주 얕은 비유에 지나지 않는다.


성경을 쓴 저자의 영은 이것보다 훨씬 더 강하다성경을 쓰게 한 영은 영원한 영이다이 영은 오늘도 계시고 성경 안에 계속 충만되어 있다만일 우리의 겉사람이 파쇄되고 우리의 영이 해방되었다면 성경을 읽을 때 우리의 생각은 성경의 사상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뿐 아니라 또한 성경이 쓰여졌을 때의 영을 만질 수 있게 된다만일 당신의 영이 해방되지 않고 성경을 쓴 사람의 영을 만지지 못한다면당신이 어떤 방법을 써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이 때 성경은 당신에게 죽은 책에 불과하다그러므로 본론에 돌아가서 기본적인 문제는 겉사람이 파쇄되었느냐에 달린 것이다오직 우리 겉사람이 파쇄되고 우리의 생각이 유용하게 될 때 비로소 우리의 영이 해방될 수 있다또한 하나님은 이 일에서 우리의 제한을 받지 않게 된다모든 문제는 우리가 항상 하나님을 저지하는 데 있다심지어 성경을 읽는 일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저지하고 하나님께 자유로운 길을 드리지 못한다.


말씀의 사역


하나님의 역사에서한면으로 그분은 우리에게 그분의 말씀을 이해할 것을 요구하신다이것이 그분의 역사의 기점이다다른 한면으로 그분은 그분의 한 마디 혹은 몇 마디의 말씀을 우리의 영 안에 부담으로 두시어 우리로 하여금 그것으로 교회를 섬기게 하신다사도행전 6 4절은,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에 전무하리라>고 말한다.


헬라어에서 <말씀>이라는 단어에 <전하는 것>이라는 단어에 다 명사를 사용하였다그러므로 <말씀 전하는 것>을 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말씀의 사역>이 된다. <사역>은 섬김을 뜻한다말씀의 사역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람을 말한다우리의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이는 속에 말씀이 있으나 그것이 해방될 수 없다는 것이다어떤 사람은 영 안에 확실한 말씀과 속에 상당히 무거운 부담도 있고 또 그 말씀을 형제 자매들에게 알릴 느낌도 있는데 일단 강단에 서면 한두 마디를 해도 속에 부담이 여전하고 일분, 한 시간을 말해도 부담은 변함없이 무겁고 말씀을 해방할 수 없으며 그의 겉사람이 속사람의 부담을 전달할 수 없다그 사람이야 속의 부담을 밖으로 전하고 속의 말씀을 밖으로 전파하고 싶지만 그의 겉사람이 그에게 적합한 말씀을 주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말을 해도 그 무거운 짐은 여전히 남아 있다그가 사람들 앞에 나올 때에 부담이 무거웠는데 이제 그가 돌아갈 때에도 부담이 여전하다이것은 다름이 아닌 그의 겉사람이 아직 파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겉사람이 속사람을 돕기는 커녕 오히려 속사람을 저지하고 있다.


만일 그의 겉사람이 파쇄되었다면 그는 자연히 해야 할 말을 할 수 있게 된다속사람에게 어떤 부담이나 말씀이 있을 때 그의 겉사람의 생각은 속 사람의 뜻을 표현할 적절한 한 마디를 가질 것이다그의 속의 말이 해방될 때 그의 속 부담은 가벼워진다그는 말할수록 가벼움을 느끼고 이것을 자기 일로 느끼게 된다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를 섬기는 것이다그러므로 속의 부담은 겉사람의 생각의 적절한 말씀을 필요로 한다만일 겉사람이 파쇄되지 않아서 겉사람이 속의 뜻에 순종하지 않고 겉사람이 속의 느낌에 순복하지 않으며 속의 영을 순복하지 않는다면겉사람이 속의 느낌을 만지려고 할 때 해내야 할 적절한 말씀을 해내지 못하게 된다.결국 하나님은 그의 속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제재를 받으시게 된다하나님이 길을 얻지 못하실 때 교회도 도움을 얻지 못한다우리의 겉사람이 말씀의 사역에서 가장 큰 장애임을 기억해야 한다많은 사람은 총명한 사람만이 유용하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당신이 아무리 총명할지라도 겉사람은 결코 속사람을 대치할 수 없다오직 겉사람이 헐어지고 파쇄될 때만이 속사람이 해방되고 말씀이 겉사람을 뚫고 해방된다이 겉사람의 껍질을 하나님은 파쇄하실 것이다이 껍질이 파쇄될수록 영의 생명이 더욱 해방된다껍질이 영 안의 부담을 만류하려고 할 때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능력은 당신의 몸에서부터 교회 안으로 흘러갈 수 없고 당신은 말씀의 사역을 할 수도 없게 된다하나님의 생명과 능력은 말씀을 통해 공급될 때 가장 많다당신의 겉사람에게 매맞은 상처가 없다면 당신의 속사람은 나갈 길이 없게 된다이 때 말씀을 들으러 온 사람은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을지라도 생명을 만지지 못한다당신은 사람들에게 무언가 주고자 하나 그들은 얻지 못한다당신 속에 말씀이 있으나 겉사람은 그것을 말해내지 못하고 당신을 저지한다.


주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은 다 귀한 것이다어떤 사람은 그분의 옷자락을 만지자마자 그분의 능력을 얻었다주 예수님의 옷자락은 그분의 가장 바깥 부분이다그분의 가장 겉부분에서도 그분의 능력을 만질 수 있었다우리의 문제점은 속에 생명이 있으나 겉사람이 그것을 말해내지 못하는 데 있다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으나 밖에 저지함이 있고 나갈 길이 없는 데 있다이럴 때 우리 몸에서 하나님은 자유함을 얻지 못하고 자유로이 우리 몸에서 나가지 못하시게 된다.


복음 전파


복음을 들을 때 대게 사람들은 옳은 교리를 들었거나 사람의 감정이 격동되었기 때문에 주님을 믿었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무릇 감정이 격동되어 주님을 믿는다고 태도를 밝힌 사람들은 오래가지 못한다믿는 데 있어서 생각을 사용할 수 있고 감정을 사용할 수 있지만생각이나 감정만으로는 충분치 않다이는 사람이 구원받는 것이 감정이나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엎드러질 수 있는 것은 겉사람을 뚫고 당신의 영이 해방되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우리가 해방된 영을 가질 때 복음이 전파된다.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은 한 광부 형제가 있었다그가 쓴 <본것과 듣는 것>이라는 책은 그의 복음 전하는 체험을 말해준다이 책을 읽었을 때 우리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그는 특별히 학식 있는 사람이나 특별한 은사가 있는 사람이 아닌 아주 일반적인 형제였다그러나 그가 자신을 주님께 완전히 맡겼기 때문에 주님은 그를 귀히 사용하셨다그의 특징은 무엇인가그의 특징은 그의 겉사람이 파쇄되고 그가 해방된 영을 가진 데 있다그가 처음으로 말씀을 전한 때는 그가 구원받은 때인 스물 세 살 때였다그는 어느 집회에서 전도사의 설교를 듣고 영혼을 구원해야 한다는 마음이 간절하여 그 전도사에게 말씀을 전할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다그러나 강단에 서자 그는 한 마디도 말하지 못했다그의 마음은 영혼을 구원할 열성으로 가득 찼고 그의 눈물은 파도같이 밀려왔다결국 그는 두세 마디를 외쳤다그 때 하나님의 영이 집회 장소에 충만하여 사람들이 자신의 죄와 잃어버린 상태를 깨닫게 되었다여기 비록 나이는 어리나 겉사람이 파쇄된 한 사람이 있다그가 몇 마디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영은 해방되었고 사람들은 그로 인하여 구원을 얻었다그는 일생 동안 많은 사람을 구원하였다그의 역사를 읽어보면 우리는 그가 영이 해방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복음 전파의 길이다복음 전파의 길은 영의 해방에 있다겉사람의 강팍함이 사라지고 겉사람이 파쇄되었기 때문에 영이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사람을 볼 때마다 그를 구원해야겠다고 느낄 때 당신의 영은 해방된다이것이 기본적인 문제이다복음 전파는 전적으로 겉사람이 파쇄되고 속에 있는 영이 해방되어 사람들을 만지는데 있다사람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당신의 영이 다른 사람의 영을 만지고 하나님의 영이 해방되어 사람의 흑암의 영을 살렸기 때문이다만일 당신의 겉사람이 영을 묶는다면당신에게서 하나님은 길을 얻지 못하시고 복음도 당신에게서 출구를 얻지 못하게 된다우리가 겉사람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계속 주의해야 하는 이유는 모든 문제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우리 자신이 처리받지 않을 때 많은 교리를 외워도 아무 소용이 없다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우리의 영이 사랑의 영을 만지는 데 있다만일 우리의 영으로 사람의 영을 만진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엎드러질 것이다우리의 영이 해방될 때 비로소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엎드러진다.


이 수년 동안 하나님은 회복의 길을 걸어오셨다하나님은 우리가 믿고 구원받은지 수 년 뒤에야 죄를 처리하고 헌신하며 부르심받고 주님을 따르기를 원치 않으신다오늘날 주님은 회복의 길을 가고 계신다복음이 회복되어야 할 뿐 아니라 복음의 열매도 회복되어야 한다복음서나 사도행전에서 주님이 사람들을 구원하실 때와 같이 사람들은 구원을 받자마자 죄악에서 나와야 하고믿자마자 완전히 주님께 헌신되어야 하며 믿자마자 재물의 힘을 깨뜨려야 한다복음으로 회복의 길에 들어서게 하려면 복음 전하는 사람이 주님에게 출구를 열어 드려야 한다.


우리는 주님이 회복의 길을 가시기 위해 천국복음과 은혜복음이 하나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복음에서는 천국복음이 은혜복음과 구분되지 않았다나중에 은혜의 복음을 들었던 사람이 천국복음을 못들었기 때문에 은혜복음과 천국복음이 둘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그러나 또 어느 때인가부터 은혜복음과 천국복음과 하나가 되었다즉 주님을 영접한 사람이 곧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이 되고 주님을 영접한 사람이 또한 주님께 완전히 헌신한 사람이 된 것이다이때부터 사람들은 빈곤하게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강하게 구원을 받고 철저하게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 고개를 숙이고 복음이 회복되어야 할 뿐 아니라 복음 전하는 사람도 회복되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복음으로 하여금 사람들 가운데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 몸에서 해방되셔야 한다복음 전파에 큰 능력을 갈망한다면 더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만일 우리가 복음이 회복되기를 바라고 복음 전하는 사람이 회복되기를 원한다면우리는 모든 것을 다 드리며 주님께 이렇게 말해야 한다. <주여! 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드립니다당신이 내 몸에서 길을 얻으시기 원합니다교회도 내 몸에서 길을 얻기 원합니다당신을 저지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고 또한 당신의 교회를 저지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주 예수님은 한번도 하나님께 제한을 드린 적이 없으셨다그분은 하나님을 저지하신 적이 없었다근 이천 년 동안 하나님은 교회가 하나님에게 제한이 되지 않도록 교회 안에서 계속 역사하고 계신다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완전히 표현하고 하나님의 장애가 되지 않으신 것처럼 교회도 하나님을 완전히 표현하고 하나님의 장애가 되지 말아야 한다하나님은 단계적으로 그분의 자녀를 가르치시고 처리하시며 단계적으로 그들을 강탈하고 치신다하나님은 교회가 그분의 장애가 되지 않고 반대로 그분의 표현이 되는 날이 오기까지 계속 이렇게 역사하신다오늘 우리는 다만 고개를 숙이고 이렇게 말해야 한다. <주여! 저희는 참 부끄럽습니다주여, 우리가 당신의 역사를 지연시켰고 당신의 생명을 저지했습니다우리가 당신의 복음을 저지하였고 당신의 능력을 저지하였습니다우리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께, <하나님, 내 모든 것을 다 드리오니 내 몸에서 당신의 길을 얻으소서>라고 말해야 한다만일 우리가 복음이 철저하게 회복되기를 바란다면 우리 자신이 먼저 철저히 헌신되어야 한다우리의 복음 전파의 능력이 당시 교회의 능력보다 못하다는 것만 느끼고 당시의 헌신이 우리의 헌신과 다르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복음이 회복되려면 먼저 헌신이 회복되어야 한다두 방면이 다 철저하게 회복되어야 한다하나님이 우리 몸에서 나갈 길을 얻으시기를!

 

 

 

6 , 파쇄와 통제

 

헌신과 통제

우리 겉사람이 파쇄되기 위하여는 주님 앞에서의 우리의 헌신이 요구된다그러나 우리의 헌신만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없다헌신은 우리 편의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우리가 아무 조건이나 아무 보류함이나 제한 없이 하나님께 드린다는 뜻을 표하는 것일 뿐이다우리는  분이나   내에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맡길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분이나   내에 우리 자신을 완전히 처리하셨다는 말은 아니다우리가 완전히 자신을 헌신하고 싶어하는 것은 영적인 길에서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이것은 하나님이 그분의 역사를  마치셨다는 말도 아니다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있는가는 헌신의 전부가 아니다헌신이 있어야   아니라 또한 성령의 통제가 필요하다성령의 통제는 매우 중요하다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쓰임을 받을  있는 것과  관계를 갖고 있다우리의 헌신에다 성령의 통제가 있어야 유용한 그릇이   있다헌신이 없을  성령의 통제는 많은 경우 어려움에 처한다그러나 헌신은 결코 성령의 통제를 대치할  없다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통제를 주의해야 한다

헌신은 우리가 얻은  안에서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이고통제는 성령이 그분의  안에서 우리를 다루시는 것이다헌신은 우리가 깨달은 것에 따라 드릴  밖에 없다우리는 영적인 눈이 열린 정도에 따라 헌신할  밖에 없다우리의 헌신이 어떤 범위까지 포함하는지는 우리 자신도  모른다우리는 한량 없는 빛으로 가득한 사람이 아니다우리의 가진 빛은 상당히 한도가 있다우리가 가장  빛이라고 느끼는 것도 하나님은 흑암으로 보실  있다우리가 자신의 빛으로 하나님께 드린 것은 영영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시킬  없다바꾸어 말해서 하나님의 요구는 우리가 드린 것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것이다우리가 아는 것은 제한되었고 우리의 빛도 제한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드림은 자연히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없다

그러나 성령의 통제는 이와 완전히 다르다성령의 통제는 그분의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슨 필요가 있는지를 보시는 것이다우리가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는 것이다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필요가 있음을 아실  그분의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 겉사람을 파쇄하기 위하여 환경 안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환경을 안배하신다그러므로 성령의 통제는우리의 헌신을 훨씬 능가하고  배나  능가한다여기에 극히  차이가 있다성령의 역사는 하나님의 빛에 근거한다성령의 역사는 하나님이 보신 것에 따라 이루어진다그러므로 오직 성령의 통제만이 철저하고 완전한 것이다우리 자신은 우리가 어떤 환경을 당할지   없다우리가 가장 좋은 것을 택했다고  것에도 실수가 가득할  있다우리 자신이 우리의 필요라고 생각했던 것까지도 종종 하나님이 보시게에 그것은 우리의 필요가 아니다우리 편에서  것은 천분의 일의 영역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성령이 우리를 위하여 환경을 안배하실  성령은 하나님의 빛에 근거하여 안배하신다

성령이 안배한 통제는 우리의 상상을 훨씬 초월한다많은 경우 우리는 이런 통제를 받기 위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우리에게 그런 것이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에 성령의 통제가 임할  우리는 놀라고 이상히 여긴다환경에서 성령이 우리에게 안배해 주신 것은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다많은 성령의 통제는 마치 하나님이 미리 통보하지 않고  타격을  것같이 모두 돌발적인 것이다우리가 자신이  가운데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보시기에 그것은 아주 세미한 빛에 지나지 않고 심지어는 빛이라고  수도 없다성령은 하나님의 빛으로 우리를 처리하신다우리는 우리 자신의 상태를 안다고 생각하겠지만사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모르고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아신다우리가 그분을 영접할 때부터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모든 환경을 안배하셨다그분이 안배하신 모든 환경은  우리에게  유익을 준다왜냐하면 그분은 우리를 아시고 우리의 필요를 아시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우리 몸에서 이루시는 역사에는 적극적인 부분인 세우는 부분과 소극적인 허는 부분이 있다. 거듭난 뒤에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시지만우리 겉사람은 그분에게 자유함을 드리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사람이 좁고도 딱딱한  신발을 신고서 걷지 못하는 것과 같다겉사람이 속사람에게 어려움을 주고 속사람이 겉사람을 지배할  없기 때문에 구원받은 후로부터 하나님은 우리 겉사람을 처리하시고 파쇄하신다하나님이 우리 겉사람을 처리하실  그분은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방법을 쓰지 않으신다그분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우리의 어떤 부분이 유난히 강하고 속사람이 통제할  없는 부분인가를 찾아내셔서 그분이 아시는 바대로 우리를 처리하신다.

성령이 우리 겉사람을 파쇄시키는 방법은 우리 속사람을 강하게 하거나 속사람에게  많은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니다이것은 속사람이 강해질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뜻은 우리 겉사람을 처리하는  있어서 달리 하나님의 방법이 있다는 말이 아니다성령은 밖의 일로 말미암아 우리 겉사람을 쇠약하게 만든다우리 속사람을 사용하여 겉사람을 처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왜냐하면   가지의 성질이 다르기 때문이다속사람은 겉사람에게 상처를 주기가 쉽지 않고 타격을 주기도 쉽지 않다그러나 겉사람은 밖의 일과  성질에 있어서 같다아주 쉽사리 밖의 일의 영향을 받는다밖의 일들은 겉사람에게 타격을 주고 아픔을 느끼게 한다밖의 일들을 속사람이   있는  이상으로 겉사람을 파쇄할  있다하나님은 밖의 일들로 우리 겉사람을 처리하신다성경은 <참새  마리가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참새가 다섯 마리가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라고 말한다 앗사리온에  마리를 사고  앗사리온에 다섯마리를 사는 것은 아주 값싼 것이다다섯번째 것은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이 공짜로 주는 것이다그러나 <너희 아버지게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하나도 땅에 떨어질  없느니라> 말한다성경은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세신  되었느니라> 말한다세었다는 말은 번호를 매겼다고 번역하는 것이  정확하다머리카락 하나하나를  세었을  아니라 번호까지 매기셨다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에게 임한 모든 환경은 하나님께서 안배하셨음을 이해할  있다우리에게 우연히 당한 환경이란 없다하나님은 모든 것이 그분의 안배 아래 있음을 우리가 보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는 것에 근거하여 모든 것을 안배하신 것이다그분은 어떤 것이 우리 속사람에게 가장 유익한지를 아신다어떻게 해야 우리  사람을 깨끗이 파쇄할  있는지를 아신다그분은 우리 겉사람을 파쇄할  있는 밖의 일들이 어떤 것인지를 아신다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과거 5, 10 동안 당신의 당한 모든 일이 당신을 교육하기 위해 안배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만일 당신이 누가 당신을 해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손을 너무나 모르는 것이다만일 당신이 당신의 운명을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이것은 당신이 성령의 통제를 조금도 모른다는 것을 증명한다우리는 우리에게 임한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 척량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은 우리에게 가장 유익한 것들이다우리 자신들은 그것을 택하지 않겠지만하나님은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유익하다는 것을 아신다만일 하나님이 이런 통제를 안배하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디로 타락했는지 모른다 안배들은 우리를 깨끗이 보존하고 그분의 길에 있게 한다 안배들은 가장 좋은 것들이다하나님은 그것들보다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실  없다많은 사람들이 순종하지 못하고 입에 원망을 갖고 마음에 거스림을 갖는데 이것은 아주 어리석은 짓이다우리는  모든 것이 성령이 안배하신 가장 좋은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구원받자마자 성령은 구원받은 사람 위에 이런 역사를 하신다그러나 성령이 자유로이 이런 역사를 하시기 위해 어느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언제 성령이 자유로이 역사하실  있는가우리가 헌신할 때이다구원받은  날부터 성령은 사람 속에서 그를 통제하시기 시작한다구원받고 아직 헌신하기 전에 사람은  자기만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많지 않다그러나 그에게 성령의 통제가 없었다고 말할  없다성령은 변함없이 그를 위해 안배하셨고 여러 가지 일들로 말미암아 그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였으며 그의 겉사람을 깨뜨리고자 하셨다그러나 헌신하지 않은 사람에게 성령은 자유로이 역사하실  없다하나님의  비춤을 얻고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후에야 비로소 성령은 자유로이 역사하신다당신이 자신으로는   없고 자기를 위해  수도 없음을 느끼고 당신 편에서  미세한 빛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 자신을 당신께 드립니다살든지 죽든지  자신을 당신께 드립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인도될  비로소 당신 몸에 있는 성령의 역사가 강화된다헌신은 중요한 것이다헌신은 성령으로 하여금 자유로이 아무 제한 없이 우리 몸에 역사하게 한다그러므로 당신이 헌신한 후에 당신의 상상 밖의 환경이 임할  그것에 대하여 이상히 여기지 말라이런 환경이 임하는 것은 당신이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을 주님 손에 맡긴 적이 있기 때문이다당신이 주님께, <주여당신이 보시기에 내게 가장 유익한 것을 내게 이루소서>라고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이렇게 헌신할  성령은 자유로이 아무 고려 없이 당신에게 역사하신다우리가 주님의 길을 가지 않는다면야 말할 것이 없겠지만만일 우리가 주님의 길을 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절대적으로 성령의 통제하는 역사를 주의해야 한다.

은혜받는 최고의 방법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에게 그가 구원받은 날부터 그를 온전케 하기 위하여 계속 은혜를 주신다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얻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는데우리는 이것을 <은혜를 받는 방법들>이라고 말한다기도는 은혜를 받는 방법 중에 하나이다.왜냐하면 기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얻을  있기 때문이다말씀을 듣는 것도 은혜를 받는  가지 방법인데이것은 우리가 말씀을 들음으로써 하나님 앞에 나아와 은혜를 얻을  있기 때문이다. <은혜 받는 방법>이라는 말은 매우 적합하다수백  동안 하나님은 이런 용어를 사용해 오셨다우리에게는 은혜를 받기 위한 방법들이 필요하다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날부터 우리의 매일의 생활은 은혜 받는 방법 위에  가지 방법이 더해지고 계속 더해지는 생활이다이것은 우리가 집회에 참석하든 말씀을 듣든 기도를 하든 이것을 하든 저것을 하든 그것들로부터 은혜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소홀히 해서는   은혜 받는  가지 방법인 성령의 통제를 주의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대부분의 은혜를 받는 방법이  성령의 통제 안에 있다는 말이다당신의 기도당신의 성경 읽기당신의 집회당신의 말씀을 들음당신의 기다림당신의 묵상당신의 찬미  모든 은혜 받는 방법들은 성령의 통제와 비교할  없다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많은 은혜 받는 방법들 중에서 성령의 통제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성령의 통제가 최대의 은혜 받는 방법이다

돌이켜 우리의 은혜 받는 방법들을 살펴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걸었는지를   있다만일 우리의 영적 성장에서 기도만 의지하거나말씀 듣는  또는 성경 읽기만 의지한다면 은혜 받는 방법들이 주로 이것뿐이라면우리는  가지 가장 중요한 은혜 받는 방법을 잃어버리는 것이다우리가 매일 거치는 일들그것들이 가정의 일이든 학교나 공장의 일이든 심지어 길에서 발생한 일이든 모든 일들을 전부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최대의 도움을 얻고 최대의 유익을 얻도록 우리를 위해 안배하신 것들이다만일 우리가 이런 유익들을 얻지 못하고 은혜 받는 최대의 방법을 모르며  은헤 받는 최대의 방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이것은 막대한 손실인 것이다성령의 통제는 매우 중요하다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은혜 받는 방법이라고 말할  있다성경 읽기가 성령의 통제를 대치할  없고기도도 성령의 통제를 대치할 수도 없으며집회도 결코 성령의 통제를 대치할  없다우리는 성경을 읽어야 하고 말씀을 들어야 하며여러 가지 은혜 받는 방법들이 필요하다비록 이것들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지만 그중 어떤 것도 성령의 통제를 대치할  없다

만일 우리가 성령의 통제 방면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기가 어려울 것이고 또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할 것이다말씀 듣는 것은 우리로 속에 영양분을 얻게 하고 기도는 우리 속을 소생케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은 우리로 속에 적셔짐을 얻게 하고 다른 사람을 돕는 것도 우리의 영을 해방되게 한다그러나 만일 우리 겉사람이 여전히 강하다면 사람들이 우리를 만날  우리에게서 섞임을 만지게 되고 우리가 깨끗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것이다사람들은 한면으로 당신의 열심을 느끼면서도 다른 면으로는 당신의 혼잡됨을 느낄 것이다그들은 한면으로 당신이 진실로 주님을 사람한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다름 면으로는 당신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한면으로는 여기에 귀한  형제가 있다고 느끼면서도 다른 면으로는 여기에 겉사람이 파쇄되지 않은 강팍한 형제가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우리가 온전케 되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나 기도할 때에나 성경을 읽을 때만이 아니다가장 온전케 하는 것은 성령의 통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면에서 완전한 헌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그러나 결코 헌신이 성령을 대치할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헌신이란 성령에게 기회를 부여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다. <주여당신 손에  자신을 맡기오니 당신이 자유로이 역사하소서주여내게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을 내게 주옵소서성령이 안배하신 것에 대해 굴복할  우리는 유익을 얻게 된다바로  굴복함이 우리에게 유익을 준다만일 굴복하지 못하고 계속 하나님과 따지고 자신을 좇아 행한다면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든 우리의 길은 올바른 길이 아닌 것이다우리 쪽의 기본적인 문제는 바로 아무 조건과 제한 없이아무 보류함이 없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어 하나님으로 우리를 자유로이 처리하시도록   있느냐에 있다만일 하나님이 모든 안배가 우리의 최고의 유익을 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우리가 가장 괴로움으로 느끼는 일도 우리에게 유익이  것이다만일 우리가 이렇게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의탁한다면 성령은 여러 가지 일들을 사용하여 우리를 다루실 것이다.
 
여러 가지 다루심

어떤 사람은 특정한 것에서 해방받지 못한다주님은 그런 사람을 다루시되  가지씩  사람을 다루신다심지어는 의복음식가장 미세한 것들까지도 하나님은 그냥 두지 않으신다성령은 아주 섬세하기 때문에  가지 작은 것도 소홀히 하지 않으신다당신은 자신이 사랑하고 있는 어떤 물건이 있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그러나 그분은 그것을 아시기 때문에 그것을 처리하시되 아주 세세히 처리하신다당신의 이런 것들이 제해지고 이것들로부터 당신이 해방받을 비로소 당신은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된다많은 사람들에게서 성령은 그가 버리기를 아까와하는 것들을  가지  가지 처리하신다이런 다루심 안에서 우리는 성령이 얼마나 세밀한지를   있다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을 주님은 기억하시고 잊어버리지 않으신다하나님의 역사는 완전하다완전한  이르지 않고서는 결코 하나님은 그분의 역사를 멈추지 않으신다완전한  이르지 않고서 하나님은 만족하지 않으신다

때때로 하나님은 사람들을 사용하여 당신을 다루신다 당신에게 화를 내고 당신을 시기하는 사람을 안배하시거나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안배하여 당신을 다루신다때로는 종종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안배하여 당신을 다루신다다루심을 받기 전에 당신은 자신이 얼마나 더럽고 얼마나 혼잡한지를 알지 못한다그러나 당시이 하나님의 다루심을 받을  비로소 당신의 혼잡됨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게  것이다전에 당신은 자신을 주님께 완전히 드린 사람으로 생각했을지 모르나 성령의 통제를 받고서 당신은 많은 밖의 일들이 당신에게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를 알게 된다때때로 그분은 우리의 생각을 다루신다우리의 생각은 혼잡되고 야만스러우며자신을 좇아 생각하며속박을 받지 않고 스스로 독똑한 체하며우리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종종 자신이 남보다  섬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가 우리 생각을 함부로 쓰지 못하도록     우리를 벽에 부딪히게 하고 심지어는 넘어지게 하신다만일 우리가  은혜를 입었다면 불을 무서워 하는 것과 같이 우리 자신의 생각을 두려워할 것이다

손을 불에  때에 우리는 즉시 손을 회수한다이와 같이 어떤 것이 우리의 생각이라고 느낄  우리는 즉시 뒤로 물러나서 주님께, <이것은 내가 생각한 것입니다나는 나의 생각을 두려워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하나님은 여러가지 환경을 안배하여 우리의 감정을 다루실 것이다어떤 사람의 감정은 지나치게 열렬하다그가 즐겁다고 느낄 때에 당신은 그를 멈추게   없다그가 답답해할  당신은 또한 그로 위로를 얻게   없다그의  존재가 감정 안에서 생활한다그가 답답함을 느낄  당신은 그로 찬송을 부르게 하지 못하고 그가 즐거움을 느낄  그로 진중하게 하지 못한다즐거움은 그를 경솔함으로 이끌고 답답함은 그를 게으름으로 이끈다그는 완전히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감정 안에   그는 감정을 옳은 것으로 생각한다그러므로 하나님은 각종 환경을 일으켜서 그의 감정을 다루신다이로써 그로 하여금 근심하고 싶어도 근심하지 못하게 하고 즐거워하고 싶어도 즐거워하지 못하게 한다그는 자신의 감정으로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말미암아야   있게 된다.

어떤 사람의 문제는 유난히 그의 생각에 있다어떤 사람의 문제는 감정에 있다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이런 비정상적인 생각이나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을지라도). 겉사람의 가장 크고도 일반적인 문제는 의지에 있다우리의 감정이 문제 되는 이유는 우리의 의지가 아직 다룸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문제의 뿌리는 우리의 의지에 있다우리의 생각이 문제 되는 것도 우리의 의지가 다룸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의 뿌리도 의지에 있다우리가 입으로, < 뜻대로 하지 마시고 당신의 뜻대로 행하시옵소서>라고 말하는 것은 용이한 일이나 환경을 만날  진정 주님으로 하여금 역사하시게 하는 사람은 얼마나 있는가자신을 모르는 사람일수록 이런 말을  한다

하나님 앞에서  비춤을 받지 않은 사람일수록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용이하다고 생각한다가볍게 말을 하는 사람일수록 그가 댓가를 지불한 적이 없는 사람임을   있다말을 친근하게 하는 사람은 아마도 하나님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다빛이 없는 사람은 친근한 말을 하기가 쉬운데사실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모른다하나님의 처리하심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강팍한 사람이고 얼마나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인가를 보게 된다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부드럽고 온순하게 만들기 위하여 우리의 의지를 처리하신다어떤 사람은 자신을 신뢰하고 자신의 의견과 느낌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며 자기의 방법과 관점이 항상 옳다고 생각할 정도로 의지가 강팍하다하나님 앞에서 바울이 은혜 받은 비결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가지는 빌립보서에서 말한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들도 우리 자신의 결정에 대해 확신을 갖지 않을 정도로 하나님의 다룸을 받아야 한다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과거나 장래가  틀렸고 우리에게 주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시인하도록 계속 우리를 틀린 상태에 내버려 두신다많은  주님은 당신의 어떤 결정으로 인해 아주 심각한 결과를 얻게 하신다당신이  가지를 결정해도  결과가 실패요 다른 일을 결정하여도 실패일 뿐이다심지어 그분은 어떤 일을 수습할  없을 정도로 비참하게 만드신다주님은 당신이 어떤 결정을 내릴  다음과 같이 말할  있도록 계속 당신을 치신다 <주여저는 지옥불을 두려워하듯 저의 결정을 두려워합니다저의 결정에 문제가 있을까 두렵습니다저의 관념과 방법에 문제가 있을까봐 두렵습니다주여저는  틀리는 사람입니다제가 틀리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주여만일 당신이 제게 긍휼을 주시지 않고 저를 부축하시지 않는다면 당신의 손으로 가로막지 않으신다면 저는  틀리게 됩니다!> 이렇게   당신의 겉사람은 파쇄되기 시작하고 당신은 자신을 신뢰하지 않게 된다많은  우리는 가볍게 결정하고 우리의 관념은 그렇게 간단하다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다룸을 받고 파쇄되며 여러번의 실패를 거친 후에는 그분께 굴복하며, <하나님제멋대로 생각하고 결정하지 않겠습니다>라고  것이다하나님은 여러가지 일과 사람들로 말미암아 여러 방면으로 우리를 처리할 것이다이것이 성령의 통제이다.



성령의 통제를 받는  공과는 영원히 결여되어서는   공과이다많은  말씀의 공급이 결여될  있고 다른 은혜 받는 방법도 결여될  있을지 모르지만 성령의 통제를 받는  은혜 받는 방법은 영원히 결여되어서는  된다때로 환경의 제한 때문에 우리가 말씀의 공급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그러나 성령의 통제는 환경의 제한을 받지 않고 도리어 환경으로 인하여 더욱 나타난다당신은 말씀을 들을 기회가 없다고 말할 수는 있을지는 모르나 성령의 통제를 받을 기회가 없다고는 말할  없다당신은 말씀의 공급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고 말할  있을지 모르지만 성령의 가르침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고는 말할  없다왜냐하면 성령은 매일 우리를 위하여 환경을 안배하시고 언제 어디서나 당신에게 배울 공과를 주시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항복한다면 성령의 통제는 당신의 필요를 채울 것이다또한 이것은 말씀의 공급보다 훨씬 뛰어나다우리는 마땅히  길을 알아야 한다오직 말씀의 공급만이 은혜 받는 방법이라고 결코 잘못 생각하지 말라우리는 성령의 통제가 최대의 은혜 받는 방법임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한다은혜 받는  많은 방법들 중에서 오직 성령의 통제만이 최대의 은혜 받는 방법이다성령의 통제는 학문 있는 사람만이 얻는 것이 아니라 학문 없는 사람도 이것을 얻을  있다영리한 사람만이 얻을  있고 우둔한 사람은 얻을  없는 것이 아니다은사 있는 형제만 얻을  있고 은사없는 형제는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성령의 통제는 우리  사람을 달리 대하지 &#50527;는다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아무런 조건 없이 하나님의 손에 자신을 맡길  있고 누구나 성령의 통제가 그의 몸에 있다는 것을   있다성령의 통제 안에서 우리는 매우 실제적인 공과를 배우게 된다아마 어떤 사람은 말씀의 공급과 기도의 은혜와 믿는이와 교통하는 이러한 은혜 받는 방법들이 좋지 않느냐고 말할 것이다그러나 다른 은혜 받는 방법들  성령의 통제를 대치할 것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기도가 성령의 통제를 대치할  없고 말씀의 공급도 성령의 통제를 대치할  없으며 묵상도 성령의 통제를 대치할  없다왜냐하면 당신은 온전케 되어야   아니라 또한 파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당신의 몸에 아직 파쇄되지 않은 것들영원 안으로 가져갈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실행적인 십자가

십자가는 교리만이 아닌 실행되어야 하는 것이다십자가가 우리 몸에서 실행되려면 우리 자신의 것들은  허물어져야 한다우리가    스무  치심을 받을  우리는 자연히 방자히 행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을 것이다우리가 교만할  기억력을 사용하여 교만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기억력을 사용한 겸손은  분밖에 지속   없다하나님의 치심을 받을  비로소 우리의 교만이 거꾸러진다본래 나는 교만한 사람이었으나 하나님의    스무 번의 치심을 받을  나는 항복하고 다시는 교만하지 않게 된다가르침과 교리와 기억력은 겉사람을 허물어뜨릴  없다오직 하나님의 매질과 성령의 통제만이 우리 겉사람을 허물어 뜨릴  있다

하나님께 어느 단계 다룸을 받을  나는 감히 교만할  없게 된다 길은 억지로 기억하거나 며칠 전에 어느 형제에게서 들은 대로 행하는 것도 아니다이는 어떤 그르침을 좇아 행하는 문제가 아니라  교만이 제해지고 쫓아내어짐으로써 불을 두려워하듯 자신의 방법과 관념을 두려워하고 그것에 이해 태워져 고통을 당할까 두려워하는 문제이다우리는 기억력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해야 한다하나님은 우리가 기억하든 기억하지 못하든 그분의 원하시는 단계에까지 우리를 치신다이런 일만이 우리 몸에 이루신  때에 우리 속에 은혜를 얻고 우리 속이 강건케   아니라전에 주님을 저지하고 주님의 역사와 그분의 뜻을 파괴하며 하나되지 못했던 겉사람이 이제 속사람과 다투지 않고 두렵고 떨림으로 겸손하게 무릎을 꿇게 된다

우리 모든 사람은 주님 앞에서 다룸을 받아야 한다과거 우리의 나날을 돌이켜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깨뜨리고 겉사람의 단독적임과 교만과 이기적인 것을 제하기 위하여한 가지  가지씩 처리하신 것을 보게  것이다돌이켜 생각해보면 주님이 행하신 모든 역사는  의미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령의 통제가 무엇인지를 보기 바란다하나님은 사람들이 다음 사실을 인식하기 원하신다 <
 자신은 가련한 사람이고 여러  주님을 대적했으며 여러  실패했고 수차 빛을 보지 못했고 자신을 좇아 행했으며 수차 교만하고 방탕하였습니다그러나 이제 나는 주님의 손이 나를 파쇄하심을 알았습니다나는 아무 제한과 보류 없이 주님 손에 자신을 맡기기 원하고  파쇄가  몸에 이루어질  있기 바랍니다형제 자매들이여겉사람은 반드시 파쇄되어야 한다겉사람이 파쇄되지 않은 상태에서    속사람을 온전케 하려고 하지 말라우리가 파쇄의 역사를 주의할  온전케 되는 역사는 당연히 이루어 진다.

 

 

 

7 , 분리와 계시

분리와 계시


하나님은 우리 겉사람에 대해 파쇄의 일을 하실 뿐 아니라 또한 겉사람을 분리시키신다하나님은 우리 겉사람을 파쇄할 뿐더러 또한 우리 겉사람이 속사람을 묶지 못하도록 우리의 영과 혼(속사람과 겉사람) 분리시키시기를 원하신다.


혼잡된 영


하나님의 자녀들의 한 가지 문제는 바로 영과 혼의 혼잡됨이다언제든지 그의 영이 나올 때 그의 혼도 흘러나온다당신은 사람에게서 이런 깨끗한 영을 찾기 어렵다많은 사람들에게 이 깨끗함이 결여되어 있다바로 이 혼잡함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쓰시지 않으신다사역하는 첫번째 조건은 능력의 크고 작음에 있지 않고 깨끗한가에 있다.


큰 능력은 바라면서 영의 깨끗함을 소홀히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지그가 건축할 능력을 가진 반면에 또한 깨끗함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그의 일은 허물어지지 않을 수 없다한면으로 그가 능력을 사용하여 건축하지만 다른 면에서 그는 자기의 혼잡함으로 건축한 것을 허물고 있다한면에서 그는 확실히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하였지만 동시에 그의 영에는 혼잡한 것이 섞여 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능력을 얻기만 하면 그에게 속한 것들이 다 승화되어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이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겉사람에게 속한 것은 여전히 겉사람의 것이다하나님을 알수록 우리는 능력보다 깨끗함을 더욱 귀히 여기게 된다깨끗함은 영적인 능력외에 겉사람의 혼잡함이 없는 것을 말한다우리는 겉사람이 처리되는 않은 사람에게서 나온 능력이 깨끗하기를 바랄 수 없다그는 영적인 능력을 소유하고 있고 사역의 열매가 있으므로 자기 자신을 어디에 섞어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다이렇게 할 때 결국 어려움이 되고 이것은 하나의 죄인 것이다많은 형제 자매들은 복음이 하나님의 크신 능력임을 알면서도 다른 면에서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은 자기의 총명과 경솔함을 전파 가운데서 섞어 놓는다자기의 농담과 개인의 느낌을 그 안에 섞어 넣음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한면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만지게 하고 또 한면으로는 그들 자신도 만지게 한다.


어쩌면 그들 자신은 이것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그러나 깨끗한 사람은 즉시 거기에 혼잡함이 섞여 있는 것을 느낀다많은 때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우리는 겉에서 열심을 갖지만 사실상 거기에는 우리의 애호가 섞여 있다많은 경우 겉보기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고 있는 것 같지만사실은 그 때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뜻과 일치되었기 때문이다사람의 애호가 섞인 하나님의 뜻이 얼마나 많은지사람의 느낌이 섞인 열심도 얼마나 많은지사람의 강한 성격이 섞인하나님을 위해 서 있음이 얼마나 많은지혼잡함은 우리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그러므로 우리 몸에서의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우리 겉사람을 파쇄하기 위한 것인 동시에 또한 우리의 혼잡함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한면에서 하나님은 우리 겉사람의 완전함을 유지하지 못하도록 한 단계씩 우리를 파쇄하신다한 번, 두 번, 열 번 스무 번의 다룸을 거쳐 우리 겉사람이 파쇄될 때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더이상 딱딱한 껍질을 가지게 있지 않게 된다그런데 다른 면에서 우리 영 안에 섞여 있는 겉사람은 어떻게 처리되어야 하는가이것은 다른 부분의 역사 곧 제거하는 역사가 필요하다.


이 역사는 성령의 통제로 말미암지 않는다많은 때 이것은 성령의 계시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혼잡함을 제하는 길은 더 많은 때 계시로 말미암는다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몸에 행하시는 두 가지 다른 다루심이 있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하나는 겉사람의 파쇄이고 다른 하나는 겉사람과 영과의 분리이다전자는 성령의 통제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고 후자는 성령의 계시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파쇄와 분리의 필요성


파쇄와 분리는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는 데 있어서 각각 다르다그러나 이 두가지는 서로 나눌 수 없는 상당히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겉사람이 파쇄되어야만 영이 해방될 수 있다영이 해방될 때 거기에 겉사람의 상태의 색깔을 띠고 있지 않아야 하고 사람에서 비롯된 어떤 것도 끼고 있지 말아야 한다그런데 이것은 영이 해방되는 문제가 아닌 영이 깨끗하고 순결한가의 문제이다많은 경우 어떤 형제가 일어나 말을 할 때 들어보면 우리는 그의 말 속에 영이 있음을 알 수 있고 또 그의 말에서 하나님을 만질 수 있다그러나 동시에 말 속에서 그 사람의 어떠함과 그의 가장 강한 부분을 만지게 된다이는 그의 영이 깨끗하지 못하기 때문이다그의 많은 부분을 우리가 칭찬해야 하나그 반면에 우리는 그에게서 고통스러운 많은 부분을 느낄 수 있다그러므로 문제는 영이 해방되는 것만이 아니라 영이 순결한가이다.


만일 사람이 하나님의 빛 비춤을 얻지 못하고 겉사람이 무엇인지 모르고 하나님 앞에서 깊은 심판을 받지도 않았다면그의 영이 흘러 나올 때 자연히 그의 겉사람도 따라 나오게 된다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항상 우리의 가장 뚜렷하고 강한 부분으로 그를 접하게 된다겉사람이 아직 심판받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만날 때 그의 겉사람의 가장 강한 부분이 함께 나오게 된다이것은 꾸밀 수 없는 일이다많은 사람이 집안에서는 영적이지는 않으면서 강단에서 즉시 신령해지기를 바란다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어떤 사람은 기억력이 좋지 않을 때 영적이지 못하다고 말한다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그러면 그는 기억력을 의지하여 신령해져야 하는데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당신은 오늘 내가 여기서 말씀을 전함으로 사역하고 있기 때문에 내 기억력으로 내 자신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기억력은 우리의 구원이 될 수 없다사람은 기억력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당신이 어떤 사람이면 입을 열때 당신의 그러한 모습이 드러난다사람이 어떻게 가장하든어떻게 조작하든, 어떻게 꾸미든 간에 입을 열기만 하면 그의 영이 따라 나오기 마련이다당신이 어떤 영을 갖고 있고 당신의 영 안에 어떤 것이 섞여져 있는지 입을 열 때 드러난다그러므로 영적인 일에서는 외식할 수가 없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이로부터 구원을 얻고자 한다면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부분적인 구원이 아닌 근본적인 구원이다하나님은 당신에게서 당신의 강한 부분을 처리하는 역사를 하셔야 한다하나님이 당신의 강한 부분을 깨뜨려셔야 비로소 혼잡한 것들이 섞이지 않은 영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갈 수 있다만일 당신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다루심을 받지 않았다면당신이 기억할 때에는 조금 영적인 것 같고 기억하지 못할 때에는 당신 자신이 나오게 된다사실상 당신이 당신의 자아를 유념하든 그렇지 않든 당신이 흘러보낸 영은 똑같은 것이다당신의 영과 함께 흘러나온 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혼잡의 문제가 사역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이다우리가 형제에게서 생명을 만지면서 사망을 만질 때가 얼마나 많은지형제에게서 하나님을 만지는 동시에 그의 자아를 만질 때가 얼마나 많은지형제에게서 온유가 영을 만지는 동시에 그의 자아를 만질 때가 얼마나 많은지사람들은 그에게서 성령도 발견하고 그의 육체도 발견한다그가 일어나서 말을 할 때 사람으로 깨끗한 영이 아닌 혼잡한 영을 만지게 한다그러므로 만일 하나님이 그분의 말씀으로 그분을 섬기기를 원하시고 당신 또한 반드시 하나님을 위하여 입을 열어야 할 사람이라면하나님께 이런 은혜를 구하라 <하나님, 내게 역사하사 내 겉사람을 파쇄해 주시고 허물어 주시며 내 겉사람을 분리시켜 주소서>라고 말해야 한다만일 당신이 이런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입을 열 때마다 부지불식간에 겉사람을 사람들 앞에 가져오게 되고 그것을 감출 방법이 없다사람의 말이 나올 때 영도 나오게 된다당신이 어떤 사람이라면 언제나 그런 사람인 것이다이것은 가장(假裝)할 수 없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당신의 영은 해방되고 깨끗해야 한다당신 자신이 정결케 되어야 하며 겉사람은 허물어져야 한다만일 우리 겉사람이 허물어지지 않았다면말씀의 사역을 할 때 우리 사람의 것이 함께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주님의 이름에 손상을 입힐 것이다우리가 주님의 생명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혼잡함이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교회를 욕되게 한 것이다.


성령의 통제를 이미 다루었으므로 우리는 이제 성령의 계시에 대해 보기로 하자성령의 통제가 성령의 계시 이전에 있을 수도 있고 그 반대로 성령의 계시가 성령의 통제 이전에 있을 수도 있다우리가 말하려면 순서를 말할 수 있겠지만성령이 역사할 때에는 어떤 것이 먼저이고 어떤 것이 나중일 수가 없다그러나 우리의 체험에서는 그렇지 않다어떤 사람에게는 이것이 먼저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저것이 먼저이다즉 어떤 사람은 먼저 성령의 통제를 얻고 그 다음 성령의 계시를 얻는다그런다음 성령의 계시를 얻고서 또 다시 성령의 통제를 얻는다그 다음에 또 성령의 계시를 얻는다한 가지 다른 것은 하나님의 자녀의 생활에 성령의 통제가 성령의 계시보다 많다는 것이다이것은 교리의 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의 면을 말하는 것이다많은 사람에게 계시보다 통제가 많다어쨌든 영과 혼 곧 겉사람과 속사람은 반드시 분리되어야만 한다우리 겉사람은 온전히 파쇄되고 분쇄되며 완전히 분리되어야 한다이럴 때 비로소 당신의 영이 자유로이 해방되고 깨끗해질 수 있다.


분리되는 길


히브리서 4 12-13: <하나님은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혹은 <만물이 주님 눈 앞에서 벌거벗었나니 주는 우리를 심판하시는 자이시니라첫째로,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다고 말했음을 주의해야 한다하나님의 말씀이 참으로 어떤이에게 보여질 때 그 사람은 필히 살아 있는 것이다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못하게 된다어떤 사람은 성경의 의문을 읽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보지 못한다언제든지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을 만질 때 하나님의 말씀을 만지는 것이다.


요한복음 3 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한다어떤 사람이 이 말씀을 듣고서, <주여, 당신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구원하심을 인해 감사하고 당신을 찬미합니다>라고 말했다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만진 사람을 볼 수 있다왜냐하면 이 말씀이 그에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옆에 앉은 다른 사람도 같은 말씀과 같은 음성을 들었지만 그가 들은 것은 소리일 뿐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왜냐하면 그는 이 말씀을 듣고서 살아 있는 반응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있는 말씀으로 듣지 않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하심을 듣지 못한 것이다우리는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그분의 말씀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을 뿐 아니라 또한 운동력이 있다살아있다는 것은 그 성질을 말하고운동력이 있다는 것은 말씀이 사람에게 이루고자 하는 일을 이룸을 말한다하나님의 말씀은 공중에 매달려 있지 않고 하고자 하시는 일을 해내고야 만다곧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하나님의 말씀은 말로 끝나지 않고 사람에게서 효능을 발휘 한다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이 말씀이 사람에게서 무슨 역사를 이루는가? <찔러 쪼개기까지>한다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다>. 여기에 하나의 대조가 있다한면으로는 좌우에 날선 검 대(관절과 골수의 대조가 있고다른 면으로는 하나님의 말씀 대(혼과 영의 대조가 있다관절과 골수는 인체의 가장 깊은 곳이다관절을 분리시킨다는 것은 뼈를 위 아래로 나눈다는 말이다골수를 쪼갠다는 것은 뼈의 안과 밖을 나눈다는 것이다좌우에 날선 검은 능히 뼈의 상하와 안팎을 다 분리시킨다좌우에 날선 검은 물리적으로 이런 정도까지 우리 몸에서 역사할 수 있다그러나 관절과 골수보다 분리되기 어려운 것이 있는데그것은 바로 우리의 영과 혼이다가장 예리한 검은 관절과 골수를 쪼갤 수 있지만 영과 혼은 쪼갤 수 없다이런 검은 무엇이 영이고 무엇이 혼인지어떤 것이 혼에서 나오고 어떤 것이 혼에서 나온 것인지 보여 줄 수 없다그러나 성경은 좌우에 날선 검보다 더 예리한우리의 영과 혼을 쪼갤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고 말한다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이 말씀이 찌른 것은 관절이 아니고 쪼갠 것은 골수가 아니다이 말씀이 찌르고 쪼갠 것은 사람의 영과 혼이다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영과 혼을 분리시킬 수 있다.


아마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에게 어떤 특별한 역사를 하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할 것이다그가 여러 번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고 하나님의 계시를 얻은 적도 있지만 어떤 특별한 것을 얻지 못했고찌르는 것이 무엇이고 쪼개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고 말할 것이다하나님의 말씀이 찌르고 쪼갠다는 것을 알고 영과 혼을 분리시킨다는 것을 아는데 그의 체험에서는 찌르고 쪼개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이 문제에 대해 성경은 우리에게,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라고 설명한다혼과 영을 찔어 쪼갠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그 다음에서는, <또 생각과 마음의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말한다마음의 뜻은 <품은 뜻>으로 번역할 수 있다생각은 우리 마음의 생각하는 바를 말하고 품은 뜻은 우리의 목적을 말한다하나님의 말씀은 능히 우리 마음에서 생각하는 것과 속에 품은 뜻까지도 감찰한다.


많은 때 우리는 무엇이 우리 겉사람에게서 나온 것이고 무엇이 혼에 속하며 육체에 속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또한 이것은 혈기이고 우리 자신이라고 말할 것이다우리는 말만 그렇게 하고 사실상 우리가 말한 것을 보지 못한다어느 날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우리를 빛 비추시며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강하고 엄숙한 말씀을 하실 때 비로소 눈을 떠서 보게 된다<네가 수차 말하던 네 자아는 바로 네 자신이다네가 평상시 함부로 논한 육체는 바로 이것이다이것이 바로 내가 미워하고 용납하지 못하는 그것이다이것을 보지 못할 때 우리는 농담하듯이 육체를 말할 것이다그러나 빛 아래 있을 때 우리는 엎드려서, <바로 이것이다내가 말해왔던 육체가 바로 이것이었다!>라고 말할 것이다이 때 우리의 영과 혼의 분리는 지식적인 것이 아닌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여 우리 마음의 생각의 어떠함과 마음 속의 뜻의 어떠함을 지적하는 분리이다영과 혼의 분리는 곧 하나님의 빛 아래서 본래 내가 생각했던 것과 내가 의도했던 것이 육체에 속했고 내가 이렇게 행한 것도 육체에 속했으며 원래 나의 동기가 내 자신을 위했음을 보는 것이다.


가령 여기 죄인 둘이 있다 하자두 사람이 다 죄인이지만 좀 차이가 있다한 사람은 지식이 있는 죄인이어서 집회에 올 때 많은 말씀을 듣고서 죄인이되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을 안다말씀 전하는 사람이 분명하게 말했기 때문에 그는 많은 지식을 듣고서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한다그러나 그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에 대해 말할 때 항상 농담하듯이 말하고 조금도 신중하게 말하지 않는다다른 한 사람은 같은 말씀을 듣고 동시에 그에게 하나님의 빛이 있어서 땅에 엎드려, <! 내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나는 죄인입니다!>라고 말한다그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뿐 아니라 또한 자신이 참으로 죄인인 것을 보았다그래서 그는 자신을 정죄하고 땅에 거꾸러졌다하나님의 빛 비춤을 받은 두번째 사람은 엎드려 죄를 자복함으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얻을 수 있다그러나 말재주가 있고 농담하듯 자신을 죄인이라고 말한 사람은 참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구원을 얻지 못한다.


오늘 당신은 겉사람이 심각한 문제이고 혈기에 속한 사람은 반드시 파쇄되어야 한다는 것을 들었다만일 당신이 함부로 이런 말을 주제로 하여 남에게 전한다면 이는 당신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하나님의 긍휼을 입고 하나님의 빛을 본 사람은, <주여! 오늘에서야 내 자신을 알았습니다오늘에서야 이것이 나의 겉사람임을 알았습니다라고 말 할 것이다하나님의 빛이 당신을 비추어 당신의 겉사람을 보여주실 때 당신은 땅에 엎드려져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그 때 당신은 즉시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본래 당신은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했었지만이제 하나님의 빛 비춤을 받을 때 당신은 자신을 사랑했음을 보게 될 것이다이 빛이 비췰 때 당신은 분리된다당신의 두뇌가 당신을 분리시킨 것이 아니요 당신의 교리가 당신을 분리시킨 것도 아니며 하나님의 빛이 당신을 분리시킨 것이다.


원래 당신에게 열심이 있다고 말했지만이제 하나님의 빛은 당신의 열심이 완전히 혈기의 행위였음을 당신에게 보여 주신다본래 당신의 복음 전파가 죄인을 사람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나중에 빛이 임할 때 당신의 복음 전파가 당신의 활동적인 기질과 당신의 말하기를 좋아함과 당신의 천연적인 성향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게 된다빛이 당신을 비출 때 당신의 마음 속에 품은 뜻과 마음의 생각이 다 드러난다본래 당신의 생각과 의도가 주님에게서 나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러나 빛이 임할 때 이것들이 주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에게서 나온 것임을 드러날 것이다이 빛이 당신을 비출 때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엎드러진다주님에게서 비롯된 것이 얼마나 많은지우리가 엉뚱하게 이것도 주님을 위한 것이고저것도 주님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지만빛이 임할 때 우리는 비로소 주님을 위한 것이 얼마나 적고 우리 자신을 위해 행한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이 하신 것이라고 말한 일 중 실지로 우리 자신이 한 것이 얼마나 많은지주님께서 당신에게 주셨다고 한 많은 말씀도 전혀 주님이 당신에게 말씀하신 것이 아님을 볼 것이다주님이 당신에게 분부하신 것이라고 생각한 많은 일들도 하늘로부터 빛이 임할 때 그 많은 일들이 혈기의 활동에 지나지 않았음을 볼 것이다진상을 드러내는 실제적인 노출은 우리를 맑게 하며우리에게서 난 것이 얼마나 되고 주님에게서 난 것은 얼마나 되며혼에서 비롯된 것은 얼마나 되고 영에서 비롯된 것은 얼마나 되는지를 알게 할 것이다빛이 임할 때 영과 혼이 분리되고 마음의 생각과 의도가 감찰된다.


이것은 교리로 설명할 길이 없다무엇이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고 무엇이 주님에게서 비롯된 것이며무엇이 육체로 비롯된 것이고 무엇이 성령으로 비롯된 것이며무엇이 주님의 은혜로 비롯된 것이고 무엇이 겉사람이 한 것이며 무엇이 속사람이 한 것인지 등 이 모든 교리를 낱낱이 장부에 기록하고 세세히 그것들을 외운다 할지라도당신은 그것들에 대해 분명하지 않을 것이며 겉사람을 제할 수 없을 것이다이것들은 계속 당신 몸에 머물 것이고 당신은 결코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당신이 입으로 육체와 혈기가 제해져야 한다고 말하고육체와 혈기는 이런 저런 것이라고 흥미롭게 말할 수 있다 하더라도당신은 그것들로부터 구원받을 수 없다구원은 이런 것으로부터 오지 않고 하나님의 빛으로부터 온다하나님의 빛이 당신을 비출 때 비로소 육체를 거절했던 당신의 많은 행위가 육체였고 혈기를 비평했던 그 많은 행위가 혈기였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주님이 당신의 마음과 생각과 마음의 의도를 드러내심으로 당신의 마음 속에 있는 당신의 실지 생각과 마음에 품은 실지 의도를 보았을 때당신은 무릎을 꿇고 <주여, 지금 이것이 나의 겉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형제 자매들이여 오직 이 비춤만이 우리 겉사람을 분리시킬 수 있다겉사람의 분리는 우리의 거절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이것은 믿을만한 것이 아니다많은 때 죄에 대한 우리의 자백까지도 깨끗하지 않다우리의 자백의 눈물도 피의 씻음이 필요하다당신은 당신의 머리 속에서 이해한 것이 모두 당신의 소유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할 것이다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내 말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의 날선 검보다 예리하고 빨라서 사람에게 임할 때 관절과 골수 및 영과 혼을 분리시킬 수 있다> 말씀하신다어떻게 분리시키는가당신의 마음의 동기를 드러내고 당신의 생각을 드러냄으로써이다자기 마음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형제 자매들이여오직 빛 아래 있는 사람만이 자기 마음을 안다빛 아래 있지 않은 사람은 자기 마음을 모른다자기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우리는 자기의 마음을 조금도 모른다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비로소 본래 우리의 모든 것이 다 자기를 위한 것이었으며자기의 뜻을 구한 것이었으며자기의 지위를 높인 것이었으며자기를 내세우기를 바란 것이었음을 보게 될 것이다형제 자매들이여, 빛이 임할 때 당신 자신이 드러나고 당신은 하나님 앞에 엎드러진다.


어떻게 계시를 얻을 수 있는가


성경은, <지은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고 말한다여기서 주님은, 그분의 빛으로 우리를 비추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의 동기를 분리시키는 데 있어서의 표준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어떤 것이 성령의 계시인가우리는, 우리가 어느 단계에 이르러서야 계시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이것이 13절이 말한 바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빛의 표준은 곧 하나님의 표준이다계시는 곧 하나님의 표준 아래서 우리로 무언가를 보게 하는 것이다만물이 그 앞에 다 드러나고 한 가지도 가리워질 수 있는 것이 없다모든 가리움은 자기 눈을 가리울 수 있을 뿐 주님의 눈을 가릴 수 없다.


계시란 그분이 우리를 아시는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동기와 가장 깊은 속의 생각을 알도록 하나님이 우리 눈을 열어주시는 것이다그분 앞에서 우리가 벌거벗은 사람인 것처럼우리의 모든 것이 드러나 있는 것처럼계시를 얻은 후에 우리는 자신 앞에서 그렇게 드러나게 된다이것을 계시라고 한다계시란 곧 주님이 보신 것을 우리가 보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그분이 아는 우리그분 앞에서 우리의 어떠함을 계시하고 보여주신다면우리는 즉시 땅에 고꾸라질 것이다그 때에는 고의로 겸손하려고 하지 않아도 고꾸라질 것이다빛 안에 있는 사람은 교만하려고 해도 교만할 수 없다오직 어두움 안에 있는 사람은 교만하다사람이 의기양양해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빛 밖에 있기 때문이다빛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고꾸라진다.


그러므로 어떻게 영적인 것과 혼에 속한 것을 구분하는가속사람이 행한 것과 겉사람이 행한 것을 구분하는가의 문제를 교리로 말하여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그러나 계시가 있다면 이 문제는 매우 간단해진다오직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의 뜻을 드러내시고 당신의 동기를 보실 때 당신의 영과 혼은 분리된다언제든지 당신이 마음 속의 생각과 동기가 분별될 때가 곧 당신의 영과 혼이 분리될 때이다.


만일 당신이 유용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언젠가 이 빛을 보아야 한다또 오직 이 빛이 당신에게 임할 때만이 주님의 심판을 받을 수 있다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 당신은 고개를 들어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이여, 내 자신은 신뢰할 만하지 못합니다내 자신을 책망할 때에도 문제이고 나의 죄를 자백할 때에도 무슨 죄를 자백했는지 모릅니다오직 빛 안에 있을 때에만 알 수 있습니다비춤을 얻기 전에 자신이 죄인이라고 말하지만 죄인이라는 느낌을 조금도 갖지 않는다당신은 자아를 미워한다고 말하지만 자아를 미워하는 느낌이 조금도 없다당신의 자아를 거절한다고 말하지만 당신에게는 자아를 거절한다는 느낌이 조금도 없다이 모든 것들은 오직 주님만이 비출실 수 있다빛이 당신을 비출 때 당신의 그 <원래 모습> 볼 수 있게 된다본래의 나는 일평생 나 자신만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나였다본래 나는 자기를 속이고 주님을 속인 사람이요 주님을 사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런 빛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 주고 전에 당신의 행한 일이 어떤 일이었는지를 보여 준다그날부터 당신은 영에서 비롯된 것과 혼에서 비롯된 것을 구분할 줄 알게 된다오직 그날부터 당신의 많은 것들이 당신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속에서 알게 될 것이다빛 가운데서 심판을 받은 사람만이 이것을 안다만일 빛 가운데서 심판을 받지 않았다면 이것을 배우지 못한다하나님의 큰 빛이 당신을 비출 때 비로소 당신의 혼을 보게 된다빛의 심판은 당신의 속사람과 겉사람을 분리시킨다속사람과 겉사람이 분리될 때가 바로 당신의 영과 혼이 분리될 때이다주님이 우리 몸에서 하시는 일은 바로 비할 데 없는 큰 빛으로 우리를 비추이는 것이다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혹은 기도할 때 혹은 다른 형제 자매와 함께 교통할 때 혹은 길을 걷고 있을 때큰 빛이 임함으로 우리는 우리로부터 비롯된 것이 얼마나 되는 지를 보게 될 것이다이 큰 빛 아래 놓여질 때 비로소 우리 일생에 주님에게서 비롯된 것이 얼마나 적은지를 알게 된다말도 우리 스스로 했고 활동도 스스로 했으며 사역도 우리 스스로 했다우리 스스로 분주하였고 열심도 우리 자신이 낸 것이다설교한 것도 우리 자신이고 형제 자매를 도왔던 것도복음 전했던 것도 우리 자신이었다.


빛이 당신을 비출 때 비로소 당신이 얼마나 자신으로 가득한 사람이고당신의 활동 영역이 얼마나 넓으며당신의 성분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알게 된다전에 속에 감취었던 자아가 이제는 드러났다전에 느끼지 못했던 자아를 이제는 감지하게 되었다이제 당신은 당신 자신이 포함한 것이 이렇게 넓고 당신 스스로 행한 것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대해 분명해진다전에 주의 이름으로 행했다고 생각했던 그것들이 이제는 뼈 속에서 살 속에서 당신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이것을 볼 때 당신은 겉사람을 정죄하게 된다사람은 오직 빛 가운데서 본 것만을 심판할 수 있다빛 가운데서 한번 보았다면 당신은 다시 같은 원칙의 일과 말과 동기가 나타날 때 전에 처리받은 것이 이것임을 알고서 즉시 그것들을 거절하게 된다만일 빛 가운데서 심판을 거친 것이라면다음에는 거기서 나온 것이 조금이라도 싹이 트고 줄기가 나올 때에 당신은 즉시 그것을 심판하게 된다이 비췸이 있은 후에 비로소 당신은 영과 혼을 분리할 수 있다이 비췸 아래 있기 전에 당신의 모든 것은 교리에 지나지 않는다이것은 마치 죄인이 웃으면서 자신을 죄인이라고 한 것과 같다만일 빛이 없다면 당신의 다룸은 무익하다오직 빛 가운데서 받은 다룸만이 유용하다당신이 이렇게 주님 앞에 살 때 당신의 영이 해방되고 깨끗케 될 수 있으며 당신을 쓰시는 데 있어서 주님에게 문제가 없게 된다.


영과 혼의 분리는 비췸에서 나온 것이다비췸이란 무엇인가하나님이 우리를 비추사 비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시기 바란다비췸은 하나님이 보신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하나님이 보신 것은 무엇인가이는 곧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이다우리가 보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이는 곧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나 실지로는 하나님에게서 나오지 않은우리들에게서 비롯된 일들이다비췸이란 우리의 생활에서 하나님에게 속했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우리 자신에게 속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비췸이란 우리가 본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을 이제는 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본래 영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이제는 그것이 혼에 속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본래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이제 보니 다 자아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그 때 우리는, <주여, 이제서야 제 자신을 알았습니다저는 눈이 먼 사람이었습니다. 20 , 30 년 동안 이것을 몰랐습니다당신이 보신 것을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바로 그 본 것이 당신의 어떤 것을 제거한다봄이 곧 처리됨이다보는 것과 처리받는 것을 별개의 일로 생각하지 말라하나님의 말씀은 운동력이 있어서 빛이 당신에게 비췰 때 당신의 겉사람은 즉시 제해진다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앞으로 점차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다또한 하나님의 빛이 당신을 먼저 비추고 그런 다음 당신이 그 본 것을 제거하는 것도 아니다보는 것과 제거하는 것은 별개의 두 단계가 아니다비췸은 곧 제함이다비췸과 제거함은 동시에 이루어진다빛이 비췰 때 육체는 즉시 죽는다사람의 육체가 빛 아래 놓여질 때 육은 더이상 살 수 없게 된다이 빛을 만난 사람은 고의로 겸손하려고 할 필요 없이 완전히 고꾸라진다이 빛 아래 있는 사람의 육체는 다 메마르게 된다형제 자매들이여, 이것이 운동력이다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운동력이 있다하나님은 먼저 말씀하시고 그 다음 다시 운동력을 만들어 내시는 것이 아니다당신에게 있는 말씀이 곧 운동력인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 눈을 열어주사 성령의 통제와 성령의 계시의 두 방면을 볼 수 있게 하시기를이 두 방면이 합해질 때 우리의 겉사람이 파쇄한다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사 우리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빛 아래 두게 하시고 또한 이 빛이 한번은 우리에게 임함으로 엎드려 이렇게 주님께 말할 수 있기 바란다. <주여, 저는 어리석고 눈이 멀었습니다내 자신의 것을 당신의 것이라고 여길 정도로 어리석고 눈이 멀었습니다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8 , 인상과 영의 상태

 

파쇄와 인상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는가는 우리가 무엇을 말했는가에 있지 않고 또 우리가 무엇을 했는가에도 있지 않다우리가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는가는 우리 몸에서 나간 것이 무엇인가에 달렸다만일 우리가 말한 것과 우리 몸에서 나간 것이 다르고 우리의 행한 것과 우리 몸에서 나간 것이 다르다면그것들은 결코 사람들을 도울 수 없다그러므로 우리 몸에서 나간 것이 무엇인가는 중요한 문제이다우리는 대부분 누구든 인상이 매우 좋다거나 좋지 않다고 말한다이 인상은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인상은 그의 말에 근거하지 않는다만일 인상이 사람의 말에 근거한 것이라면 말을 잘 할 때에는 좋은 인상을 주고 말을 잘 하지 못할 때에는 좋지 않은 인상을 줄 것이다이럴 때 다른 인상에 대해 말할 것이 없게 된다그러나 사실은 이것외에 다른 어떤 기묘한 것이 사람에게 인상을 주는 것이다사람이 우리에게 준 인상은 사람의 말과 행위 외에 어떤 것이다그가 말할 때나 행동할 때 그의 몸에서 나온 어떤 것이 우리에게 인상을 주는 것이다.


사람에게 인상을 주는 것은 다 우리 몸에서 가장 강한 부분이다만일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에 의해 파쇄되지 않았다면 우리의 생각은 사려가 깊거나 야만스런 생각일 뿐이다자연히 형제 자매를 만날 때 우리는 우리의 생각으로 그들을 접한다그러므로 사람들이 우리 몸에서 느낀 것은 그 생각뿐이다혹 우리가 비정상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의 감정이 지나치게 열렬하거나 지나치게 냉담할 것이다이렇게 우리의 감정이 주님에 의해 파쇄되지 않은 결과우리가 사람들과 왕래할 때 우리의 감정이 흘러나오게 되고 우리 몸에서 사람들이 받은 인상은 우리의 감정이 된다우리 몸에서 가장 강한 부분이 무엇이면 우리 몸에서 나간 것도 그것이며 사람들이 받은 인상도 그것이다우리가 우리 자신의 말과 행위를 제어할 수는 있지만 우리 몸에서 나간 것을 제어할 수는 없다자연히 당신이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이면 당신에게서 나간 것도 그것이다.


열왕기하 4장에서 수넴 여인이 엘리사를 영접한 일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 한 귀한 여인이 저를 강권하여 음식을 먹게 한 고로 엘리사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니 그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에게로 지나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줄을 내가 아노니엘리사가 수넴을 지나갈 때 그는 한 편의 메시지를 전한 적도 없고 기적을 행한 적도 없었다그는 거기를 지날 때마다 그 집에 들어가 음식을 먹었었다그 여인은 그가 음식 먹는 것을 보고 그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이것이 바로 엘리사가 사람에게 준 인상이다.


오늘 우리도 우리가 사람들에게 준 인상이 무엇이고 우리 몸에서 나간 것이 무엇인지를 자문해 보아야 한다우리는 우리의 겉사람이 파쇄되어야 한다는 것을 언급했었다우리 겉사람이 파쇄되지 않을 때 우리가 사람에게 주는 인상은 우리 겉사람이게 된다우리가 사람들 앞에 나아갈 때마다 우리는 사람의 마음을 이프게 하거나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거나찌르고 강팍하고 교만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할 것이다혹은 사람들에게 당신이 총명한 사람이거나 구변이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줄 것이다혹 당신은 사람들에게 소위 좋은 인상을 줄 것이다그러나 이런 인상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는가이런 인상이 교회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가하나님은 이것만으로 만족하실 수 없으시고 교회 안에도 이런 것은 필요치 않다.


형제들이여, 하나님은 우리의 영이 해방되기를 원하신다또한 교회도 우리의 영이 해방되기를 원한다그러므로 우리에게 한 가지 큰 필요가 있다또한 이것은 아주 중대한 필요인데 그것은 바로 우리 겉사람의 파쇄이다만일 겉사람이 파쇄되지 않았다면 우리의 영은 해방될 수 없고 사람들에게 영의 인상을 줄 수도 없다.


어떤 형제가 성령이라는 주제로 설교를 하는데 그의 모든 말과 모든 태도와 인용한 이야기들이 다 자신으로 충만되어 있다하자앉아서 그것을 듣기란 정말 괴로운 일이다그의 입에는 성령이라는 말이 가득하지만 그의 온 몸은 자아로 가득하다전한 것은 성령이지만 사람에게 준 인상은 자아이다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그러므로 우리는 교리를 주의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 우리 몸에서 나가느냐를 주의해야 한다만일 당신 몸에서 나온 것이 당신의 자아라면 다른 사람들은 당신에게서 당신의 자아를 느낄 것이다당신이 전하는 메세지의 제목이 좋고 당신의 교리가 좋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하니님은 우리가 교리적으로 계속하기를 원치 않으시고 우리의 자아를 처리하고자 하신다만일 우리가 다룸을 받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일에서 우리는 그리 유용하게 쓰임을 받을 수 없게 된다또 이럴 때 우리는 사람들에게서 영적인 교리만 줄 수 있을 뿐 영적인 인상을 줄 수 없다만일 우리가 전한 교리는 신령한 반면에 우리가 사람들에게 준 인상이 우리의 자아라면 이것은 극히 불쌍한 일이다그러므로 우리는 계속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파쇄하시게 해야 한다.


하나님이 거듭거듭 환경을 안배하신 목적은 우리의 그 강한 부분을 깨뜨리시기 위한 것이다당신의 강한 부분이 한 번의 강타로 깨지지 않는다면 두번째의 강타가 있게 된다그래도 당신이 강하다면 세번째 강타가 올 것이다하나님은 당신에 대해 풀어 놓지 않으신다당신의 강한 부분이 깨뜨려질 때까지 그분은 역사를 멈추지 않으신다.


성령이 우리 몸에서 이루신 통제는 일반적인 말씀을 듣는 것과 다르다일반적으로 말씀을 듣는 것은 먼저 생각의 이해로 시작하여 몇개월이나 며칠이 지난 후에 비로소 하나님은 그 진리 안으로 우리를 이끄신다이것은 말씀 듣는 것이 먼저이고 진리 안에 들어가는 것은 나중이다그러나 성령의 통제는 이와 같지 않다성령의 통제의 한가지 특징은 당신이 그 진리 안으로 들어갈 때가 바로 그것을 얻을 때라는 것이다이 두 가지는 동시에 이루어지며먼저 교리를 보고 나중에 그것을 얻는 것이 아니다우리는 어리석어서 말씀 듣는 데에는 빠르고 성령의 통제를 배우는 데에는 매우 더디다많은 교리는 한번 듣기만 해도 기억하게 되지만성령의 통제에 대하여는 열 번 환경이 임하여도 성령이 우리의 어떤 것을 통제하고자 하시는지를 모른다주님은 한 번으로 우리를 깨뜨리실 수 없을 때 또 한 번 치신다성령에 의해 어떤 것을 당신에게 이루기까지 한 번, 두 번, 열 번, 당신을 통제할 때가 바로 그 진리를 본 날이다당신은 그 진리를 봄과 동시에 그것을 얻는다그러므로 성령의 통제에는 성령의 허물어드림과 세우심이 있다이것이 성령이 역사이다성령의 통제를 거친 사람은 진리의 온전함을 얻고 또한 동시에 허물어짐과 세움을 얻게 된다성령의 통제를 받고 주님 앞에서 무언가를 보고 만질 때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주님께서 지난 5 , 10 년의 시간을 들여 나를 다루신 목적이 바로 이것을 처리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주님께 감사드리자여러 번의 다룸을 받을 때 그것은 실지로 제거될 것이다.


빛 비춤과 죽임


비춤도 성령의 역사이다성령의 통제와 비춤의 두 가지 역사로 우리 겉사람을 처리하신다어떤 때는 이 두가지가 동시에 진행되고 때로는 돌아가면서 역사된다때로는 환경 가운데서 성령이 우리의 강한 부분을 계속 처리하신다때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있을 때에야 특별한 빛으로 우리를 비추신다한 가지 우리가 분명히 보아야 할 것은육체는 흑암 안에서만 감취어진다는 것이다흑암이 없는 곳에는 육체가 숨을 곳이 없다많은 육체적인 행위가 존재하는 이유가 우리가 그것이 육체인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비춤이 우리에게 육체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실 때 우리는 두려워서 감히 활동하지 못하게 된다.


교회가 풍성할 때하나님의 말씀이 나올 때말씀의 사역이 강할 때선지자의 말씀 전파가 강할 때빛은 더 많아지고 또 강해진다이 빛이 당신에게 임할 때 비로소 당신은 당신의 입으로 한 말이 원래 교만이었음을 알게 된다본래 교만을 말할 때 당신은 교만을 자랑으로 여겼을 것이다그러나 빛 가운데서 교만을 볼 때, 당신은 <! 이것이 교만이었구나본래 교만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었구나원래 이렇게 더러운 것이었구나>라고 말할 것이다계시의 빛 안에서 본 교만은 평상시 입으로 말한 교만과 완전히 다른 것이다입버릇으로 말한 교만은 그 가증함을 느끼지 하지 못한다당신은 그 더러운 정도를 느끼지 못한다당신은 자신의 교만을 말하지만 그것에 대한 느낌은 별로 없다어느 날 빛 아래서 비춤을 얻을 때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비춤은 당신의 참 모습을 보게 한다오늘 당신이 본 자아는 전에 당신이 말한 자아보다 몇 배나 도 가증한지 모른다심지어 천만 배나 더 가증하고 더러울 것이다이럴 때 당신의 그 교만, 당신의 자아당신의 육체는 제해지고 위축되며 더이상 살아나갈 수 없게 된다.


빛 가운데서 우리가 본 것은 무엇이나 빛 가운데서 죽임을 당한다이것은 가장 희귀한 일이다빛 가운데서 본 바가 빛 가운데서 죽임당한 바이기도 한 것이다본 것과 죽임당하는 것은 별개의 단계가 아니다빛 가운데서 내 자신의 형편없음을 보고 그 후 몇 년이 지나야 점차적으로 자신의 형편없음이 다 제거되는 것이 아니다계시의 비춤 아래 자신의 형편없음을 볼 그 때가 바로 자신의 형편없음이 끝나고 자신이 땅에 엎드려질 때인 것이다빛은 능히 우리를 죽이는데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체험에서 가장 기묘한 일이다성령이 당신에게 무언가를 계시해 줄 때가 바로 당신의 자아를 처리될 때이다그러므로 계시는 곧 봄으로써 죽는 그것이다그 봄으로 인해 육체는 위축된다계시는 하나님의 역사의 방법이고 하나님의 역사인 것이다빛이 계시될 때 그것은 곧 자아를 죽이는 것이다빛이 계시되어 사람에게 보일 그 때가 바로 그 본 것에 의해 죽임을 당할 때이다그 더러움과 가증함과 주님에 의해 정죄됨을 당신에게 보여주실 때 당신의 자아는 더이상 살지 못하게 된다.


빛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체험에서 가장 중대한 일이다바울은 비춤을 얻은 후에 길을 간 것이 아니라 빛 비춤을 받은 즉시 엎드려졌다본래 바울은 모든 것을 스스로 생각하고 모든 것에 확신을 갖고 있었다그러나 빛이 비췰 때 그의 첫번째 반응은 땅에 엎드러지는 것이었고 어리둥절해지는 것이었으며 아무 것도 모르게 되는 것이었다빛은 그를 땅에 엎드러지게 했다우리는 이것이 두 단계가 아닌 한 단계임을 주의해야 한다우리의 과정이 다음 같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먼저 나를 비추시고 나로 깨닫게 하신 후에 내가 그것을 하겠다또는 하나님이 나를 먼저 비추사 나에 형편없음을 보시시면 내가 그렇게 고치겠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렇지 않다하나님은 다만 당신의 가증함과 더러움과 당신의 그 형편 없음을 보여주실 따름이다.이것을 볼 때 당신은 <, 내가 이렇게 더러운 사람이라니내가 이렇게 가증한 사람이라니!>라고 말할 것이다하나님이 당신의 참 모습을 보여주실 때 당신은 엎드려질 것이고 위축되어 기어서 일어나려고 해도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교만한 사람은 주님의 비춤을 얻은 후에 그에게 교만하라고 해도 교만해지지 않는다만일 한번 하나님의 빛 안에서 당신의 참 모습을 보고 당신의 교만이 어떤 것인지를 보았다면당신 몸에서 그 인상은 영원히 제해지지 않을 것이다당신에게 고통을 주고당신의 쓸모 없음을 느끼게 하며당신으로 교만치 못하게 하는 어떤 것이 당신 속에 있게 된다.


다른 면에서 하나님이 당신을 비출 그때는당신이 간구할 때가 아니라 당신이 엎드러질 때인 것이다많은 형제 자매들은 하나님이 말씀하고 계실 때 기도만 하고 있기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우리가 구원받을 때의 원칙은 나중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의 원칙과 동일한 것이다우리가 구원받고 빛 비춤을 얻을 때우리는 다만 무릎을 꿇고, <주여, 당신을 내 구주로 영접합니다>라고 말하면 된다이럴 때 역사가 일어난다만일 누가 복음을 듣고서 <주여, 당신이 내 구주가 되어 주소서>라고 말한다면그가 며칠간 기도한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그를 구원했다는 느낌이 없을 것이다그러므로 빛이 우리를 비출 때 우리는 즉시 빛 아래 엎드러져 주님께 <주여, 당신의 판단을 받아들입니다나의 대한 당신의 판단을 받아들입니다>라고 말해야 한다이렇게 할 때 그분은 우리에게 더 많은 빛을 주실 것이고 자신의 더러움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비추시는 날 우리는 과거 주의 이름으로 했다는 많은 일들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했다는 많은 일들에 대한 이해가 달라질 것이다그 그림은 바뀌어서 전에 당신이 가장 고귀하다고 느꼈던 목적들을 이제는 그 안에 가장 비천한 동기가 들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본래 완전히 하나닝을 위했다고 생각한 일도 이제는 그 안에 당신 자신을 위한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발견할 것이다그 깨달을 정도는 당신으로 땅에 엎드러지게 하는 정도다 사람의 자아는 어디나 파고들어 하나님의 영광까지도 탈취하려고 한다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 없는 것 같다하나님이 비추시는 날 당신은 당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발견할 것이다하나님의 계시가 있어야만 우리의 벌거벗은 상태가 드러난다그분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도록 우리의 벌거벗은 상태에 머무는 것을 허락하신다본래 그분만이 우리를 아시고 그분 앞에서 우리의 상태는 벌거벗은 것이었다그러나 우리 자신에 대하여 우리가 아직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벌거벗음을 보지 못한다하나님이 우리 속의 모든 생각과 모든 동기를 들춰 놓으사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주실 때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사람이 될 뿐 아니라 우리 자신 앞에서도 벌거벗은 자가 된다우리가 우리 자신 앞에서 벗은 자가 될 때 우리는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된다우리가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때 우리는 자아를 모르고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빛 안에서 우리 자신을 볼 때 우리는 들어갈 구멍이 없을 정도로 부끄럽게 된다. <본래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과거 내가 자랑했던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이제 알게 되었다본래 나는 내가 남보다 더 선하다고 생각했으나 이제 비로소 내가 이런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에 대해내가 더러운 자라는 것과 내가 가증한 자라는 것을 표현할 더 좋은 말이 없다당신은 수년 동안 눈이 멀어서 이것을 보지 못했다고 말해야 한다당신이 자신의 더러움을 볼수록 당신의 수치를 느끼고 온 세상의 모든 수치가 당신 몸을 억누르는 것같이 느낄 것이다당신이 주님 앞에서 엎드러질 때 비로소 하나님 앞에서 당신은 통회하면서, <내 자신이 한스럽다내 자신이 밉다내 자신이 구제불능인 사람임을 시인한다>라고 말할 것이다.


바로 이 비춤, 바로 이 통회함바로 이 부끄러움, 바로 이 가증함바로 이 고개를 들지 못함이 수년 동안 당신이 벗지 못한 것을 벗게 한다그러므로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순간적으로 본 것에 달려 있다보는 것과 제거하는 것은 한 단계에 속한 것이고 서로 연결된 것이다주님은 사람을 비추시는 동시에 또한 그 사람을 구원하신다비춤은 곧 구원하심이요 봄은 또한 벗어남이다우리에게는 하나님 앞에서 보는 것과 이 빛 비춤이 필요하다이럴 때 비로소 우리의 교만이 제거되고 우리의 육체적인 행위가 멈춰지며 우리의 겉껍질이 파쇄된다.


통제와 계시의 비교


이 두 가지 중요한 것, 곧 성령의 통제와 하나님의 비춤 혹은 성령의 계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우리는 이 두 가지를 잠시 비교해 보자성령의 통제를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상당히 점차적인 것이고 한 차례 한 차례 발생하는 것이다때로 어떤 일을 처리하기 위하여는 수년이 걸린다또한 성령의 통제는 반드시 사역의 공급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많은 때 이것은 사역의 공급없이 성령의 통제로 이루어진다그러나 성령의 계시는 다르다많은 때 이것은 아주 빠르고 며칠 또는 몇 분에 우리에게 발생한다하나님의 비춤 안에서 몇 분 혹은 며칠 내에 당신은 자신이 끝난 사람이고 아무 쓸모가 없는 사람이며 전에 자랑했던 것이 당신의 수치인 것을 보게 된다또한 성령의 계시는 많은 경우 말씀의 공급으로 말미암는다그러므로 교회가 강할 때말씀의 공급이 많을 때성령의 계시도 많아진다.


그러나 말씀의 사역이 없고 성령의 계시가 없다 하더라도 겉사람을 보류한 채 주님 앞에 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왜냐하면 말씀이 결여되고 계시가 결여된다 하더라도 성령의 통제는 여전히 있기 대문이다당신이 수년 동안 다른 성도를 만날 기회가 없었다 하더라도 성령은 여전히 당신을 통제하고 주님 앞에서 당신은 당신의 높은 단계의 것을 만질 수 있다교회가 약하기 때문에 말씀의 공급을 잃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성령의 통제를 잃어버린 사람도 있다이것은 성령의 통제가 그에게 없었다는 뜻이 아니다이 말은 성령이 수년 동안 통제했어도 어떤 결과를 산출해 내지 못했다는 뜻이다주님이 한 번 우리를 쳐도 우리가 그 뜻을 모르고 두 번 쳐도, 십 년간 우리를 쳐도 우리는 무지한 노새같이 주님의 뜻을 모른다이것은 가련한 일이다우리 몸에 통제가 적은 것이 아니다부족한 것이 있다면 우리가 주님의 손을 보지 못하는 것뿐이다.


많은 때 주님이 우리를 치고 계시는데도 우리는 계속 사람을 우리를 치는 대상으로 삼는다이것은 완전히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다주님을 향하여 우리는,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하옴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연고니이다> ( 39:9)
태도를 가져야 한다당신은 당신을 처리하는 이가 당신의 형제나 자매 혹은 당신의 친척친구들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당신을 처리하는 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당신은 이것을 보아야 한다우리는 수년 동안 주님이 내 몸에서 나를 통제하신 목적이 나를 처리하기 위한 것임을 보아야 한다그러나 나의 무지함으로 사람을 나무라고 운명을 나무라는 이것은 하나님의 손을 모르는 것이다이것은 잘못된 것이다당신의 모든 일이 얼마나 많고 얼마나 길며 얼마나 무거우며 어느 정도인가까지도 그분은 다 척량하셨다주님이 우리에게 많은 일들을 닥치게 하시는 목적은 다름이 아닌 당신의 특출한 점을 깨뜨리고 당신의 강팍한 점을 깨뜨리며 당신의 처리하기 어려운 점을 깨뜨리기 위한 것이다주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사 주님이 우리 몸에서 역사하시는 것의 의미를 보여주시기 바란다또한 주님이 우리에게 빛을 주사 우리 자신이 드러나며 우리로 일어나지 못하게 하시기를 바란다만일 주님이 우리 겉사람을 허물어뜨리시면 우리가 사람들과 왕래할 때 더이상 우리는 강팍한 부분으로 사람을 만나지 않게 된다우리가 사람을 만날 때마다 우리의 영은 해방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전혀 새로운 인식을 갖고 또한 그분에게서 전례 없는 축복을 얻기 바란다하나님의 복 주심을 그분의 자녀들이 얻기를 바란다주님은 우리를 올바르게 인도하고자 하신다복음이 옳을 뿐 아니라 복음 전하는 사람도 옳고교리가 옳을 뿐 아니라 교리를 전하는 사람도 옳기를 원하신다문제는 하나님이 우리의 영을 통하여 밖으로 해방되실 수 있는가에 있다영이 해방될 때 세상에서 영을 필요로하는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또한 이것보다 더 철저하고 달리 대치할 수 없는 일도 없다주님은 당신의 교리나 당신의 가르침을 주의하지 않으시고 당신이 전한 내용도 주의하지도 않으신다주님은 당신이 사람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는가를 물으신다당신 몸에서 사람에게 나간 것은 무엇인가당신은 사람들에게 당신 자신을 느끼게 하는가주님을 느끼게 하는가당신은 사람들에게 교리를 만지게 하는가주님을 만지게 하는가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만일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모든 수고와 일은 별 가치가 없다.


형제들이여, 주님은 당신이 입으로 한 말보다 당신 몸에서 나간 것을 더욱 주의하신다사람들과 접할 때마다 당신 몸에서 무언가 나간 것이 있기 마련이다만일 밖으로 나간 것이 당신 자신이 아니라면 하나님이고당신의 겉사람이 아니라면 당신의 영이다형제들이여, 우리는 반복해서 당신이 사람 앞에 서 있을 때 당신의 몸에서 나간 것이 무엇이냐고 묻겠다이것은 기본적인 문제이다우리가 이 빛을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한다.

 

 

 

9 , 파쇄 후의 부드러워진 상태

 

의지의 파쇄와 부드러워짐


하나님이 우리 겉사람을 파쇄하시는 길이 각 사람에게 다르기 때문에 성령의 통제가 강타하는 점도 각각 다르다어떤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그의 자애심(自愛心) 한 번, 두 번, 열 번, 환경을 통해 그의 교만을 치신다어떤 사람에 대해 하나님은 그의 지혜를 처리하시고 자신을 의지하는 그의 총명함과 행함을 처리하신다하나님은 이런 사람의 모든 환경에 문제가 생기게 하시고 모든 일을 실패로 돌아가게 하신다하나님은 계속 그로 실패하게 하여 그로 자신의 총명을 의지하지 않게 하신다결국 <나는 사람의 지혜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긍휼로 사노라>고 말하게 하신다어떤 사람에게 성령의 안배하신 통제는 다른 종류일 수가 있다성령은 환경으로 말미암아 그의 주관적임을 치실 것이다많은 사람들이 의견과 자기 주장과 자기 방법으로 가득 차 있다성경에는 <여호와께서 능치 못하시는 일이 어디 있느냐?>라는 말씀이 있다어떤 형제는 그에게 능치 못한 일이 없는 것 같은 태도를 갖고 있다그는 고개를 숙이고, <나는 모른다나는 할 수 없다>고 말 할 수 있는 일이 한 가지도 없는 것같다그러므로 주님의 영은 환경에서 그의 이 점을 처리하시고 그 점이 거듭거듭 타격을 받도록 하신다그는 입으로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가 성사시킨 일은 한 가지도 없다그가 용이하다고 생각했던 일들 중 망치지 않은 일과 실패하지 않은 일이 한 가지도 없다성령은 이 길에서 그를 치신다결론적으로 말해서 성령이 각 사람을 다루시는 부분은 다르다는 것이다.


성령이 각 사람을 치시는 속도 또한 다르다주님은 어떤 사람을 쉬지 않고 연달아 두세 번 치신다어떤 사람에 대하여는 한동안 치셨다가 한동안 쉬신다그러나 주님이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지 않는 일은 없다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에게서 성령이 강타하는 점을 찾아낼 수 있다매번 성령이 강타하는 점은 다르지만 매번 성사시키고자 하시는 것은 똑같다밖에서 강타하는 것이 무엇이든 속에서 상처 받는 것은 사람의 자아인 것이다하나님이 우리의 자애를 처리하시든우리의 교만을 처리하시든우리의 총명을 처리하시든혹은 우리의 주관적임을 처리 하시든밖에서 하나님이 어느 점을 처리하시든 매번 다루신 결과는 우리 자신이 전보다 더 부드럽게 되는 것이다하나님은 한 번 두 번 역사하사 결국 언젠가 우리 자신을 타파하시고 우리 자신을 부드럽게 만드신다어떤 사람은 감정에 있어서 특별한 다룸을 받고 어떤 사람은 생각에 있어서 특별한 다룸을 받는다그가 받은 다룸이 어떤 방면이든 최종적인 결과는 그의 의지를 파쇄하는 것이다그가 받은 타격이 어느 방면이든 파쇄된 것은 그 사람의 자아요 그의 의지인 것이다우리들은 다 강팍한 사람이다우리의 의지는 강팍하다우리의 강팍한 의지를 유지해주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주장자애와 우리의 감정과 총명이다우리의 의지를 옹호하는 것은 다 다르지만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강팍한 의지는 다 같은 것이다성령이 우리 각사람을 치시고 다루시며 헐어버리시는 것이 각기 다른 것 같지만최종적으로 내적인 다루심은 다 같은 것이다이것은 다 우리 자신을 처리하기 위한 것이요 우리의 의지를 깨드리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로 인해 엎드로지는 사람 혹은 통제로 인해 엎드러지는 사람의 기본적인 특징은 바로 그 사람이 부드러운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다부드러움은 파쇄된 사람의 특징이다하나님에 의해 파쇄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부드러운 사람이 된다우리가 강팍하고 겉껍질이 딱딱한 이유는 우리의 강팍함을 옹호하는 많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치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기둥이 가득한 한 채의 집과 같다하나님이 기둥을 하나, 둘 뽑아버리실 때 집은 무너지기 마련이다밖의 지탱하는 물건이 무너질 때 속의 자아는 자연히 무너진다우리는 결코 목소리가 작은 사람의 의지는 강팍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사람 앞에서 별로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의 의지가 필히 부드러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목소리가 작은 사람의 속이 강팍한 경우도 매우 많다강팍함은 목소리의 문제가 아닌 성품의 문제이다어떤 사람은 겉보기에 성질이 급하고 목소리가 큰 사람보다 더 부드러울 것 같으나 사실상 하나님 앞에서 그는 똑같이 고집이 세고 강팍하며 똑같이 이기적이고 자신을 신뢰할 것이다우리 속의 건축물을 지탱해주는 기둥들은 다 다르겠지만 속의 건촉물은 완전히 같은 것이다우리의 자아와 의지는 다 똑같이 강팍하다주님은 우리의 강팍함을 옹호하는 모든 것을 하나하나 가져가고 타파하고자 하시기 때문에 그분은 한 번, 두 번, 열 번, 우리를 다루시는 것이다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면 우리 몸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것이다우리가 받은 징계가 이렇게 심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다시 행할 때 그런 일에 대해 우리 마음 속에 약간의 두려움이 생기게 된다우리가 다시 그런 일을 하고 전과 같이 말할 때 주님이 우리를 치실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감히 전과 같이 임의로 행하지 못하게 된다하나님이 처리하시는 것이 밖의 어떤 것인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를 부드럽게 하여 우리로 어떤 점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다당신은 어떤 점에서 주님을 거스를 수 없고 자기의 주장을 견지할 수 없다고 느낄 것이다그러나 사실 당신은 주님의 치심이 두려워서 감히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당신이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그 일에서 부드러워질 것이다하나님의 다루심이 증가할 때 당신의 부드러움도 증가하게 된다하나님이 당신 몸에서 하신 헐어버리는 역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범위가 넓으면 넓을수록 당신은 더욱 부드러워진다그러므로 부드러워진 것은 파쇄를 거친 하나의 현상이다.


어떤 사람과 왕래해보면 당신은 그 사람이 확실히 은사 있는 사람임을 알 것이다그러나 동시에 당신은 그가 아직 파쇄되지 않은 사람임을 자주 느낄 것이다많은 사람은 은사가 있는 반면에 아직 파쇄되지 않았다그 파쇄되지 않은 것을 사람들이 볼 수 있고 사람들은 그것을 접하기만 해도 그의 강팍함을 알 수 있다파쇄된 사람이 부드럽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그 반면에 파쇄되지 않은 사람은 강팍하다사람이 하나님의 매를 맞은 그 점에서는 감히 자랑하지 못하고 감히 교만하지 못하며 감히 방임하지 못한다또한 그 점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고 부드러운 사람이 된다.


성경은 성령에 대한 비유를 사용하였다성령을 불 같다고도 하고 물 같다고도 하였다불은 그분의 능력을 말하고 물은 그분의 청결함을 말한다성령의 성품을 말할 때에는 비둘기 같다고 했다바꾸어 말해서 성령의 성품은 강팍하지 않고 비둘기같이 부드럽고 안온하며 온화한 성품이라는 것이다하나님의 영이 그분의 성품을 한 단계 한 단계 우리 안에 건축하실 때 우리는 더 많이 비둘기의 성품을 갖게 된다경외함에서 나온 부드러움은 성령의 파쇄로 인한 표시이다.


부드러워진 상태


사람이 성령에 의해 파쇄될 때 자연히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부드러워진다사람들이 그를 접할 때 그는 더 이상 강팍하지 않고 무섭지 않다그는 주님의 의해 목소리도 부드러운 사람이 되고 태도도 부드러운 사람이 된다그가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자연히 그는 태도와 말에서 그의 속의 경외함을 흘러내보내게 되고 이러므로 부드러운 사람이 된다.


쉽게 다룸을 받음


어떤 종류의 사람이 부드러운 사람인가부드러운 사람은 쉽게 다룸을 받는 사람이다부드러운 사람은 쉽게 남의 말을 듣고 쉽게 청함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하나님 앞에서 파쇄된 사람은 죄를 자백하기도 쉽고 눈물을 흘리기도 쉬운 사람이다어떤 사람은 눈물을 흘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이것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아무 용도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하나님의 다룸을 받고 밖의 성품이 하나님에 의해 파쇄되며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하나님의 파쇄를 당할 때 자기의 잘못을 쉽게 보고 죄를 자백하기도 쉬워진다는 것이다그는 말을 듣기 어려운 사람이 아니다그의 두꺼운 껍질이 깨질 때 그의 감정과 생각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쉽게 받아들이게 되고 다른 사람의 말과 훈계를 쉽게 받아들이게 된다그날부터 그는 하나님에 의해 다른 새로운 영역 안으로 이끌리게 되고 언제 어디서나 온전케 함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쉽게 느낌을 가짐


부드러운 사람은 쉽게 느낌을 갖는 사람이기도 하다그는 겉사람이 파쇄되었기 때문에 그의 영이 매우 쉽게 나오고 또한 형제 자매의 영을 만질 수 있다누가 영을 사용할 때 그는 그것을 알 수 있다그의 감각은 매우 예민해져서 한순간에 일어난 일의 옳고 그름을 알수 있다사람의 영이 움직일 때 그는 즉시 반응을 갖는다그러므로 그는 어리석은 일이나 사람에게 득죄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많은 때 다른 사람의 영의 어떤 일을 좋지 않게 느낄 때에도 우리가 그것을 계속 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겉사람이 파쇄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영에는 느낌이 있는데 우리에게 그런 느낌이 없기 때문이다많은 때 어떤 형제 자매가 집회에서 기도할 때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지겹게 느끼고 그가 기도를 멈추기를 바라는데도 그는 계속 기도한다다른 사람의 영은 그가 기도하기를 그만 하기를 원하는데도 그는 감각이 없다사람이 느끼는 것에 대해 그는 아무 감각이 없다이것은 그의 겉사람이 파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파쇄된 사람은 그의 영으로 쉽게 다른 사람의 영을 만지고 다른 사람이 느낀 것을 만진다그는 아무 감각이 없는 사람 같지 않다그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나 자신을 모르는 일을 하지 않는다.


겉사람이 파쇄될 때 비로소 사람은 그리스도의 몸을 알기 시작하고그리스도의 몸의 영을 만질 수 있으며다른 지체의 느낌을 만지게 된다또한 당신은 당신의 일을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일을 하지 않게 된다감각이 없는 사람은 몸이 가짜 지체 같고 끼워 놓은 의수와도 같다의수도 몸의 활동을 따르나 한 가지 부족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어떤 사람은 감각이 없는 지체이다온 몸이 다 감지했는데도 그는 감각이 없다.


그러나 겉사람이 파쇄될 때 그는 교회의 양심을 만지게 되고 교회의 느낌을 만질 수 있게 된다그의 영은 열려 있으며 교회의 영으로 그의 영을 만지게 하고 교회의 느낌을 그의 영에 교통을 해주도록 허락한다잘못을 범할 때마다 우리가 자신을 아는 것은 매우 귀한 일이다겉사람의 파쇄는 오늘 이후로 다시 잘못을 범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잘못을 빨리 알 수 있는 기관을 갖는 것이다형제 자매들이 당신의 잘못을 알 때에그들이 당신에게 입을 열기도 전에그들을 접하기만 해도 당신은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되고그들의 영을 만지기만 해도 그들이 어떤 일에 대해 반대하거나 동의하는지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몸의 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이것이 없다면 우리는 몸의 생활을 하지 못한다그리스도의 몸은 우리가 다 상의한 후에야 그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를 아는 것이 아니다이 몸은 우리 육신적인 몸같이 상의할 것이 없고 모든 지체가 동일한 느낌을 갖는 것이다그 느낌은 몸의 뜻을 나타내고 그 느낌은 또한 머리의 뜻을 나타낸다머리의 뜻은 몸의 뜻을 통하여 나타난다우리 겉사람이 파쇄될 때 우리는 쉽게 교정을 받고 쉽게 몸의 느낌도 가질 수 있게 된다.


쉽게 온전케 됨


가장 큰 도움은 우리의 잘못을 교정받는 데 있지 않고우리 겉사람이 파쇄됨으로 우리의 영이 열린 영이 되고이 영이 나타나는 동시에 우리가 다른 사람의 영의 공급을 받을 수 있게 되는 데 있다우리의 영이 속에서 해방될 뿐 아니라 또한 어디에 가서나 영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한다만일 겉사람이 파쇄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어떤 사람의 겉사람이 파쇄되지 않은 이유는 그의 생각이 특별히 강하기 때문이다이 형제가 집회에 와서 온전케 되기란 쉽지 않다왜냐하면 생각이 강한 사람은 그보다 생각이 더 강한 사람에게서 결코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형제가 말을 하고 있을 때 그는 이 생각도 안 좋고 저 생각도 안 좋다 하며그것도 흥미 없고 저것도 흥미가 없으며이것 저것도 다 자기를 도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한 달, 두 달, 일 년, 이 년이 지나도 그는 아마 한번의 도움도 얻지 못할 것이다그에게 생각의 두꺼운 껍질이 있기 때문에 그는 생각 속에서만 두움을 얻을 수 있고 영적인 도움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오셔서 한 번, 열 번, 일 년, 이 년, 수년에 걸쳐 그의 생각의 껍질을 전부 벗겨 내어 그의 생각이 얼마나 쓸모 없는지를 보여주신다결국에 그는 갓난아이같이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고 다시는 남을 경시하지 않게 된다이런 사람은 형제의 메시지를 들을 때에 그의 목소리를 듣거나 전파한 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듣지 않는다또한 이해하도록 전하는가의 여부도 듣지 않고 자기 영으로 그 형제의 영을 만진다주님이 말씀을 전하는 사람에게 역사하시어 전하는 사람의 영이 해방되고 활동할 때 듣는 사람은 이로 인해 소생함을 얻고 온전함을 얻게 된다만일 사람의 겉사람이 파쇄되었다면 다른 형제의 영이 해방될 때 그의 얻는 온전케 함은 교리적인 것이 아니라 다른 방면의 온전케 함이다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받은 처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겉사람은 더욱 철저히 파쇄되고 그가 얻은 도움도 더 많아진다어떤 형제 자매에게서 하나님의 영이 움직일 때 그는 도움을 얻게 된다이 때 그는 더이상 교리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의문으로 사람을 척량하지 않으며어떤 형제가 전한 것이 좋고 나쁜지를 생각하지도 않으며어느 형제의 구변이 좋고 나쁜지를 생각하지도 않으며어느 형제의 구변이 좋고 나쁜가 또는 성경 해설이 좋고 나쁜가를 주의하지 않게 된다그의 태도는 완전히 변해 버린다그러므로 우리가 얼마나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는 우리의 영이 어떠한가에 달렸다많은 때 사람들이 우리 앞을 지나갈 때 우리가 그들의 영을 만지지 못하고 그들로부터 온전케함을 얻을 수 없는 이유는 우리의 껍질이 너무 두껍기 때문이다.


온전케 됨이란 무엇을 뜻하는가온전케 됨은 아는 것이 증가하고 생각이 더 많아지고 교리가 더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영이 하나님의 영을 한번 더 접촉하는 것이다하나님의 영이 어떤 사람을 통하여 흘러나오든집회에서나 평상시 교통에서나 하나님의 영이 다른 사람 안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그들로 인해 배불리 먹고 소생함을 얻게 된다우리의 영은 거울 같다우리가 온전케함을 얻는 것은 마치 우리가 영이 빛나도록 한 번 더 닦여지는 것과 같다온전케 됨은 다름아닌 우리의 영이 다른 사람의 영에 의해 만진 바 되고 우리의 영이 성령에 의해 만진 바 되는 것이다성령이 다른 사람의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만질 때 우리를 온전케함을 얻게 된다영에서 나온 것은 부딪히기만 해도 빛을 낸다이것은 램프의 등피 색깔이 붉은 색이든 파란 색이든전선의 껍질이 희색이든 검정색이든 전기가 통하기만 하면 전구가 빛을 내는 것과 같다등피가 어떤 색인가는 우리의 주의할 바가 아니다.


우리가 주의할 것은 다름이 아닌 전기의 유출(流出)이다다른사람의 영이 조금 유출될 때 당신은 빛을 낼 것이다만일 당신이 자신이 알고 있는 신학을 잊어버리고 영을 해방한다면 당신은 소생함을 얻을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배불리 먹을 것이다이럴 때 당신은 쉽게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어떤 사람은 정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가 어렵다그를 돕기 위해서 당신은 많은 시간을 들여 기도하고 많은 힘을 들여야 그를 도울 수 있다강팍한 사람은 도움을 받기 쉽지 않으나 부드러운 사람은 쉽게 도움을 받는다.


그러므로 여기에 완전히 다른 두 길이 있다하나는 외부적인 생각이 속으로 들어오고 교리가 들어오며 성경 해설이 들어오는 것이다어떤 사람은 이것도 일종의 도움이라고 말한다이는 영과 영이 접하는 길로서 영이 접촉될 때 영성의 도움을 얻게 된다두번째 길을 만진 사람만이 참된 기독교를 만진 것이다이것은 참된 온전케 함이다만일 당신이 말씀을 듣는 것밖에 모른다면어떤 메시지를 듣고서 그 다음 주에 집회를 참석하여 같은 형제를 만나 또 같은 메시지를 들을 때 당신은 싫증을 내고 가버리려고 할 것이다당신은 같은 설교는 한 번만 들으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당신은 기독교를 교리밖에 없는 것으로 생각하여 그것들을 당신 영안에 담으려고 할 것이다그러나 당신은 온전케 됨이 교리의 문제가 아닌 영의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만일 지난 주에 말씀을 전한 형제가 영을 해방하고당신의 온 존재가 그의 영에 만진 바 되었다면당신은 그에 의해 씻어진 것같이 소생함을 얻을 것이다다음 주에 가서도 그 형제의 영이 해방되었다면 당신은 그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비록 제목은 낡은 것일지라도교리는 낡은 것일지라도그의 영이 해방되었다면 당신은 물로 씻어지듯 한번 더 씻겨질 것이다우리는 온전케 됨이 생각의 증가가 아닌 영과 영의 일로서 겉사람이 당신에게 얼만큼 교리를 주고 가르침을 주느냐에 있지 않다영의 접촉이 없는 모든 가르침과 교리는 다 죽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겉사람이 파쇄된 후 당신은 더 쉽게 온전케 되고 더 많은 방면에서 온전케 된다당신은 어떤 사람의 질문에서도 온전케함을 얻을 수있다주님을 찾고자 하는 죄인과 기도할 때에도 당신은 온전케 될 수 있다주님이 당신으로 하여금 큰 잘못을 범한 형제에게 심한 말과 책망의 말을 하게 하셨을 때 당신이 그의 영을 만졌다면당신은 이로 인해 온전케함을 얻게 된다당신은 여러 방면에서 온전케함과 공급을 얻을 수 있으며온 몸이 지체인 당신에게 공급한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어떤 지체도 당신을 공급할 수 있고 이떤 상황에서도 당신은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당신은 남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온 교회가 당신의 공급이 될 것이다이것은 얼마나 풍성한지이 때 당신은 머리의 풍성이 몸의 풍성이요 몸의 풍성은 나의 풍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이것은 생각과 교리의 증가와는 엄청나게 다르다이 차이는 매우 큰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서 도움을 많이 받고 더 폭넓게 도움을 받는 것이 그가 파쇄된 사람이라는 증거이다남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것은 그가 다른사람들보다 더 총명하다는 뜻이 아니다그것은 그의 밖의 껍질이 다른 사람보다 더 딱딱하여 어떤 것도 그를 매혹시킬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만일 주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사 여러방면에서 그를 깨뜨리셨다면어느 날 그는 온 교회로부터 공급을 얻을 수 있게 된다우리는 우리가 다른 사람의 공급을 받을 수 있는지를 자문해 보아야 한다만일 당신의 껍질이 딱딱하다면 성령이 다른 사람에게서 흘러나올 때 당신은 그 영을 만지지 못한다그러나 만일 하나님에 의해 깨뜨려졌다면 사람의 영이 움직이기만 해도 당신은 그에게서 도움을 얻게 된다이것은 사람이 섬세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영을 만났는가의 문제이다이 영의 만남이 당신의 영을 소생케 하고 당신을 온전케 한다그러므로 형제자매들이여이 겉사람의 파쇄가 바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온전케 될 수 있는가사역할 수 있는가의 기본 조건이다.


영 안의 교통


교통은 생각과 생각이 상통함이나 의견과 의견의 조화가 아니라 영과 영의 접촉인 것이다우리 영이 다른 형제의 영을 만지는이러한 영의 접촉이 바로 교통이다그러므로 우리가 주님 앞에서 긍휼하심을 입어서 우리 밖의 껍질이 깨지고 우리 겉사람이 무너질 때 비로소 우리의 영은 해방되고 형제 자매들의 영을 만질 수 있다그날 후에야 우리는 성도의 교통을 알게 된다그날 후에야 우리는 왜 성경에서 영의 교통을 말했고 영의 교통은 관점에서의 교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 동심합의로 기도할 수 있게 된다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머리로 기도한다이런 사람들은 같은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온 천하를 다녀봐도 자기와 같은 두뇌를 가진 사람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사실상 교통은 영 안에서 갖는 것이다거듭나고 성령의 내주하심을 소유한 모든 사람은 다 우리와 교통을 가질 수 있다만일 하나님에 의해 우리의 장애가 제해지고 우리의 겉사람이 헐어졌다면 우리의 영은 모든 사람을 향하여 열려 있게 된다우리의 영은 모든 형제의 영을 받을 수 있도록 열려 있고어떤 형제의 영에 의해서도 만진 바 될 수 있으며어떤 형제의 영도 만질 수 있게 된다이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만지게 되고우리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우리의 영이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시편 42 7절은깊은 바다가 서로 부른다고 말한다깊은 곳은 정말 깊은 곳을 부른다당신의 깊은 곳은 나의 깊은 곳을 부르고 있으며나의 깊은 곳은 온 교회의 깊은 곳을 만지고자 부르고 있는 것이다이것이 바로 깊은 곳이 서로 부르는 교통이자 부르짖음이고서로의 부르는 메아리이다만일 우리의 겉사람이 파쇄되고 우리 속사람이 해방되었다면우리는 교회의 영을 만지게 되고 주님 앞에서 비교적 유용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모방할 수 없음


우리가 말한 겉사람의 파쇄는 성령만이 할 수 있고 사람으로서는 모방할 수 없다모방은 통하지 않는다우리가 부드러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내 말의 뜻은 당신더러 내일부터 부드러운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라는 말이 아니다만일 당신이 이렇게 한다면 당신은 언젠가 당신이 만들어낸 부드러움이 무너지는 것을 볼 것이다사람이 스스로 만들어낸 부드러움은 아무 소용 없다성령이 역사한 결과에서 나온 부드러움만이 통한다우리 몸에 이루어진 모든 것은 우리로 말미암은 것이 아닌 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오직 성령만이 우리의 필요를 아시기 때문에 그분은 환경 안에서 우리에게 조우를 안배하사 우리를 헐어버리신다.


우리의 책임은 성령의 손길을 알고 그것을 인정하며하나님의 능력의 손에 복종하고 그분이 행하신 모든 것이 다 옳음을 인정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빛을 구하는 것이다우리가 우리를 헐어버리시도록 주님께 우리 자신을 맡기고 주님의 역사를 받아들일지언정우둔하고 무지한 노새가 되지 말아야 한다.주님의 능하신 손에 당신 자신을 맡길 때,당신은 그 역사가 오 년 전, 아니 십 년 전에 이미 시작되었으나 지난 오 년, 십 년 동안에 당신에게 아무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그러므로 오늘 당신 자신을 주님 손에 맡기면서 이렇게 말하라. <주여, 전에 저는 장님과 같아서 당신이 어디서 저를 인도해내고자 하시는지를 몰랐습니다당신이 저를 어디로 인도하실지도 몰랐습니다오늘 저는 당신이 저를 허물어뜨리고 계심을 알았습니다오늘 제 자신을 당신께 맡깁니다.> 이렇게 할 때 지난 5 , 10 년 동안 열매가 없었던 일이 이제 결실할 것이다주님은 과거 당신이 알지 못했던 것들을 허물어뜨리실 것이다당신이 허물어질 때 당신은 교만하지 않고 자기를 자랑하지 않으며 자기를 높이지 않게 된다이 허물어뜨림은 당신의 영을 자유케 하고 해방되게 하며 유용하게 한다이 때 당신은 영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두 가지 문제를 추가로 언급하겠다첫번째 문제는 이렇다겉사람의 파쇄가 성령의 역사를 필요로 한다면어떤 활동이 분명 육체로부터 나온 것임을 알 때 나는 내 힘으로 그 활동을 저지해야 하는지아니면 성령이 깨뜨리시거나 큰 빛이 비취기를 기다리며 그것을 저지하지 말아야 하는지이다.


이 문제에 관하여 우리는 이렇게 본다육체적인 모든 활동을 우리는 마땅히 제어해야 한다이것은 꾸민 것과 다르다오늘 나의 교만이 일어날 때 나는 나의 교만을 거절할 뿐 겸손해지려고 꾸미지 않는다오늘 내가 화가 나서 사람에게 욕하려고 할 때나는 성질을 거절해야 할 뿐 온유한 모양을 꾸며내지 말아야 한다멈추는 것은 소극적인 방면에 대한 것이고 꾸밈은 적극적인 방면에 관한 것이다소극적인 것들이 일어나려고 할 때 나는 그것들을 거절하고 방치하지 않지만결코 적극적인 것을 모방하지는 않는다교만은 소극적인 것으로서 내가 처리해야 할 것이다겸손은 적극적인 것으로서 나는 모방하지 않는다가령 본래 당신이 목소리와 태도에서 딱딱한 강팍한 사람이라면 이 강팍함은 응당 처리를 받고 거절되어야 한다그러나 이것은 꾸며낸 온유가 아니다그러므로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활동과 행위를 멈추어야 하는 반면에 적극적인 면의 미덕을 모방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당신은 주님께 맡기면서, <주여, 내 힘으로 모방하지 않고 당신의 역사를 앙망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이럴 때 당신은 하나님께서 헐으신 곳에 다시 무언가를 세우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밖의 모방은 하나님이 하신 역사가 아닌 사람 스스로 행한 것이다그러므로 무릇 추구하는 사람은 속에서부터 배울 뿐 밖에서 모방하지 말아야 한다하나님이 당신 속에서 무언가를 이루심으로 그것을 당신 밖으로 표현되게 하여야 한다무릇 사람이 밖에서 행한 모든 것은 다 참된 것이 아니다사람이 만들어낸 것들은 다 헐어져야 한다사람의 거짓됨은 다른 사람을 속일 뿐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속인다밖의 모방과 꾸밈이 많을수록결과적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고 믿게 될 것이다어느 날 당신이 그를 지적하면서, <이것은 참된 것이 아니므로 제거해야 한다고 말해도 그는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모른다그러므로 우리는 밖에서 모방하지 말아야 한다자연스럽게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세워주시도록 하는 것이 좋다밖에서 모방하고 꾸미는 사람이 되지 말고그분이 우리에게 필요한 미덕들을 우리 몸에 더해 주시도록 매일 그분을 앙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우리는 이렇게 단순하고 자연스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두번째 문제는 이렇다어떤 사람은 온유와 같은 천연적인 미덕을 갖고 있고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온유한데그렇다면 온유와 통제로 인한 온유는 어떻게 다른가?


이 문제에 관하여 두 가지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하나는 모든 천연적인 것은 다 단독적이고 영과의 연합이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성령의 통제로부터 나온 것들은 다 영의 지배를 받는다즉 영이 움직일 때 그것들도 움직인다는 것이다천연적인 온유는 영의 장애가 될 수도 있다영을 저지하는 모든 것은 다 강팍한 것이다바꾸어 말해서 나의 천연적인 온유함도 다 강팍한 것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사람이 천연적으로 온유하다면그의 온유는 독립된 것이고 자신에 속한 온유이다가령 주님이 그에게 일어나서 두 마디 강한 말을 하라고 하신다면그의 천연적인 온유는 장애가 되어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저는 이것을 할 수 없습니다일생 저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이 말은 다른 사람이 하도록 시키는 편이 낫겠습니다저는 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당신은 당신의 천연적인 온유가 영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볼 수 있다천연적인 것에는 다 자체의 의지가 들어 있고 그것들은 또한 다 강팍한 것이다그 온유함은 영의 쓰임을 받을 수 없다그러나 파쇄로 인한 온유는 완전히 다르다이런 온유는 영의 쓰임을 받을 수 없고 영을 저지하거나 반대하지 않는다또한 조금도 의견이 없이 완전히 영의 통제를 받는다.


둘째로, 천연적인 사람은 당신이 그의 뜻을 따를 때에만 온유하고당신이 그에게 원치 않는 일을 시키거나 원치 않는 일을 만질 때 그는 온유해질수 없다그러므로 사람의 천연적인 미덕은 자아를 버리게 할 수 없고 또한 사람의 자아를 세우기 위한 것이다이것은 불변하는 사실이다온유뿐 아니라 사람의 모든 천연적인 미덕들은 다 자아를 세우기 위한 것이다그러므로 그의 자아가 만진 바 될 때 그의 모든 미덕은 다 사라진다당신이 천연적으로 온유한 사람의 뿌리를 만질 때 그는 온유하지 못하게 된다언제든지 그가 원치 않는 것이 만진 바 될 때 그의 온유는 사라진다그의 온유가 사라지고 그의 모든 것이 사라진다그러나 통제에 의한 미덕은 완전히 다르다당신의 자아가 파쇄될 때 그 미덕들은 나타난다언제든지 하나님이 당신의 자아를 파쇄하실 때 도리어 그 미덕들은 나타난다당신의 자아가 파쇄될수록 당신은 더욱 온유하게 된다천연적인 미덕과 성령의 열매 사이에는 기본적인 차이가 있다.


강건하라


겉사람의 파쇄는 결코 꾸며낼 수 없고 그것을 대치할만한 다른 것이 없다우리는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 순복하여 우리 몸에 그분의 다루심을 받아들여야 한다겉사람이 파쇄되면 속사람은 강해진다소수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겉사람이 파쇄되었으나 그들의 속사람은 여전히 강건하지 않다그러나 우리의 속사람은 마땅히 강건해져야 한다만일 당신의 겉사람이 파쇄되었는데도 당신의 속사람이 강하지 않다면당신은 강건케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할 것이 아니라 <나는 겅건하리라>고 선포해야 한다성경은 우리에게 <강건할지어다>라고 명하셨다기묘한 것은 당신의 겉사람이 파쇄될 때 당신이 강하다고 말하기만 하면 강건하게 된다당신이 강해지겠다고 말하면 강해지고 강하겠다고 결심하면 강해진다내가 이렇게 하겠다고 말할 때 그렇게 된다한번 시도해 보라겉사람의 문제가 해결될 때 강건함의 문제도 해결된다당신이 강해진다고 말할 때 즉시 강해질 수 있다오늘 이후로 누구도 당신을 저지할 수 없다당신이 어떻게 하겠다고 결정하면 기묘하게도 그렇게 이루어진다주님은 <강건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다당신이 주님을 힘입어 강해지겠다고 말하면 그렇게 된다.


겉사람이 파쇄되어야 속사람이 자유롭게 될 수 있는 것이다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배우는데 있어서 기본적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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